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기행귀 (3)
파카캉!
쇄도하던 거미 다리가 아틸라의 방어에 부챗살처럼 튕겨났다.
[ 방어 태세 ]
어미가 등장하자마자 아틸라는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 방어력이 20% 증가하며, 공격력은 20% 감소합니다. ]
그러나 증가한 방어력에도 불구하고 타란툴라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고.
그 가공할 괴력에 아틸라의 몸이 수 미터 뒤로 밀려났다.
무기를 고쳐 쥐며 아틸라는 생각했다.
‘역시, 조금 전 새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단 한 번 부딪쳤을 뿐이지만 알 수 있다.
녀석이 상급 마귀를 코앞에 둔 상태라는 것을.
‘만약 새끼라도 섭취하게 두었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놈은 상급 마귀로 진화했을 거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아직은 ‘중급’이라는 거지.’
상급을 코앞에 둔 상태와 진짜 상급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제아무리 중급 최강의 마귀라 할지라도, 상급 최약체 마귀와 붙으면 순식간에 압살당하고 마니까.
‘그것이 뒤집을 수 없는 급의 차이.’
아틸라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는 저 거대 타란툴라를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와라! 거미!”
타란툴라에게 달려들었다.
‘상대는 마귀. 돌진 스킬은 통하지 않는다.’
원기를 흡혈당한 새끼를 보며 타란툴라도 마주 괴성을 질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놈은 자신이 만든 동굴 속에 몸을 묻은 채 다리만을 뻗어왔고.
‘이번에는.’
아틸라는 직전처럼 방어로 만족하지 않았다.
선두로 날아온 두 다리를 회피하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 검투 태세 ]
무휼을 갈무리했다.
쇄도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다리를 차례로 밟아 진행 방향을 바꾼 아틸라가 양손으로 용아귀를 쥐었다.
공격력을 극대화할 시간이다.
카아앙!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두른 용아귀가 타란툴라의 몸을 가격했다.
아틸라의 눈썹이 꿈틀댔다.
‘안 먹힌다고?’
용아귀는 타란툴라를 상처 입히지 못했다.
착지할 때까지 몇 차례 더 휘둘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있었다.
‘저건.’
녀석의 몸과 다리를 뒤덮은 뾰족한 돌기.
‘저런 게 있었다고?’
바위처럼 경화된 돌기들이 용아귀의 송곳니로부터 타란툴라를 보호하고 있었다.
“갑각류로 진화할 셈인가.”
타란툴라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공격력에 비례하지 않는 초라한 방어력.
놈들은 다른 마귀에 비해 연약한 피부 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거미집을 틀어 기척을 숨긴 채 기습하는 거지.’
마치 살수처럼.
쉽게 말해 타란툴라의 거미집은 사바흐의 연막술과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준비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완성이 되면 그 영역만큼은 시전자의 독무대가 된다.
‘간혹 다른 타란툴라가 지은 거미집을 힘으로 빼앗는 경우도 있지만.’
이 녀석은 그럴 수 없다.
“이 거미집은 네가 은신하긴 너무 작잖아. 안 그래?”
키에에에엑!
거미집 따위 필요 없다는 듯 타란툴라가 공격을 퍼부었다.
놈의 아가리에서 맹독의 수액이 뿜어졌다.
네 개의 다리는 기묘하게 휘어지며 아틸라를 괴롭혔다.
마치 크라켄을 상대했을 때와 유사한 감각.
‘문어 같은 새끼.’
날아드는 수액을 피하고, 창날 같은 다리 공격을 막았다.
금속성 소음이 쉴 새 없이 공동을 울렸다.
그러나 기세와 달리 타란툴라는 단 하나의 유효타도 아틸라에게 적중시키지 못했고.
그래서 아틸라는 왜 녀석이 네 개의 다리로만 공격을 이어가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생겼다.
‘그것도 스스로의 기동성을 죽이면서까지.’
거미는 재빠른 생명체다.
심지어 마귀 타란툴라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녀석은 저 먼 지상에서부터 이곳까지 순식간에 굴을 파고 진입했으니까.
‘그런데 왜.’
녀석은 몸통 반쪽을 굴에 끼워 놓은 채 나머지 다리를 감추고 있는 것인가.
카캉!
용아귀가 반격을 시작했다.
타란툴라의 돌기가 그것을 막았다.
몇 차례 그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 아틸라는 저 단단한 돌기가 놈의 몸 전체를 뒤덮고 있지 않은 걸 확인했다.
‘아직 놈은 상급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있다.
‘돌기가 없는 곳을 타격한다.’
아틸라의 공격 성향이 바뀌었다.
그의 의도를 눈치챈 듯 타란툴라도 전투 방식을 바꿨다.
“드디어 내보이는 거냐.”
두 개의 거미 다리가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것은 아틸라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
새로이 등장한 두 다리가 바닥의 바위를 집어 든 순간 아틸라는 상대의 의도를 간파했다.
[ 포효(咆哮) ]
콰콰쾅!
타란툴라가 내던진 바위가 폭음을 내며 바닥을 굴렀다.
때마침 근처에 숨어 있던 펀치와 도롱뇽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뭐, 뭐, 뭐야! 저 거미 새끼가 지금 날 노린 거야? 이몸이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님이라는 걸 알아보고!”
도롱뇽의 생각은 틀렸다.
타란툴라의 목표는 따로 있었고, 다만 아틸라의 포효에 몸이 굳어진 바람에 빗나갔을 뿐이다.
[ 포효의 대상이 공포에 질려 경직됩니다. ]
그리고 아틸라는.
‘지금이다.’
불시에 찾아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포효는 조금 더 아껴 둘까 했지만.’
한 번 포효에 노출된 타깃은 포효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상승한다.
그러나 그런 걸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아틸라는 타란툴라를 등지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뭐, 뭐냐 야만 미물! 설마 도망치는……!”
[ 사거리를 확보했습니다. ]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아틸라는 지면을 박차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 돌진(突進) ]
파아앙! 타란툴라를 향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중급 마귀라 그런가, 크라켄과는 다르군.’
크라켄은 두 개의 거대 촉수가 독립된 개체로 판정됐었다.
촉수 각각에게 돌진이나 도발의 외침 등의 스킬을 따로 시전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타란툴라는 달랐다.
‘시스템은 놈의 다리와 몸통을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돌진을 시전한 아틸라는 굳어진 거미 다리의 숲을 지나 단숨에 놈의 몸 앞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포효에 적중당한 마귀 타란툴라에겐 돌진 디버프가 먹혔다.
[ 목표물의 방어력과 이동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
‘좋아!’
잠시 후 포효를 이겨 낸 타란툴라가 아틸라를 찾았지만.
[ 방어 태세 ]
어느새 방어 태세로 전환한 아틸라의 무휼이.
콰드득!
[ 방어구관통(防禦具貫通) ]
[ 대상의 방어력과 회복력이 10% 감소합니다. ]
돌기가 돋아 있지 않은 타란툴라의 맨살을 타격해 방어구관통 디버프를 추가했다.
[ 이 효과는 2회까지 중첩됩니다. ]
오래지 않아 또 한 번의 방어구관통 디버프가 타란툴라의 몸에 추가됐고.
“이제.”
아틸라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난도질의 시간이다.”
검투 태세로 전환한 아틸라가 질풍처럼 용아귀를 휘둘렀다.
타란툴라는 돌기를 이용해 막았다.
그러나 무려 40퍼센트의 방어력이 저하된 녀석의 돌기는 아틸라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없었고.
“어이. 물렁물렁해졌잖아.”
몇 차례 같은 곳을 가격 당하자 멍게처럼 터져 버렸다.
키에엑! 녀석이 주춤대며 다리를 무르는가 싶더니 나머지 다리와 함께 맹공을 시작했다.
‘젠장. 네 개와 여섯 개는 완전히 다르군.’
그러나 상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틸라는 확신했다.
‘여덟 개를 모두 꺼낸다 해도 막을 수 있다.’
그러자 다시금 의문이 들었다.
왜 녀석은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마저 다리 두 개를 숨겨 두고 있는 것인가.
그러던 중 아틸라는 타란툴라의 몸에서 이상 현상을 감지했다.
‘손상된 돌기가 복구되고 있다고?’
타란툴라는 방어력만 약한 게 아니라 회복 속도도 더디다.
저렇게 빠르게, 마치 치유 계열 주문이라도 받은 것처럼 상처가 아물 수는 없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놈의 돌기는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재생성됐고, 조금씩이지만 전체 몸집도 커지고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빌어먹을 거미 새끼가.”
놈은 지금, 먹이를 섭취하고 있다.
쿠쿠쿵!
타란툴라가 완전히 몸을 빼내며 흙먼지가 일었다.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겼다.
“이거 정말 보통 영악한 기행귀가 아니었잖아.”
여덟 개의 다리를 모두 드러낸 타란툴라.
녀석이 등 뒤의 벽을 부숴 통로를 막았다.
위협적으로 몸을 부풀리는 놈의 배 밑엔 거미줄로 포박된 인간 무리가 포도 다발처럼 매달려 있었고.
“끄그극……! 크헤에엑……!”
그중 하나가 놈의 항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지금껏 숨겨 왔던 두 다리가 그 과정을 신속하게 해냈다.
녀석이 다리 두 짝을 마지막까지 숨기고 있었던 이유.
‘원래는 새끼에게 먹이려던 것이겠지.’
아틸라는 잡념을 털어 냈다.
저렇게나 많은 먹잇감을 확보하고 있는 타란툴라다.
서둘러야 한다.
게다가 저들은 이미 보통의 인간이 아닐 터.
‘진화한 다크웜의 숙주들.’
만약.
타란툴라가 저들 모두를 섭취한다면.
‘놈은 상급으로 진화할 수 있다.’
그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아틸라가 서둘러 녀석을 쓰러뜨리려는 이유는 또 있었다.
[ 산소가 부족합니다. ]
이곳은 공기가 희박했다.
조금씩이지만, 아틸라는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힘주어 고개를 털었다.
‘아직은 괜찮다.’
전투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
일단은 놈의 먹이 섭취를 막고.
‘전력을 다해 쓰러뜨린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먹이를 섭취한 녀석은 조금 전보다 강한 개체로 진화했다.
이대로라면 언제 상급으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펀치를 불러 협공할까 생각하던 아틸라는 그만두었다.
‘펀치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때였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힘의 일부를 회복했습니다. ]
‘뭐?’
아틸라는 놀란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발견했다.
죽은 새끼 거미의 원기를 쪽쪽 빨아먹고 있는 도롱뇽의 모습을.
“저, 저 새끼가 아까 다 처먹지도 않고……!”
“히이익!”
조금 전 어미 타란툴라가 벽을 뚫고 등장했을 때.
도롱뇽은 외쳤었다.
‘나, 나 다 먹었어! 얼른 돌려보내 줘!’
그게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거다.
“아, 아니 그게! 다 먹은 줄 알았는데!”
분명 저것도 거짓말이다.
빌어먹을 도롱뇽 새끼.
그러나 아틸라는 녀석의 처분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왜냐하면.
[ 회복률: 100% ]
[ 봉인이 해제됩니다. ]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임시 환수 등록이 철회되고, 환수명 ‘도롱뇽’이 재입력됩니다. ]
도롱뇽의 봉인이 완전히 해제됐으니까.
“지, 지, 진짜야! 아까 다 먹은 줄 알았다고! 야, 야만 미물 네가 위험해진 거 같아서, 그래서 난 도와주려고……!”
도롱뇽은 아틸라가 정신 교육이라도 시전할까 봐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그래서 봉인이 해제됐다는 것도 눈치 못 채고 있었다.
그러나.
[ 도롱뇽이 이름을 얻었습니다. ]
[ 도롱뇽이 환수로 등록되었습니다. ]
“히에에엑! 내 이름이 왜 또 도롱뇽으로!”
이름이 바뀐 건 귀신같이 알아챘다.
[ 돌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보상으로 환수, 도롱뇽이 새로운 스킬을 습득합니다. ]
아틸라의 눈에 생기가 떠올랐다.
‘오. 스킬.’
얼마 전 펀치는 ‘거대화’라는 뛰어난 스킬을 개화했었다.
‘그렇다면 도롱뇽은.’
아틸라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지녔던 여러 기술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어진 메시지는 그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헉!’
아틸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게 나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