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56화 (56/425)

056. 길잡이와 사기꾼 (2)

애초부터 아틸라가 이 마을을 찾은 건 저 엘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공격하고 지랄이야. 엘프 새끼야.”

엘프가 비척이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 더 힘을 줘 팰 걸 그랬나, 아틸라는 생각했다.

퉤, 하고 입안의 핏물을 뱉어낸 엘프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뭐라고?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큰 소리로 외쳤다.

“감히 내 영역에 마귀를 들여놓고선, 왜 공격했냐고?”

‘아.’

아틸라는 그제야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도롱뇽 때문이군.’

아무리 정식 환수로 거듭났다 해도, 지금의 도롱뇽은 드래곤보단 다크웜에 가까운 상태.

그리고 다크웜은 마귀종이다.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

하지만.

“웃기는 소리군 엘프. 왜 이곳이 네 영역이냐. 여긴 인간들의 땅이다.”

“너야말로 웃기는 소린 집어치우시지. 대륙은 인간의 땅이 아냐.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마귀는 생물이 아닌가?”

순간 엘프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대륙이 모든 생명체들의 것이라면 ‘영역’이란 표현도 어폐가 있는 것 같은데.”

엘프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하게 변했다.

“아, 아무튼! 넌 평화로운 이곳에 마귀를 끌고 왔어! 숲을 오염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마을까지 덮칠 생각이냐!”

숲을 오염시켜?

저건 또 뭔 소리야.

“보아하니 전사로 위장한 사령술사 같은데, 호랑이굴에 제 발로 찾아오다니! 너 오늘 잘 걸렸다!”

아틸라는 어이가 없었다.

엘프야. 그럼 넌 전사로 위장한 사령술사의 주먹 따위에 얻어터진 거냐.

“각오해라! 사령술사!”

엘프가 달려들었다.

마법을 써서 저지하려는 제롬을 아틸라가 손짓으로 막았다.

휘리리릭!

순식간에 아틸라에게 접근한 엘프의 몸놀림은 바람처럼 날렵했다.

아틸라는 그 기술을 알고 있었다.

‘엘프의 종족 특성, 바람 걷기.’

날아드는 단검을 아틸라는 상체를 움직여 피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공격이 2차, 3차로 날아왔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아틸라의 몸에 닿지 못했다.

“비열한 사령술사 주제에 제법 민첩하군!”

연이어 날아드는 단검을 피하며 아틸라는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피 흘리던 엘프의 얼굴은 조금씩이지만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치유의 바람.’

엘프에겐 다양한 종족 특성이 있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그들은 상당수의 종족 특성을 잃어버렸고, 남아 있는 특성 역시 이전에 비해 형편없이 약해졌다.

그러나 눈앞의 엘프는 달랐다.

서리나무 엘프의 종족 특성인 바람 걷기와 치유의 바람을 수준급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

아틸라의 입가가 올라갔다.

‘과연 핏줄의 힘이란.’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셈인가!”

엘프의 신경질적인 외침과 달리 아틸라는 무기를 꺼낼 생각이 없었다.

여기선 확실하게 실력차를 보인다.

그래야 눈앞의 엘프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바로 지금.’

아틸라가 반격에 들어갔다.

단검을 휘두르는 엘프의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크흑……!”

괴로운 신음성을 흘렸지만 엘프는 단검을 놓지 않았다.

아틸라는 다른 손을 뻗어 엘프의 목을 쥐었다.

“놔……! 이거 놓지 않으면……!”

아틸라는 그렇게 했다.

콰당! 탕! 바닥에 내던져진 엘프의 몸이 낙엽처럼 굴러 구석에 박혔다.

‘호오.’

아틸라는 조금 놀랐다.

그 와중에도 엘프는 낙법을 시도해 충격을 완화시킨 것이다.

‘역시 제법이군.’

낙법과 치유의 바람 덕분인지 엘프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몇 대 더 때려 줘야겠다고 생각한 아틸라가 한 걸음 다가서자 엘프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오, 오지 마! 지금 날 건드렸다간 네 동료가 무사하지 못할 거다!”

“동료? 누구.”

“누구긴! 네놈이 사악한 마력으로 꼬여낸 여자 말이다! 딱 봐도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영애 같던데, 억지로 목욕시킨 뒤 뭘 할 심산이었나!”

“흐응. 내 얘길 하는 것이더냐.”

놀란 엘프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뭐, 뭐야! 어떻게……!”

젖은 머리칼을 정돈하며 선 바토리의 발치에는 두 명의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뾰족한 귀를 보니 그들 역시 엘프가 분명했다.

“엉큼한 귀쟁이 녀석들. 감히 목욕 중인 날 훔쳐보려 했느니라.”

여자 엘프의 눈이 경악으로 흔들렸다.

“뭐, 뭐야……! 일족의 순찰대원들을 저렇게 간단히……!”

“어찌하면 좋겠느냐 야만전사야. 녀석들이 날 훔쳐보려 했단 말이다.”

바토리가 이르듯 말했지만 아틸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여자 엘프에게 말했다.

“슈시아.”

여자 엘프의 눈에 강한 경계의 빛의 떠올랐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뭐 대단한 이름이라고.”

살기 가득해진 슈시아의 양손에 재차 단검이 쥐어졌다.

제롬이 나섰다.

“자, 잠깐! 슈시아 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오해? 내 영역에 마귀를 들이고 죄 없는 순찰대원 둘을 두들겨 팬 자들이 오해는 무슨 오해!”

아틸라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네 집에 초대한 건 너잖아.

바토리 또한 정당방위였고.

“나는 서리나무 일족 순찰대장 슈시아! 내 오늘 너희들을 말살하지 않으면……!”

콰앙! 슈시아의 얼굴이 바닥에 꽂혔다.

쌍코피를 터뜨리며 기절한 그녀의 덜미를 쥐어들며 아틸라가 말했다.

“진짜 말 더럽게 많네.”

* * *

슈시아가 정신을 차렸을 땐 한밤중이었다.

의자에 묶여 있는 자신.

양옆으로 두 명의 순찰대원이 같은 신세로 포박된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슈시아는 몸을 움직여 풀어 보려 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그것을 막았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밧줄을 풀기라도 했다간 제가 맞아죽거든요.”

제롬을 노려보며 슈시아가 말했다.

“네놈. 마법사인가.”

“전 누가 봐도 마법사 차림이지 않습니까?”

제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발밑엔 은은한 빛을 내뿜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제롬을 향한 슈시아의 눈동자에 희미한 보랏빛이 맺혔다.

그것을 포착한 제롬의 눈이 실낱같이 좁혀졌다.

‘호오.’

“그래. 네놈은 제대로 된 인간 마법사처럼 보이는군.”

“이거 감사라도 드려야 하나요?”

“날 풀어 줘.”

제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그걸 풀어드리면 제가…….”

“넌 속고 있다. 마법사.”

제롬의 눈썹이 엷게 꿈틀댔다.

“네가 따르는 전사, 아니 전사인지 사령술사인지 모를 그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난 느낄 수 있거든.”

“무엇을 말이죠?”

“녀석은.”

그때 문이 열리며 아틸라와 바토리가 들어왔다.

아틸라가 손에 든 것을 바닥에 던졌다.

“숲에 있던 놈들 중 하나다.”

어린아이 크기만 한 새빨간 괴물.

“임프들이 꽤나 있더군.”

임프(Imp).

한때는 악마에 속할 정도로 강력한 종이었지만 마귀로 강등된 존재.

놈들은 원래 엘프였다.

먼 옛날 어느 엘프 일족은 한 고위악마(高位惡魔)의 힘에 매혹됐고, 영혼을 바치는 대가로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고위악마의 힘을 온전히 견뎌 내지 못했고.

중급 악마로 진화한 몇몇 개체를 제외하곤, 지녔던 힘의 대부분을 잃은 채 마귀로 전락했다.

그것이 지금의 마귀종, 임프다.

“언제부터 ‘길잡이 숲’에 임프들이 출몰한 거지?”

슈시아는 크게 놀랐다.

이곳에서 서리나무 일족의 영역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길을 ‘길잡이 숲’이라 부르는 건.

오직 서리나무 일족의 엘프들뿐이었으니까.

“네놈!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거냐!”

“슈시아.”

아틸라가 슈시아 앞에 마주 앉았다.

“난 서리나무 일족의 수장을 만나고 싶다.”

슈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네놈……. 관조자라 불리는 존재인가.”

“아니. 인간이다.”

슈시아의 시선이 아틸라를 훑었다.

다시금 보랏빛 광채를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놈의 몸을 흐르던 마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내가 잘못 느꼈다고? 아니, 그럴 리 없다.’

슈시아는 자신이 지닌 특별한 능력을 믿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마기가 아니었다.’

그랬다.

사내의 몸에서 풍기던 기운은 마기와는 달랐다.

마침 길잡이 숲에 마귀들이 출몰했고, 마땅한 표현 또한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렇게 믿었던 것.

‘아주 약간, 마기가 섞여 있긴 했지만.’

하지만 다시 살펴도 상대의 몸에선 아까와 같은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고.

‘그렇다면.’

슈시아의 시선은 자연스레 바토리와 제롬을 향했다.

“나 역시 인간이니라.”

“저도 그렇습니다.”

“먼저 오해를 풀어야겠군.”

아틸라가 펀치의 입안에서 도롱뇽을 꺼냈다.

- 키헤엑! 나 엘프 싫다! 엘프 싫다고!

“이건……?”

“네가 마귀라 오해했던 녀석.”

오늘 슈시아의 눈은 정말 여러 번 커졌다.

“서, 설마 드래곤……!”

“그래.”

“어떻게 드래곤을……! 그런데 왜 드래곤이 마귀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거지……?”

“사정은 차차 설명하지. 이쪽은 꽤 급해서 말이야.”

아틸라의 눈짓에 제롬이 슈시아의 밧줄을 풀었다.

슈시아가 물었다.

“왜 수장을 만나려는 거냐.”

“내 동료가 좀 아프거든.”

슈시아의 눈이 바토리를 향했다가, 아틸라에게 돌아왔다.

“농담거리도 안 되는군. 고작 그런 이유로 내가 길잡이를 할 것 같아?”

엘프는 자신의 영역을 숨기는 능력이 뛰어나다.

게다가 아틸라가 가려는 곳은 서리나무 일족의 수장이 직접 자물쇠를 걸어 잠근 곳.

길잡이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아니지.”

“그럼?”

아틸라는 웃었다.

서리나무 일족의 슈시아.

그녀에겐 약점이 있다.

“서리나무숲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

“뭐라고?”

자신을 순찰대장이라 소개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현재 일족에서 추방된 상황.

“서리나무 일족에서 추방된 널, 귀환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거다.”

“…….”

기절 중인 두 엘프가 순찰대원인 것은 맞다.

슈시아가 한때 그들을 이끌던 순찰대장이었던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슈시아는 어떤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고, 숲에서 추방당했다.

“……너는 대체.”

“먼저 길잡이 숲에 나타난 임프들을 처리해 주지. 그 후.”

아틸라의 입가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서리검 찾는 걸 도와주겠다.”

* * *

- 캬아악! 드디어!

- 드디어 하찮은 미물 다크웜의 그늘에서 벗어났도다!

도롱뇽이 만세를 부르며 모닥불 주위를 뛰어다녔다.

- 만세에에에!

약속대로 아틸라는 숲의 임프들을 박멸했다.

그 와중에 도롱뇽이 몇 번의 레벨업을 했고, 성장한 용족의 힘이 다크웜의 마기를 말끔히 몰아냈던 것.

슈시아가 중얼거렸다.

“드래곤 치곤 너무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데.”

“원래 저런 놈이다.”

“쟨 옛날부터 저랬단다.”

과도한 마법 사용으로 탈진한 제롬은 잠들어 있었다.

체력 수치가 높은 아틸라와, 종족 특성인 치유의 바람으로 회복이 가능한 슈시아는 상대적으로 멀쩡한 모습.

“가끔은 나도 좀 끼워 주려무나. 야만전사야.”

아틸라의 명령으로 바토리는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왼팔 나을 때까진 꿈도 꾸지 마라. 잡기술로 만족해.”

“흐응. 네가 그리 걱정을 해 주니 내 어쩔 수가 없구나.”

“걱정은 개뿔. 귀찮은 일 방지 차원이다.”

“꼭 그리 밉상으로 말해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슈시아가 물었다.

“어떻게 서리검을 되찾을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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