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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67화 (67/425)

067. 연금술사 (3)

“제대로 찾았군.”

아틸라가 히죽 웃으며 달려들었다.

슈시아도 아틸라와 보조를 맞추며 감염자들을 사냥했다.

서리나무숲에 머무르는 동안 그녀는 아틸라에게 검술 훈련을 받았다.

‘역시 소질이 좋군.’

슈시아는 패영전 세계관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엘프.

원래는 영웅 등급의 엘프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타리엘 때문에 밀려났지.’

대신 그녀는 영웅 못지않은 능력치를 지닌 발키리로 거듭나게 된다.

빼어난 잠재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

‘슈시아는 샤를의 동료가 되는 캐릭터는 아니니 파우스트 일이 마무리되면 데리고 다닐까. 치유의 바람 버프도 쓸 만하고.’

엘프는 숲과 동물을 사랑하는 종족.

펀치에게도 안정감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고민해 봐야겠군.’

슈시아가 어렵게 복귀한 고향을 다시 떠날지도 미지수였으니까.

감염자 처리는 머지않아 끝났다.

“뭐, 뭐야! 너희들은 누구냐!”

쌍꺼풀진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노움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아틸라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이. 파울루.”

“히끅! 너, 넌 뭐냐!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아틸라는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했다.

산 아래 마을에서 다크웜이 발생했고, 그것에 흥미를 느낀 파울루가 무언갈 만들었다.

아마도 저 약병 안에 담긴 것.

“대답해! 너 뭐냐고!”

“손에 든 게 뭐냐.”

“뭐, 뭐! 아무것도 없는데!”

파울루는 약병을 등 뒤로 숨겼지만 슈시아가 ‘바람 걷기’로 달려가 가로챘다.

“뭐야! 너 엘프냐!”

“그렇다. 숲의 난쟁이 노움아.”

“빌어먹을! 더러운 엘프 따위가 나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슈시아의 얼굴이 구겨졌다.

엘프와 노움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 보자꾸나.”

바토리는 슈시아에게 약병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무언가 주문 같은 것을 읊조렸다.

“흐응. 재밌는 걸 만들었구나. 숲의 난쟁이.”

흥미로운 미소를 머금는 바토리에게 아틸라가 물었다.

“뭔데.”

“다크웜 잡는 약이다. 감염자의 체내에 들어가면 다크웜을 추적해 수프처럼 녹여내겠지.”

“그랬던 거군.”

파울루는 마을로 내려가 약을 시험했던 거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감염자들이 파울루를 추격했고.

‘마침 그 모습을 본 자는 어느 자그만 꼬마가 감염자들을 이끌고 다닌다고 착각했겠지.’

그렇게 약을 뿌리며 도주하던 녀석은 이곳에서 최후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 증거로 나무집 근처는 요란한 약품들이 마법진처럼 펼쳐져 있었다.

“야! 너희들 뭐냐니까!”

“연금술사 파울루. 네 도움이 필요하다.”

예상대로 파울루는 단칼에 거절했다.

“감염된 인간 몇 죽여줬다고 도와줄 거라 기대했나? 천만의 말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었어!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지!”

“약은 성공했나.”

“물론이지!”

“그래서 원래대로 돌아온 인간은 있고?”

대답이 없는걸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긴말할 것 없이 아틸라는 리베르의 구슬을 꺼내들었다.

파울루가 눈을 희번덕대며 달려왔다.

“헉헉! 이게 뭐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데!”

파울루는 꿀꺽꿀꺽 침을 삼키며 구슬에 손을 뻗었다.

그런 파울루를 놀리듯 아틸라가 구슬을 품에 넣었다.

“아……. 아아…….”

초롱초롱하던 파울루의 눈이 시체처럼 흐려졌다.

“연금술사답게 등가교환, 어때.”

“등가교환? 아까 말했듯 감염된 인간 처리는 나 혼자서도.”

“구슬을 연구하게 해 주지.”

파울루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뭐, 뭔데. 무슨 도움이 필요한 건데.”

“뭘 좀 만들어 줬으면 한다.”

“그러니까 뭘!”

“뭐긴.”

노움의 눈동자를 내려 보며 아틸라가 웃었다.

“현자(賢者)의 돌.”

* * *

발 디딜 틈 없이 너저분한 바닥.

탁자 위의 수많은 약병.

보글보글 끓는 액체.

부연 공기.

파울루의 연구실 풍경이었다.

“냄새가 심하구나.”

“윽. 토할 것 같다.”

바토리와 슈시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천장마저 낮아 음침한 동굴에라도 들어온 기분.

그래서 아틸라는 천장을 통째로 뜯어내 일행에게 쾌적함을 선사했다.

“이제 좀 낫군.”

파울루는 구슬을 만지작대느라 그런 것엔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현자의 돌 연구에 관한 문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음……. 현자의 돌. 현자의 돌이라……. 연금술사들의 오랜 꿈이지. 그러나 그걸 만들어 낸 이는 아무도 없었어.”

“네가 만들게 될 거다.”

“그러면 좋겠지만…….”

파울루는 의기소침해진 모습이었다.

다름 아닌 등가교환의 법칙 때문.

아틸라에게 현자의 돌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자신 역시 구슬을 연구할 수 없다.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는데…….’

파울루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상이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아무도 만들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

탁자 위의 종이를 집은 아틸라가 무언갈 적기 시작했다.

그것을 건네받은 파울루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뭐, 뭐야.”

거기엔 현자의 돌 제작에 필요한 각종 재료와, 배합 순서, 비율 등이 소상히 적혀 있었다.

최고의 연금술사라 자부하는 자신이 봐도 그럴듯한 배합식.

“너, 너너너 연금술사냐?”

“아니.”

“그렇데 어떻게!”

“내가 연금술사면 굳이 널 찾아왔겠냐. 잔말 말고 만들기나 해.”

파울루는 다시금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 봤다.

대부분의 재료는 가지고 있거나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

하지만.

“생명의 보석과……, 파멸한 신의 조각?”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명의 보석은 서리나무 엘프의 보물.

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순간 파울루의 손 위에 무언가가 놓였다.

“뭔데 이게.”

“생명의 보석.”

멍하니 보석을 내려 보던 파울루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히끅! 뭐, 뭐야! 어떻게 이걸!”

“이젠 만들 수 있겠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보석과 아틸라를 번갈아 보던 파울루가 소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직이다. 파멸한 신의 조각. 난 이게 뭔지 모르겠어.”

“그거라면 네가 갖고 있잖아.”

“뭐?”

“네 왼손 위에.”

파울루는 고개를 내렸다.

오른손엔 조금 전 건네받은 생명의 보석이 빛나고 있었고.

왼손엔.

“이, 이거였다고?”

“그래.”

신묘한 마력을 내뿜는 검은 구슬.

“그게 바로 파멸의 신 ‘오르피나’의 조각이다.”

* * *

보름달은 높고 밝았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아틸라와 바토리는 마주 앉아 있었다.

“아늑하니 좋구나.”

비좁은 파울루의 집에선 잠을 잘 수 없어 둘은 야영을 하기로 했다.

내기에 진 대가로 야영 준비를 도맡아 한 슈시아는 감염자를 섬멸했다는 소식을 쟝에게 전하기 위해 산을 내려갔다.

‘내려간 김에 전쟁 소식도 알아보겠다.’

그러려면 며칠은 지나야 돌아올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파울루의 연구는 더 오래 걸릴 테니.

“야만전사야.”

부르는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

“왜.”

“네 정체는 무엇이더냐.”

대답 없는 아틸라에게 바토리가 다시 물었다.

“무엇이길래 오르피나의 일마저 알고 있는 것이더냐.”

“오르피나는 누구라도 알고 있지.”

“그런 말이 아니지 않느냐.”

파멸의 신, 오르피나.

그녀에게 벌어진 일을 아는 자는 많지 않다.

그것이 인간이라면 더더욱.

“인간 중에 그 일을 아는 자는 모두 죽었다.”

“네가 살아 있잖아. 할망구.”

“……그렇구나. 난 이제 인간이 되었으니.”

오르피나.

그녀가 처음부터 파멸의 신은 아니었다.

바토리는 머리 위의 달을 물끄러미 올려보았다.

“달의 신, 오르피나.”

속삭이는 붉은 입술이 또 다른 말들을 흘려냈다.

“숲의 신, 오르피나.”

“사냥의 신, 오르피나.”

“순결의 신, 오르피나.”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파문처럼 흔들렸다.

“파멸의 신, 오르피나.”

“죄책감을 갖고 있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듯한 아틸라의 물음에 바토리는 물끄러미 그를 마주 봤다.

“죄책감이라.”

불볕을 머금은 입술이 타는 듯 위를 향했다.

“실은, 완전히 잊고 살았느니라.”

뒤이은 속삭임은 입안에 머물렀다.

“……인간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 * *

“할리는 참으로 많은 일을 저질렀군.”

“덕분에 바토리의 행방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전사 아틸라는 연금술사를 만나 무얼 하려는 것인가.”

“바토리의 치유.”

“어불성설이다. 연금술 따위로 그 강대한 마력을 수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다.”

“할리와 노이어가 소멸한 것처럼.”

“그는 서리나무 엘프의 숲도 찾았다.”

“짐작되는 이유는.”

잠시 정적.

“생명의 보석.”

“엘프의 신, 에르윈의 성물.”

“그는 생명의 보석을 얻었다. 그 후 연금술사를 찾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그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막아야 한다.”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그걸 시험해 볼 때가 온 것 같군.”

* * *

며칠 후.

“운이 좋았다. 값싸고 질 좋은 채소를 판매하는 보따리장수를 만났거든.”

부푼 등짐을 지고 나타난 슈시아는 흡족한 얼굴이었다.

짐을 내려놓은 그녀의 입에서 곧바로 전쟁 소식이 전해졌다.

“제롬이 제법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제롬은 무사히 샤를군에 합류했다.

그리고 마귀들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샤를군은 브뤼노 백작령을 직접 타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잘 가르쳐 두었느니라.”

바토리의 말을 무시하듯 아틸라가 물었다.

“발루아의 움직임은?”

“발루아 왕국에선 아인하르트에 지원을 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내분이라도 일어난 건가.”

“그래. 대영주들의 이권다툼이 한창이라 하더군.”

‘아스투리아 녀석들. 사정을 알고 있던 건가.’

원작에서 발루아가 내전에 빠지는 시기는 지금보다 한참 뒤.

그러나 아틸라의 등장과 샤를의 달라진 행보, 관조자의 출현은 역사의 많은 것을 바꿨다.

그렇다 해도.

‘샤를은 결국 왕이 될 거다.’

북쪽 제국을 제외한 나머지 왕국들을 샤를은 머지않아 통일할 것이다.

그다음은 제국을 향해 검을 들이밀 테지.

‘물론 그전에 요정섬도 방문할 거고.’

아틸라 자신의 목적지이기도 한 그곳.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은.

“그 안에 있으면 안 답답하냐?”

파앙! 슈시아가 내려놓은 등짐에 손도끼가 꽂혔다.

깜짝 놀란 슈시아가 무슨 일이냐며 소리쳤지만 대답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찢긴 등짐의 틈새로 시커먼 박쥐들이 솟아올랐으니까.

“뭐, 뭐야 저건!”

“엘프도 박쥐 고기는 먹나 보지?”

“지금 농담이 나오나!”

슈시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등짐 안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먹구름처럼 모여든 박쥐 떼가 무언가의 형상을 이뤘다.

그 모습을 보며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군. 파우스트 놈들.”

새빨간 동공.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

인간을 닮았지만 기묘하게 길고 커다란 얼굴.

사자의 몸.

“제어 불가 마귀종을 불러낼 줄이야.”

등 뒤에서 펄럭이는 거대한 날개를 보며 아틸라가 짓씹었다.

“만티코어(Manticore).”

이 난리가 났는데도 파울루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런 파울루가 아틸라는 마음에 들었다.

“쉽지 않은 녀석이 등장했구나. 야만전사야.”

바토리의 말대로다.

크라켄이 바다의 왕이라면 놈은 하늘의 왕.

‘그렇지만 그건.’

마귀종에 한정된 이야기.

그리고 아틸라에겐.

진정한 하늘의 왕이 있다.

“저거 뭐야. 만티코어? 지금 장난해? 겁대가리 없는 새끼가 뒤질라고.”

도롱뇽.

녀석이 좁쌀만 한 비늘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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