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78화 (78/425)

078. 망국의 공주 (3)

퍼어어엉!

바토리의 왼팔에서 엄청난 크기의 불덩이가 쏘아졌다.

아틸라는 무휼을 세워들어 그것을 막았다.

파드드드드듯……!

붉은 마력의 파편이 소나기처럼 흩어졌다.

무휼의 날이 거칠게 진동했다.

“크윽……!”

아틸라의 얼굴이 구깃구깃 일그러졌다.

이렇게 강력한 마법을 마주한 건 패영전 세계에 진입한 후 처음이었다.

‘……빌어먹을 할망구.’

갑작스러운 바토리의 공격.

그녀는 아틸라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의 바토리는 아틸라를 만나기 이전, 그러니까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에게 왕국을 잃고 절망한 공주의 모습이었으니까.

“네놈이 죽였다고! 리베르를!”

바토리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왼팔에서는 새로운 마법이 준비되고 있었다.

아틸라는 태세를 전환했다.

[ 방어 태세 ]

[ 모든 마법과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10% 증가합니다. ]

“흐아아아압!”

증가한 마법 저항력과 무휼의 성력으로 불덩이를 견뎠다.

그러면서 그는 바위처럼 짓쳐드는 불덩이를 파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무휼을 뻗었다.

그그그그그긋……!

붉게 달아오른 무휼의 날에서 빛줄기가 뿜어졌다.

그것이 불덩이의 중심을 파고들었고, 산산이 부쉈다.

그렇게 바토리가 쏘아 낸 화염의 덩어리는 수명을 다한 항성처럼 잿개비가 되어 흩어졌다.

슈시아가 외쳤다.

“또 온다! 아틸라!”

갈라진 잿빛의 틈새로 불화살이 날아왔다.

조금 전 해체한 불덩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마법이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아틸라는 피하지 않았다.

무휼과 용아귀를 뻗어 화살비를 막았다.

퍼펑! 펑! 퍼퍼퍼퍼펑!

날붙이에 부닥친 불화살이 사방으로 뻗쳤다.

허공으로 날아가고, 지면에 꽂히고, 그 와중에 몇 발은 아틸라의 몸에 박혔다.

타오르는 격통에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조금 전 상대했던 리베르의 환영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마력.

아틸라는 깨달았다.

‘그래. 그랬던 거군.’

일리시아 세이나자르.

아니 고위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슈시아가 아닌 바토리를 노린 이유를.

‘놈은 바토리에게 망자의 저주를 걸려 하고 있다.’

목적은 하나.

바토리가 지닌 왼팔의 마력을 갈취하는 것!

“네놈이 감히이이이!”

벼락처럼 외치는 바토리를 보며 아틸라는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실체.

환술 속 망령이 아니다.

파지짓! 파지지지짓……!

마력을 쏘아 내는 바토리의 왼팔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위험하다.

바토리의 폭주는 현자의 돌이 발하는 억제의 마력을 깨뜨릴 수 있다.

안정을 찾은 그녀의 왼팔이 또다시 망가질 것이다.

[ 돌진(突進) ]

아틸라는 난생처음 바토리에게 돌진을 시전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붉은 광채의 마력이 아틸라를 강타했다.

퍼어어엉!

아틸라의 몸이 수십여 미터 뒤로 튕겨 바닥을 굴렀다.

때맞춰 무휼로 방어하지 않았다면 가슴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렸을 무시무시한 공격.

‘미친 할망구……! 뭐가 이렇게 세!’

불평할 틈은 없었다.

쉴 새 없이 마법이 날아왔다.

바토리는 정말로 아틸라를 죽여 버릴 작정으로 마법을 쏘아대는 듯했다.

아틸라는 몸을 굴려 피하고, 무휼을 들어 막고, 몇 번인가의 공격은 몸에 맞았다.

아틸라의 몸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젠장. 아직 까마귀 새끼에게 당한 상처도 회복하지 못했는데.’

[ 치유의 바람 ]

다행인 것은 슈시아의 종족 특성이 얼마간의 체력을 회복시키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정도론 바토리의 정신 나간 공격을 버티기 역부족이었다.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 것 같더냐!”

바토리의 공격은 점점 더 흉포해졌다.

지금의 바토리에겐 영창도 필요 없었다.

아틸라는 이를 악물고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붙잡히기만 해봐라 할망구. 머리털을 모조리 뽑아 주마.”

바토리의 마법에 대항하며 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차츰차츰 거리를 좁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폭주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바토리의 공격은 더욱 거세어졌다.

그래서 아틸라는 고민했다.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잘못되면 역효과가 날 테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대로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해보는 수밖에.’

바토리에게 접근하겠다는 원래의 계획을 포기한 아틸라는 몸을 돌려 펀치에게 달렸다.

주인의 의지를 깨달은 펀치도 위험을 무릅쓰고 마주 달려왔다.

펀치에게 쏘아진 불덩이 하나가 무휼의 움직임에 쪼개졌다.

끼아옹!

펄쩍 뛰어오른 펀치의 몸을 아틸라가 받았다.

녀석의 입안에서 도롱뇽을 꺼냈다.

“꾸에에엑! 수, 숨어 있으래 놓고 왜 자꾸……!”

아틸라는 강인한 의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도롱뇽의 덜미를 쥐었다.

하늘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꾸에에……! 크르……, 크르르…….”

허공을 날던 도롱뇽의 비명이 무겁게 가라앉는가 싶더니.

“크르르르르……!”

손바닥만 하던 도롱뇽의 몸집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순식간에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한 도롱뇽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졌다.

키랴랴랴랴랴랴랴!

칠흑의 불길이 아틸라의 시야를 메웠다.

그것은 폭풍처럼 쏟아지던 바토리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냈다.

바토리의 표정이 변했다.

“너는……!”

피처럼 붉은 입술이 귀 끝까지 찢어졌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바토리의 눈에서 핏물이 흩어졌다.

사르데니야 왕국을 잿더미로 만든 미치광이 드래곤.

죽음의 숨결,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네놈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나다니!”

그녀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력이 솟구쳤다.

그 모습을 본 도롱뇽이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쟨 왜 저렇게 됐어!”

어느새 도롱뇽은 브레스를 뿜어냈을 때의 절반 크기로 줄어 있었다.

게다가 조금씩이지만 계속해서 작아졌다.

‘역시 내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환수, 도롱뇽을 원래의 거대한 모습으로 되돌린 건 주인인 아틸라의 의지.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야만 미…… 아니 주인 놈아! 쟤 왜 저러냐고!”

바토리의 손짓에 바닥이 갈라졌다.

그 사이로 망령들이 솟구쳐 올랐다.

“히익! 저건 또 뭐야!”

그들의 흐릿한 눈이 도롱뇽을 향했다.

일제히 외쳤다.

“사르데니야의 적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벌하라.”

“무기를 들어라.”

“무기가 없는 자는 맨손으로 싸우라.”

바토리의 슬픔과 죄책감이 만들어 낸 망국의 원혼들.

그들이 아틸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건 아틸라에게 다시없을 기회였다.

퍼퍼퍼퍽!

용아귀와 무휼이 망령들을 쪼갰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 학살의 보답 ]

[ 체력을 2% 회복합니다. ]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먹잇감을 눈앞에 둔 늑대처럼 무기를 휘둘렀다.

[ 체력을 2% 회복합니다. ]

[ 체력을 2% 회복…… ]

이상을 감지한 바토리가 망령들을 거뒀다.

그녀의 손에서 강력한 공격 마법이 펼쳐졌다.

이번에도 아틸라는 의지를 발현해 도롱뇽으로 맞섰다.

“빌어먹을 야만 미물 이게 무슨……! 어, 어어……!”

키랴랴랴랴랴랴!

구시렁대던 도롱뇽의 입에서 브레스가 쏘아졌다.

이번에도 브레스는 바토리의 마력을 분쇄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만 버텨라 도롱뇽.’

어차피 도롱뇽으로 바토리를 쓰러뜨릴 생각은 없다.

지금의 아틸라에게 도롱뇽은 창이 아닌 방패.

[ 마법 저항의 오러 ]

[ 모든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5% 상승합니다. ]

방어 태세로 이미 10퍼센트의 마법 저항력을 획득한 상태.

도롱뇽의 오러 덕에 저항 수치는 15퍼센트가 되었다.

그것을 믿고 아틸라는 달렸다.

그 옆을 도롱뇽이 바짝 붙어 날았다.

“어어! 날개가 저절로 움직인다!”

도롱뇽을 노려보는 바토리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녀의 눈동자가 초점을 바꿨다.

멀고 먼 과거를 향했다.

‘리베르!’

광룡의 발톱에 오른팔을 잃은 리베르.

최후의 순간까지 망국의 공주를 지키려 했던 애송이 견습기사.

‘끄아아아아……!’

심장이 뜯기던 순간의 절규.

공주를 돌아보는 핏발 선 눈동자.

‘바토…… 리…….’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던 바토리는 자신의 가슴속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녀의 심장을 둘러쌌던 마력이 갈 곳을 잃었다.

두서없이 흐르던 방황은 어느 한 곳에서 만나 부닥치고, 융합했다.

그것은 새로운 염원으로 재탄생하여 평소라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닿았다.

그리고 불러냈다.

칠흑으로 불타는 하늘을 가르며 강림한 불가해의 존재를.

그것은.

말 그대로 춤추듯 하늘에서 내려왔다.

‘망국의 공주. 바토리 에르제베트.’

‘망국의 기사. 리베르 파테르.’

존재가 말했다.

‘나는 달의 신, 오르피나.’

세계는 멈춰 있었다.

불타는 하늘도.

폭풍 같던 구름도.

리베르의 심장을 깨부수려던 광룡의 발톱마저도.

‘나는 숲의 신, 오르피나.’

풀 내음이 났다.

눈앞의 세상과 겹쳐 보이는 또 다른 숲속 세상이 있었다.

짐승들이 뛰어다녔다.

‘나는 사냥의 신, 오르피나.’

짐승의 등줄기에 화살이 꽂혔다.

‘나는 순결의 신, 오르피나.’

짐승의 털빛이 변했다.

숲도 제 빛을 바꿨다.

눈처럼 맑은 순백의 빛으로.

‘망국의 공주야.’

오르피나.

사르데니야 왕국의 신이시여.

‘너는 왜 울고 있는 것이냐.’

당신은 어찌하여.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까.

‘너의 의지는 무엇이냐.’

타락의 검은 불꽃이 왕국을 불태웠습니다.

왕국의 주인을 살해했습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당신의 기사단이 갈가리 분해됐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잿개비로 소멸했습니다.

‘너는 힘을 원하느냐.’

힘을 원합니다.

저 사악한 광룡을 쓰러뜨리고.

왕국의 주인을 되살리고.

왕국의 기사단을 재건하고.

왕국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할 불가상성의 힘을 원합니다.

‘너는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원하는 것 모두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전 모든 것을 원합니다.

‘그것은 불가한 일이다.’

가능하게 하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 얼마나 지독한 어려움을 견뎌야 할지라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특별한 존재. 너희가 힘을 얻게 된들 결코 멸할 수 없으리라.’

오르피나의 몸에서 광채가 퍼져 나왔다.

그것은 리베르의 심장을 수복했고, 광룡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그의 심장은 회복되었다.’

‘달의 마력으로 수복된 심장은 그 안에서 더욱 단단하게 여물 것이다.’

더욱.

단단해진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의 새로운 이름은.’

까마귀 군주.

고오오오오.

리베르의 잘린 오른팔이 검은 깃털로 화해 흩어졌다.

그러고는 몸통으로 돌아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다음은 네 차례구나.’

오르피나의 마력이 수십의 가닥이 되어 뻗어 나왔다.

그것이 바토리의 몸을 감쌌다.

‘망국의 공주. 바토리 에르제베트.’

‘너 또한 그와 같은 초월자의 삶을 살게 되리라.’

‘너의 새로운 이름은.’

핏빛의 마녀.

‘둘은 하나가 될 것이다.’

‘하나가 된 둘은 불멸의 삶을 얻게 될 것이다.’

전 불멸의 삶을 원치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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