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52화 (52/425)

052. 기행귀 (2)

쟝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을 두드리는 걸 느꼈다.

만약 저 거대한 발자국이 거미의 것이고.

짐을 끈 듯한 긴 흔적의 정체가 놈에게 포획된 주민들의 것이라면……!

“대, 대장! 리모즈 마을입니다! 흔적이 리모즈 마을을 향하고 있습니다!”

흔적을 조사하러 떠났던 병사가 말을 달려왔다.

쟝은 지체 없이 말 위에 올랐다.

“서둘러라! 리모즈 마을로 간다!”

* * *

조무래기들을 처리하며 직진한 일행은 거미줄로 둘러싸인 커다란 동굴을 발견했다.

아틸라가 말했다.

“너흰 밖에 있어라.”

“뭐라?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이더냐 야만전사야.”

“할망구. 넌 오는 내내 구경만 했잖아.”

“흐응? 그렇다면 내가 마법을 써서 널 도와도 괜찮다는 말이더냐.”

“아니.”

“아틸라 님 말이 맞습니다. 스승님은 아직 회복 중이시니 제가 가겠습니다.”

“시끄럽고, 둘 다 빠져라. 펀치와 도롱뇽만 데리고 간다.”

“하지만 아틸라 님.”

“놀고 있으란 말이 아니야.”

아틸라의 눈이 제롬을 향했다.

“입구에서 망보고 있어라. 할망구도 잘 지키고.”

“난 네가 지켜 주면 되지 않느냐. 야만전사야.”

바토리를 무시하며 아틸라가 말을 이었다.

“어떤 ‘징후’가 발견되면 소리로 신호해라.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징후라니. 그게 무슨…….”

제롬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틸라는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구시렁대는 바토리의 목소리를 등 뒤로 흘리며 아틸라는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서둘러야 한다.’

만약 최악의 가정이 현실로 벌어진다면, 지금의 자신이라도 감당할 수 없을지 모른다.

다행히 체력엔 큰 문제가 없다.

적들이 그리 강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학살의 보답.’

10마리의 적을 연이어 쓰러뜨릴 때마다 2퍼센트의 체력을 회복하는 스킬.

그것이 아틸라의 체력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만들었다.

‘깊군.’

거미집은 정말로 깊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조금씩 호흡이 어려워졌다.

‘공기가 희박한 건가.’

내리막이 끝나고 평지에 진입할 때쯤 도롱뇽이 말했다.

“냄새가 난다.”

“무슨 냄새.”

“썩은 마귀의 냄새.”

“얼마 전까지 썩은 다크웜이었던 주제에 말은.”

도롱뇽은 평소처럼 버럭 성을 내는 대신 나직이 덧붙였다.

“느낌이 좋지 않은데.”

“뭐가.”

“야만 미……, 아니 주인님. 돌아가자.”

“펀치.”

아틸라의 부름에 펀치가 도롱뇽을 냅다 입에 물었다.

“놔, 놔라! 이 빌어먹을 곰새끼!”

“계속 시끄럽게 굴면 또 가둬 버린다.”

펀치의 목구멍을 흘끗 쳐다본 도롱뇽은 금세 잠잠해졌다.

물론 아틸라는 정말로 도롱뇽을 가둬 놓을 생각은 없었다.

도롱뇽이 느끼는 불온한 공기를 아틸라 역시 감각하고 있었으니까.

‘서둘러 원기를 흡수시켜야겠군.’

잠시 후 일행은 거대한 공동에 들어섰다.

그 가운데 있었다.

사흘 전만 해도 조그만 알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탱크처럼 육중한 몸집을 과시할 수 있게 된 거미집의 주인이.

[ 소환마귀 시나리오가 이어집니다. ]

‘응?’

예상치 못한 메시지였다.

소환마귀 시나리오는 브누아 방백의 성에서, 크리스또프가 소환한 2급 목마종을 상대할 때 생성됐던 것.

크라켄을 쓰러뜨리며 끝난 줄 알았었다.

그렇다면.

‘다크웜과 타란툴라가 이쪽 세계로 넘어온 건 우연이 아니었나?’

만약.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면.

‘파우스트는 아니다.’

그 순간 아틸라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자신을 이 세계로 떨어뜨린 빌어먹을 꼬마의 얼굴이었다.

[ 다섯 번째 임무 ]

[ 기행귀 타란툴라를 쓰러뜨리십시오. ]

[ 기행귀 타란툴라의 목(0/1) ]

[ 임무 완료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상념을 걷어 낸 아틸라는 만족의 웃음을 머금었다.

상태창을 살폈다.

[ 회복률: 72% ]

‘도롱뇽의 봉인 해제까지 앞으로 28퍼센트.’

눈앞의 타란툴라를 쓰러뜨리고.

놈의 시체에서 도롱뇽이 원기를 흡수한다면.

‘아슬아슬 정식 환수로 등록시킬 정도는 되겠지.’

녀석은 시나리오 임무에 등장할 정도의 네임드.

분명 상당한 경험치와 원기를 제공할 터다.

‘뭐, 아니라 해도 마귀 몇 마리 더 잡으면 되니까.’

결론은.

놈을 쓰러뜨리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라는 강력한 환수를 완전하게 손에 넣는 건 물론이고.

보상도 함께 받을 수 있다는 것.

‘기왕이면 엘프의 숲을 찾을 때 써먹을 만한 보상이면 좋겠는데.’

사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타란툴라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아틸라에겐 좋은 득템 기회가 예정돼 있었다.

‘타란툴라의 수액.’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아틸라는 내심 기대감을 가졌다.

지금까지 시스템은 한 번도 아틸라에게 구린 보상을 제공한 적이 없었다.

“너. 여길. 어떻게.”

아틸라를 발견한 타란툴라가 더듬더듬 턱을 움직였다.

“어떻게 오긴.”

아틸라가 질주했다.

“달려서 왔지.”

파앙! 내리그어진 용아귀가 타란툴라의 다리 한 짝을 절단했다.

인간과 괴물의 목소리가 반씩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고, 분노한 타란툴라가 나머지 다리로 아틸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틸라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내 상대가 될 것 같냐.”

쇄도하는 다리를 아틸라는 상체를 비틀어 피했다.

“펀치! 물러나 있어! 도롱뇽 잘 감시하고!”

그 말과 함께 아틸라의 팔이 흐릿해졌다.

근육이 찢기는 파찰음을 발하며 또 하나의 잘린 다리가 공중으로 솟았다.

“너. 어떻게. 인간. 주제에.”

타란툴라는 당황했다.

맛 좋은 고품질 영양분 하나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나 싶었더니, 녀석은 자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다.

그리고 아틸라의 무위에 놀란 건 타란툴라만이 아니었다.

“뭐, 뭐야! 야만 미물이 저렇게 강했다고!”

도롱뇽이 휘둥그렇게 눈을 뜨며 외쳤다.

‘상당한 실력을 지닌 야만전사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약하디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중급 마귀 타란툴라를 압도하다니.

도롱뇽은 긴 혀를 뽑아 내둘렀다.

‘이거 뭐, 인간 중에는 상대 가능한 놈이 없겠는데.’

자신은 오랜 세월 지하마계(地下魔界)를 떠돌았다.

어쩌면 다크웜의 삶을 사는 동안, 중간계(中間界)는 많은 것이 변했는지도 모른다.

도롱뇽이 킬킬대며 웃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왜 그렇게 꽁무니를 쫓아다니나 했더니. 재미있군. 아주 잘근잘근 씹어줄 맛이 나는 야만 미물…….”

퍼억! 펀치의 따귀를 맞은 도롱뇽이 바닥을 굴렀다.

화가 난 도롱뇽이 대들었지만 역시나 수 초도 지나지 않아 펀치에게 제압됐고.

그러는 사이 타란툴라는 몇 개의 다리를 추가로 잃었다.

“뭐. 냐. 너는. 대체. 인간. 이. 맞는. 가.”

“말 더럽게 띄엄띄엄하네.”

아틸라는 놈의 턱을 베어 버렸다.

케에엑! 잘린 턱에서 녹빛 수액이 치솟았다.

녀석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퀴에에에엑! 키엑! 카아악!

언젠가부터 타란툴라는 인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차례로 다리를 잃어갈 뿐.

그리고 마침내 모든 다리를 잃은 타란툴라의 몸뚱이가.

쿠웅.

바닥에 무너졌다.

움직일 수 없게 된 타란툴라의 목을 아틸라는 지체 없이 베었다.

‘오 경험치.’

상당한 경험치가 들어왔다.

그리고 추가로.

[ 타란툴라의 수액(x1)을 획득했습니다. ]

‘좋아. 이제 도롱뇽이 원기만 흡수하면.’

아틸라는 도롱뇽을 불렀다.

그런데 녀석이 오지 않았다.

“어이. 도롱뇽.”

다시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아틸라는 고개 돌려 도롱뇽을 바라봤다.

아틸라를 마주 보는 도롱뇽의 얼굴 근육이 경련했다.

“……어이. 야만 미물.”

* * *

동굴 입구에 쪼그려 앉아 있던 바토리는 불온한 기운을 포착했다.

“느꼈느냐. 제롬.”

“네?”

제롬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바토리는.

‘아니야. 분명 느껴졌다. 아주 사악하고도 거대한…….’

그때였다.

그그그그그그……!

지면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롬이 외쳤다.

“느, 느껴집니다 스승님!”

대답은 없었다.

바토리는 이미 동굴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 * *

공동을 울리는 거친 진동에 아틸라의 눈빛이 변했다.

‘제롬의 신호인가?’

아니다.

제롬이라면 이렇게까지 강력한 공명으로 신호하진 않았을 거다.

이건 마치.

쿠쿵! 쿠쿠쿠쿵! 쿵!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천장이 흔들렸다.

아니, 흔들림을 넘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언갈 직감한 아틸라의 눈이 상태창을 좆았고, 마침내 그는 이 거대한 진동의 원인을 깨달았다.

‘그랬던 거군.’

타란툴라는 죽었다.

목이 잘리자마자 상당량의 경험치가 들어왔으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 기행귀 타란툴라의 목(0/1) ]

임무가 완료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눈앞의 타란툴라가.’

임무에서 제시한 ‘기행귀 타란툴라’가 아니라는 것.

아틸라는 웃었다.

그럼 그렇지.

처음부터 이렇게 간단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다면 곧.”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진짜가 오겠군.”

쿠쿠쿠쿠쿵!

대포알에라도 가격 당한 것처럼 벽이 무너졌다.

그 틈으로 보였다.

눈앞의 타란툴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두꺼운 어느 절지동물의 다리가.

그 순간 죽은 타란툴라의 턱이 바람 빠지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셨. 어. 엄마가. 오셨. 엄. 마.”

그 소리에 반응하듯 거대한 거미 다리가 파르르 진동했다.

아틸라는 용아귀의 옆면으로 시체의 머리를 후려쳤다.

주인의 영역을 시전해 강제로 도롱뇽을 불러들였다.

“히엑! 뭐, 뭐야! 가고 싶지 않은데 또 발이 제멋대로!”

“잔말 말고 처먹어라!”

“흐에에에엑!”

도롱뇽이 타란툴라의 시체를 향해 쩌억 입을 벌렸다.

어차피 여기까지 끌려온 거, 배나 채우자는 심산으로 도롱뇽은 힘껏 원기를 흡수했다.

그러나 아틸라의 의도는 달랐다.

그에겐 도롱뇽을 정식 환수로 등록시키는 것보다 급한 이유가 있었다.

시체를 내버려 두면.

‘어미가 달려와 포식할 테니까.’

거미는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다.

마귀 타란툴라 역시 마찬가지.

놈들은 새끼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제 몸도 식량으로 내줄 줄 아는 종이며.

만약 새끼가 죽으면.

다른 마귀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시체를 삼킨다.

퀴리릭! 퀴릭!

역시나 어미는 새끼의 목소리를 감지했다.

또 다른 거미 다리가 벽면을 부수며 등장했고, 그렇게 두 다리 사이 공간으로 거대한 머리통이 튀어나왔다.

까드득. 까드드드득.

놈의 눈동자가 아틸라를 향하고, 죽은 새끼에게 머물렀다가, 원기를 섭취 중인 도롱뇽에게 고정됐다.

“내. 아이.”

다크웜이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던 도롱뇽.

압도적인 천적의 등장에 녀석이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이어 소름 끼치는 비명이 공기를 찢었다.

“내! 아이이! 내! 아이르르르르르!”

“히에에에엑!”

도롱뇽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나, 나 다 먹었어! 얼른 돌려보내 줘!”

아틸라는 서둘러 상태창을 살폈다.

[ 회복률: 97% ]

‘젠장, 3퍼센트가 부족한 거냐!’

“빠, 빨리! 이 야만 미물……!”

아틸라는 도롱뇽의 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다.

“꾸에에에엑……!”

비명을 토하며 날아가는 도롱뇽을 펀치가 입으로 받아 냈다.

네 개의 거미 다리가 아틸라를 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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