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68화 (68/425)

068. 숨겨진 퀘스트 (1)

마귀(魔鬼).

요사스러운 잡귀를 통칭하는 말로.

패영전에선 악마의 하위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하위종이라 하여 모든 마귀가 악마보다 약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상급 마귀인 크라켄은 웬만한 하급 악마는 아작아작 씹어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만티코어 역시 마찬가지.

“드라콘…… 이스…… 메니오스……?”

비늘을 부풀리는 도롱뇽을 본 만티코어의 얼굴이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벼락처럼 소리쳤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으으!”

쿵쿵쿵쿵! 만티코어가 달려왔다.

“널 잡아먹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으으!”

그 모습을 보며 도롱뇽이 헛웃음을 뱉었다.

악마도 아닌 고작 마귀 녀석이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님을 보고도 납작 엎드리기는커녕……

“어? 어어!”

순식간에 가까워진 만티코어를 보며 도롱뇽은 현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아니다.

“도롱뇽 새끼. 비켜라.”

용아귀가 만티코어의 발톱과 부딪혔다.

아틸라의 발등에 걷어차인 도롱뇽은 펀치에게로 날아갔고.

“꾸에에엑……!”

날아드는 도롱뇽을 향해 펀치가 쩌억 입을 벌렸다.

도롱뇽이 혼비백산해 소리쳤다.

“아, 안 돼! 곰탱이! 삼키면 안…….”

그것을 무시하며 펀치는 꿀꺽 도롱뇽을 삼켰다.

그러는 사이 만티코어의 공격을 받아 낸 아틸라는 그 엄청난 괴력에 발목까지 땅속으로 삼켜진 상태.

용아귀가 절그럭대는 소리를 냈다.

‘이거 진짜 머지않아 못쓰게 되겠는데.’

용아귀를 살피던 시선이 만티코어에게 돌아갔다.

‘녀석을 잡으려면 이게 필요하겠지.’

아틸라는 품에서 손톱만 한 검은 결정을 꺼내 입에 넣었다.

삼키지는 않은 채로.

그때 메시지가 올라왔다.

[ 소환마귀 시나리오가 이어집니다. ]

‘오.’

아틸라는 반색했다.

기왕 쓰러뜨려야 할 녀석이라면 시나리오인 편이 낫다.

그래야 임무가 생성될 거고, 달콤한 보상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 여섯 번째 임무 ]

[ 소환율 60퍼센트의 ‘만티코어’를 퇴치하십시오. ]

[ 임무 완료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그렇지!’

행운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크리스또프 때와 마찬가지로, 만티코어 녀석은 완전한 소환체가 아니었던 것.

‘파우스트 놈들. 최소한의 제어를 위해 불완전 소환을 택했군.’

파우스트는 짧은 동안 인간 세계에 너무 많은 개입을 했다.

그래서 놈들은 만티코어의 원격 제어를 시도했고, 그 한계치가 60퍼센트인 것이겠지.

그 증거로 만티코어는 두 장이 아닌 한 장의 날개만을 펄럭이고 있다.

그런데.

[ 만티코어의 소환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합니다. ]

‘뭐?’

아무래도 만티코어가 타깃과 조우했다는 것을 감지한 파우스트가 제어를 해제한 모양.

‘서둘러 잡아야겠군.’

그때였다.

[ 소환율이 높아질수록 보상 등급도 높아집니다. ]

[ 이번 임무엔 숨겨진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

* * *

도롱뇽은 별빛 가득한 우주에 두둥실 떠 있었다.

“빌어먹을 곰탱이 새끼.”

만티코어를 보자마자 온몸의 비늘이 곤두섰다.

아틸라에게서 벗어날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 삼키지 말라니까 진짜. 저번에도 그러더니 자꾸 뒤통수를 쳐 곰탱이 새끼가.”

도롱뇽은 우주의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수차례 이곳을 들락대며 출입구로 의심되는 곳들을 파악해 두었다.

“야만 미물에게서 탈출할 때 데려갈까 했더니만, 아무래도 안 되겠어.”

파닥파닥 팔다리를 움직이며 투덜댔다.

“못된 놈. 말로만 친구래.”

* * *

[ 도발의 외침 ]

슈시아가 달려드는 걸 확인한 아틸라는 도발의 외침으로 만티코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슈시아를 향하던 녀석의 꼬리가 방향을 바꿔 아틸라에게 쏘아졌다.

“네놈!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어디에 숨겼나!”

만티코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슈시아를 공격하려던 본능과 도발의 외침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

‘또, 또 저 이능이다!’

슈시아의 눈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자신을 공격하려던 만티코어의 꼬리가 급선회해 아틸라로 목표를 바꿨다.

슈시아는 이전에도 저런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우두머리 서리곰.’

녀석도 지금의 만티코어와 같은 행동을 했었다.

‘분명 무언가 있다.’

슈시아는 아틸라가 자신만의 이능으로 꼬리를 끌어당긴 거라 확신했다.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만티코어의 공격을 쉴 새 없이 방어하던 아틸라가 기다렸다는 듯 꼬리를 회피했으니까.

‘정말 인간이 맞는 건가. 타리엘을 쓰러뜨렸을 때 사용했던 기술도 그렇고.’

돌진.

그것은 타리엘과 슈시아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던 모든 엘프를 놀라게 했다.

서리왕 아이리스마저 벌떡 일어나 쩌억 입을 벌렸으니까.

슈시아는 아이리스의 그런 표정을 처음 보았다.

‘엄청나긴 했지. 그 이능은.’

타리엘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아틸라에게 어떤 선물을 주었다.

그 모습에 서리나무 엘프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무적자의 증표.’

무적자의 증표가 양도됐다.

바야흐로 타리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무적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하는 것.

그리고 그 새로운 무적자가.

저 엄청난 마귀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고 있다.

파카카캉!

방패처럼 세워진 용아귀가 만티코어의 몸통 박치기를 막았다.

주르르 몸이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아틸라는 발끝에 힘을 주었다.

“하아압!”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틸라의 하체가 만티코어의 힘을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만티코어의 양쪽 옆구리를 타격하던 슈시아와 펀치가 반색했다.

[ 만티코어의 소환율이 80퍼센트에 도달합니다. ]

소환율이 높아질수록 녀석의 몸은 점점 더 거대해졌다.

그때마다 얼마간의 체력이 회복됐고, 힘과 마력도 강해졌다.

화르르르……!

녀석이 지옥불을 뿜기 시작했다.

채찍처럼 날아드는 꼬리 끝엔 치명적인 독물이 생성됐다.

아틸라는 태세를 전환했다.

[ 방어 태세 ]

[ 방어력이 20% 증가하며, 공격력은 20% 감소합니다. ]

[ 모든 마법과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10% 증가합니다. ]

용아귀를 오른손으로 파지하고 왼손에는 무휼을 쥐었다.

[ 보조무기 숙련도가 20% 증가합니다. ]

만티코어의 소환율이 80퍼센트가 될 때까지 검투 태세로 버텼다.

물론 불정령의 반지와 슈시아의 치유의 바람, 바토리의 보호막이 크게 한몫한 결과.

‘저게 웬일로 말을 잘 듣네.’

바토리는 시무룩한 얼굴로 구석에서 보호막 생성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말을 안 들으면 머리털을 모조리 뽑아 버리겠다고 한 게 효과가 있는 듯했다.

‘역시 노망이 난 게 틀림없어. 쓸데없이 외모에 신경 쓰고 말이야. 할망구.’

게다가 아틸라에겐 또 하나의 아이템이 있었다.

타리엘이 넘겨준 무적자의 증표.

이것엔 숨겨진 이름이 존재한다.

‘축성(築聖)의 인장.’

이 인장을 착용한 자는 성스러운 힘을 지닌 무기로 공격을 성공할 때마다 일정량의 성력을 몸 안에 쌓을 수 있다.

그렇게 쌓은 성력은 여러 형태로 변환해 사용할 수 있는데.

‘타리엘은 언월도에 담아 사용했었지.’

아틸라에게 단 한 번 사용했던 강력한 일격.

아틸라는 그 가공할 위력을 기억했다.

용아귀로 막아 내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 탓에 용아귀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고.’

거기에 더해 만티코어라는 괴물을 상대하며 용아귀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젠장. 버텨 줄 수 있으려나.’

그러는 사이 만티코어의 몸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 만티코어의 소환율이 90퍼센트에 도달합니다. ]

‘좋아. 거의 다 왔다.’

아틸라는 만티코어가 완전 소환체가 될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다.

이유는.

[ 소환율이 높아질수록 보상 등급도 높아집니다. ]

‘기왕이면 좋은 보상을 받아야지.’

물론 극도로 위험한 일이다.

만티코어는 크라켄에 버금가는 괴물.

혼자였다면, 그리고 지금 입안에 물고 있는 어떤 ‘특별한 아이템’의 존재가 없었다면 결코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완전 소환체는 불완전하게 소환되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90퍼센트와 100퍼센트는 단순히 10퍼센트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

‘두 배 이상 강력해지겠지.’

아틸라는 펀치에게 거대화 스킬을 시전했다.

놈이 완전체가 되기 전에 최대한 체력을 빼놓아야 한다.

“아틸라! 이거 위험한 거 같다!”

무언갈 느낀 슈시아가 소리쳤다.

그 말대로였다.

만티코어가 완전 소환체가 되려 하고 있었다.

‘과연 엄청난 마기로군.’

지금까진 동료들의 힘을 받으며 어떻게든 버텨 냈지만.

100퍼센트에 도달하면 절대 쓰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틸라가 이 무모한 도전을 이어 가는 이유는 그다음에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 이번 임무엔 숨겨진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

숨겨진 퀘스트.

그것이 아틸라의 머리를 회전하게 만들었다.

신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악마.

악마가 되지 못한 마귀.

마귀 중 가장 악마에 가까운 존재, 만티코어.

그리고.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미치광이 드래곤.

‘어쩌면 숨겨진 퀘스트란 건 바로.’

자신만만하게 만티코어를 상대하려던 도롱뇽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만티코어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관계를 상기하게 만들었다.

[ 만티코어의 소환율이 100퍼센트에 도달합니다. ]

[ 완전 소환체로 거듭납니다. ]

우렁찬 포효가 산을 울렸다.

거대한 두 날개가 하늘을 가리며 펼쳐졌다.

“이, 이걸…… 쓰러뜨려야 한다고……?”

슈시아가 입술을 떨었다.

지금까진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지만.

‘이건 쓰러뜨릴 수 없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아틸라의 얼굴이 너무도 침착해 보인다는 것.

때마침 거대화가 풀린 펀치가 아틸라에게 달려갔다.

“펀치!”

아틸라의 부름에 펀치가 풀쩍 뛰어올랐고.

펀치의 입안으로 아틸라의 손이 들어갔다.

“여, 역시! 찾았어! 내가 출구를 찾았……!”

“찾긴 뭘 찾아.”

헛웃음을 내뱉으며 아틸라가 도롱뇽을 꺼내들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던 도롱뇽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런 시발. 빠져나온 줄 알았더니. 크흑……!”

만티코어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완전체가 된 녀석이 지옥불을 내뿜으려 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한 손엔 도롱뇽, 다른 한 손엔 무휼을 쥔 채 만티코어의 입안으로 뛰어들었다.

“야, 야만전사야!”

바토리가 놀라 소리쳤다.

완전 소환체가 된 만티코어의 타액은 강력한 독성 물질.

그런 만티코어의 입안에서 인간은 결코 생존할 수 없다.

“내, 내가 어떻게든……!”

바토리는 아틸라의 명령을 어기고 강력한 공격 마법을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대머리가 되고 싶냐는 아틸라의 외침에 돌처럼 굳어졌다.

치칫……! 치치치칫……!

독액을 뒤집어쓴 아틸라의 몸에서 증기가 피어올랐다.

아틸라는 신경 쓰지 않고 만티코어의 입천장에 무휼을 꽂았다.

그러고는 전투가 시작됐을 때부터 입안에 넣고 있던 검은 결정을 빠드득, 씹어삼켰다.

[ 해독 가능한 레벨의 독을 완전히 해독하고, 이후 10초간 같은 레벨의 독에 면역 상태가 됩니다. ]

그랬다.

아틸라는 만티코어의 독액을 견딜 수 있는 아이템을 갖고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 우두머리 서리곰의 쓸개 ]

‘이렇게 바로 써먹게 될 줄이야.’

[ 씹어 삼키면 더욱 효과가 빠릅니다. ]

독액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토리와 슈시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아틸라는 근육의 힘을 개방시켰다.

한 팔과 두 다리로 만티코어의 치악력을 버텼다.

그르르르르…….

만티코어의 목구멍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틸라가 버텨 내자 지옥불을 쏟아 불태우려는 것이다.

“어이. 도롱뇽.”

“뭐, 뭐야.”

아틸라가 히죽 웃었다.

만티코어의 목 안으로 도롱뇽을 집어던졌다.

“꾸에에에에엑!”

녀석의 비명을 들으며 시전했다.

도롱뇽, 아니 모든 드래곤 중에서도 오직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만이 지닐 수 있는 위대한 권능을.

[ 포식(捕食) ]

“배 터지게 먹고 와라!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콰르르르르륵!

소름 끼치는 굉음이 만티코어의 목 안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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