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75화 (75/425)

075. 저주의 발키리 (2)

[ 화(火)속성이 추가됩니다. ]

숫돌과 반지의 사용 효과가 용아귀에 덧씌워졌다.

탄환처럼 날아드는 섬광.

그것을 향해 용아귀를 던졌다.

화르르륵!

빛줄기가 용아귀와 부닥치며 붉은 광채를 뿜었다.

그제야 보였다.

형태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섬광의 정체.

‘마력 화살.’

아틸라는 처음부터 상대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다.

바람을 타는 주력.

자로 잰 듯 정교한 사격.

용아귀 째 어깨를 뒤흔들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타력(打力).

이 모든 조건에 부합되는 자는 한 명밖에 없다.

‘일리시아 세이나자르.’

일명, 저주의 발키리.

파아아아앙!

손끝을 벗어난 용아귀가 대포알처럼 날아갔다.

저 거대한 도끼를 집어던질 줄은 몰랐는지 상대는 제법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놀랄 일은 아직 남아있었다.

[ 공기 저항이 감소합니다. ]

숫돌의 사용 효과 중 하나.

그것의 위력이 실로 엄청났다.

‘미, 미친! 이거 뭐야!’

아틸라마저 경악할 만큼 용아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다.

콰아앙!

우레 같은 소음을 울리며 도끼날이 나무에 꽂혔다.

그 아래 있었다.

간발의 차로 도끼를 회피한 날렵한 그림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어붙은 모습이.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군.’

용아귀를 던진 것과 상관없이 아틸라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벌어지기만 했던 둘의 간격을 빠르게 좁혔다.

엘프, 일리시아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아틸라는 후속타의 준비를 마쳤다.

‘도망치게 둘까보냐.’

두 자루 손도끼가 아틸라의 손을 거쳐 날아갔다.

그것은 상대의 도주 방향을 크게 제한했고, 그렇게 일리시아는 다시 한번 주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쳤다.

간격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일리시아는 더 이상 도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손안의 활을 들어 아틸라에게 겨눴다.

“접근하면 유리할 거라 생각했나? 인간.”

타앙! 마력 화살이 쏘아졌다.

기다렸다는 듯 아틸라는 무휼을 뽑았고.

무휼은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 대마법병기 ]

쇄도하던 화살이 산산이 부서졌다.

표정 없던 일리시아의 얼굴에 처음으로 어떤 감정이 떠올랐다.

[ 돌진(突進) ]

파앙! 팡!

섬광 같은 돌진에 이은 두 번의 타격음.

복부와 등에서 뜨거운 감각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 일리시아가 반격을 떠올렸을 때 그녀의 몸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서늘한 검날이 목에 드리워졌다.

전사의 송곳니가 사납게 빛났다.

“그래. 유리할 거라 생각했지.”

* * *

일리시아 세이나자르.

먼 옛날 바토리 에르제베트와 함께 파우스트에 대항해 싸웠던 발키리의 수장.

“네가 아직 살아 있을 줄은 몰랐구나. 일리시아.”

“……바토리 에르제베트.”

바토리를 향한 일리시아의 시선엔 지독한 분노가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를 배신하고 떠난 네가 무슨 까닭으로 날 찾은 것인가.”

“아직 그리 생각하는 것이더냐.”

씁쓸한 미소를 머금던 바토리가 물었다.

“그 몸은 어찌 된 것이냐.”

일리시아가 움찔했지만 잠시였다.

키득거리던 그녀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이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 몸이 어찌 된 것이냐고? 그것이 정녕 네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물음이란 말인가!”

슈시아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화를 통해 유추하자면, 저 일리시아라는 엘프는 아주 먼 옛날의 발키리다.

‘그러나.’

인간보다 오래 살 뿐, 엘프는 불멸자가 아니다.

반신의 영역에 접어든 관조자나 정령왕, 그리고 드래곤 등의 존재가 아니라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없다.

주우욱!

일리시아가 보란 듯이 자신의 옷깃을 찢었다.

드러난 그녀의 속살은 시커먼 멍 자국으로 가득했다.

바토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망자(亡者)의 저주.”

슈시아 역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파우스트의 흑마술사들이 사용하는 사악한 주문이자.

그들이 추종하는 고위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권능 중 하나.

“네가 벌인 무책임한 행동의 결과를 확인하니 어떤가! 바토리 에르제베트!”

“무책임한 행동이라 했느냐.”

먼 옛날 바토리는 파우스트를 괴멸 직전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마무리를 짓지 않고 떠났다.

그때부터였다.

파우스트가 발키리를 비롯한 엘프 연합군에게 반격을 시작한 것은.

“애초부터 내 힘이 아니었다면, 너희는 파우스트에게 전멸했을 것이다.”

일리시아 역시 그 말이 맞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답 없이 이를 악물었다.

핏빛의 마녀 바토리 에르제베트.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 다름없이 차가웠다.

그런데 그것이 변했다.

“미안하구나. 일리시아.”

“……뭐라고?”

“생자도 망자도 아닌, 그렇다고 육신도 영혼도 아닌 너의 모습. 넌 그런 미명(未明)의 존재가 되어 세월 속을 살아가고, 또 죽어 가고 있구나.”

바토리의 왼팔에 광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일리시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용서하거라.”

달빛처럼 따스한 기운이 일리시아의 몸을 감쌌다.

그것이 멍 자국을 분해하고, 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바토리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역시 그런 것이로군.”

파지지지지짓……!

바토리의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갔다.

그녀의 왼팔이 새빨갛게 타올랐다.

불현듯 허공을 휘저은 팔이 일리시아의 등 뒤를 뚫고 솟아오른 촉수를 순식간에 불태웠다.

“스스로의 몸을 제물로 삼았던 것이냐.”

일리시아가 헤벌쭉 입을 벌렸다.

톱날 같은 잇새로 소름 끼치는 괴성이 뿜어졌다.

“바토리 에르제베트으으으으!”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나무와, 잎새와, 바위가 흔들리고 지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슈시아가 외쳤다.

“어, 어떻게 된 건가!”

아틸라가 용아귀를 그었다.

바토리도 왼팔의 마력을 분출했다.

그것들은 일리시아의 몸을 가르고 불태워 새까만 잿개비로 만들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럼에도 일리시아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재로 변한 육체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산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녀와 한 몸이 되어 웃고 있었다.

“이곳 전체가 사악한 결계였던 것이더냐.”

바토리의 얼굴이 아틸라에게 돌아갔다.

“이번에도 넌 알고 있었던 게냐.”

“그래.”

“너란 사내는 정말…….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틸라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미리 사실을 전했다면, 바토리가 일리시아에게 사과할 기회는 없었을 테니까.

‘그 차이는 작지 않다.’

바토리가 말했듯 일리시아는 망자의 저주에 걸려 있다.

그리고.

‘발키리의 힘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파우스트의 입장에서 일리시아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파우스트는 일리시아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일리시아는 대륙의 모든 엘프를 통틀어 발키리의 특성을 가장 빼어나게 타고난 자.

그래서 망자의 저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었다.

‘산 전체를 결계로 만들었지.’

망자의 저주는 산 자를 죽은 자로 만듦과 동시에 생전의 마력을 앗아간다.

수많은 발키리들이 그렇게 목숨을 잃고, 힘을 빼앗겼다.

‘구심점을 잃은 나머지 엘프 역시 서서히 힘을 잃어 갔고.’

결국 발키리의 마력은 엘프들 사이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발키리의 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발키리들의 위대했던 수장, 일리시아 세이나자르.

그녀가 자신의 육체에 발키리의 힘을 봉인했다.

파우스트가 시전한 망자의 저주는 일리시아에게서 생기(生氣)를 앗아갔지만.

그것을 위해 역으로 메피스토펠레스의 마력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모든 발키리의 힘을 빼앗기지는 않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의 의지를 관철하겠다.’

그렇게 일리시아는 고위악마의 마력과 자신의 마력을 융합시키는 데 성공했고.

바토리와 파우스트마저 감지하지 못할 거대한 ‘환술 결계’를 생성해냈다.

먼 훗날, 자신을 쓰러뜨리고 새로운 발키리의 시조가 될 존재를 기다리며.

그러나 그것엔 끔찍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시전자의 고결한 영혼이 고위악마의 제물로 바쳐진다는 것.’

또한 고위악마의 사악한 마력을 견디지 못한 육체는 환술에 동화돼 버렸다.

일행이 서 있는 산.

메피스토펠레스의 마력을 얻은 일리시아가 창조해낸 환술이자.

‘일리시아, 그 자체.’

어느새 하늘은 먹빛으로 변했다.

달도 별도 모습을 감췄다.

새까만 숲의 세상 속에서 망령들이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끼에에……. 끼에에에에…….

“순순히 힘을 넘길 생각은 아닌 것 같군.”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빠져 있어라, 할망구.”

“뭐라?”

“네가 할 일은 따로 있지 않나.”

그 말에 무언갈 떠올린 바토리가 입가를 올렸다.

아틸라는 용아귀를 고쳐 쥐었다.

말끔히 수리된 용아귀의 그립감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

‘숫돌 사용 효과도 아직 남아있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간다. 경험치 군단.”

아틸라의 신형이 망령들에게 돌진했다.

그 뒤를 펀치와 슈시아가 그림자처럼 쫓았다.

동료들의 몸에 보호막을 두른 바토리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디 한번, 찾아보자꾸나.’

두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아틸라는 망령들의 몸을 열심히 조각내고 있었다.

‘긴 세월을 버티는 동안 사악한 마기가 잔뜩 침범했군.’

땅에서, 나무에서, 바위의 틈에서, 심지어 허공에서도 생성되는 망령의 그림자.

그들은 하나같이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리시아 세이나자르의 동료들.’

먼 옛날 파우스트를 대항해 싸웠던 전장의 발키리들이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말 한마디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지만.

키에에에엑……!

또 한 마리 망령의 목이 날아갔다.

그러나 녀석들은 끊임없이 생성됐고,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아틸라! 이대로는……!”

“잠자코 버텨.”

위기감을 느낀 슈시아와 달리 아틸라는 침착했다.

그는 망령의 늪을 빠져나갈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바토리의 신호가 올 때까지.”

이곳은 환술로 만들어진 세상.

이 모든 것은 허상이다.

단 하나, 환술 생성의 주체인 일리시아 세이나자르만 제외하고.

그리고 환술을 깨뜨리려면.

‘본체를 찾아내야지.’

그 역할을 바토리가 맡았다.

바토리는 일리시아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이 아틸라가 최초에 모습을 드러낸 일리시아를 뒤쫓아 사로잡고, 바토리와 대면시킨 또 다른 이유였다.

‘원작에선 샤를과 제롬의 역할이었지만.’

아틸라는 자신했다.

샤를과 제롬이 가능했던 일을 자신과 바토리가 해내지 못할 리 없다.

“하아아압!”

망령들은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용아귀도 멈추지 않는 춤을 추었다.

[ 스킬, 학살의 보답이 발동되었습니다. ]

[ 체력을 2% 회복합니다. ]

[ 체력을 2% 회복…… ]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번쩍, 눈을 뜬 바토리의 팔이 어딘가로 겨눠졌다.

“거기 숨어 있던 것이더냐. 일리시아.”

붉은 마력의 실타래가 쏘아졌다.

그것은 허공에 떠오른 무형의 장막과 부딪치며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고.

그 안에서.

카아아아아아!

눈구멍과 입구멍만이 뚫린 일리시아의 거대한 얼굴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아틸라! 저건!”

“피하지 말고 뛰어들어!”

“뭐, 뭐라고?”

해일처럼 쇄도한 일리시아의 안면이 일행을 집어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