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카자르 용병단 (1)
자비에는 그 인간 전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안내하게.”
그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여섯 명의 드워프가 웃고 떠드는 소리는 널찍한 병영 안에서도 목표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 주었으니까.
‘저자가.’
동그랗게 모여 앉은 드워프들 사이로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무슨 덩치가……!’
어마어마한 체구의 사내.
맨손으로 곰도 때려잡을 듯했다.
키 작은 드워프 옆에 있으니 더욱 커다래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노르드에서 볼 수 없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 야만인인가.’
“총사령관.”
부관의 말에 자비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
“그대가 드워프 용병단의 단장인가.”
야만인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자비에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비에가 다시 물었다.
“이름을 알고 싶군.”
“카자르.”
아틸라는 본명을 숨겼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진다면 샤를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올 것이기 때문.
녀석과 맞붙게 되긴 할 테지만 아틸라는 조금 더 뒤로 미루고 싶었다.
“오오. 카자르 공이로군. 출신을 물어도 되겠나.”
이번에도 아만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부관이 나섰다.
“네 이놈! 이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자비에에게 머물러 있던 검은 눈동자가 부관에게 돌아갔다.
야만인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드워프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런 무엄한……!”
“자, 자. 그만두게 부관.”
자비에가 오히려 부관을 말렸다.
물론 저 야만인의 태도는 무례하다.
하지만 자비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 야만인이라면 문명 세계의 예의를 모를 법도 하지.’
자비에에겐 그깟 예의범절 따위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이자를 활용해 작금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패배만을 거듭하던 전장.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승리를 안겨 준 사내다.
그것도 아주, 압도적인 승리를.
‘지금까지 내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였다.’
자비에는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도무지 전쟁에서 승리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전장.
왕에게 사정을 전하고 새로운 지휘관을 임명해 주십사 청할 생각도 했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런 식으로 구차하게 살아남아 봤자 귀족으로서의 입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종군의 의무를 무시하고 전쟁에서 도망친 비겁자라는 낙인이 찍혀 버릴 테니까.
‘그럴 수는 없다.’
자비에는 우아한 귀족의 삶이 좋았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전쟁 영웅들의 식사 치곤 조촐하군. 어떻소 카자르 공. 함께 성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풍류를 즐겨 보는 것이.”
“술과 고기는 충분히 있소?”
처음으로 말 다운 말을 꺼낸 것이 존대도 아니었건만, 상대가 관심을 보인 것에 자비에는 그저 기뻐했다.
“허허. 물론이오. 내 성에서 가장 비싼 술을 내드리지.”
그 말에 드워프들이 호우호우!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아틸라도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실례하겠소.”
잠시 후 아틸라와 여섯 드워프는 풍족한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거나하게 취한 골든핑거가 탁자 위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다 데인로가 던진 고깃덩이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드워프들이 박장대소했다.
그들을 지켜보는 성 안의 병사와 도베르뉴 가문의 사람들은 구겨진 인상을 펴지 못했다.
‘예의도 모르는 땅딸보 드워프들 같으니.’
그와 반대로 자비에는 시종일관 허허 웃는 얼굴이었다.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지는지 계속해서 술과 고기를 내오라 외쳤다.
그렇게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은근한 목소리로 자비에가 말했다.
“카자르 공. 이 성을 잃는다면 더는 물러설 곳이 없소. 아인하르트 놈들이 노르드 왕국 중심부까지 물밀듯 밀려들어올 거요.”
으적으적 고기를 씹던 아틸라가 자비에를 돌아봤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그대가 드워프 용병들을 이끌고 적진을 기습해 줬으면 하오. 지난 전투 때처럼.”
물론 아틸라는 그럴 계획이었다.
그러나 짐짓 뜸을 들이며 물었다.
“지난번 전투는 운이 좋았소. 지휘관께서도 아시다시피 적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있으니까. 다음번엔 쉽지 않을 거요.”
“물론이오 카자르 공. 암암. 내 충분히 알고 있지.”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가 필요할 것 같소만.”
기다렸다는 듯 자비에는 동전 주머니를 열어 보였다.
안을 들여다본 아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한 양이군.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오.”
사실 아틸라는 노르드 왕국으로 넘어온 후 가장 먼저 자비에를 만나려 했었다.
그가 지닌 물건 중에 크누트가 아주 좋아할 만한 것이 있었기 때문.
그래서 아틸라는 수많은 전장 중에서도 이곳, 동부 전선으로 참전을 결정했다.
“카자르 공. 혹시 따로 원하는 게 있는 거요?”
“황금잔.”
그 말에 먼저 반응하고 나선 건 도베르뉴 가문의 일원들이었다.
“말도 안 되는!”
“가주! 들을 필요도 없는 소리입니다!”
자비에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황금잔.
먼 옛날 자신의 조상이 황금바위산의 드워프 왕에게서 내기로 빼앗은 물건이다.
‘가문의 비보로 전해지던 것인데.’
자비에는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가문의 비보를 내준 어리석은 가주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전쟁에 패해 노르드 왕국이 아인하르트에 삼켜진다면 그런 것 따위 문제가 아니다.
‘가문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고민하는 자비에에게 아틸라가 말했다.
“황금잔만 넘겨준다면 적들을 국경 너머로 치워드리겠소.”
“적들? 설마 동부 전선의 모든 적들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물론 아니지.”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동부. 중부. 서부. 아인하르트 군 전체를 통괄해 말하는 거요.”
잠시 정적이 일었다.
도베르뉴 가문의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됩니다 가주!”
“고작 드워프 여섯과 야만인 하나가 어떻게 아인하르트의 대군을 몰아낸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노르드 왕국의 모든 기사와 병사들도 해내지 못하고 있는 일입니다!”
자비에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물론 카자르와, 그가 이끄는 드워프 용병단은 직전의 전장에서 엄청난 공을 세웠다.
고작 7인의 인원으로 적진을 기습한 뒤 적장의 목을 베고 성 하나를 탈환했으니까.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업적.’
하지만.
‘카자르가 섬멸한 건 아인하르트 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아인하르트는 아스투리아를 흡수했다.
이제는 수많은 전(前) 아스투리아의 기사들이 샤를 아인하르트를 섬기고 있다.
‘심지어 삼검(三劍)마저도.’
아스투리아 왕국의 삼검.
그들의 명성은 자비에 역시 수없이 들었다.
새로이 샤를에게 충성을 맹세한 그들은 현재 아인하르트의 중부 전선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런 아인하르트의 군세 모두를 국경 밖으로 내쫓아 주겠다고? 고작 용병 일곱 명이서?’
터무니없는 말이다.
얼큰한 취기를 빌어 내뱉는 허언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비에는 믿고 싶었다.
예전의 그라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상대를 쫓아냈겠지만, 지금의 그는 극도로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방법이나 들어보자. 이야기를 듣는다고 손해날 일은 없지 않은가.’
“그래. 어떤 방법으로 아인하르트를 물리칠 생각이오.”
“가주!”
가문의 일원들이 소리쳤지만 자비에는 무시했다.
깊어진 그의 눈이 아틸라를 향했다.
아틸라가 입을 열었다.
“방법은 하나요.”
음식이 차려진 긴 탁자 위로 아틸라가 성큼 올라섰다.
자비에를 향해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발에 짓밟힌 음식들이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갔다.
“저, 저런 고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도베르뉴의 사람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가주인 자비에가 지켜보고만 있었기에 그들은 아틸라를 제지할 수 없었다.
으깨진 음식들을 걷어차 바닥으로 떨꾸며 아틸라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잔챙이들만 처리해선 의미가 없소. 부족한 음식을 채우듯 병사는 다시 채워 넣으면 그뿐이니까.”
아틸라의 발이 멈췄다.
그의 손이 자비에 앞의 삶은 돼지머리를 잡아들었다.
“이렇게.”
푸드득! 손아귀에 힘을 주자 돼지머리가 곤죽이 되어 흩어졌다.
“우두머리를 잡아야지.”
“아인하르트의 왕, 샤를 아인하르트를 잡겠다는 말이오?”
“놈을 쓰러뜨린 뒤 제안할 생각이오.”
“제안?”
“군사들을 데리고 국경 너머로 꺼지라고.”
“그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그가 들을 것 같소?”
“듣게 만들어야지.”
아틸라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난 자신이 있소.”
아틸라는 무릎을 구부려 최대한 자비에와 눈높이를 맞췄다.
“할 말은 다 했소. 결정은 총사령관께서 내리실 일이지. 보수는 후불로. 선수금도 필요 없소.”
자비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보수를 후불로 받겠다고? 게다가 선수금도 필요 없다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즉, 카자르가 아인하르트의 대군을 국경 밖으로 쫓아내지 못하면 계약은 성립되지 않는다.
자비에는 황금잔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손해 볼 일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만에 하나 카자르가 임무를 완수한다면 황금잔을 넘겨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 일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정말로 카자르가 아인하르트를 물리치기라도 한다면, 자비에는 구국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가 꿈꾸던 세계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죽는 날까지. 영원히.
“하나만 묻겠소. 카자르 공.”
“말씀하시오.”
“샤를 아인하르트는 서부 전선에 있소. 동부에 있는 우리가 어떻게 그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거요.”
“불러들일 거요. 내가.”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대답.
자비에는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이번만큼은 가문의 일원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저 야만인이 성공할 거라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가주께서 허할 리 없다.’
‘미개한 야만인 같으니라고.’
그들의 비웃음을 한 귀로 흘리며 아틸라는 자비에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비에는 생존 본능이 뛰어난 귀족.’
자비에는 무관이 아니다.
병약하게 태어난 그는 가문의 수장이 되기까지 많은 위기를 극복했고, 그것은 그의 생존 감각을 첨예하게 단련시켰다.
군을 이끄는 능력만은 바닥을 맴돌고 있었지만.
이윽고 자비에가 입을 열었다.
“좋소. 황금잔을 내드리지.”
“가, 가주!”
가문의 인물들이 놀라 외쳤지만 자비에는 손짓 한 번으로 일축했다.
“대신 적들을 반드시 국경 밖으로 몰아내야 하오.”
“계약 성립이로군.”
아틸라는 웃었다.
단숨에 들이켠 술잔이 탕! 하고 탁자를 때렸다.
* * *
며칠 후 야심한 밤.
아틸라와 여섯 드워프는 적에게 빼앗긴 성 하나를 탈환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근데 바토리는 어딜 간 거야?”
보에몽이 물었다.
동부 전선에 합류하기 직전, 바토리는 일행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볼일 보러.”
“무슨 볼일?”
아틸라는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 말을 돌렸다.
“준비됐나.”
그의 목소리에 여섯 드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한다.”
성을 향해 달렸다.
라그나와 펀치가 아틸라의 뒤를 바짝 쫓았다.
보에몽과 나머지 네 전사도 질세라 발을 움직였다.
‘젠장. 정말 이렇게 가도 되는 거야?’
보에몽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빼앗긴 성을 탈환하는 작전.
아니, 작전이라 말하기도 민망했다.
“저, 적습이다!”
“뿔피리를 불어라!”
그냥 무식한 강행돌파였기 때문.
“드, 드워프!”
“그렇다면 저건……!”
“카자르다! 카자르 용병단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