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추격자 (2)
“뭔데 그게.”
“흐응. 미리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않느냐.”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 마라.”
“깜짝 놀랄 네 얼굴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나.”
얼굴에 닿는 바람이 조금씩 서늘해졌다.
“펀치야. 이리 오려무나.”
아틸라의 발치를 걷던 펀치가 고개를 들었다.
헥헥 혀를 내밀며 아틸라의 얼굴을 응시하던 펀치는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깡충 바토리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지난번 샤를과의 전투에서 바토리가 펀치를 감싼 이후, 펀치는 더 이상 바토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네 덕분에 따뜻하구나. 펀치야.”
바토리가 속삭였다.
그것을 들으며 아틸라는 지구에 두고 온 고양이를 떠올렸다.
‘보고 싶네.’
태양이 기울며 낮과 밤의 어스름한 경계가 대지 위에 내려앉았다.
아틸라는 문득 등 뒤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봤다.
거대한 화염구가 눈앞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엥?’
바토리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이어 허공에 생성된 마법 장막이 화염구를 가로막았다.
퍼어엉! 장막과 부닥친 화염구가 폭죽처럼 터지며 소멸했다.
“흐응. 또 저 아이로구나.”
바토리는 상대를 한눈에 알아봤다.
“적마탑의 애송이.”
후마이야 왕국에서 아틸라의 앞을 가로막았던 적마탑의 마법사.
그가 일행의 뒤를 추격했다.
아틸라는 반색했다.
‘이런 행운이!’
바토리를 업은 채 놈에게 달렸다.
그의 목적은 마법사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말 내놔 새끼야!”
추격을 감지한 마법사가 말을 몰아 거리를 벌렸다.
그러면서 재차 마법을 시전했다.
이번엔 화염구가 아니었다.
파파파파팟!
수십 개의 불화살이 쏘아졌다.
비상하던 화살들은 어둠에 물들어가는 하늘 한복판에서 정점을 찍고 일제히 낙하했다.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공격이었음에도 아틸라는 순간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괜찮다. 그냥 달리거라.”
아틸라는 그렇게 했다.
바토리의 오른손이 뻗어지며 물결처럼 공기가 흔들렸다.
“제법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온 것 같구나. 적마탑의 애송이.”
흔들리는 허공을 뚫고 등장한 수십 개의 불화살이 탄환처럼 쏘아졌다.
그것들이 아틸라를 향해 쏟아지던 불화살을 격추하며 산화했다.
“오. 불꽃놀이 같군.”
아틸라는 질주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마법사는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며 새로운 마법을 쏘아 댔다.
“흐응. 그야말로 완벽한 전사 봉쇄법이 아니더냐.”
마법사는 아틸라에게 간격을 주지 않았다.
돌진 사거리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교묘히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의 우위를 가져갔다.
‘그렇군. 녀석은 알고 있었지.’
저 마법사는 아틸라의 기상전을 관람했다.
돌진과 포효는 이미 노출됐다.
애초부터 녀석이 아틸라의 앞을 가로막았던 이유는 아틸라가 지닌 여러 불가사의한 스킬 때문이었다.
아틸라는 마법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적마탑에선 줄곧 의심하고 있었다. 테헤누트 하토르가 금기의 마법에 손을 댄 것이 아닌가 하는. 그래서 기상전을 빌미로 그것을 알아보려 했지.’
‘난 테헤누트 하토르보다 더욱 위험해 보이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러는 사이 마법사의 손에서 새로운 마법이 쏘아졌다.
거대한 화염의 창날.
이번에도 바토리는 동일한 마법을 발현해 그것을 파괴했다.
“어이 할망구. 어떻게 좀 해봐.”
“무엇을 말이더냐.”
“저놈 좀 잡아 보라고.”
초인적인 주력을 지닌 아틸라였지만 달리는 말보다 빠를 수는 없다.
마법사는 얄미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마법을 쏘아 댔다.
전사의 천적이 마법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상황.
“목숨을 빼앗아도 된다는 말이더냐.”
“그건 안 돼. 마탑과 척을 지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말을 공격해 보겠느니라.”
“그건 더 안 되고.”
말 때문에 저놈을 잡으려는 거니까.
“흐응.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럼 난 모르겠구나.”
능청스러운 바토리의 대꾸에 아틸라는 조금 짜증이 났다.
바토리 정도의 실력자가 저런 마법사 하나를 제압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
분명 곤란해하는 아틸라를 보며 재밌어하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할망구. 됐다.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러려무나. 대신 저 아이의 공격만큼은 내 확실히 막아 주겠다.”
키득대는 바토리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아틸라는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였다.
그에겐 생각이 있었다.
‘이프리트를 소환하는 건 안 돼.’
상대는 아틸라의 신기를 보고 의문을 품고 있다.
이프리트까지 소환한다면 더욱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더구나 녀석은 불의 마력을 연구하는 적마탑의 마법사니까.’
그래서 아틸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마법사를 추격하며, 자신과 타깃 사이에 놓인 풍경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는 동안 또 다른 화염 마법이 날아왔고, 바토리는 여유롭게 방어했다.
“지난번보다 한층 수준이 높아졌구나. 분명 빼어난 자질을 갖고 있는 게야.”
그리고 마침내.
아틸라는 찾으려 했던 것을 찾았다.
‘지금이다.’
아틸라는 빙글,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엥? 뭐 하는 것이냐 야만전사야.”
바토리의 말을 무시하며 아틸라는 달렸다.
놓칠세라 마법사가 방향을 바꿔 아틸라를 추격했다.
물론 자신의 마법 공격이 통할 만큼의 거리는 유지한 채로.
그것을 확인한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마법사를 향해 재차 몸을 돌렸다.
[ 돌진(突進) ]
돌진을 시전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법사의 몸이 일순 굳어졌지만 아틸라의 신형은 마법사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사는 세심하게 원거리를 유지해 왔고, 아틸라의 돌진 사거리는 그에 미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도 아틸라는 돌진 스킬을 시전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있었다.
“다람쥐?”
바토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틸라의 발밑에 돌진을 맞고 기절한 다람쥐 한 마리가 보였다.
그랬다.
아틸라의 돌진 타깃은 마법사가 아닌 다람쥐.
어이가 없다는 듯 바토리가 웃었다.
“이런 잔꾀를 부린 것이더냐.”
마법사에게 직접 돌진을 시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아틸라는 거리를 좁히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마법사를 추격하는 동안 돌진의 타깃이 될 만한 생명체를 눈으로 찾았고, 그의 발달된 시각은 결국 들풀 위를 달리던 다람쥐 한 마리를 발견했다.
거기에 더해 아틸라는 도주를 가장해 마법사의 역추격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다람쥐에게 돌진을 시전한 지금, 아틸라와 마법사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무기가 닿을 정도는 아니지만.’
무언갈 투척해 맞출 수는 있을 정도로.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가라 펀치!”
힘껏 펀치를 던졌다.
마법사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자그만 새끼곰보다는 아틸라가 거리를 좁혀온 것에 더욱 놀란 듯했다.
즉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아틸라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 거대화(巨大化) ]
우어어어어어!
마법사의 등 뒤로 거대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무언갈 느낀 마법사가 고개를 돌렸다.
후드 속에 가려진 그의 눈동자가 파문처럼 흔들렸다.
“이, 이게 무슨……!”
퍼어어억!
펀치의 뱃가죽에 가격 당한 마법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후우…….”
아틸라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지 않느냐. 그 정도면 훌륭한 대응이었다. 최악의 상황도 막았고 말이다.”
“시끄러 할망구.”
아틸라는 다람쥐와 펀치와의 연계로 마법사를 잡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데.
‘말까지 함께 덮치게 될 줄이야.’
펀치는 마법사와 말을 한꺼번에 덮쳤다.
펀치의 거대한 몸에 짓눌린 말은 즉사했다.
말이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한 덕에 마법사는 피부가 조금 벗겨진 정도로 끝났다.
바토리의 말대로 최악의 상황만은 면한 셈.
그런 아틸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펀치는 칭찬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아틸라를 바라봤다.
“……그래. 수고했다.”
아틸라는 잘 익은 말고기 한 덩이를 펀치에게 던졌다.
폴짝 뛰어 입으로 받아 낸 펀치가 아작아작 고기를 씹었다.
해는 완전히 저물었다.
아틸라는 이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자비에에게서 받은 술은 아직 남아 있었고, 마침 푸짐한 말고기 안주까지 차려졌으니까.
모닥불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한 조각 줄 수 있겠나.”
“낯짝도 두껍군.”
“맛있는 말고기를 먹게 된 건 내 덕분이 아닌가. 눈치챘겠지만 녀석은 아주 훌륭한 말이었다.”
“난 말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타고 싶었는데.”
“그럼 죽이지 말았어야지.”
아틸라가 뭐라 하건 말건 마법사는 손을 뻗어 말고기를 쥐었다.
후드를 벗은 그의 얼굴은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고 상당한 미남자였다.
눈동자가 드러나지 않는 실눈이 다소 음흉해 보인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날 죽일 듯이 추격한 주제에 왜 여기 앉아있는 거냐.”
“네가 내 말을 죽였으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데.”
아틸라의 물음에 마법사는 후, 한숨을 내뱉었다.
“마법사가 도보로 혼자 여행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지금 같은 전후(戰後) 상황에 언제 도적떼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틸라는 어이가 없었다.
“너 정도의 마법사가 고작 도적떼가 두렵진 않을 텐데.”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살수 부대가 뒈져 있는 걸 발견했다. 복장을 보아하니 악명 높은 암살교단 데비쉬인 것 같더군.”
마법사의 눈이 물끄러미 아틸라를 바라봤다.
“전사 아틸라. 네놈의 짓이 아닌가.”
“글쎄.”
“아무튼 살수는 여러모로 귀찮은 존재다. 놈들이 날 습격하기라도 한다면 나 역시 그리 쉽게 빠져나가진 못할 테지.”
“그래서 여기 눌러 앉겠다고?”
“말을 구할 때까지는.”
“이름이 뭐냐.”
“라일 플라마.”
라일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군.
“좋다 라일. 그럼 말만 구하면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않을 건가.”
“널? 귀찮게?”
라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아아,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군 전사 아틸라. 난 이제 너에게 별 관심이 없다.”
“뭐? 미친놈처럼 내게 마법을 쏘아 댔던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너에게 시전한 것이 아니다.”
마법사의 눈이 바토리를 향했다.
바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 말이더냐.”
“그렇다. 난 후마이야 왕국에서 그대의 마법을 보고 결심했다. 다시 한번 그대를 만나 실력을 시험해 봐야겠다고.”
“그래서, 시험은 어떠하였느냐.”
바토리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아틸라를 바라봤다.
그 순간 아틸라는 깨달았다.
바토리는 라일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에 어울려 줬던 것이라는 것을.
“역시 그대는 생각 이상의 마법사였다.”
“흐응. 칭찬으로 받아들이마.”
“이름을 알고 싶군.”
“바토리.”
“그대는 적마탑의 파문 마법사인가.”
“난 적마탑 출신이 아니란다.”
라일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리가. 그대의 화속성 마법은 적마탑에서도 나 정도의 고수가 아닌 이상 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를 고수라 칭하는 라일의 말에 아틸라가 크게 웃었다.
아틸라를 째려보던 라일이 바토리에게 말했다.
“그대가 날 좀 도와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