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07화 (107/425)

107. 악귀 (3)

허공을 치솟던 악귀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아틸라는 저벅저벅 그것을 향해 걸어가 머리채를 쥐어올렸다.

“이름이 뭐냐.”

목이 잘린 정도로 악귀가 즉사하지 않는다는 걸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말할 것 같은…… 크억! 크아악!”

아틸라의 주먹에 몇 차례 가격 당한 악귀가 주섬주섬 입을 열었다.

“조……제프…….”

“널 이렇게 만든 자가 누구지.”

조제프는 대답 대신 길게 혀를 뻗어 아틸라를 공격했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아틸라는 무휼로 혀를 잘랐다.

기다랗게 절단된 혀가 지면에 떨어져 파득거렸다.

“크헥! 크릅……! 크르르르릅……!”

“말해라.”

피거품을 흘리며 조제프가 말했다.

“지젤이……, 크릅! 지젤이 날 배신…… 했어……! 그래서 난……!”

조제프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네놈……! 네놈도 나의 지젤을……! 나의 지젤 카아아악!”

퍼억! 조제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크헥! 크헤에에엑!”

아틸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제프의 따귀를 날렸다.

녀석의 이빨이 모두 부서져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때까지.

아틸라는 조제프의 얼굴을 가까이 잡아당겼다.

“날 똑바로 봐.”

흔들리는 조제프의 눈이 아틸라를 노려봤다.

아틸라는 굳이 녀석의 입을 통해 상황을 유추할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틸라는 심안을 시전했다.

조제프의 심언을 통해 그의 기억을 들여다봤다.

부분부분 누락된 기억이 있었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마을이군.’

아틸라는 뒤를 돌았다.

타타타탓! 짐승 같은 속도로 달려드는 조제프의 몸뚱이를 용아귀로 부쉈다.

퍼걱! 퍽! 십여 개의 조각으로 분리된 뒤에야 조제프의 몸뚱이는 움직임을 멈췄다.

“저거 처리 안 하고 뭐 했냐.”

“흐응. 어차피 네가 처치할 줄 알았느니라.”

“이동한다.”

“악귀의 마을로 갈 셈이더냐.”

“어차피 가는 길이다. 조금만 돌아가면 돼.”

조제프의 머리통을 바토리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이거 죽지 않게 좀 만들어 놔라.”

따닥딱 이를 부딪치는 악귀의 얼굴을 보며 바토리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조제프의 얼굴이 잠든 것처럼 평온해졌다.

“며칠은 충분히 견딜 것이니라.”

아틸라는 무기에 묻은 피를 대충 도적들의 옷에 닦았다.

“가자.”

발을 움직였다.

그 옆을 따라붙으며 바토리가 물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짓이더냐.”

“아마도.”

메피스토펠레스가 직접 나섰는지, 아니면 부하 악마를 이용했는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중간계에 간섭을 일으키고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시기의 원작에선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까.’

바토리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구나. 메피스토펠레스가 이렇듯 중간계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이.”

그간 메피스토펠레스는 중간계의 간섭을 꺼려왔다.

‘대악마와 신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래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을 추종하는 관조자 세력, 파우스트를 만들어 중간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틸라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중간계에 간섭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결론은 하나였다.

“파우스트의 전력이 약해졌기 때문이겠지.”

“흐응. 할리와 노이어 말이더냐.”

할리와 노이어는 아틸라와 카스피의 손에 죽었다.

“그뿐 아니라 파우스트 놈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만티코어도 죽었지.”

“아울러 슈시아는 발키리의 힘을 얻었고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군.”

“뭐라?”

슈시아는 원작에서도 발키리의 힘을 습득한다.

그러나 지금의 슈시아는 원작보다 더욱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다.

“아무튼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고, 무언가의 이유로 추가적인 힘을 필요로 했다, 이 말이로구나.”

바토리는 오랜 세월 중간계를 관조해 왔다.

거기에 더해 파우스트를 괴멸 직전까지 끌고 간 전력이 있다.

바토리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관계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의 이유란, 바로 너의 등장이겠구나 야만전사야.”

아틸라는 부정하지 않았다.

원작과 이 세계의 가장 큰 차이점.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존재 유무였으니까.

‘샤를의 행보가 원작을 벗어난 것에 더해 메피스토펠레스가 중간계에 간섭을 시작했다.’

물론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중간계에 발휘하지는 않는다.

마치 그림자처럼, 간접적인 개입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적마탑 애송이의 말은 사실이었던 모양이구나.”

아틸라는 묵묵히 조제프의 마을을 향했다.

리옹에 도착하는 날이 하루 이틀 늦어지겠지만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숲길을 벗어나자 들풀 가득한 평원이 나왔다.

“조금 서두르자꾸나.”

“웬일로 네가 그런 소릴 다 하냐 할망구.”

“리옹에 빨리 가고 싶구나.”

아틸라는 며칠 전 바토리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깜짝 놀랄 네 얼굴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나.’

그게 무언지는 몰랐지만 아틸라에게도 서둘러 리옹을 향해야 할 이유는 있었다.

첫 번째는 데비쉬의 추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술이 다 떨어졌다.’

잘 익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생각하던 아틸라는 등 뒤에서 낯익은 감각을 포착했다.

설마, 하며 뒤를 돌았다.

역시나였다.

“또냐.”

화염구가 날아오고 있었다.

“흐응.”

바토리가 마법을 펼쳐 그것을 막았다.

아틸라는 용아귀를 들었다.

이번에 붙잡으면 다시는 까불지 못할 만큼 두들겨 패 줘야겠다 생각하던 그의 시력이 무언갈 포착했다.

‘엥?’

덜커덕. 덜컥……!

반갑게 손 흔드는 라일의 반대편 손은 마차의 고삐를 쥐고 있었다.

* * *

“어떠냐 아틸라. 내 덕분에 편하게 이동하는 기분이.”

아틸라는 마차 뒤의 짐칸에 기대앉아 있었다.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인가. 자, 사양하지 말고 말해 봐라. 며칠 내내 비루한 두 다리로 걷다 이런 고급진 마차 뒤에 얹혀 가는 기분이 어떠냐고 내가 묻고 있다.”

“고맙구나 라일아.”

“아니, 아니지 바토리. 난 그대에게 물은 것이 아니다. 저 멧돼지같이 단순무식한 야만전사의 의견을 듣고 싶군.”

“이런 썅.”

듣다 못한 아틸라가 용아귀를 손에 쥐었다.

바토리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그냥 참고 가자꾸나. 내 다리가 많이 아프단다.”

“빌어먹을.”

아틸라가 용아귀를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라일이 말했다.

“남쪽의 야만전사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건가. 쯔쯔. 그대도 참 고생이 많군 바토리.”

“안 그래도 내가 문명인의 예의를 가르치는 중이니라. 많이 나아졌으니 너도 이제 그만하거라.”

바토리의 말에 아틸라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것 보거라. 고맙다는 표현을 이렇게 웃음으로 대신하고 있지 않느냐. 이것도 많이 발전한 거란다. 암. 많이 발전했고말고.”

“그건 그렇고 악귀의 대가리를 산 채로 확보하다니, 그거 하난 대단하군. 그게 아니었다면 태워 주지도 않았을 거다 전사 아틸라.”

“글쎄. 안 태워 주겠다면 내가 힘으로 빼앗았겠지.”

“한번 붙어 보겠다는 건가.”

라일이 말고삐를 늦추며 뒤를 돌아봤다.

그의 실눈이 음흉하게 아틸라를 향했고, 아틸라는 거절하지 않았다.

길게 찢긴 입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좋지. 바로 시작할까.”

“아니.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지금은 이 악귀가 탄생한 마을을 조사하고 싶으니까.”

라일의 얼굴이 다시금 전방을 향했다.

그러고는 옆자리에 놓인 조제프의 머리통을 두드리며 슬쩍 말했다.

“바토리와 곰새끼가 없었으면 넌 벌써 나한테 뒤졌어.”

“시발 저 새끼가 진짜!”

“아이고 그만 좀 하려무나 야만전사야.”

라일도 아틸라의 살기를 느꼈는지 더는 깐족대지 않았다.

바토리가 화제를 돌렸다.

“마차는 어디서 난 것이더냐.”

“도적떼의 습격을 당했다. 놈들을 물리치자 도적 하나가 목숨을 부지해 보겠다고 이 마차를 바쳤지. 며칠 전 어느 상단을 습격하고 빼앗은 거라 하더군. 아, 물론 그놈도 마차를 받자마자 죽였다.”

바토리는 라일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바토리와 펀치는 곤히 잠들었고, 용아귀를 베고 누운 아틸라는 별하늘을 바라봤다.

이윽고 라일이 입을 열었다.

“도착했다.”

마차가 멈춰 섰다.

라일이 조제프의 머리통을 휙 아틸라에게 던졌다.

그것을 한 손으로 받아 낸 아틸라가 상체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폐허로군.”

마을은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아틸라는 조제프의 머리통을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뜬 조제프는 마을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어떻게……!”

한눈에 봐도 마을이 이 지경이 된 건 최근의 일이 아니었다.

전장의 한복판이 되었든지, 혹은 도적떼의 습격을 받았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은 전쟁을 마친 조제프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역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것.

“이건…… 말도 안 돼……!”

아틸라는 조제프의 머리를 바닥에 던졌다.

자유의 몸이 된 조제프가 자신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느 집을 향했다.

일행도 뒤를 따랐다.

“지젤……! 지젤……! 나의 지젤이……!”

집 안으로 굴러들어간 조제프는 바닥에 널브러진 여자의 시체 옆에서 엉엉 울었다.

지젤의 시체는 처참했지만 목이 뜯긴 자국은 없었다.

그녀를 겁탈하려던 사내들의 시신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게 모두……, 모두 환각이었다고……?”

그제서야 조제프는 깨달았다.

애초부터 마을에 남자는 씨가 말랐었다.

무기를 들 수 있는 대부분의 사내는 전장으로 끌려갔다.

방앗간 주인 다니엘을 포함해서.

“키흑……! 키힉! 키헤에에에엑!”

오열하던 조제프가 아틸라를 습격했다.

아틸라는 용아귀를 뽑아 공처럼 튀어 오르는 머리통을 세로로 쪼갰다.

반으로 잘려 나동그라진 머리통이 피눈물을 흘리며 꿈틀대다, 이윽고 잠잠해졌다.

* * *

일행은 리옹에 도착했다.

리옹의 경비는 삼엄했지만 라일이 신분증을 보이는 순간 막힘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난 영주를 만나 보고 오지. 악귀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도시로 진입하자마자 라일은 사라졌다.

대도시답게 거리엔 활기가 넘쳤다.

얼마 전 보았던 조제프의 마을이 꿈속 세상이 아니었나 여기질 만큼.

“나는 저 여관이 마음에 드는구나.”

바토리가 가리키는 여관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금세 흩어졌다.

그런데 전부는 아니었다.

구석의 테이블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아틸라의 눈이 그쪽을 향했다.

동그랗게 눈을 뜬 남녀 한 쌍이 뚫어져라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틸라의 눈도 동그래졌다.

“어떠냐. 분명 너도 좋아할 것이라 말하지 않았더냐.”

바토리의 속삭임과 구석 자리의 남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동시였다.

“시, 시시시벌! 이게 누구야! 아틸라 님 아니오!”

“아, 아틸라! 바토리이이이!”

우당탕탕! 의자를 박차며 달려오는 건 오토와 카스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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