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03화 (103/425)

103. 추격자 (1)

“마스터.”

부하의 속삭임에 우마르는 정신을 차렸다.

다시 한번 표적을 살폈다.

이쪽을 마주 보는 듯했던 상대의 눈은 하늘을 올려 보고 있었다.

잠든 여자에게서도 별다른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착각이었나.’

카자르는 상당한 실력의 용병.

기척을 눈치챘다면 저렇게 무방비하게 시선을 옮길 리 없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도 목이 달아나는 전장.’

적에게 방심을 보인다는 건 죽음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행위다.

더욱이 상대가 살수라면.

‘저런 어리석은 행동은 결코 취할 수 없지.’

우마르는 안심했다.

고개 돌려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기척을 감추는 능력이 탁월한 자들.

‘죽는지도 모른 채 죽게 해 주지.’

우마르의 눈이 다시금 표적을 향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사라졌다고!’

우마르의 눈이 부릅떠진 것과 섬뜩한 비명이 어둠을 찢은 건 동시였다.

“끄아아아아악!”

비명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세 명의 부하가 연이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크허억……!”

“마, 마법사…… 인가……!”

그 말에 우마르는 크게 놀랐다.

‘마법사? 설마 여자가 마법사였던 건가!’

수풀 속에 난입해 종횡무진 도끼를 휘두르는 카자르.

저 짐승처럼 무지막지한 자가 마법사일 리는 없다.

리오넬의 눈이 모닥불을 향했다.

여자는 여전히 한가로이 잠을 자고 있었다.

‘뭐, 뭐야.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이나 하고 있을 틈은 없다.

벌써 다섯 명째의 부하가 내장을 쏟아내며 고꾸라지고 있다.

우마르의 눈빛이 냉정을 찾았다.

그의 신형이 어둠에 잠겼다.

이어 완전히 사라졌다.

스스스스슷…….

그러는 동안 카자르, 아니 아틸라는 여섯 번째 적을 토막 내고 있었다.

‘많이도 달고 왔군.’

자신을 잡기 위한 최초의 습격자가 우마르일 거라는 걸 아틸라는 짐작하고 있었다.

녀석은 늦깎이로 데비쉬에 입단한 리오넬 뒤퐁과는 라이벌 격인 존재.

‘하지만.’

전투 능력 면에서 우마르는 리오넬을 상회하는 실력자다.

그런데도 우마르 자신을 포함해 데비쉬의 마스터들이 둘을 라이벌로 보는 이유는.

틈만 나면 정보 관리 문제로 다퉜기 때문.

‘그러는 동안 미운 정도 많이 든 사이지.’

우마르 자신도 모르고 있겠지만.

녀석은 리오넬의 죽음에 크게 분노한 상태.

‘내가 난입하자마자 절기를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금 전 우마르가 시전한 절기.

하싸씬의 ‘소멸’과 비슷한 기술이지만 근본적인 것이 다르다.

쉽게 말하자면 데비쉬의 절기는.

‘마법.’

그것도 보통의 마법이 아니다.

녹마탑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던 그것보다 더욱 농도 짙은 마술(魔術).

어떻게 살수들이 마술을 사용할 수 있느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단주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니까.’

데비쉬 단주는 화신(化身)이다.

그러나 샤를처럼 신의 가호를 받는 화신이 아닌.

‘고위악마의 화신.’

그렇다.

신이 아닌 고위악마가 그를 가호하고 있다.

또한 고위악마의 힘은 결코 신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데비쉬의 마스터들.’

그들은 교단의 마스터가 되기 전에 단주와 ‘피의 계약’을 맺는다.

그것으로 그들은 고위악마의 힘 일부를 빌려 쓸 수 있고, 데비쉬의 나머지 살수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전투 능력을 획득한다.

‘하싸씬에서 합류한 리오넬만은 예외였지만.’

그리고 지금, 데비쉬의 마스터 중 하나인 우마르 알 갈라가 고위악마의 권능을 발휘해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이 강력한 은신술의 이름은.

‘그림자마술.’

뱀이 미끄러지는 듯한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살수들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조, 좋았어!’

‘마스터께서 그림자마술을 시전하셨다!’

‘이제 됐어! 놈은 끝장이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스터가 그림자마술을 시전하고도 살아남은 상대는 지금껏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채앵!

어둠을 가르며 솟아난 파형 단검이 무휼에 막혔다.

‘뭐라고!’

우마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공격엔 소리도, 기척도 없다.

그런데도 상대는 눈에 훤히 보인다는 듯 막아 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휘리릭, 반격의 곡선을 그린 무휼의 날이 우마르의 어깨로 쏘아졌다.

‘당할 것 같은가!’

우마르는 역시 상당한 실력자였다.

예상치 못한 경로로 날아드는 무휼을 재차 그림자마술을 시전해 피해 냈다.

“제법이군. 우마르 알 갈라.”

생각지도 못한 카자르의 방어.

뒤를 이은 반격.

그리고 갑작스레 불린 자신의 이름 탓에 우마르는 일순 평정을 잃었다.

‘지금이다.’

아틸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성추처럼 단단한 그의 발이 우마르의 복부로 쏘아졌다.

우마르는 회피를 시도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피할 수 없었다.

“크허억……!”

묵직한 충격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우마르의 몸이 부르르 진동하며 머릿속이 혼미해졌다.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크윽……! 스치기만 했는데도……!’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삼키며 우마르는 거리를 벌렸다.

다시금 숲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하싸씬의 소멸과 달리, 그림자마술은 어둠으로 가득한 밤중에 더욱 강력하다.

‘카자르 녀석. 이번엔 운이 좋았겠지. 다음번엔 반드시……!’

“어딜 도망치려고. 음흉한 새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우악스러운 손이 우마르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우마르는 당황했다.

‘뭐, 뭐야 이건……!’

가공할 괴력이 암흑의 장막을 찢으며 우마르를 끌어냈다.

콰앙! 우마르의 머리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크하아악……!”

우마르의 시야가 붉게 변했다.

어깨와 다리에 추가 공격이 들어왔다.

이어 몇 군데를 더 얻어맞았지만 어느 부위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전신이 박살 나는 기분.

“크헉! 큽! 끄아아아……!”

걸레처럼 찢어진 우마르의 몸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 와중에도 우마르는 지면에 드리운 그림자 속으로 재차 은신하려 했지만 아틸라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냐. 넌 도망 못 쳐.”

무쇠 같은 발길질이 우마르의 가슴을 타격했다.

우마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끄흑……! 크학……! 끄허어어억……!”

호흡이 차단되자 은신 욕구는 눈 녹듯 사라졌다.

오직 숨을 쉬겠다는 원초적 욕망만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자, 그럼.”

우마르가 벌레처럼 꿈틀대는 사이 아틸라는 나머지 살수들을 정리했다.

투항하는 자는 없었다.

우마르의 처절한 생존 본능이 간신히 호흡을 되찾았을 무렵, 살아남은 살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네놈……! 카자르……!”

“카자르가 아니고 아틸라이니라.”

우마르의 뒤엔 바토리가 서 있었다.

그 사실에 놀라기보다 우마르는 그녀가 말한 이름에 주목했다.

“……아틸라?”

우마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틸라.

분명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렇군……. 네놈이 바로 발루아의 용병왕…… 아틸…… 라…….”

“흐응 용병왕이라. 언제 그런 멋들어진 이명을 갖게 된 것이더냐. 야만전사야.”

“난들 아냐.”

용병왕(傭兵王).

패영전의 긴 역사 속에서 그 이름으로 불린 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남부 대륙의 용병 세계를 평정한 최강의 전사.

버서커 카르타고.

“너희 말고 추격자가 더 있나.”

아틸라의 물음에 우마르가 킬킬대며 답했다.

“임무를 맡은 건 우리뿐이다. 하지만 내가 실패한 게 알려지면 단주께서…….”

“내가 황금잔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나.”

“……황금잔이라고?”

우마르의 반응을 보며 아틸라는 직감했다.

놈들은 아직 황금잔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틸라는 웃었다.

내리쳐진 용아귀가 우마르의 목을 절단했다.

* * *

정오의 하늘은 맑았다.

“빌어먹을.”

지난밤 우마르와 그의 부하들을 도륙한 아틸라는 일행의 말이 거품을 물고 나자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먼 암기에 맞아죽은 것이다.

“야만전사야.”

부르는 목소리에 아틸라는 발을 멈췄다.

“왜.”

“다리가 아프구나.”

“나도 아파.”

거짓말이다.

“잠시만 쉬었다 가자꾸나.”

“그럴 시간 없다. 얼른 가까운 마을에서 말을 구하지 않으면 데비쉬 녀석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테니까.”

아틸라는 데비쉬의 마스터를 둘이나 죽였다.

다음번엔 더욱 강한 놈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달려들 것이다.

“그것이 무어 문제이더냐.”

바토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 자신과 아틸라의 실력이라면 대륙의 누가 찾아온대도 쉽게 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데비쉬 정도의 살수 집단이 전면전을 펼쳐 온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단주가 직접 나서기라도 한다면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질 테고.

“난 더는 못 걷겠구나.”

결국 바토리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 한숨을 내쉬며 아틸라가 바토리에게 다가갔다.

등을 돌리며 말했다.

“업혀라.”

기다렸다는 듯 바토리가 아틸라의 등에 업혔다.

그러고는 아기새처럼 속삭였다.

“계속돼는 야영에 조금 지치는구나.”

“뭐야. 낭만이 어쩌고저쩌고할 땐 언제고.”

“낭만이 지속되는 것도 때론 고단한 법이로구나.”

바토리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이제 관조자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아틸라는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샤를과의 전투에서 무리한 건가.’

아틸라는 바토리와 샤를의 대결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짐작은 가능했다.

분명 바토리가 인간의 몸이 되어 치른 전투 중 가장 혹독한 싸움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동쪽으로 며칠 걸으면 ‘리옹’이라는 큰 도시가 있단다.”

“그쪽으론 안 가. 북동쪽에 더 가까운 마을이 있다.”

“괜찮은 말을 구하려면 리옹이 나을 것이니라. 그곳은 이번 전쟁의 영향권에서 한참은 벗어난 도시가 아니더냐.”

“흐음…….”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기세를 잡은 바토리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의 술맛이 그렇게 뛰어나다 하더구나.”

“가자. 리옹.”

아틸라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바토리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려면 전쟁의 물결을 피한 활기찬 도시가 나을 것이다.

‘리옹 정도의 대도시라면 데비쉬 녀석들도 함부로 날뛰긴 어려울 테고.’

리오넬 뒤퐁.

녀석이 샤를에게 고개 숙인 이유에 대해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리오넬은 황금잔을 노리고 있었다.’

데비쉬 단주는 이전부터 황금바위 드워프들이 제작한 무기를 갖고 싶어 했다.

그것이 있다면 하싸씬과 대등한 자리로 올라설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

그러던 중 리오넬은 황금잔이 노르드의 어느 귀족 가문으로 넘어간 것을 알게 되었고.

샤를의 정복 전쟁을 옆에서 지켜보며, 기회를 틈타 황금잔을 갈취하려 했다.

‘원작에서도 샤를은 자비에 군을 물리친 뒤 황금잔을 획득하지.’

물론 황금잔을 노리던 리오넬은 샤를의 손에 죽게 되지만.

아틸라는 안심했다.

지난밤 우마르의 입을 통해 리오넬 외의 다른 살수들이 황금잔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대도시로 쉬러 간다니까 그렇게 좋냐 할망구.”

“아무렴. 정말 좋구나.”

바토리가 소녀처럼 키득거렸다.

“도착하면 분명 너도 좋아할 것이니라.”

“술맛이 아주 상당한가 보군.”

“그도 그렇지만, 실은 다른 이유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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