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94화 (94/425)

094. 카자르 용병단 (4)

병사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투명 장막이 생성됐다.

파드드드드듯!

그것이 불덩이를 가로막았다.

* * *

‘저, 저건!’

타깃의 코앞에서 멈춰 선 불덩이를 보며 제롬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마법이 막혔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저 방어 마법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스승님이!’

제롬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첨예하게 곤두세웠다.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바토리의 기척은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지금의 나로선 스승님을……!’

그때였다.

제롬을 호위하던 기사단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허어억……!”

기사 한 명이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바토리를 찾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제롬을 포함해, 자리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기사들이 놀라 외쳤다.

“누, 누구냐!”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시커먼 갑옷 위에 같은 빛의 투구를 눌러쓴 사내.

핏물로 얼룩진 투구 사이로 드러난 광기 어린 눈동자.

기사들은 그의 정체를 대번에 짐작했다.

“카자르!”

퍼억! 카자르의 공격에 기사 한 명이 추가로 쓰러졌다.

나머지 기사들이 서둘러 협공을 시도했지만, 카자르는 가공할 괴력으로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고 마구잡이로 진을 흐트러뜨렸다.

“너무 늦다고.”

빠각! 소름 끼치는 소음과 함께 또 하나의 기사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제롬은 당황했다.

스승인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눈앞엔 우람한 체격의 전사 하나가 자신의 호위 기사들을 쓰러뜨리고 있다.

저 전사가 누구인지는 굳이 투구를 벗기지 않아도 자명했다.

“끄아아아아아!”

“크허억……!”

기사들의 비명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저들은 드워프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차출된 소수의 기사를 제외한다면 피핀의 부대에서 가장 뛰어난 무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런데도 단 한 명의 상대를 제압하지 못했다.

“어이. 제롬.”

투구 속에서 아틸라가 웃었다.

아니,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제롬은 그가 웃고 있다고 확신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제롬의 입에서 주문이 영창되기 시작했다.

“뭐야. 한 판 뛰어 보겠다고?”

기사들을 때려눕히며 아틸라가 말했다.

그는 기사들을 죽이지 않았다.

도낏자루로 급소를 후려쳤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바닥에 쓰러진 기사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주문을 완성시키며 제롬은 생각했다.

‘아틸라는 마법에 가까운 신기를 사용한다.’

그는 아틸라와의 첫 대결을 떠올렸다.

포효.

그리고 돌진.

제롬은 이 두 가지 스킬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다.

‘그렇다면.’

마력을 머금은 제롬의 손이 아틸라에게 겨눠졌다.

아틸라는 그것을 방관하지 않았다.

돌진을 사용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콰콰쾅!

그의 몸이 투명한 장막에 부닥쳤다.

아틸라의 눈이 일그러졌다.

제롬이 자신을 향해 첫 번째로 시전한 마법은 공격이 아닌 방어 마법이었다.

‘머리를 썼구나. 제롬.’

놀라운 일은 또 있었다.

아무리 예측한 상태라곤 해도, 아틸라의 돌진을 막아 낸 건 바토리를 제외하면 제롬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제롬을 불세출의 대마법사로 만들어 준 그의 특별한 능력을.

아틸라의 몸이 옆으로 굴렀다.

그 자리로 불꽃의 창이 지나갔다.

제롬의 눈이 커졌다.

‘피했다고!’

아틸라는 그 자리로 공격 마법이 날아올 거라는 걸 예측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제롬은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불세출의 마법사 제롬 아그리피나가 지닌 놀라운 재능 중 하나.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 안에 두 가지 마력을 생성한 뒤 각각 다른 손으로 방출할 수 있다는 것.

아틸라는 자신이 만들어 준 제롬의 특별한 이명(異名)을 떠올렸다.

‘투 핸드(Two hand).’

제롬이 또 다른 마법을 영창했다.

바토리처럼 고대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아틸라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벌써 주문 가속까지 터득했나.’

“카자르를 막아라!”

“궁정 마법사를 지켜야 한다!”

후미로 떨어뜨린 기사들이 아틸라의 뒤를 습격했다.

아틸라는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그것을 막고, 회피했다.

그러고는 빙글 몸을 돌려 기사들을 때려눕혔다.

그 와중에 제롬을 주시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크헉……!”

“크으윽……!”

제롬의 호위 기사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기사들은 아틸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막아라!”

“어떻게든…… 시간을……!”

그들의 목적은 아틸라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제롬이 주문을 완성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기사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아틸라를 향해 펼쳐진 제롬의 손이 붉은 광채를 뿜었다.

아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먼저 타격하긴 늦었다.

아틸라는 포효했다.

[ 포효(咆哮) ]

[ 대상이 포효에 저항했습니다. ]

‘응?’

아틸라는 약간 놀랐다.

제롬이 포효에 저항했다.

[ 높은 패기(霸氣) 능력치를 지닌 등장인물일수록 스킬, 포효에 저항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

파비앵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 영웅 등급의 등장인물은 대개 상당 수치의 패기 능력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그래. 이제 영웅 등급이다 이거냐.’

제롬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쫄아서 바지에 지도나 그리던 놈이.’

제롬의 손에서 불의 창날이 쏘아졌다.

아틸라는 무휼을 꺼냈다.

‘까짓것,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 대마법병기 ]

파카캉! 무휼의 날이 불의 창날을 막았다.

혼신의 힘을 다한 마법이었는지 그 위력이 상당했다.

그래서 아틸라는 그것을 소멸시키기보다는 옆으로 튕겨 내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 정도까지 성장한 건가.’

돌진 쿨타임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아틸라는 다시 돌진을 시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제롬의 방어막이 그것을 막았다.

아틸라는 솔직히 감탄했다.

마법사의 공격은 전사처럼 즉각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자신의 돌진을 막아 냈다는 것은.

‘내 돌진을 예측하고, 미리 주문을 시전했다는 것.’

아틸라의 입가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제롬이 이 정도까지 자신을 막아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틸라는 인정했다.

제롬을 얕잡아봤다.

그간 바토리와 함께한 탓에 마법사를 보는 눈이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제롬은 이미 진리의 세계에 도달했고, 그것을 탐구하고 발전시키는 수준에 이른 마법사다.’

물론 바토리에 비한다면 아직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전사였다면 이미 죽은 목숨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아틸라는 자신했다.

난 제롬을 쓰러뜨릴 수 있다.

파지짓……!

강하게 휘둘린 무휼의 날이 방어막을 찢었다.

그것을 예측한 것처럼 제롬이 추가 방어막을 세웠지만 재차 휘둘린 무휼이 그것을 파괴했다.

당황한 제롬이 주문을 영창했다.

그러나 코앞으로 근접한 아틸라의 사나운 미소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아, 아틸라…….”

“제법이었다. 제롬.”

무휼의 칼자루가 제롬의 머리를 타격했다.

* * *

라그나는 피핀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대륙은 넓군.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인간 전사가 또 있었단 말인가.’

아틸라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강하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로 간 건지.’

골든핑거. 노틀링. 락포트. 데인로.

녀석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놈들은 몰라도 보에몽이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라그나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전투 중에 딴 생각인가.”

피핀의 검이 날아들었다.

라그나는 그것을 막아 낸 뒤 반격에 들어갔다.

그러나 피핀 역시 능숙하게 회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피핀의 눈이 제롬의 마법을 막아 낸 투명 장막을 흘끗 쳐다보았다.

“너희 쪽에도 마법사가 있는 모양이군. 그런 정보는 듣지 못했는데.”

라그나 역시 궁금한 사항이었다.

그가 알기로 자비에의 군에 마법사는 없었으니까.

“제롬의 공격을 막아 낼 정도의 마법사라. 어디서 그런 고급 전력을 구한 것인가, 너희의 우두머리는.”

대답 없는 라그나를 향해 피핀이 물었다.

“카자르는 어디에 있나.”

“글쎄.”

피핀은 웃었다.

그러고는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카자르는 제롬을 잡으러 갔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전사라 해도 제롬을 잡을 순 없다.

‘전사는 마법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상대는 보통의 마법사가 아닌 제롬 아그리피나.

거기에 더해 제롬 주위엔 정예 기사단이 철통같은 방어진을 펼치고 있다.

피핀, 그 자신이 직접 나선다 해도 제롬을 쓰러뜨릴 순 없다.

‘샤를 정도의 전사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전사는 없다.

아니, 딱 한 명 존재하지만 그는.

‘……!’

그 순간 피핀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랬다.

그가 있었다.

크라켄을 쓰러뜨린 뒤 행방이 묘연해진 사내.

샤를을 무릎 꿇린 유일한 전사.

그 사내가 이곳에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러나.

그가 무슨 이유로 이제 와 샤를의 앞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치유를 위해…….’

라그나의 도끼가 짓쳐들었다.

그것을 막아 내며 피핀은 머리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상대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카자르가 아틸라라면.

그리고 제롬의 마법을 막아 낸 마법사의 정체가……

‘스승님은 엄청난 마법사요.’

쿵쿵, 피핀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바토리에 대해 언급하던 제롬의 목소리.

그것이 그의 머리를 잠식했다.

‘나 같은 범부(凡夫)는, 감히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자네야말로 딴 생각을 하고 있군.”

기회를 놓치지 않은 라그나의 도끼가 폭풍처럼 쇄도했다.

피핀은 심장의 떨림을 가라앉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눈앞의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먼저다.

피핀의 얼굴이 냉정으로 덮였다.

차르르르……!

도끼를 빗겨 낸 피핀의 신형이 라그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상대는 키 작은 드워프였지만 피핀 역시 인간치곤 자그만 몸을 하고 있었기에 약간만 자세를 낮추는 것으로 충분히 간격을 좁힐 수 있었다.

‘빠르다!’

라그나는 손도끼를 꺼내 방어하려 했다.

그러나 피핀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그것을 회피했고, 화려하게 공중제비를 돌며 플레이트 아머로 가려지지 않은 라그나의 덜미를 베었다.

‘얕았나……!’

피핀은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그러나 가벼운 상처 또한 아니었다.

라그나의 덜미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상대의 뒤편에 안정적으로 착지한 피핀은 힘차게 몸을 날려 라그나의 등을 걷어찼다.

“크헉!”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라그나가 바닥을 굴렀다.

피핀은 서둘러 날개 대형을 두 번째 단계로 변화시켰다.

두두두두두! 방패병들이 발을 움직였고 라그나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전군! 대형을 바꾼다!”

왼손을 뻗어 진을 지휘하며 피핀은 말을 달렸다.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 제롬은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파아앙!

거친 파쇄음과 함께 피핀의 말이 고꾸라졌다.

그 반동으로 피핀이 말에서 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자세를 바로잡은 피핀은 어디선가 날아든 거대한 도끼날이 가슴째 말의 다리를 절단한 광경을 봤다.

피핀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도끼는 피핀이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