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95화 (95/425)

095. 카자르 용병단 (5)

“역시 라그나는 쓰러뜨린 거냐? 피핀.”

지척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피핀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향해 손도끼를 내리치는 전사의 모습.

투구를 눌러쓰고 있지만 심연을 담은 듯한 검은 눈동자와 묵직한 목소리는 그의 정체를 곧바로 특정하게 만들었다.

피핀이 소리쳤다.

“도살자!”

파캉! 두 개의 날이 부닥치며 노란 불티가 튀었다.

검을 들어 막은 피핀의 몸이 지면에 처박혔다.

“대, 대장군!”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놀라 달려왔다.

대장군 피핀이 저렇게 무력하게 쓰러지는 모습은 그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피핀은 아직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네놈이 카자르냐!”

피핀의 부관이 검을 쏘아 냈다.

예리한 검로를 그리며 날아온 공격이었지만 아틸라는 가볍게 회피했다.

그러고는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어 버렸다.

“끄아악!”

비명을 지르며 부관이 검을 떨어뜨렸다.

오른손을 움켜쥐며 울부짖는 부관의 복부를 아틸라는 무릎으로 타격한 뒤 그의 덜미를 잡았다.

달려드는 병사의 무리를 향해 내던졌다.

“네놈!”

이번엔 양측면에서 창날이 쇄도했다.

하나는 손도끼로 절단하고 다른 하나는 맨손으로 쥐어 휘둘렀다.

그것을 쥐고 있던 창병의 몸이 대포알처럼 날아갔다.

“으아아아아!”

후속타로 날아드는 공격을 무시하며 아틸라는 달렸다.

조무래기들은 관심 없다.

이 전투를 끝내려면 지휘관인 피핀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병사들은 끈질겼고, 집요하게 아틸라를 방해했다.

‘그래. 과연 정예부대다 이거지.’

이전까지의 잡병들과 달리 이들은 피핀이 추리고 추려 낸 정예 병사들.

물론 개개인이 아틸라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지만, 무리를 이뤄 하나처럼 움직이는 그들의 진법은 아틸라를 귀찮게 만들기 충분했다.

‘훈련 하난 기가 막히게 시켜 놨군.’

하지만 그뿐이다.

아틸라는 조금 전, 제롬을 수호하는 기사들마저 박살을 내 버렸다.

그런 그에게 병사의 진은 아무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아틸라가 입술을 들어 송곳니를 드러냈다.

맨손과 도낏자루로 병사들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크헉!”

“컥……!”

“끄아아아악!”

병사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병사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러나 목숨을 잃은 이는 없었다.

아틸라는 가급적 상대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들은 샤를과 피핀이 직접 공들여 키워 낸 병력.’

샤를의 패도를 다소 지연시키는 목적을 포함해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건 잡병들만의 제거로도 충분하다.

샤를이 원작과 같은 점진적 패도를 이어 가려면 정예 병력이 축소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도살자!”

그사이 몸을 일으킨 피핀이 채찍처럼 측면을 파고들었다.

그 날카롭고 재빠른 움직임에 아틸라는 웃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강해진 건 제롬만이 아니었다.

‘너도 성장한 거냐. 피핀.’

아틸라는 반가웠다.

제롬과 피핀의 성장 때문이 아니었다.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그렇다면 샤를. 네놈 역시도.’

파캉! 검과 도끼가 다시 한번 부닥치며 공기를 울렸다.

이번의 피핀은 바닥에 처박히지 않았다.

양팔과 다리를 떨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버텨 내는 모습이었다.

“네가 어째서 샤를을 방해하는 것인가! 도살자!”

“무슨 소리냐. 나와 샤를은 처음부터 적으로 만났는데.”

그 말대로다.

아틸라와 샤를은 발루아의 가스코뉴 공작과 아키텐 백작의 영지 전쟁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이후 툴루즈 백작령과의 전쟁에서, 그리고 상급 마귀 크라켄과의 전투에서 힘을 합치긴 했지만 일시적인 동맹이었을 뿐.

피핀은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두어 번 검을 섞은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자신은 도살자를 이길 수 없다!

카아앙!

아틸라의 공격을 받아친 피핀의 몸이 주르르 밀려났다.

그로 인한 빈 공간을 메꾸듯 피핀의 병사들이 날아들었다.

아틸라는 무릎을 구부려 자세를 낮췄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호흡을 멈췄다.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켰다.

파카카카캉!

아틸라에게 창검을 뻗던 병사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 자리로 피핀의 검이 송곳처럼 쇄도했다.

손도끼를 뻗어 그것을 막아 낸 아틸라가 피핀의 덜미를 잡았다.

뺨을 후려쳤다.

“크허억……!”

피핀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그의 뇌가 흔들리며 눈앞이 부옇게 변했다.

아틸라는 피핀이 정신을 잃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멱살을 잡아끌어 쿵! 이마를 맞댔다.

“후퇴해라. 노르드 국경까지 병력을 물러.”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라. 도살자.”

“부하들은 최대한 살려 두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다. 병력을 물러라.”

“거절한다.”

겁 없는 부하 몇이 대장군을 살려 보겠다고 달려들었지만 아틸라의 발길질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피핀이 씹어뱉었다.

“샤를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기다렸다는 듯 아틸라가 웃었다.

“그렇겠지. 녀석의 성격이라면.”

“샤를은…… 샤를은 널 동료라고 생각했다……!”

그 말에 아틸라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언젠가 샤를이 했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단 조건이 있다.’

‘조건?’

아틸라가 툴루즈와의 전쟁을 위해 샤를에게 동맹을 요청했을 때.

샤를은 조건을 내걸었었다.

‘전쟁이 끝나면 나와 결투해라. 그리고 내가 이기면.’

샤를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넌 내 동료가 되는 거다. 아틸라.’

그 조건은 이뤄지지 못했다.

크라켄을 상대하는 아틸라의 모습을 보며 샤를은 아직 자신이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한 크라켄에게 잘렸던 팔 탓에 완전한 몸 상태도 아니었으니까.

‘지금 또한 그럴 테지.’

샤를의 팔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특별한 힘이 필요하다.

아틸라는 언젠가 샤를의 팔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녀석의 팔이 그렇게 된 건 다름 아닌 아틸라, 자신을 구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래. 그 빚은 갚아 주마 샤를.’

또한 샤를이 원작과 달리 손상된 팔을 가지고 있는 것은 꺼림칙한 일이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변수를 만들어 낼지 아틸라는 예측할 수 없었다.

“반드시 네놈을……!”

이글대는 피핀의 눈동자가 아틸라를 노려봤다.

그 눈을 아틸라가 물끄러미 내려 봤다.

“나를 뭐. 어쩌려고.”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는 피핀의 복부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늘어진 피핀의 덜미를 한 손에 쥐었다.

“어이. 부관.”

아틸라는 아까 손목을 꺾어 버렸던 부관을 향해 피핀을 던졌다.

“후퇴해라. 성을 버리고 떠난다면 추격하지 않겠다. 그리고.”

서둘러 피핀의 몸을 수습하는 부관을 향해 으르렁대듯 말했다.

“꼬우면 샤를 녀석에게 직접 오라고 해.”

* * *

카자르 용병단이 피핀 에드발과 제롬 아그리피나를 물리쳤다는 소식은 날개 돋친 듯 퍼졌다.

그에 따라 총사령관 자비에의 평가도 크게 상승했다.

아인하르트 군을 맞아 연패를 거듭하는 전장은 동부 전선만이 아니었고, 서부와 중부가 패배를 반복하는 동안 자비에는 무려 네 개의 성을 탈환하는 쾌거를 달성했으니까.

“자비에 총사령관은 무관이 아니라지?”

“그렇지만 병법만은 통달한 것 같더군. 최근의 전투만 봐도 그렇지 않나.”

“호오. 그렇다면 자비에 총사령관이 사실은 엄청난 지장(智將)이었던 건가?”

“그럴지도. 애초에 카자르 용병단을 발굴하고 큰 임무를 맡긴 것도 그런 선견지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나.”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들은 소문을 제멋대로 해석했다.

그러나 전장에서 직접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 온 병사들은 알고 있었다.

이 전쟁에서의 연승은 모두 카자르와, 그가 이끄는 드워프 용병단 덕분이라는 것을.

“불패의 카자르!”

“카자르 용병단 만세!”

“노르드의 전쟁영웅! 카자르!”

“광전사 카르타고의 재림!”

살아남은 병사들은 연신 카자르의 이름을 외쳐 댔다.

용병단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도 여럿이었지만 아틸라는 모두 거절했다.

한편 연패를 거듭하다 카자르 용병단을 등에 업고 무리하게 돌격을 외치던 자비에 군의 지휘관, 일명 ‘도망자’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도망자 별칭에서 벗어났다.

“다음 공성에 참전할 수 있겠나.”

아틸라의 물음에 라그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드워프의 회복력을 우습게 보는 건가. 난 끄떡없네.”

라그나는 병영의 치유실에 누워 있었다.

피핀에게 당한 라그나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아틸라의 발 빠른 응급처치가 없었다면 생명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자네가 내 생명을 구했네. 이 빚은 반드시 갚도록 하지. 내 모든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네.”

드워프의 맹세는 가볍지 않다.

만약 아틸라가 위험에 처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라그나는 목숨을 걸고 아틸라를 도울 것이다.

“맹세고 나발이고 얼른 치유하기나 해.”

“이깟 상처 별것도 아니네. 하룻밤만 푹 자고 일어나면 이전처럼 도끼도 휘두를 수 있을 테지.”

그건 허풍이 아니었다.

드워프 중에서도 강한 회복력을 지닌 라그나는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었다.

“라그나 저거 또 큰소리치는구만!”

“그러게 말야! 쟨 어릴 적부터 주둥이만 나불댔었지!”

“뭔 헛소리야. 주둥이 간수를 제대로 못하던 건 데인로, 네놈이지.”

“그러고 보니 그렇군. 데인로가 크누트에게 까불다가 강냉이가 다 털릴 때까지 두들겨 맞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누음앗핫핫핫하!”

“뭐야? 네놈이야말로 강냉이가 털리고 싶은 거냐 락포트!”

“어디 한번 해보시지!”

드워프들의 농담에 라그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라그나뿐만 아니라 골든핑거, 노틀링, 락포트, 데인로도 지난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고, 라그나 주변에 누워 있었다.

운 좋게도 보에몽만은 멀쩡했다.

보에몽이 설전을 벌이는 드워프들을 말렸다.

그런 보에몽과, 아이처럼 투닥대는 드워프들의 모습을 아틸라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 역시 라그나처럼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라그나가 넌지시 물어왔다.

“역시, 그 아가씨가 마법사였던 겐가.”

바토리에 대한 물음이었다.

라그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바토리와, 제롬의 공격을 막았던 마법에 강한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틸라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라그나는 짐작할 수 있었고, 더는 묻지 않았다.

한편 그 시각 바토리는.

“날 언제까지 이곳에 둘 생각이더냐.”

여전히 어느 높다란 나무 꼭대기에 홀로 앉아 있었다.

바토리가 제대로 참전하면 샤를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시체더미로 변할 터.

그것을 우려한 아틸라는 그녀를 먼 곳에서 보조만 하도록 만들었다.

“따분해 죽겠구나. 야만전사야.”

바토리는 심통 난 아이처럼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뒤 그녀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고 있었다.

“흐응.”

마력으로 강화된 시선이 무언갈 포착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대군.

천둥 같은 말발굽 소리.

허공을 비행하는 금사자의 깃발.

“드디어 온 것이더냐.”

금빛 머리칼을 날리며 선두를 달리는 푸른 눈의 사내.

그를 발견한 바토리의 입술이 매끄럽게 올라갔다.

“재밌어지겠구나. 야만전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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