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82화 (82/425)

082. 다시 후마이야 왕국으로 (2)

금사자 기사단의 돌격대장 이반은 ‘해골 파쇄자’라는 그의 이명과 걸맞은 거대한 철퇴를 손에 들고 종횡무진 전장을 누볐다.

“저, 저자인가!”

“금사자의 돌격대장, 이반!”

“해골 파쇄자!”

빠캉! 이반의 철퇴가 적병의 두개골을 쪼갰다.

분수처럼 터져 오르는 핏물이 주변에 서 있던 아스투리아 병사들의 얼굴에 뿌려졌다.

“흐에엑! 눈이……!”

“아, 앞이 안 보여!”

머뭇대던 병사의 머리가 철퇴를 맞고 폭죽처럼 터졌다.

그렇게 재생성된 핏물은 공포라는 이름의 주박이 되어 사방으로 퍼졌고, 이반은 점점 더 손쉽게 먹잇감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전쟁에서 내 반드시 큰 공을 세우리라.’

원래 금사자의 돌격대장은 루악이라는 이름의 사내였다.

그런데 오래전, 그러니까 금사자가 아직 기사단으로 불리기 이전인 용병단 시절 루악은 전사했다.

루악을 쓰러뜨린 건 그 이름도 유명한 도살자.

이반은 루악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는 루악의 친동생이었다.

‘형님의 의지는 내가 이어받겠다.’

루악은 늘 말했었다.

그 어떤 전쟁이든 선봉에 서서, 금사자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리겠다고.

그렇게 샤를 아인하르트의 빛나는 꿈을 가장 앞선 자리에서 바라보겠노라고.

이반은 그런 루악의 모습을 존경했다.

언젠가 형와 함께 나란히 선봉에 서게 될 날을 꿈꿨다.

그런데 도살자가 그 꿈을 부숴 버렸다.

‘도살자……!’

이반은 분노했다.

‘형의 뒤를 잇는 강력한 전사가 되고 말리라.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도살자를……!’

원래부터 체격과 힘은 타고났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반은 루악과 같은 검술의 달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반의 훈련을 지켜보던 샤를이 말했다.

‘무기를 바꿔 보는 것은 어떤가.’

그 한 마디에 이반의 인생이 바뀌었다.

이반은 형이 사용했던 양손검에 집착을 버렸다.

그 뒤로 이반은 수많은 무기를 구해 다뤄 보았고, 마침내 자신에게 걸맞은 것을 찾아냈다.

그는 그 무기와 함께 전장을 누비며 ‘해골 파쇄자’라는 이명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아인하르트 군의 선봉에서 적병들을 도륙하고 있다.

“우아아아아!”

짐승 같은 괴성과 함께 철퇴가 휘둘러졌다.

퍼걱! 또 하나의 머리통이 파쇄됐다.

“화살이다! 화살을 쏴!”

아스투리아의 궁병들이 이반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온몸에 두꺼운 강철 갑주를 두른 그의 몸을 타격할 순 없었다.

“저, 저게 인간인가!”

“어떻게 저런 무거운 갑주를 입은 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그건 이반의 타고난 근력과 후천적 노력이 빚어낸 값진 결과물이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제롬 아그리피나.’

제롬은 전장으로 나서는 이반의 몸에 어떤 마법을 걸어 주었다.

그것은 이반이 감각하던 그의 갑주 무게를 현저하게 감소시켰고, 덕분에 이반은 전성기 시절의 루악을 상회하는 전투력을 획득했다.

‘대단한 마법사다.’

수개월 전, 브뤼노 백작령 앞에 진을 친 마귀의 바다를 단독으로 뚫고 등장한 사내.

그가 가져온 전략과, 그가 지닌 강력한 마법은 샤를의 군대가 마귀들을 섬멸하고 브뤼노 백작성을 함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공으로 제롬은 샤를군 부동의 이인자인 피핀과 대등한 자리에 올라섰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많았다.

그러나 제롬은 오로지 실력으로 그 모든 불평불만을 잠재워 버렸다.

전장에서 제롬이 보였던 강력한 공격 마법을 떠올린 이반이 작게 몸서리쳤다.

‘정말로 엄청났었지. 그건.’

이반은 이전에도 제롬을 본 적이 있었다.

툴루즈 백작령에 출몰한 크라켄을 쓰러뜨렸던 날.

그날의 전투 이후 제롬은 도살자를 따라나섰다고 들었다.

그런데 돌아왔다.

떠나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문득 이반은 궁금해졌다.

도살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의 나라면.

‘도살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콰콰쾅!

아군 진영에서 수 명의 병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굴러오는 거대한 바위에 가격 당한 돌멩이처럼 줄지어 병사들이 튀어 올랐다.

‘뭐, 뭐냐! 저건!’

쉴 새 없이 휘둘리던 이반의 철퇴가 멈췄다.

강철 투구 안에서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는 이전에도 저것과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설마!’

트콰악!

대포알처럼 날아온 병사 하나가 이반의 몸에 부닥쳤다.

낮은 신음성을 흘리며 이반의 몸이 주르르 뒤로 밀려났다.

그때를 노려 이반을 습격하는 용감한 적병이 있었지만 휘둘러진 철퇴에 두개골이 박살 났다.

더 이상 자신을 노리는 적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반은 조금 전 병사가 날아왔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었다.

“너, 너는……!”

원래의 색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피 칠갑이 된 갑옷.

같은 빛깔의 투구.

누군가 소리쳤다.

“흐, 흑곰 기사단이다!”

그의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아스투리아 왕국의 최정예 기사단 흑곰.

지금껏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전장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반이 놀란 건 그들 때문이 아니었다.

“너……, 너는 분명……!”

눈앞의 사내는 흑곰 기사단이 아니다.

군마도 없고, 갑주의 모양 역시 다르다.

투구 사이로 드러난 서늘한 검은 눈을 알아본 순간 이반이 소리쳤다.

“도살……!”

콰드득!

거친 파육음과 함께 이반의 목이 절단됐다.

* * *

흑곰 기사단의 단장, 기욤 마르텡은 적장의 목을 날려 버리는 용병을 보며 눈을 빛냈다.

‘호오.’

얼마 전 국경 경비의 책임을 맡았던 기사가 쓸 만한 용병을 구해 왔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그래봤자 용병이겠거니 생각하며 무시했다.

‘리오넬 뒤퐁 정도라면 모를까.’

리오넬 뒤퐁.

아스투리아 왕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들개 용병단’의 단장으로, 자신 못지않은 강력한 검술을 지녔다 평가받는 인물.

그 역시 이번 전쟁에 아스투리아 편으로 참전했다.

그리고 패색이 짙어 가는 전쟁에서 몇 안 되는 성과를 보이는 자이기도 했다.

‘대단하군.’

기욤은 저 이름 모를 용병의 힘에 감탄했다.

적장의 목을 들고 포효하던 그의 모습이 병사들의 그림자에 묻혀 사라졌다.

‘짐승 같은 포효. 야만인인가.’

기욤은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머릿속에서 용병의 모습을 지웠다.

지금부터가 진정한 흑곰 기사단의 시간이었으니까.

“흑곰 기사단! 진격!”

단장의 외침에 기사들이 말을 달렸다.

물론 가장 앞장선 것은 진격 명령을 내린 그 자신, 기욤 마르텡.

“적들이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돌격대장, 얀 베르나르가 다가와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용병 한 명에 의해 어이없이 지휘관을 잃은 아인하르트 군은 가히 패닉 상태.

그들을 흑곰의 기사들이 타격했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아스투리아 왕국 만세!”

“우와아아아아!”

처음으로 맞이한 아스투리아의 대승이었다.

* * *

“별일 없었냐 할망구.”

“흐응? 그게 무슨 말이더냐.”

“아스투리아 왕이 이상한 수작질 부리지 않았냐고.”

바토리의 눈이 배시시 웃음을 머금었다.

“이상한 수작질이라니.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것이더냐.”

“별일 없었으면 됐다.”

아틸라와 바토리는 무사히 국경을 넘었다.

수 일 전, 아틸라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흑곰의 기사를 통해 전선의 상황을 들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이반의 목을 베어 주겠소.’

이반은 훗날 명예욕에 눈이 멀어 샤를을 배신하다 숙청되는 놈이다.

지금 죽여 버려도 상관없는 인물이란 이야기.

대가로 아틸라는 국경을 통과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아틸라의 무력에 겁을 먹은 기사는 자신에겐 결정권이 없다며, 아틸라와 바토리를 왕에게 데려갔다.

‘돌격대장 이반의 목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때의 기사는 정말로 아틸라가 이반의 목을 들고 귀환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바토리는 보호의 명목으로(사실은 인질이 되어) 아스투리아 왕이 마련해 준 침소에 머물렀다.

기사는 자신의 왕이 몹시 여색을 밝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토리를 처음 본 순간부터 왕에게 바칠 생각을 했다.

아인하르트와의 전쟁 탓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왕은 단 하루도 여자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까.

아틸라 역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이반을 목을 베어 오고, 약속대로 국경을 통과하며 바토리에게 물었던 것.

“자, 정확히 말해 보려무나. 이상한 수작질이라는 게 무언지 말이다.”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캐묻는 바토리를 무시하며 아틸라가 중얼댔다.

“그런데 이상하군. 이렇게나 두말 없이 관문을 열어줄 줄이야.”

아틸라는 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무력을 행사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평소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틸라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어차피 아스투리아는 패배할 거다.’

즉, 무력으로 국경을 돌파해도 귀찮은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 일을 벌일 아스투리아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애초부터 아틸라가 바로 국경을 넘지 않은 이유는, 적장의 목을 베어 샤를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아스투리아 군의 사기는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목적은 이뤘다.

흑곰 기사단은 기세를 잡았고, 한동안은 아인하르트의 공세를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샤를이 당도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아스투리아 왕이 이렇게 약속을 지킬 줄은 몰랐다.

아니, 당연히 지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바토리의 눈에 띄는 외모 때문은 물론이거니와.

패색이 짙은 전쟁 중에 단신으로 적장의 목을 베어 온 뛰어난 실력의 용병을 호락호락 타국으로 보내 줄 군주는 없을 테니까.

“흐응. 그것이 궁금하더냐.”

“아까부터 뭐냐. 그 때리고 싶은 얄미운 면상은.”

“그것이 그리 궁금하단 말이더냐.”

“안 궁금해.”

그 순간 바토리의 표정이 변했다.

“……내가 왕을 만족시켜 줬느니라.”

“뭐?”

“그래서 그 늙은 왕이 군마까지 하사한 것이니라.”

아틸라는 말을 멈춰 세웠다.

굳어진 얼굴로 바토리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마주 보던 바토리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이나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그녀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안심하거라 야만전사야. 네가 걱정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녀가 이를 드러내며 미소했다.

“지금쯤 왕은 나의 환술 속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야.”

“환술이라고?”

“그래. 내 이번에 메피스토펠레스의 마술을 살짝 훔쳐 왔단다.”

그러고는 말을 달리며 외쳤다.

“기분 좋은 날이로구나. 오늘은.”

멀어지는 바토리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아틸라가 푸르륵, 고개를 흔들었다.

“빌어먹을 할망구.”

아틸라도 말을 달렸다.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해가 두 마리 군마의 옆구리를 비췄다.

* * *

후마이야 왕국.

불의 힘이 강해 땅 대부분이 무더운 사막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

그러나 그런 나라에도 비옥한 대지는 존재했고, 그곳의 중심에 자리한 거대한 오아시스 주변엔 아름다운 황톳빛 성이 솟아 있었다.

성의 주인은 ‘테헤누트 하토르’.

후마이야 왕국의 왕이었다.

단 위에 앉은 그녀의 얼굴을 아틸라는 물끄러미 올려봤다.

바토리만큼은 아니지만 빼어나게 아름다운 얼굴.

매끄러운 피부.

그러나 많아야 이십 대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나이는 무려.

일흔일곱 살.

“그대가 하디드 살만을 이겼다는 성전 기사로군요.”

아틸라는 그녀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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