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기행귀 (4)
신의 가장 완벽한 피조물이자.
대륙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종.
‘드래곤(Dragon).’
그 드래곤 중에서도.
다른 드래곤은 가지지 못한 특별한 권능을 보유한 개체가 있었으니.
그것이 죽음의 숨결이란 이명을 지닌 재앙의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다.
그리고.
그 모든 드래곤 중 오직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만이 소유하고 있다는 놀라운 권능의 이름은.
‘시, 실화냐! 정말 이게 나왔다고?’
바로.
[ 포식(捕食) ]
포식이다.
‘대박! 이건 정말로 대박이야!’
아틸라가 이렇게까지 놀랄 이유는 충분했다.
포식은 보통 스킬이 아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여타 드래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태어났기에 가질 수 있는 권능.
그러나.
[ 포식의 권능이 ‘1레벨’만큼 개화합니다. ]
[ 동족 중에서도 가장 하위종에 해당하는 대상에게만 스킬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
‘그럼 그렇지. 제한이 걸려 있구만.’
[ 아울러 ‘1레벨’의 양만큼만 포식이 가능합니다. ]
1레벨이 얼마큼인지는 알 수 없다.
‘써 보면 알겠지.’
물론 눈앞의 타란툴라에겐 사용할 수 없다.
스킬 설명창에서도 볼 수 있듯.
[ 동족 중에서도 가장 하위종에 해당하는 대상에게만 스킬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
타란툴라는 용족이 아니니까.
아틸라는 웃었다.
“그래. 결국 내가 처리해야 한다 이거지.”
기분이 좋아졌다.
머리도 맑아졌다.
비록 지금의 포식은 상당한 제한이 걸려 있지만.
‘녀석이 레벨업을 하면 할수록 제한은 풀려갈 테니까.’
그리고 이제 정식 환수가 된 도롱뇽은.
“가자! 도롱뇽!”
“히이익!”
펀치만큼은 아니어도, 한 마리의 환수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존재!
“날아라! 도롱뇽!”
그런 줄 알았는데.
“꾸에에엑!”
거미 다리에 얻어맞은 도롱뇽이 유성처럼 바닥에 꽂혔다.
‘뭐, 뭐야! 뭐가 저렇게 약해!’
끼아옹! 펀치가 자기도 있다며 존재감을 알렸다.
하지만 아틸라는 펀치가 제 자리를 지키도록 명령했다.
‘넌 따로 할 일이 있다. 펀치.’
타란툴라가 창날처럼 다리를 뻗어왔다.
그것을 회피하며 아틸라는 도롱뇽의 능력치를 살폈다.
그리고 납득했다.
‘……펀치에 비하면 아직 환수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군.’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이라고 마법과 독에 대한 저항력은 제법이었지만.
‘기본 스텟이 너무 쓰레기다.’
그 외의 것을 살피던 아틸라의 눈이 어디선가 멈췄다.
[ 투명화(透明化) ]
‘이건.’
그 아래 보이는 또 다른 특성을 확인한 아틸라가 입가를 올렸다.
도롱뇽의 쓰임새를 찾아냈다.
파캉!
쇄도하는 거미 다리를 용아귀가 막으며 불꽃이 튀었다.
도롱뇽에게 무언갈 명령한 아틸라는 잠시 방어에 집중했다.
그리고 타란툴라의 머릿속 생각을 추리해 봤다.
* * *
타란툴라는 자신의 새끼를 상급 마귀로 만들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
수많은 다크웜을 진화시키고.
그중 가장 강력한 다크웜에게 오직 하나의 정제된 알을 주입했으며.
나머지 다크웜의 숙주가 된 인간들을 포획해 새끼에게 먹였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내. 아이.’
타란툴라는 세 개의 인간 마을을 멸종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마을에서 많은 먹잇감을 포획한 타란툴라는 기쁜 마음으로 새끼의 보금자리를 향했다.
‘이것들을. 먹고. 마지막으로.’
타란툴라는 새끼를 위한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다.
‘이. 어미를. 먹으렴.’
그러던 중 타란툴라는 새끼의 둥지 방향에서 온당하지 않은 기운을 포착했고.
“내. 아이. 내. 아이가.”
그 즉시 땅굴을 파고 새끼의 보금자리로 질주했다.
그렇게 도착지에서 마주한 것은.
“내. 아이.”
모든 다리가 잘린 채 머리통이 으깨진 새끼의 시체였다.
“내! 아이이! 내! 아이르르르르르!”
타란툴라의 눈이 희번덕 돌아갔다.
새끼를 죽게 만든 인간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강했다.
‘이. 인간. 강하다.’
그러던 중 타란툴라는 새끼에게 주려던 먹이들이 제 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란툴라는 먹이를 차례차례 항문으로 빨아들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을 갑옷처럼 진화시켰다.
먹이를 섭취하는 모습을 인간이 눈치챌 수 없도록, 굴 안에 몸을 숨긴 채.
‘너. 인간. 죽인다. 반드시.’
그것도 아주.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마침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
‘인간은. 숨을. 쉬어야. 한다.’
이쪽 통로는 몸으로 막았다.
남은 건 맞은편에 보이는 또 하나의 통로.
타란툴라는 바위를 던져 구멍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인간이 괴이한 기술로 방해했다.
‘으어. 어어어어. 어어어. 몸이.’
그것을 기점으로 인간이 반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타란툴라는 더욱더 머리를 굴렸다.
‘나. 강해진다.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
이미 타란툴라의 몸엔 단단한 돌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섭취 중인 먹이 덕에, 인간이 손상시킨 돌기마저 복구시켰다.
이쯤이면 되었다 생각한 타란툴라는 굴에서 몸을 빼낸 뒤 벽을 부숴 구멍을 막았다.
한결 자유로워진 몸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인간이 외쳤다.
“날아라! 도롱뇽!”
겁도 없이 도마뱀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냅다 바닥에 꽂아주었다.
“꾸에에엑!”
이제 남은 건.
‘인간. 저. 죽일. 놈의. 인간.’
저 인간을 최대한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이는 것.
생각대로 인간의 몸놀림은 무뎌져 갔다.
쉭쉭, 바람 빠지는 숨소리를 내뱉으며 오직 방어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니까.
‘인간. 제대로. 숨. 쉬지. 못한다.’
그리고 타란툴라는 마침내 인간을 생지옥으로 보낼 시간이 도래했음을 감각했다.
교전 중인 다리 두 짝을 빼내 바위를 들었다.
그러자 인간이 마지막 죽을힘을 냈는지 이제까지와 다른 괴력으로 도끼를 휘둘렀고, 그 바람에 다리 한 짝이 잘렸다.
‘내. 다리가.’
하지만 상관없다.
‘넌. 이제. 죽을. 거니까.’
타란툴라는 맞은편 통로를 향해 바위를 던졌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무언가 괴이한 기술을 사용했지만.
이번엔 손쉽게 저항할 수 있었다.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그때였다.
“펀치!”
우어어어어!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곰이 바위를 때려 부쉈다.
갑작스러운 곰의 등장에 타란툴라는 일순 몸이 굳었고, 그 와중에 또 하나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어. 어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쪽이다! 펀치!”
쿵쿵거리며 달려온 곰이 타란툴라가 막았던 통로의 벽을 부쉈다.
타란툴라는 다급해졌다.
서둘러 구멍을 막으려 했지만 곰과 인간이 집요하게 방해했다.
“될 것 같냐. 거미 새끼야.”
인간이 이죽거렸다.
곰이 울부짖었다.
타란툴라는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인간. 이제. 숨을. 쉴. 수. 있다.’
희박한 공기로 괴로워하던 인간의 얼굴은 그곳에 없었다.
인정해야 했다.
방심했다.
저 인간의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기 위해 불필요한 희생을 감수했다.
‘다리. 두. 개나. 잃었다.’
이 상태로 저 인간과 곰을 상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 방법은 있다.
‘먹이. 먹이를. 먹고. 더. 강해진다.’
타란툴라는 다리를 움직여 거미줄을 당겼다.
그런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내렸다.
‘줄이.’
초점을 잃은 타란툴라의 눈이 핑글핑글 회전했다.
‘끊어. 졌다고.’
“가, 간신히 성공했다! 야만 미물!”
그 순간 곰이 몸통 박치기를 해 왔다.
그러나 타란툴라는 아직 강했고, 두어 걸음 뒤로 밀려나는 것으로 버텨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틸라는.
그 두어 걸음이면 되었다.
[ 돌진(突進) ]
아틸라의 신형이 거미줄로 포박된 인간들 앞에 다다랐다.
도롱뇽은 제 할 일을 충분히 해 줬다.
[ 투명화(透明化) ]
투명화로 몸을 숨긴 채 타란툴라에게 접근해.
[ 강인한 송곳니 ]
강인한 송곳니로 거미줄을 마구마구 물어뜯어, 결국 끊어 냈으니까.
“하아아아압!”
질풍처럼 휘둘러진 용아귀가 인간들을 도륙했다.
사흘 전, 아틸라는 발랑스 병사들에게 다크웜에게 지배당한 인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한 번 다크웜에게 몸을 내준 인간은 결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
‘희망을 잃은 인간은 두려울 게 없어지고, 공포에 질린 인간은 잔혹해진다.’
아틸라는 숙주의 완전한 격리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리모즈 주민들은 숙주가 된 여자를 어떻게든 죽이려 했을 테고, 반대로 죽임당했을 것이다.
결국 결과는 다르지 않았지만.
퍼퍼퍼퍼퍽!
잔혹한 소음과 함께 인간, 아니 다크웜의 숙주들이 절단됐다.
포도알처럼 모여 있었기에 아틸라는 단 한 방의 도끼질로도 수많은 숙주를 토막 낼 수 있었다.
[ 학살의 보답 ]
[ 체력을 2% 회복합니다. ]
분노한 타란툴라가 아틸라를 공격하려 했다.
그것을 펀치가 가로막았다.
하지만 펀치는 타란툴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그래서 아틸라는 소리쳤다.
[ 도발의 외침 ]
“왜. 갑자. 기. 몸이.”
타란툴라는 영문도 모른 채 공격 대상을 아틸라로 바꿨다.
그리고 아틸라는.
[ 체력을 2% 회복합니다. ]
상대를 맞이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파카캉!
날아들던 거미 다리가 도끼질 한 방에 절단됐다.
타란툴라는 경악했다.
눈앞의 인간이,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그래. 그럴 만도 할 거다.”
벼락처럼 내리쳐진 도끼가 다시, 또다시 타란툴라의 다리를 잘랐다.
아틸라의 입이 기다랗게 찢어졌다.
“네 먹이들 덕에 레벨업했거든.”
타란툴라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너. 인간. 아니다. 너. 정체가.”
세 개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 녀석은 어떻게든 아틸라에게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어딜 가려고.”
그런 타란툴라를 아틸라가 쫓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를 울렸다.
“야만전사야!”
아틸라는 힐끗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지나왔던 통로의 끝에 바토리가 서 있었다.
쉼 없이 달려왔는지 얼굴은 땀범벅이었고, 수차례 넘어지기라도 한 듯 옷은 흙투성이였다.
“마, 마법을 쓰지 않았느니라! 그래서 이런 것이니라!”
묻지도 않았건만 그리 외친 바토리가 급히 머리 매무새를 고쳤다.
아틸라의 입가가 피식 올라갔다.
“아, 아틸라 공!”
반대편 통로에서는 쟝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태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말발굽 소리.
분명 부하들을 이끌고 다급히 달려온 것이리라.
‘의도치 않게 쇼 타임인가.’
다섯 개의 다리를 잃은 채 뒷걸음질 치는 타란툴라였지만 속도는 빨랐다.
거리가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벌어졌다.
그러나 아틸라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 돌진(突進) ]
쿨타임이 돌아온 돌진으로 거리를 좁혔다.
그와 동시에 타란툴라의 다리 한 짝이 절단됐고, 중심을 잃은 녀석의 남은 두 다리 중 하나가 추가로 몸에서 분리됐다.
쿠웅, 타란툴라의 몸이 지면에 내리붙었다.
발악 같은 괴성을 지르며 녀석이 마지막 남은 다리로 아틸라를 공격했다.
“너도 희망을 잃으니 두려울 게 없어지는 거냐.”
처절한 비명과 함께 날아온 공격은 예리했다.
녀석이 아틸라에게 쏘아 냈던 모든 공격 중 가장 위협적일 정도로.
하지만 이미 늦었다.
파캉!
맹렬한 도끼질에 마지막 다리가 잘렸다.
후우, 한숨을 내뱉은 아틸라가 타란툴라에게 다가갔다.
부러진 이빨을 밟고, 계단을 오르듯 머리를 등반했다.
그 모습을 보며 쟝의 부하들이 내뱉었다.
“저게 무슨…….”
“마, 말도 안 돼…….”
“저것이 정녕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쟝과 그의 부하들은 얼이 빠졌다.
아틸라가 보인 가공할 무력을, 그들은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제롬 또한 다르지 않았다.
“스, 스승님……. 저건 대체……!”
그러나 바토리는 그들과 다른 눈으로 아틸라를 주시했다.
그녀는 알아챘다.
지금의 아틸라가, 동굴에 들어오기 전과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분명.’
이전에도 수차례 벌어졌던 일.
바토리의 눈에 예기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그러한 권능을 발현할 수 있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