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00화 (100/425)

100. 신력 VS 권능 (2)

피핀은 정신없이 말을 달리고 있었다.

‘작전은 성공했다.’

예상대로 도살자는 샤를을 유인했다.

그런 도살자를 맞으러 나간 건 샤를의 모습으로 변장한 피핀.

플레이트 아머로도 가릴 수 없는 눈동자 색은 제롬의 한시적 마법으로 해결했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상대는 그 도살자다.

제롬을 신뢰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피핀은 그것으로 도살자를 속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녀석은 완벽하게 속아넘어갔다.

다만 너무 빨리 발각됐을 뿐.

‘어떻게 알아낸 것인가.’

멍청한 기사 하나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긴 했다.

‘자, 잡아라!’

‘이곳에 최대한 발을 묶어 둬야 한다!’

하지만 도살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건 그 이전의 일이다.

그래서 녀석은 변장한 자신을 향해 질주를 시작했고, 그에 다급해진 기사가 실언을 내뱉었던 것.

이후의 상황은 뻔했다.

자신을 포함한 십여 명의 기사는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피핀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몬스터 같은 녀석.’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제압해야 하는 상대는 바토리였다.

전사인 아틸라와 달리, 마법사인 바토리는 방관할 경우 아군에게 압도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래서 도살자의 발을 피핀이 묶어 놓는 동안 제롬이 적의 군세를 타격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바토리도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기척을 잡아낸 샤를이 그녀를 생포하기로 한 것.

‘그것이 샤를의 작전.’

물론 샤를은 도살자와의 대결을 원했지만 이번만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인하르트의 대군 속에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건 오직 샤를뿐이었으니까.

피핀은 말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불길한 기운이 전신을 엄습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제롬의 타격이 멈췄다.’

제롬은 바토리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한 미끼 공격 임무를 맡았지만.

백병전 지원 또한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공격을 중지했다는 것은.

‘설마 샤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피핀은 고개를 흔들었다.

도살자는 샤를을 쓰러뜨린 유일한 전사지만, 지금의 샤를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샤를은 지지 않는다.’

그것은 조금 전 도살자를 맞상대한 후로도 변치 않는 믿음이었다.

틈날 때마다 샤를과 대련을 이어 온 피핀은 알고 있었다.

‘샤를은 도살자보다 강하다.’

그 순간 피핀의 눈에 샤를이 포착됐다.

언제나 흔들림 없는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모습.

그의 머리 위엔 무기를 추켜든 채 벼락처럼 낙하하는 도살자가 있었다.

콰아앙! 두 개의 바위가 부닥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샤를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샤르으을!”

눈이 뒤집힌 피핀은 부상당한 몸에도 아랑곳없이 아틸라에게 말을 달렸다.

그러나 제롬이 한발 빨랐다.

퍼어어엉!

제롬이 쏘아 낸 불덩이가 아틸라를 습격했다.

피핀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아틸라는 입가를 찢었다.

아무렇게나 휘둘러진 것처럼 보인 무휼이 지척까지 접근한 불덩이를 반으로 쪼갰다.

“금세도 왔군. 피핀.”

아틸라는 피핀을 공격하는 대신 그의 군마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말째로 피핀을 내동댕이쳤다.

그즈음 제롬의 또 다른 마법 공격이 날아왔지만 ‘투 핸드’의 이명을 알고 있는 아틸라는 적절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크허억……!”

“끄아아아아!”

피핀과 함께 온 기사 몇을 쓰러뜨린 아틸라가 제롬에게 질주했다.

날아드는 마법은 무휼로 날려 버리며.

‘저, 저게 정말로 인간인가!’

제롬은 당황을 넘어 경악했다.

스승인 바토리를 쓰러뜨렸기에 승부는 이쪽으로 기울었다 생각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이프리트를 쫓아내는 것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아틸라는.

‘혼자 다 해 먹을 심산인가! 아틸라!’

코앞까지 접근한 아틸라를 노려보며 제롬은 보호막을 둘렀다.

아틸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히죽 웃으며 몸을 돌렸다.

비척비척 일어서는 샤를에게 돌진을 시전했다.

“크헉……!”

몸을 일으킨 샤를의 복부에 칼자루가 꽂혔다.

피핀의 고함을 느끼며 샤를은 다시금 바닥에 쓰러졌고, 아틸라는 나머지 기사들을 하나하나 말에서 떨어뜨렸다.

그 순간 발밑을 타고 오르는 묘한 마력이 아틸라의 감각에 잡혔다.

‘발을 묶을 생각인가.’

힘껏 뛰어올랐다.

공중으로 달아나는 그를 뒤쫓듯 속박의 사슬이 뿜어졌지만 무휼을 휘둘러 제압했다.

부서진 사슬 조각이 지면에 떨어졌다.

아틸라는 이제 저 귀찮은 제롬 녀석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제롬에게 달렸다.

그 앞을 피핀이 가로막았다.

“도살자……!”

“너 그러다 진짜 죽는다. 피핀.”

콰앙!

검을 휘두른 건 피핀이었지만 뒤로 밀린 것 또한 피핀이었다.

“크흐윽……!”

피핀의 몸이 부서질 것처럼 진동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겐 확신이 있었다.

‘놈은 나와 제롬을 죽일 생각이 없다.’

그것을 믿으며 검을 휘둘렀다.

제롬의 마법도 사각을 겨냥해 날아들었다.

“둘이 아주 죽이 척척이군.”

돌진 시전을 위해 검투 태세로 전환했던 아틸라는 다시금 방어 태세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한 단계 더.

[ 파괴 태세에 돌입합니다. ]

샤를과의 대결에서 파괴 태세를 사용했던 탓에 체력은 제법 깎여 있었다.

‘초당 2퍼센트 체력 감소. 별것 아닌 줄 알았더니.’

하지만 아니었다.

샤를처럼 강력한 상대와 전투하는 동안은 시간의 체감 흐름이 평소와 다르다.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 빠르게 흐르는 듯했다.

‘이번에 끝내 주지.’

날아드는 검을 용아귀로 쳐 냈다.

신음을 토하며 피핀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휘둘러진 무휼이 제롬의 마법을 소거했다.

“저런 미친!”

제롬이 경악성을 내뱉었다.

아틸라는 벌레처럼 꿈틀대는 피핀에게 달려가 복부를 지르밟았다.

“끄어어억……!”

핏덩이를 토해 내며 피핀이 둥글게 몸을 말았다.

그런 그의 등을 걷어찬 아틸라가 뒤돌아 제롬을 습격했다.

제롬은 아틸라를 제지할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틸라!”

“어쭈. 샤를한테 붙더니 이제 반말이냐.”

제롬은 공격을 택하는 대신 보호막을 한 꺼풀 더 둘렀다.

“그런다고 막을 수 있을 것 같냐.”

아틸라의 말대로였다.

무휼이 제롬의 보호막을 천 조각처럼 갈라 냈다.

그러나 그에겐 아직 한 겹의 보호막이 남아 있었고.

‘이것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찢길 테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제롬은 웃었다.

어느 틈에 아틸라의 등 뒤로 근접한.

샤를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보며.

‘녀석이?’

아틸라도 샤를을 감지했다.

제롬을 타격하려던 것을 멈추고 빙글 몸을 돌려 무휼을 뻗었다.

콰앙! 신력과 권능이 다시금 몸을 섞었다.

‘하여간 개사기급 캐릭터라니까.’

예상을 뛰어넘는 회복력.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건 따로 있었다.

검을 마주친 순간 아틸라는 직감했다.

샤를의 능력치는 위험할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빌어먹을. 샤를 하나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제롬이 문제였다.

지금의 샤를을 상대하며 제롬의 마법까지 막아 내는 건 불가능했다.

‘바토리가 쓰러지지 않았다면.’

아틸라는 곁눈으로 바토리를 살폈다.

여전히 그녀는 처음 널브러졌던 모습 그대로였다.

살짝 실눈을 뜬 채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미친! 깨어 있었잖아!’

시선을 느낀 바토리가 질끈 눈을 감았다.

아틸라는 굳이 그녀를 닦달해 깨우지 않았다.

입가를 찢었다.

등 뒤의 제롬을 무시한 채 샤를에게 검을 뻗었다.

‘내가 제롬에게 당하는 걸 두고 보진 않을 테니까.’

처음부터 믿기 어려운 일이긴 했다.

아무리 샤를을 상대하던 중의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바토리는 그리 간단히 당할 상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기절한 체하고 있었다는 것은.’

굳이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

무의식중에 펼친 심안이 그녀의 머릿속을 통째로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 흐응.

- 무릇 사내란 생물은 여자의 약해진 모습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법.

- 애송이 제롬의 마법에 맞은 척 누워 있는 것도 슬슬 고역이로구나.

‘미친 할망구! 애초에 맞지도 않았던 거냐!’

-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긴 했구나 애송이 제롬.

- 내 지금껏 가르쳐 본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자질이로다.

- 아니아니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 어떠냐 야만전사야.

- 지금의 내 모습에서, 넌 두근거림이라도 느끼고 있는 것이더냐.

‘…….’

바토리의 헛된 망상을 더 이상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아틸라는 샤를로 심안의 대상을 바꿨다.

예상대로 바토리의 기절한 척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 어떻게……!”

당황한 제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를을 보조하며 쏘아 낸 공격이 어디선가 날아든 마법에 가로막힌 탓이었다.

‘설마!’

자신의 마법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

그것을 떠올리며 제롬은 고개를 돌렸다.

“흐응.”

언제 쓰러졌었냐는 듯 고고한 자세로 선 바토리가 거기 있었다.

“스, 스승님……!”

“제법 많은 성장을 이루었더구나. 애송이 제롬.”

제롬은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기등등 부활한 샤를을 보며 승리를 확신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스승이 저렇게나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다.

이길 수 없다.

‘상처가 보이지 않아. 내 공격은 처음부터 적중하지도 않았던 거다.’

스승의 말대로, 그간 자신은 전에 없던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그래서 내심 자신했다.

이 정도라면 스승에게 위협을 가할 수준은 되리라는 것을.

그건 오산이었다.

‘아직도 까마득한 경지에 있는 것인가. 스승님은.’

바토리가 웃었다.

그녀는 아틸라를 향한 제롬의 공격을 막아 냈을 뿐, 추가적인 행동을 벌이진 않고 있었다.

다만 아틸라와 샤를의 대결을 차분한 눈으로 바라볼 뿐.

펀치와 도롱뇽을 상대하던 기사들도 움직임을 멈췄다.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무기를 내렸다.

그들의 시선은 아틸라와 샤를에게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콰앙! 콰아아앙!

벼락이 내리고 파도가 부딪는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경이에 찬 눈동자들이 두 영웅의 결투를 지켜봤다.

“말도 안 되는…….”

“저것이 정녕 인간의 싸움이란 말인가……!”

눈 한 번 깜빡이는 자가 없었다.

대결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둘의 검세는 호각.

모든 이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이제 그만 끝을 내려무나. 야만전사야.”

미소 띤 핏빛 입술이 달싹인 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무휼의 검세가 거칠어졌다.

아틸라의 입가가 귀 끝까지 찢어졌다.

반대로 샤를의 얼굴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아틸라.”

그 순간 짓쳐드는 무휼과 용아귀가 수 배는 커다랗게 보인다고, 샤를은 생각했다.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쏟아부어도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공세.

그럼에도 샤를은 검을 뻗었다.

내리치는 공격을 향해 황금빛 신력이 매처럼 비상했다.

“다음번엔 장담할 수 없겠군. 샤를.”

그 말을 끝으로 도끼와 검의 폭풍이 샤를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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