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봉인의 날개 (3)
날개가 봉인됐다는 점.
도마뱀을 닮은 생김새.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드래곤.’
그렇다.
이 녀석은 드래곤이다.
- 뭐지! 어떻게 나의 정체를 간파한 거야!
드래곤은 패영전의 반신 중 가장 신에 근접한 존재.
이놈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개체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통칭, ‘죽음의 숨결’.
- 젠장. 다크웜 따위 미물로 썩어가다 이제야 부활하나 싶었더니.
- 놔라! 이거 놔라 인간!
“싫은데?”
- 응?
- 뭐야.
녀석이 아틸라와 눈을 맞췄다.
- 설마 대답한 건 아니겠……
“맞아. 대답한 거.”
- …….
- 히에에에엑!
- 뭐냐! 넌 뭐냐! 인간!
“뭐긴.”
[ ‘봉인의 날개’를 환수로 등록합니다. ]
[ 환수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
떠오르는 이름을 마음으로 읊었다.
“네 주인이지.”
[ 환수가 이름을 얻었습니다. ]
[ ‘도롱뇽’이 환수로 등록됩니다. ]
- 응? 어어어어어? 이거 뭐야.
- 내 이름이 위대하고 지고하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아니라.
- 도롱뇽?
그때였다.
[ 시스템 오류 ]
[ 도롱뇽의 환수 등록이 취소됩니다. ]
‘응?’
[ 포획한 환수의 봉인이 완전히 해제되지 않았습니다. ]
[ 환수명 ‘도롱뇽’이 입력 취소됩니다. ]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임시 환수로 등록됩니다. ]
‘임시 환수는 또 뭐야.’
[ 임시 환수는 주인에게 귀속되지만, 제한 시간 안에 정식 환수로 등록시키지 못하면 귀속이 해제됩니다. ]
‘제한 시간?’
[ 제한 시간: 14일 23시간 59분 59초……. ]
‘그렇군. 지금부터 정확히 보름인가.’
[ 임시 환수를 길들이기 위한 스킬이 제공됩니다. ]
[ 주인의 영역 ]
[ 정신 교육 ]
두 스킬의 세부 내용을 확인한 아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라면 보름 동안 녀석을 구속해 두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제한 시간, 그리고 스킬 제공.’
그렇다면 다음 차례는.
[ 돌발 퀘스트! ]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봉인을 해제하고 정식 환수로 등록하십시오. ]
[ 퀘스트 완료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역시.’
예상대로다.
이것으로 두 번째 돌발 퀘스트.
첫 번째는 롤랑의 모습으로 변신했던 리베르를 쓰러뜨리고 진짜 롤랑을 찾아내라는 내용이었지.
[ 봉인을 해제하려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지녔던 힘의 일부를 되돌려야 합니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녀석은 어떠한 사건으로 본래 지녔던 힘을 잃고 마계로 떨어졌다.
다크웜 신세로 전락해 오랜 세월 마계 밑바닥을 기던 녀석은 우연찮게 할리가 연 소환진을 발견했을 거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세계로 진입했겠지.’
성주 로돌프의 몸에 기생한 것 역시 본래의 힘을 되찾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이었을 거다.
물론 그렇게 인간을 삼켜 힘의 일부라도 되찾으려면 상당한 희생자가 필요할 터.
‘내버려 뒀으면 엄청난 사상자가 나올 뻔했군.’
- 오 역시.
- 이몸의 이름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로 돌아왔군.
- 암암. 도롱뇽이라니, 그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역시 시끄럽군.’
저 수다쟁이 녀석의 힘을 되찾는 방법이라면 뻔하다.
다크웜과 동일한 방식.
‘다른 생명체의 원기(元氣)를 빨아들이는 것.’
그렇다고 멀쩡한 인간을 제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어지간한 인간이나 짐승의 원기로 놈의 힘을 되찾기엔 너무나도 많은 개체가 필요할 거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녀석을 따라온 다크웜들이 있겠지.’
제아무리 다크웜이 되었어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용족.
놈에게 이끌린 다크웜들이 상당수 이쪽으로 넘어왔을 터다.
‘혹은 다른 마귀종들까지도.’
아틸라는 웃었다.
인간이나 짐승보다는 마귀의 원기가 월등한 법.
훨씬 적은 개체로 목표량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
‘조금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죽음의 숨결,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환수로 부릴 수 있다면 감수할 가치는 충분하다.
환수로서 녀석의 힘을 과연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만약, 언젠가.
‘100퍼센트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면.’
아틸라는 관조자 시절의 바토리보다 강력한 아군을 손에 넣게 된다.
‘어쩌면 녀석의 힘으로 요정섬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샤를을 통하는 것과 별개로 요정섬을 향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 아틸라는 만족의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말했다.
“잠시 들어가 있어라. 도롱뇽.”
- 자, 잠깐! 뭐 하는 거히에에에엑!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시야가 시커멓게 변했다.
* * *
일행이 발랑스 마을에 머무른 지 사흘이 지났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따라온 다크웜이 근방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결론은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 제한 시간: 11일 21시간 37분 23초……. ]
“그리 바쁘게 움직일 땐 언제고, 이리도 한가로이 시간을 죽이는 게냐.”
밤낮으로 식당에서 술병을 들이켜는 아틸라를 보며 바토리가 말했다.
쟝이 마련해 준 이 숙소의 술맛은 지구의 소주와 비슷했다.
‘김치찌개 먹고 싶다.’
“물론 네가 정말로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다.”
“알면서 왜 물어봐.”
“나도 한 잔 따라주겠느냐.”
바토리가 왠지 모를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잔을 내밀었다.
저게 또 귀여운 척이네.
‘무슨 소주 광고라도 찍나.’
그렇게 생각하며 아틸라는 바토리의 잔에 술을 채웠다.
“고맙구나.”
잔을 들이켠 바토리의 두 뺨에 홍조가 맺혔다.
그녀의 눈이 배시시 가늘어졌다.
“다 봤느니라.”
“뭐?”
“다 보았단 말이다.”
“뭘.”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바토리가 눈을 흘겼다.
뭐야. 대체 뭔데.
“끝까지 시치미를 뗄 셈이더냐.”
“알아듣게 말하든가, 취했으면 가서 잠이나 자라.”
“흐응? 날 뭘로 보는 것이더냐. 내가 이깟 술 한 잔에 취하리라 여긴단 말이더냐.”
아틸라는 물끄러미 바토리를 쳐다봤다.
바토리도 아틸라를 바라봤다.
속삭이듯 말했다.
“……할리가 소환한 스켈레톤 군단과 싸울 때 말이다.”
그게 뭐.
“화를 내주지 않았더냐.”
“화를?”
그의 되물음에 바토리는 수줍게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틸라는.
‘시발. 뭐라는 거야 대체.’
여전히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아, 아틸라 공!”
여관 문을 박차고 들어온 쟝이 소리쳤다.
“리모즈 마을에서 아틸라 공이 예견하셨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토리의 눈빛이 변했다.
“야만전사야.”
“출발한다. 제롬 깨워.”
끼아옹!
일행은 서둘러 짐을 챙겨 여관 문을 나섰다.
그런 그들에게 쟝은 마을에서 가장 날랜 말 세 필을 골라 줬다.
“아틸라 공은 브뤼노 백작령의 은인입니다.”
쟝은 언제고 다시 백작령을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급한 볼일이 있어 여정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물론 아틸라는 그의 동행을 원하지 않았다.
“이제 됐으니 돌아가시오.”
길잡이를 맡은 쟝의 부하도 발랑스 마을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되돌려 보냈다.
일행만 남게 되자 아틸라는 펀치의 인벤토리에서 도롱뇽을 꺼냈다.
- 비, 빌어먹을! 날 이딴 곰새끼 입안에 처박아 놓다니!
“그냥 입으로 말해라.”
“비, 빌어먹을! 날 이딴 곰새끼 입안에 처박아 놓다니!”
“같은 말 다시 할 필요는 없고.”
아틸라는 도롱뇽을 말 등 위에 올렸다.
손을 떼자마자 녀석이 뛰어내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이렇게나 허술하다니! 네놈! 내가 힘을 되찾기만 하면 뜨거운 통구이로 만들어 주으어어어?”
도망치던 도롱뇽이 다시 뒤돌아 달려왔다.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이유는 아틸라만 알았다.
[ 주인의 영역 ]
[ 임시 환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강제로 영역 안에 불러들입니다. ]
“으아아아! 이거 왜 이래! 저절로 발이 움직인다아아!”
그러나 도롱뇽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들 달리는 말을 따라잡을 순 없었고.
“자, 잠깐! 잠깐 멈춰!”
“이봐! 멈춰! 멈추라니까!”
“야 이 미물 새끼야!”
고래고래 소리치던 도롱뇽은 결국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제서야 아틸라가 말머리를 돌렸다.
“또 도망칠 거냐.”
도롱뇽은 꿈틀거림으로 답을 대신했다.
* * *
밤의 야영지.
모닥불을 등지고 쪼그린 도롱뇽은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흑……! 흐흑……! 흑……!”
거품을 물고 쓰러졌던 녀석은 이후 몇 차례 추가 도주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도롱뇽은 결국 아틸라에게 무릎 꿇었다.
‘제, 제발 이제 그만! 주, 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고는 저리도 구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흐흑……! 망할 아버지도 날 이렇게까지 굴리진 않았는데…… 흑흑……!”
아틸라는 그 울음소리가 듣기 싫었다.
“펀치.”
펀치의 귀가 쫑긋해지는가 싶더니 도롱뇽에게 다가갔다.
퍼억! 따귀를 날렸다.
“꾸에에엑……!”
도롱뇽이 성을 내며 반격했다.
“이 하찮은 곰새끼가!”
하지만 도롱뇽은 펀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항복! 항복이라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펀치의 동그란 앞발에 깔려 항복을 외쳐댔으니까.
“그놈 참. 시끄러운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도롱뇽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이 목소리는.”
고개 돌린 도롱뇽의 입이 쩍 벌어졌다.
“너! 너너너! 설마 바토리 에르제베트?”
“흐응. 이제야 알아본 것이더냐.”
“네놈이 감히이이이!”
도롱뇽의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그러나 요란한 발버둥과는 별개로 녀석은 펀치의 앞발 아래서 꼼짝도 하지 못했고.
“빌어먹을! 빌어먹을! 날 요 모양 요꼴로 만든 원수를 코앞에 두고도 복수하지 못하다니!”
눈을 치뜨며 외쳤다.
“리베르 녀석은 어디에 있냐!”
“여깄지.”
아틸라가 품 안에서 검은 구슬을 꺼냈다.
도롱뇽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구, 구슬이 됐다고? 그 리베르 파테르가? 그걸 고작 인간인 네놈이 해냈……!”
“뒤질라고. 말이 짧네?”
[ 임시 환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정신 교육합니다. ]
“꾸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던 도롱뇽이 혀를 빼물고 기절했다.
제롬이 입을 열었다.
“실은…… 그간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무엇이 말이더냐.”
“스승님의 정체 말입니다.”
제롬이 바토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녀가 한때 파브리스의 스승이었다는 것.
보이는 모습과 달리 상당한 세월을 살아온 마법사라는 것.
왼팔의 문신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겨 있다는 것 정도.
“궁금한 게 있으면 물으려무나.”
“스승님께서 저 드래곤을 다크웜으로 만드신 겁니까?”
도롱뇽이 워낙 시끄럽게 떠들어댄 탓에 제롬도 녀석이 드래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유명한 재앙의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라는 것은 몰랐지만.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제롬은 꿀꺽 침을 삼켰다.
스승이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드래곤마저 쓰러뜨렸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드, 드래곤 슬레이어. 아니지. 죽인 건 아니니까…….’
드래곤.
신의 피조물 중 가장 강력하고 강대한 마법을 사용하는 종(種).
마법을 익히는 자라면 그 누구도 동경해마지않는 존재.
‘그런 드래곤을 제압하고 다크웜으로 변이 시키다니.’
제롬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때 기절에서 깨어난 도롱뇽이 킬킬대며 말했다.
“……꼴좋군 바토리. 네놈도 필멸자 신세로 전락한 건가.”
“난 원래 필멸자였느니라.”
“그랬지. 네놈은 하찮은 미물 중의 미물, 인간이었으니까.”
“기억하고 있었느냐.”
도롱뇽의 눈에 광기 가득한 비소가 담겼다.
“잊었나? 네 아비가 피땀 흘려 세운 왕국을 한 줌 잿더미로 만든 게 이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