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97화 (97/425)

097. 패왕의 반격 (2)

날카로운 눈매의 샤를을 보며 제롬이 고개를 떨궜다.

정적이 감도는 회의실엔 샤를, 제롬, 피핀, 세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녀석이 아틸라인 것은 확실한 건가. 피핀.”

“그래. 드워프 용병들을 이끄는 인간 전사 카자르. 그가 바로 도살자였어.”

“삼검도 당한 것 같더군.”

피핀은 샤를이 삼검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알고 있었으나 내색 없이 답했다.

“맞아.”

“왜 녀석의 정체가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지.”

이번 전쟁에서 카자르 용병단의 이름이 알려진 건 최근이 아니다.

“눈동자만 드러나는 투구를 눌러쓰고 있었고, 또 항상 사용하던 거대한 도끼를 쓰지 않았던 모양이야.”

물론 피핀의 군마를 절단한 무기는 용아귀였다.

또 삼검을 상대할 때는 처음부터 용아귀를 사용했다.

어차피 피핀과 제롬에게 정체가 알려진 이후의 일이었으니까.

상황을 재확인한 샤를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 * *

이번 전쟁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재평가 받는 노르드 왕국의 자비에 도베르뉴 총사령관.

그는 생각지도 않은 대규모 전쟁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정말로 샤를 아인하르트가 나타날 줄이야.”

자비에는 동부 전선의 총사령관.

서부 전선을 몰아치던 샤를을 직접 맞닥뜨릴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가 이곳, 동부 전선에 나타났다.

카자르가 했던 말이 사실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카자르 공을 믿을 수밖에.”

얼마 전의 침공에서도 카자르는 구 아스투리아 왕국의 삼검을 단신으로 격파했다.

삼검의 이름은 노르드 왕국에서도 공포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압도적인 것.

‘그런 삼검을 혼자서 쓰러뜨리다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혀를 내두르던 자비에가 돌연 미소했다.

그가 믿는 구석은 또 있었다.

병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알게 된 어떤 마법사의 존재.

‘분명 제롬 아그리피나의 공격을 막아 냈다 했었지.’

전장의 사신이라 불리는 제롬 아그리피나보다 강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임은 분명할 터.

‘고집쟁이 드워프들을 이끄는 것도 대단한데 그 정도의 마법사까지 운용하고 있었단 말인가.’

자비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점점 더 탐이 나는구려. 카자르 공!’

한편 그 시각 카자르 공은.

여섯 드워프를 불러 모아 작전을 설명하고 있었다.

“샤를은 지금까지의 상대와는 다르다.”

“드디어 녀석을 만나게 됐군! 나 바위주먹의 보에몽이 녀석을 묵사발로 만들어 주겠어!”

“샤를은 분명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올 거다.”

그렇게 말하며 아틸라는 눈빛 한 번으로 보에몽을 조용히 시켰다.

라그나가 물었다.

“우린 어떻게 대응하면 좋겠나.”

“따로 움직인다. 모여 있으면 녀석들도 힘을 합쳐 덤벼올 테지. 상대의 전력은 흩어지게 하는 편이 나아.”

아틸라와 드워프들은 많은 전투를 함께 치르며 팀워크를 키웠다.

그러나 샤를과 피핀, 제롬을 비롯한 아인하르트 기사와 병사들의 합을 따라가긴 역부족.

‘녀석들은 패영전의 주인공이자 주요 등장인물이니까.’

또한 아틸라는 혼자 싸우는 게 편했다.

드워프 무리 최강자인 라그나조차 아틸라의 무력을 따라오지는 못했고, 그런 그들과 합을 맞추려면 적당히 힘을 빼야만 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아틸라는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떠올렸다.

‘샤를 녀석과 합을 맞춘다면.’

샤를과 힘을 합쳐 크라켄을 쓰러뜨리던 날.

트롤의 심장 버프 덕분이긴 했지만, 그때의 샤를은 자신과 합을 맞추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사였다.

‘제법 재미있었지.’

전술 탐지 스킬을 활성화한 아틸라는 머지않아 벌어질 샤를의 공격에 대비했다.

‘기대되는군.’

아틸라는 웃었다.

* * *

들풀이 바람에 몸을 흔들었다.

주위는 온통 짓뭉개진 풀잎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나 초연하게 제 몸짓을 뽐냈다.

콰득.

흙투성이 군화가 그것을 지르밟았다.

잠시 후엔 핏물에 젖은 시체 한 구가 그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들풀 위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쳐라! 노르드의 애송이들을 남김없이 도륙하라!”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마라! 대항하는 자는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와아아아아!”

금사자의 깃발이 하늘을 날았다.

맞은편에선 노르드 왕국의 깃발이 바람의 춤사위를 벌였다.

“막아라! 저 비열한 아인하르트의 침략자를 몰아내라!”

“놈들의 깃발을 갈가리 찢어라! 다시는 노르드 왕국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만들어라!”

백병전은 치열했다.

노르드 병사들은 아인하르트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됐지만, 카자르 용병단이 일궈 낸 사기에 힘입어 기대 이상의 무력을 선보였다.

“기병대다! 아인하르트의 기병대가 온다!”

이제는 기사단으로 이름을 바꾼 금사자 용병단의 정예들이 측면을 찌르며 난입했다.

백금빛 갑주로 무장한 금사자 기사단의 무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크아아악!”

“마, 막을 수가…… 없어……!”

보병의 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그러나 노르드 측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라그나를 선두로 한 드워프 용병단과 자비에의 기사단이 금사자의 옆구리를 타격했다.

“드워프들이 왔다!”

“그대로 밀어붙여!”

노르드 병사들은 드워프 용병들과 기사단을 믿었다.

방패를 들고 창검을 휘둘렀다.

병사들의 함성과 비명이 마른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틸라는.

“역시 이쪽으로 왔군.”

그들과 떨어진 수풀 속에서 아인하르트의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너희의 대장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아틸라는 보고 있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십여 기의 기병.

그 뒤의 백마 위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 샤를의 모습을.

‘제법 분위기가 다르군. 열 좀 받았다 이건가.’

백금빛 투구 속에서 푸른 안광이 번득였다.

그 아래 드러난 플레이트 아머.

그 모습을 확인하며 아틸라는 입가를 올렸다.

‘이 녀석들은 몸풀기라 이거지.’

물론 몸풀기 용이라기엔 상당한 강자들이었지만.

아틸라의 상대는 아니었다.

“크허억……!”

아틸라의 발길질에 기사 하나가 수 미터 뒤로 날아갔다.

이어 도낏자루가 또 다른 기사 둘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아틸라는 눈동자를 굴려 저 멀리 백병전의 현장을 응시했다.

금사자 기사단과 드워프들이 격전을 치르는 광경.

‘제롬이 보이질 않는군. 지난번처럼 진을 펼친 뒤 광역 마법을 시전할 생각인가.’

가정을 증거하듯 피핀으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기사가 금사자 기사단의 진두지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아틸라는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에겐 바토리가 있었으니까.

‘제롬이 무슨 수작을 부려도 바토리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제롬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쉴 새 없이 달려드는 기사들을 아틸라는 차례차례 때려눕혔다.

그러던 중이었다.

아틸라의 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로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몸의 반응은 빨랐다.

회오리처럼 몸을 돌려 기사들을 후려친 아틸라가 샤를을 향해 달렸다.

“자, 잡아라!”

“이곳에 최대한 발을 묶어 둬야 한다!”

기사들의 외침은 아틸라의 심장을 더욱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거대한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지난 전투에서 제롬이 시전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불덩이.

‘실패한 작전을 다시 사용한다고?’

샤를에게 달리며 아틸라는 먼 곳의 전장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예상대로 아인하르트의 진법은 노르드 병사들을 군데군데 군집하게 만들었고.

그들을 노리며 또 다른 불덩이들이 연이어 쏘아지고 있었다.

[ 사거리를 확보했습니다. ]

샤를에게 돌진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샤를도 말에서 뛰어내렸다.

[ 대상이 기절에 저항합니다. ]

역시 영웅급 등장인물에게 이런 디버프는 통하지 않았다.

용아귀를 휘둘렀다.

파카아앙!

두 자루 날붙이가 격렬하게 부닥쳤다.

그와 동시에 측면 저 멀리에서 제롬의 불덩이를 가로막는 바토리의 보호막이 펼쳐졌다.

아틸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콰당! 탕!

짓쳐드는 용아귀의 힘을 견디지 못한 샤를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두근대던 아틸라의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도끼와 검이 맞닿은 순간 그는 자신의 예감이 적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살자.”

투구가 벗겨져 얼굴이 드러난 상대가 몸을 일으켰다.

아틸라도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피핀.”

* * *

“애송이 제롬.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니더냐.”

제롬의 불덩이는 계속해서 노르드 병사들을 습격했다.

그때마다 바토리도 방어 마법을 펼쳤다.

“흐응. 지난번보다 더욱 강해진 것이더냐.”

바토리는 제롬의 몸 안에서 무언가의 힘이 개화했다는 것을 감각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철부지 제자가 아니었다.

“키우는 맛이 있는 꼬마로구나.”

바토리의 입술이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그러고는 돌처럼 경직됐다.

살기 어린 기척이 등 뒤를 습격하고 있었다.

‘이 내가,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다고?’

왼팔의 마력을 끌어냈다.

급조된 마멸의 칼날은 원래의 예리함을 품고 있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마법사의 마법은 산산이 깨부술 수 있는 위력.

‘설마 하싸씬의 단주가?’

바토리의 몸이 빙글 돌아 습격자를 확인했다.

마멸의 칼날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사내.

휘날리는 금빛 머리칼 사이로 예기 어린 푸른 눈이 드러났다.

바토리가 소리쳤다.

“샤를 아인하르트!”

샤를의 검이 마멸의 칼날을 강타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파지지지지짓……!

샤를의 몸에서 폭풍 같은 신력이 뿜어졌다.

그것은 샤를의 어깨와, 팔과, 손목을 지나 기다란 검날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바토리의 머릿속에 크라켄을 상대하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서, 설마……!’

아틸라를 구하기 위해 왼팔의 마력을 개방하려던 자신.

자신의 왼팔을 붙잡은 샤를의 손.

그곳에서 발하던 놀라운 신력.

‘더 이상 계속한다면, 녀석의 원망을 살 것 같군.’

그 가공할 신력은 솟구치던 왼팔의 마력을 일거에 잠재웠다.

그리고.

그때보다 더욱 강력하게 변모한 신력이.

질풍처럼 샤를의 검을 휘감았다.

“방심했군. 아틸라.”

파카앙!

샤를의 신기가 마멸의 칼날을 분쇄했다.

파멸의 신 오르피나의 힘이자 바토리가 지닌 최강의 무기 중 하나.

파우스트의 사령술사들을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놀던 핏빛의 칼날.

그것이 전사가 휘두른 검 한 방에 무너졌다.

“너, 너는……! 대체……!”

바토리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

바토리의 몸이 얼음처럼 굳어졌다.

“너 또한 방심했군.”

마멸의 칼날을 깨부순 탓에 샤를이 검엔 신력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혼돈에 빠진 마법사 하나를 처리하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날카로운 검신이 상대에게 쏘아졌다.

샤를의 입이 기다랗게 찢어졌다.

“바토리 에르제베트.”

* * *

피핀을 비롯한 아인하르트의 기사들을 묵사발로 만든 아틸라는 바토리가 잠복한 장소를 향해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는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다.

“샤를 이 새끼. 넌 뒤졌어.”

씹어뱉었다.

“내 마법사 건드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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