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기행귀 (1)
사흘 전.
리모즈 마을의 견실한 청년 실뱅은 악귀처럼 비명을 지르는 약혼녀를 등에 업고 촌장의 집을 찾았다.
“촌장님! 스텔라가! 스텔라가……!”
촌장은 스텔라의 이상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
마침 브뤼노 백작가의 병사들이 마을을 조사하는 중이었고, 그들이 말했던 것과 동일한 증상이 스텔라에게서 보이고 있었으니까.
스텔라는 지하실에 감금됐다.
입엔 재갈이 물리고, 온몸이 밧줄로 포박당한 채로.
“초, 촌장님! 이게 무슨……!”
“조금만 기다리거라 실뱅. 곧 브뤼노 백작가에서 해결사가 올 거다.”
촌장은 실뱅에게 스텔라와 있었던 일을 물었다.
실뱅의 대답에 브뤼노 병사들은 확신했다.
‘아틸라 님이 말한 것과 동일한 내용.’
‘여자는 다크웜의 숙주가 되었다.’
아틸라의 말에 따르면, 다크웜의 숙주가 된 인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려면 반드시 숙주의 포식 행위를 막아야 한다.
스텔라의 몸을 구속하고, 입에 재갈을 물린 이유.
“사흘 안으로 돌아오겠소. 그때까지 절대 여자의 구속을 풀어서는 안 되오.”
아울러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자가 발생하면 그녀와 같은 조치를 취하라고 당부한 병사들은 서둘러 마을을 떠났다.
사건은 그날 밤 벌어졌다.
약혼녀의 안쓰러운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실뱅이 몰래 지하실을 찾아온 것.
“스텔라. 스텔라.”
실뱅이 속삭였지만 재갈이 물린 스텔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커다란 눈물방울을 흘리며 실뱅을 바라봤다.
“미안해……. 미안해 스텔라. 사흘만 견뎌 줘.”
실뱅은 촌장의 말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다만 사흘이나 음식을 주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말만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먹을 것을 가져왔어. 잠시만. 재갈을 풀어 줄게.”
실뱅은 조심조심 스텔라의 재갈을 풀었다.
스텔라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실뱅을 불렀다.
“실뱅……. 실뱅…….”
실뱅이 가져온 음식을 스텔라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어떻게든 먹여 보려 했지만 삼키는 족족 토해 낼 뿐이었다.
“배고파……. 배고파 실뱅…….”
“어, 어떡하지? 그, 금방 다른 걸 가져올게 스텔라. 혹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순간 스텔라가 무어라 입술을 달싹였다.
실뱅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응? 뭐가 먹고 싶다고?”
다시 물었지만 여전히 스텔라의 목소리는 작았다.
분명 오랜 시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이 쇠한 것이리라.
실뱅은 그녀의 입가에 귀를 가져갔다.
“다시 말해 봐 스텔라.”
이번엔 또렷하게 들렸다.
“너!”
아귀처럼 벌려진 입이 실뱅의 입술을 덮었다.
끔찍한 소음이 실뱅의 머릿속을 울렸다.
“끄아아악! 크릅! 크뤄러러럭……!”
입술과, 얼굴과, 머리통이 차례로 뜯기는 과정을 선명하게 감각하던 실뱅의 의식이 연기처럼 날아갔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핏물이 흥건한 바닥 위에,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 스텔라만이 애처로운 울음을 터뜨릴 뿐.
“배고파. 배가 너무. 고파. 실뱅.”
부드득, 툭, 스텔라를 포박했던 밧줄이 끊어져 내렸다.
몸을 일으킨 스텔라는 바닥에 고인 핏물로 목을 축인 뒤 지하실 문을 열었다.
“먹을 것. 먹을. 것이.”
계단을 오르고, 건물을 벗어나 가장 가까운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새근새근 꿈나라에 빠져든 가족이 있었고, 순식간에 그들을 씹어먹은 스텔라는 몸 안에서 꿈틀대는 낯선 기운을 포착했다.
“힘이. 강해졌어.”
그뿐만이 아니다.
“이상해. 배가. 아파.”
스텔라는 집 밖으로 나와 터벅터벅 걸었다.
“배가. 아파. 너무.”
이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파아아아! 나 너무! 아파! 실배애애애앵!”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주민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란이지?”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끼요오! 오호! 오호오옥!”
활처럼 상체를 젖히고 비명을 토해 내는 스텔라와.
투툭. 툭. 투트트트틋!
그런 그녀의 뱃속에서 대나무처럼 튀어나오는 여덟 개의 다리였다.
“뭐, 뭐 뭐야 저게……!”
“히이익!”
“괴물! 괴물이다!”
여덟 다리가 지면을 짚음과 동시에, 젖혔던 스텔라의 머리가 앞으로 떨구어졌다.
“먹이. 먹이가. 아주 많아.”
이미 그녀는 인간이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두 눈은 평소보다 십수 배는 커다래져 양쪽 관자놀이에 올라붙었고.
진득한 수액을 흘리는 입은 그런 눈보다 배는 길게 찢겨 있었다.
까드득. 까드드드득.
갈라진 턱이 움직일 때마다 소름 끼치는 소음이 울렸다.
그렇게 거미가 된 스텔라가.
“먹자. 먹이.”
먹잇감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 줘!”
“으힉! 힉! 으히이익……!”
공포에 얼어붙은 자들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도주하는 자들은 쏘아진 거미줄에 포획됐다.
그렇게 스텔라, 아니 거미는 게걸스럽게 주린 배를 채웠다.
“끄어어어억. 배불러.”
그러고는 마을 전체를 거미집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끝없이 중얼거리며.
“엄마. 곧. 오실 거야. 엄마가. 곧.”
* * *
그리고 사흘 뒤.
리모즈 마을의 변을 마주한 아틸라는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그랬군.’
성장형 마귀 타란툴라.
먹이를 섭취할 때마다 강해지는 녀석의 특성.
그러나 이곳에 존재하는 개체는 그것 외에 또 하나의 기이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원작자 김도현은 이런 기괴한 습성을 지닌 마귀들을 통칭해 이렇게 불렀다.
‘기행귀(奇行鬼).’
타란툴라는 알을 낳아 종족을 유지하고, 번식한다.
그러나 알에서 갓 깨어난 유체는 다른 마귀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인 나약한 존재.
그래서 몇몇 타란툴라, 다시 말해 기행(奇行)의 특성을 지닌 타란툴라들은 자신의 새끼를 급속도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냈다.
‘다크웜을 이용해서 말이지.’
타란툴라는 뛰어난 사냥꾼이다.
놈들은 거미집을 틀어 자신의 기척을 숨길 줄 알았고.
방심한 사냥감에게 줄을 쏘아 산 채로 포획하는 것에 능숙했다.
그리고 기행귀 타란툴라는.
그 모든 작업을 더욱 은밀하고, 정확하게 수행할 줄 알았다.
‘그렇게 확보한 다크웜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시키는 법 역시도.’
기행귀 타란툴라는 생포한 다크웜의 몸 안에 자신의 수액을 주입했다.
타란툴라의 수액은 강력한 독성 물질을 포함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다크웜을 죽게 만들 수 있지만.
기행귀 타란툴라는 다크웜이 죽지 않을 정도의 극소량을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독성을 견뎌 낸 다크웜은 이전보다 강력한 마귀로 진화했다.
‘다른 다크웜과 달리, 숙주의 몸에서 잠복기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진화한 다크웜의 몸속에 기행귀 타란툴라는 알을 낳았다.
이후 포획에서 풀려난 다크웜은 보다 강력해진 육체를 기반으로 천적들의 눈을 피해 숙주의 몸에 진입할 수 있었고.
그 이후의 상황이 바로.
‘이번의 리모즈 마을.’
아틸라는 확신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앞뒤가 들어맞는다.
할리가 연 소환진의 틈새로, 기행귀 타란툴라의 알을 품은 다크웜이 흘러들어왔다.
‘어쩌면 기행귀 타란툴라가 이 세계로 올라온 뒤 다크웜을 붙잡아 알을 주입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리모즈 마을을 찾았던 쟝의 부하들이 무사히 발랑스로 복귀하지 못했을 거다.
‘어미 타란툴라에 의해 완전한 둥지화가 이뤄진 상황이었을 테니.’
그럼에도 아틸라는 어미 타란툴라의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패영전의 원작자였고, 기행귀의 영악한 습성이라면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아틸라의 머릿속에 쟝이 말했던 ‘급한 볼일’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기행귀로구나 야만전사야.”
바토리의 목소리가 아틸라의 상념을 깨웠다.
“그래.”
아틸라는 바토리와 제롬에게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고는 일행을 이끌고 마을로 들어섰다.
퀴리릭! 퀴릭!
마을에 진입하자마자 어린아이 크기만 한 거미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틸라의 도끼질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벌써 알을 낳을 정도로 성장한 건가.”
다크웜과 숙주의 몸을 파먹고 자란 타란툴라의 성장 속도는 놀랄 만큼 빠르다.
부화한 지 고작 사흘 만에 어미가 된 타란툴라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데.’
아틸라는 죽은 새끼 거미의 크기를 가늠해 봤다.
이들 역시 자라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역시, 그런 건가.’
어미와 새끼 모두 예상치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이유는 뻔했다.
‘인간.’
마귀들의 입장에서 인간이란, 나약한 육체에 비해 양질의 영양분을 지닌 가축과도 같은 존재.
그러나 놈들이 섭취한 건 보통의 인간이 아니다.
‘강화된 다크웜에 감염된 인간.’
아틸라는 웃었다.
‘보통 영악한 놈이 아니로군.’
한편 제롬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스승을 돌아보고 있었다.
지난밤, 그녀에게서 배운 수업 내용이 타란툴라 사냥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걸 직감했으니까.
‘설마, 예견하고 계셨던 건가.’
“뭘 멍하니 쳐다보고 서 있는 게냐 애송이 제롬.”
바토리의 말에 제롬은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에 투지가 깃들었다.
‘그래. 나의 마법 세계를 정면으로 부딪쳐 볼 기회다.’
제롬이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아틸라는 쉴 새 없이 직진하며 거미들을 베었다.
[ 임시 환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적을 죽일 때마다 도롱뇽은 경험치를 획득했다.
그리고 녀석이 죽은 사체에게 달려가 원기를 흡수할 때마다 떠오르는 메시지.
[ 임시 환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극소량의 힘을 회복합니다. ]
[ 회복률: 3% ]
“오! 코딱지만큼이지만 힘이 회복되고 있다!”
물론 저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본래 지녔던 힘의 3퍼센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론 0.003퍼센트나 되려나.’
그럼에도 도롱뇽은 잔뜩 신이 난 듯했다.
아틸라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원기를 흡수했다.
[ 회복률: 5% ]
“오오! 좋아좋아! 캬캬캬!”
펀치는 최전방에서 아틸라를 도왔다.
후면에서 등장하는 적들은 제롬이 맡았다.
화르륵! 그의 손에서 불덩이가 쏘아질 때마다 거미들이 시커먼 잿더미가 되었다.
그 모습을 바토리가 지켜봤다.
‘제법이로구나. 애송이 제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이해하는 제자.
게다가 파브리스 때와는 달리, 제롬은 바토리가 인간이 되어 맞이한 최초의 제자였다.
그 이유 하나 때문에라도 제롬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제롬을 향해 도롱뇽이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하찮은 주문쟁이 미물 새끼야! 이렇게 홀라당 태워 놓으니 맛대가리가 없잖아! 퉤퉤!”
“앗!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래곤 님!”
“뭐야. 알고 보니 좋은 놈이었잖아!”
* * *
그로부터 수 시간 전.
리모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마을을 찾은 쟝은 눈앞의 광경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부릅뜬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온 마을을 뒤덮은 거미줄.
게다가 마을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없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색을 떠났던 병사들이 돌아와 말했다.
시체도, 핏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주민들이 통째로 사라졌다.
쟝의 시선이 발밑을 향했다.
‘설마…….’
지면 위로 길게 이어진 거대한 발자국.
무언가 크고 무거운 짐덩이를 끌고 간 듯한 저 흔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