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 황금바위산의 드워프 (3)
정적이 일었다.
드워프 전사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고.
보에몽은 입을 쩍 벌린 채 아틸라를 쳐다봤다.
“뭐, 뭐 하는 거야! 혼자서 어떻게 황금바위 전사 다섯을 이기겠다고!”
외침을 못 들은 체하며 아틸라가 말했다.
“황금바위의 전사들은 언제든 상대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 있다. 또한 결투를 받아들이는 자는 조건을 내걸 수 있지. 내 말이 틀렸나?”
“틀리지 않았다.”
“나와 겨루고 싶다면.”
아틸라가 등 뒤의 용아귀를 쥐어들었다.
“조건을 수락해.”
라그나의 눈빛이 깊어졌다.
결투를 신청한 건 이쪽.
상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조건을 내걸었다.
물론 그 조건이란 게 드워프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지만.
‘거부할 명분이 없군.’
라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의 대답에 나머지 네 전사도 고민을 내던졌다.
다섯 자루의 도끼가 아틸라에게 겨눠졌다.
“팔 하나쯤 잃을 각오는 해 두는 게 좋을 거다.”
라그나의 말에 보에몽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젠장! 바보 같은 녀석! 일대일이라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는데!’
보에몽은 라그나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머지 네 전사도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골든핑거. 노틀링. 락포트. 데인로까지.’
보에몽은 확신했다.
‘설령 타리엘 페살라스가 온다 해도 이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순 없어!’
보에몽은 타리엘이 아틸라에게 패배한 것에 무언가 숨은 까닭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버지와 호각을 다퉜던 사내가 패할 리 없으니까.
바토리가 보에몽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걱정할 거 없단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는 지지 않아.”
아틸라는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저 다섯 명의 드워프 전사를 쓰러뜨리는 것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아틸라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준비는 됐나. 무적자 아틸라.”
라그나의 물음에 아틸라가 답했다.
“물론.”
그 말을 신호로 다섯 드워프가 몸을 날렸다.
‘역시 빠르군.’
드워프의 둔해 보이는 체구를 보고 선입견을 가져선 안 된다.
잘 훈련된 드워프 전사는 힘뿐 아니라 상당한 민첩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 네가 먼저로군.’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가장 먼저 도끼를 휘두른 건 역시 라그나 크림슨비어드.
콰아앙!
두 자루 도끼가 부닥치며 거친 소음을 발했다.
아틸라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엄청난 기백이군.’
그러나 힘으로 아틸라가 밀릴 리 없었다.
아틸라는 양팔에 힘을 주고 라그나를 밀어냈다.
라그나는 잠시 버티는 듯하다가 도끼를 기울여 그것을 흘려냈다.
‘역시, 기술까지 뛰어나다는 건가.’
아틸라는 지금까지의 적과 싸울 때와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그나와, 나머지 네 전사들이 휘두르는 도끼는.
‘드워프 장인의 무기.’
용아귀에 뒤처지지 않는, 어쩌면 더욱 상위의 물건!
콰아앙!
재차 휘둘러진 라그나의 도끼가 용아귀가 부닥쳤다.
그 틈을 노리며 네 자루 도끼가 측면을 파고들었다.
‘골든핑거. 노틀링. 락포트. 데인로.’
아틸라 역시 그들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그들은 뛰어난 전사들이었다.
아틸라는 네 방향에서 날아드는 도끼날을 피하기보단 정면의 라그나를 확실하게 공략하기로 했다.
‘녀석만 주의하면 된다.’
네 전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라그나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아틸라의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라그나의 도끼를 다시 한번 밀어붙이며 달렸다.
이번의 라그나는 조금 전과 달리 그것에 힘으로 맞섰다.
라그나의 눈이 부릅떠졌다.
‘말도 안 되는……!’
처음 아틸라가 힘으로 밀고 들어올 땐 별생각 없이 흘려 넘겼다.
그러나 같은 일이 두 번 반복되자 라그나는 호승심이 일었고, 굳이 힘겨루기를 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의 힘은 자신보다 강했다.
‘내가 힘에서 밀린다고?’
아틸라가 라그나를 밀치며 달린 탓에 네 전사의 무기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아틸라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상대의 도끼를 힘껏 쳐올렸다.
아틸라의 용력을 견디지 못한 라그나의 양손이 머리 위로 치솟았다.
‘무슨 괴력이!’
비어 버린 라그나의 가슴팍에 발길질이 가해졌다.
카앙! 날카로운 소음을 울리며 라그나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아틸라의 눈이 꿈틀거렸다.
‘이건?’
발에서 느껴진 단단한 감각.
그 순간 울렸던 금속성의 소음.
아틸라는 확신했다.
겉옷과 망토에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저것은 분명.
‘플레이트 아머.’
“라, 라그나를 나뒹굴게 만들다니!”
보에몽이 소리쳤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광경.
놀란 건 네 전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그나가 쓰러졌다!”
“무기도 아니고, 발길질 한 번으로 저 괴물을 쓰러뜨려?”
“뭐야. 제법이잖아!”
“이거 아주 재밌는 결투가 되겠군!”
놀란 것도 잠시, 드워프들이 킬킬대며 웃기 시작했다.
지면을 구르던 라그나도 끄떡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아틸라가 네 전사를 습격했다.
“뭐야! 온다!”
아틸라의 첫 번째 상대는 데인로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
부웅, 데인로가 휘두른 도끼가 허공을 쪼갰다.
도끼를 피한 아틸라의 몸이 데인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드워프는 인간보다 키가 작았기에 아틸라는 상당히 많이 자세를 낮춰야 했다.
퍼억!
복부를 가격 당한 데인로가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아틸라의 입가가 위를 향했다.
데인로는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는 것은.
‘나머지 셋도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거지.’
파캉!
두 번째 상대, 노틀링의 머리통을 용아귀가 후려쳤다.
물론 도끼날의 옆면을 이용했기에 목숨을 잃진 않았지만, 아틸라의 괴력을 등에 업은 용아귀는 단 한 방으로 상대를 기절시켰다.
라그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어느 틈에!’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광경.
“제법이군! 인간 전사!”
“내 도끼도 한번 막아 봐라!”
남은 두 전사, 골든핑거와 락포트가 아틸라의 뒤를 습격했다.
섬광처럼 휘둘린 도끼날이 아틸라의 팔과 다리를 베었다.
아니 벤 줄 알았다.
부웅,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아틸라의 몸이 그것을 피했다.
그것을 본 라그나는 자신이 상대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결코 우연으로 타리엘을 이긴 것이 아니다!’
라그나의 집중력이 첨예하게 곤두섰다.
아틸라의 도끼가 두 동료를 향해 쏘아지는 것을 확인한 라그나의 몸 근육이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그 순간 아틸라는 머리 위를 내리치는 강력한 살기를 감각했다.
‘이건?’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천둥벼락!’
아틸라는 골든핑거와 락포트를 향해 휘두르던 용아귀의 공격 방향을 머리 위로 돌렸다.
그곳에 있었다.
벼락처럼 짓쳐드는 라그나의 도끼날이!
콰콰쾅!
아틸라의 발이 지면을 파고들었다.
양팔과 다리, 아니 온몸의 관절에서 뻑뻑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정도로 강력한 일격.
“이것을 막아내다니. 자네 같은 전사가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던 건가.”
라그나의 목소리엔 경외감마저 깃들어 있었다.
조금 전의 아틸라는 도저히 자신의 공격을 막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끼의 진행 방향이 직각으로 꺾였다.’
네 명의 전사를 상대하며 자신의 공격을 감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휘두르던 도끼 방향을 극적으로 바꿔 완벽한 방어를 펼쳤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파앙!
풍차처럼 회전한 무휼의 옆면이 골든핑거의 머리를 강타했다.
끄으윽……! 신음을 흘리며 골든핑거가 쓰러졌다.
라그나의 덜미에 소름이 돋아났다.
아틸라의 도끼는 여전히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골든핑거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혼신의 일격을.’
한 손으로 막아 냈다는 이야기!
“하아압!”
우렁찬 기합과 함께 아틸라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 반동으로 라그나가 무게중심을 잃었다.
아틸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뛰어오르는 힘을 이용해 휘두른 도낏자루가 락포트의 턱을 가격했다.
“크흐으으읍……!”
다리가 풀린 락포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몇 걸음 뒤로 밀려난 라그나를 노려보며 아틸라는 숨을 골랐다.
“후우…….”
네 명의 드워프 전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
‘하지만 곧 일어날 테지. 그전에 끝을 봐야 한다.’
드워프의 회복 속도는 인간보다 빠르다.
아틸라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날 선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천둥벼락.’
천둥벼락.
드워프의 강인한 종족 특성 중 하나로.
순간적으로 수 미터 앞으로 뛰어들어 단두대처럼 목표를 내리치는 공격.
그리고 그 공격엔.
‘인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지.’
예를 들어.
떨어지는 물체의 속도는 무게와 상관없이 일정하다.
또한 수 미터를 뛰어올라 다시 떨어질 때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농구의 3점 슛처럼.’
하지만 천둥벼락은 그 모든 법칙을 무시한다.
공중으로 솟아올라 수 미터 앞의 상대에게 착지할 때까지의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지는 것.
바위로 던져지는 시속 200킬로미터의 어마어마한 변화구라 생각하면 될까.
‘그러고 보니 돌진 스킬과도 비슷하군.’
돌진만큼 빠르진 않지만.
결코 무시하지 못할 속도.
그 가공할 속도를 등에 업고 내리치는 공격이 바로 천둥벼락이다.
“자네를 얕봤던 것 같군. 내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라그나의 말에 아틸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천만에.”
“아무래도 내가 가진 힘의 전부를 쓰지 않으면 자넬 이길 수 없을 것 같군.”
“전부를 써도 결과는 같을 거다.”
아틸라가 웃었다.
“내가 이길 거거든.”
두 전사의 도끼가 맞부딪쳤다.
라그나는 자신의 무기 성능에 자신이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상대를 몰아붙였다.
‘드워프 장인의 무기는 대륙 최강!’
그런데 이상했다.
상대의 무기는 자신의 무기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성능을 보이고 있었다.
‘성물인가?’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지금은 갈무리된 짤막한 검에선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지만 저 거대한 도끼는 아니다.
‘무시무시한 완력이군.’
그 말대로 아틸라는 순수한 무력으로만 라그나를 상대하고 있었다.
이프리트의 반지도, 숫돌도, 축성의 인장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육체 능력으로만 이겨야 효과가 있다.’
물론 숫돌이나 축성의 인장 효과를 라그나가 알 리 없지만.
‘이참에 실력 점검도 해 둘 겸.’
아틸라의 공세가 매서워졌다.
잠시 라그나가 압도하는 듯 보였던 전세는 순식간에 아틸라 쪽으로 기울었다.
‘실력을 숨겨두고 있던 건가!’
라그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눈앞의 사내는 자신의 실력으론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그러나 라그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격의 기회는 있다.
‘천둥벼락.’
그 한 방에 모든 것을 건다!
파아앙!
힘차게 휘둘러진 용아귀가 라그나의 몸을 수 미터 뒤로 밀어냈다.
라그나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감각했다.
“흐아아아압!”
아틸라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 순간 라그나의 눈이 경악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