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50화 (50/425)

050. 등급이 정해지지 않은 마귀

“기억하고 있다.”

바토리는 잠시 말을 끊었다.

“아주. 선명하게.”

“그때의 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공주였지. 그날 널 죽였어야 했어. 목숨을 걸고 널 지키려 했던 애송이 견습기사, 리베르 역시도.”

“그리하지 그랬느냐. 그랬다면 이뤄지지 않는 소망을 고대하며 이토록 긴 세월의 강물을 흘러오지 않았을 텐데.”

“소망? 아아, 그것 말인가.”

도롱뇽이 깔깔대며 웃었다.

“그렇군! 그래서 네가 저 하찮은 미물 새끼으에에에엑! 아, 아니 주인님을 따라다니고 있었던 거군……!”

찡그려진 도롱뇽의 눈이 아틸라를 향했다.

‘빌어먹을. 저거 뭐야 진짜!’

저 미물 야만인에게 저항하려 할 때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도망치려 하면 어느 순간 되돌아 달리고 있고, 맞먹으려 들면 견디기 힘든 통증이 머리를 찌른다.

‘무슨 가학적인 신의 가호라도 받는 녀석인가. 아닌데. 이건 뭔가 다른 종류야.’

도롱뇽.

아니,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드래곤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

‘그런 날 꼼짝도 못 하게 만드는 힘이라니. 젠장. 몸 상태가 이래서 그런가.’

도롱뇽의 눈이 번득였다.

‘그래. 힘을 되찾을 때까진 납작 엎드리자. 더러운 미물 새끼. 내 힘의 반의반만 되찾아도 그냥 확……!’

그렇게 아틸라를 노려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 도롱뇽이었다.

한편 아틸라는.

- 미물 새끼.

- 내 힘의 반의반만 되찾아도 그냥 확……!

- 시커먼 뼛가루로 만들어 주마!

- 킬킬킬킬킬…….

‘아직 덜 맞았네 저거.’

도롱뇽의 심언을 보며 한층 정신 교육을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펀치가 친구가 생겨 즐거운 모양이로구나.”

바토리의 말대로.

그녀가 일행에 합류한 뒤로 줄곧 두려움에 떨던 펀치는 도롱뇽과 앞발 공격을 주고받기 여념이 없었다.

마치 고양이 두 마리가 투닥거리는 듯한 모습.

“미, 미물 곰새끼!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아파! 아프다고!”

“아 진짜 제발 좀……!”

펀치가 장난으로 휘두르는 앞발이 도롱뇽에겐 꽤나 스트레스인 모양이다.

어찌 보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듯도 했고.

아틸라가 펀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더 때려. 펀치.”

끼아옹! 펀치가 신나게 앞발을 휘둘렀다.

꾸에에엑! 도롱뇽의 절규가 말 등 위를 울렸고.

그 모습을 보며 바토리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비, 빌어먹을! 웃지 마! 이 하찮은 미물……!”

그렇게 몇 시간 후, 땅거미가 질 무렵.

“여기서 쉬었다 간다.”

물가에 말을 세우며 아틸라가 말했다.

발랑스 마을에서 리모즈까지는 꼬박 하루 반나절을 달려야 한다.

바토리와 제롬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다 죽어 가는 얼굴 하고는.’

지금 바토리의 체력은 평범한 인간에 가깝다.

물론 여전히 웬만한 인간 마법사는 압도하는 마력을 지녔지만.

‘그것마저도 함부로 남용할 수는 없는 상태.’

그런데 바토리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의외의 행동을 했다.

“먼저 쉬거라 야만전사야. 나는 제롬과 할 일이 있구나.”

“할 일?”

“이쪽으로 오너라 제롬.”

아틸라의 물음을 뒤로한 채 바토리는 제롬과 후미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바토리가 제롬에게 마법을 전수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바토리는 뭔가 이상했다.

‘뭐, 내 알 바 아니지.’

아틸라는 나무뿌리에 머리를 기대 누웠다.

눈을 감으니 시원한 바람의 손길이 얼굴을 간질인다.

‘좋군. 이런 것도.’

야영하며 이렇게 편안히 눈을 감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런 아틸라의 팔을 펀치가 베고 누웠다.

도롱뇽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 흉계를 꾸미려는 듯했지만 펀치의 따귀를 맞고 얌전히 웅크렸다.

“그게 아니니라. 자, 다시 해보거라.”

바토리의 어조는 차가웠다.

평소엔 제롬이 바토리에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 조르는 식이었는데.

오늘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바토리가 되레 제롬을 채근했다.

견디다 못한 제롬이 두 손을 들었다.

“스, 스승님. 조금만 쉬었다가……!”

“네게 그럴 여유가 있었더냐.”

바토리의 말과 눈빛에서 무언갈 느낀 제롬이 표정을 바꿨다.

힐끗 아틸라 쪽을 돌아본 제롬은 그가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옅은 한숨을 뱉었다.

“눈치채고 계셨던 겁니까.”

“어린 제자의 머릿속을 스승이 몰라서야 되겠느냐.”

제롬은 말없이 스승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윽고 나온 목소리는 지금까지의 것과는 달랐다.

“이곳은, 제가 머무를 장소가 아닌 듯합니다.”

제롬 아그리피나.

그는 처음부터 샤를과 아틸라 사이에서 고뇌했다.

아니, 사실 제롬은 아틸라보다는 샤를에게 강한 끌림을 느꼈다.

‘아틸라는 강하다.’

‘그러나 더욱 강렬한 제왕적 카리스마를 내뿜는 사내는 샤를 아인하르트다.’

아틸라는 크라켄을 상대로 독불장군처럼 싸웠다.

물론 중간중간 동료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의 전투 방식은 목마를 이끌고 만났던 첫 대면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샤를은 달랐다.

‘방패병! 막아라!’

‘피핀과 카스피가 옆을 친다!’

‘오토는 세 기사와 함께 제롬을 지켜라!’

‘거기 곰!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동료와 부하들을 이끌며 싸웠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보다도 최전방에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제롬이 다른 무엇보다도 샤를에게 감화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도살자!’

아틸라를 공격하려는 크라켄의 채찍을 대신 맞고, 팔이 절단됐을 때.

‘샤를!’

물론 대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서 적절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녹마탑’이라는 작은 세계에 머물러 있던 제롬이 세상 밖으로 나와 마주한 광경 중, 압도적으로 강렬한 인상이 되어 뇌리에 각인됐다.

이어 팔을 치료한 샤를이 아틸라와,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과 함께 크라켄을 균열 속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제롬의 전신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정말로…… 대단한 사내다.’

그런 제롬이.

샤를이 아닌 아틸라를 선택한 이유.

그건 바토리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샤를 아인하르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는 아틸라가 아닌 바토리의 뒤를 따랐다.

그녀에게 마법을 전수받았다.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 샤를 아인하르트의 첨예한 칼날이 될 수 있도록.

그의 길을 보좌할 수 있도록.

그런데 그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틸라에겐, 샤를 아인하르트와는 다른 신비로운 힘이 존재한다.’

그게 무언지는 제롬도 몰랐다.

다만 스승인 바토리 역시도 자신이 감각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힘에 이끌려 그와 동행하는 것이리라 짐작할 뿐.

그리고 아틸라의 일행이 되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제롬은.

스승과 마찬가지로, 아틸라에게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이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現身)한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아틸라는.’

이 세계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아틸라가 지닌 힘은 문자 그대로 ‘불가상성’의 것.

육체의 힘도 아니고.

신력도 아니었으며.

마법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아틸라가 비록 봉인된 상태에 불과할지언정 신의 가장 강력한 피조물인 드래곤마저 포획했을 때.

제롬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틸라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런 그의 존재는 이 세계에 다시없을 축복이 될 수 있겠지만.

역으로 재앙이 될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오직.

“더 이상 내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바토리의 음성은 낮지만 날카로웠다.

앞서 말한 대로, 그녀는 제롬의 모든 고뇌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제롬도 그것을 느꼈다.

“아닙니다.”

또렷하게 이어 말했다.

“스승님의 마법 세계는, 제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있습니다.”

제롬은 흔들림 없는 얼굴로 바토리를 바라봤다.

미성숙한 소년의 것에서, 어느새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사내의 것으로 변모한 눈빛.

바토리는 미소했다.

애송이 제롬.

너는 나로 하여금 언제나 꼬마 파브리스를 떠올리게 하는구나.

허나 너는 또한.

‘그 아이보다 더욱 높은 곳으로 날아가겠지.’

제롬의 눈부신 재능.

그건 스승인 바토리,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제롬은 이미 자신만의 마법 세계를 구축했다.

“바로 떠날 생각이더냐.”

그런 제롬에게 남은 건.

“아닙니다. 스승님께는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요.”

자신의 마법 세계를 더욱 정교하고, 또 견고하게 가다듬는 일.

아울러 스승인 자신에게 남은 일이라면.

“흐응. 그렇단 말이더냐.”

자신만의 세계를 향하려는 아기새를 마지막까지, 더욱 혹독하게 단련시키는 것.

“이제 충분히 쉬었구나. 애송이 제롬.”

바토리의 입매가 날카로운 호선을 그렸다.

“남은 수업은 더욱 고될 것이야.”

* * *

이튿날.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바토리와 제롬을 아틸라는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쯔쯔. 밤새 오바질 하더라니.’

바토리와 제롬은 한숨도 자지 않고 수업에 열중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는 아틸라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고, 오히려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다만 우려되는 건.

‘바토리가 제롬을 너무 강하게 만들면 안 되는데.’

제롬은 원작에서 대마법사의 칭호를 획득한 독보적인 존재.

그런 그가 예정에 없던 바토리의 제자가 되었다.

원작보다 강하게 성장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왠지 조만간 똥 치우러 다니게 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그러는 사이 일행은 목적지에 도달했고.

더 이상 마을이라 부를 수 없는 참혹한 현장을 마주했다.

“스, 스승님……!”

핏빛으로 변한 마을.

그 위를 뒤덮은 끈끈한 액체.

길고 촘촘한 그물 형상을 하고 있는 그것은.

‘다크웜이 아니다.’

아틸라가 이곳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다크웜의 소행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바토리가 속삭였다.

“야만전사야.”

“타란툴라.”

그렇다.

리모즈 마을은 타란툴라의 둥지가 되었다.

제롬이 말했다.

“타란툴라라면……!”

아틸라는 마을 앞으로 다가가 타란툴라의 거미줄을 살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것은.’

타란툴라에겐 다른 마귀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패영전에 등장하는 마귀, 악마, 몬스터, 그 밖의 괴이들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등급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자면.’

다크웜은 하급 마귀종.

녹마탑의 마법사 크리스또프가 소환했던 거대 목마는 중급 마귀종.

그리고 툴루즈 백작령을 해수에 잠기게 만들 뻔했던 무시무시한 괴물 크라켄은 상급 마귀종이다.

그에 반해 타란툴라에겐 등급이 없다.

놈들은 먹이를 포획하고, 섭취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점점 강화시킨다.

다시 말해 타란툴라는.

‘등급이 정해지지 않은 마귀.’

즉, 성장형 마귀종이다.

그리고 아틸라가 판단한 녀석의 등급은.

‘중급. 그중에서도 꽤나 강력한.’

그런데 이상하다.

쟝의 부하가 리모즈 마을의 변을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곳에 타란툴라는 없었다.

다크웜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여자 하나가 지하에 감금됐고, 그걸로 끝이었으니까.

‘심지어 사망자도 존재하지 않았지.’

그런데 고작 사흘 만에 마을이 이렇게까지 초토화됐다는 것은.

아틸라의 머릿속에 확신에 가까운 가설이 세워졌다.

그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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