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봉인의 날개 (2)
발랑스 마을의 성주 로돌프.
그는 며칠 전 기묘한 생명체를 발견했다.
‘이게 뭐야. 지렁이인가?’
아니다.
지렁이라기엔 너무 검고, 또 길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몸에서 시커먼 연기까지 내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꺼림칙한 기분이 든 로돌프는 검을 뽑아 죽이려 했다.
그런데.
‘어? 어디로 갔지?’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살피던 로돌프는 머지않아 찾는 것을 포기했고.
‘재빠른 놈이로군.’
그 순간 옷깃을 타고 오른 그것이 로돌프의 귓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로돌프가 쓰러졌다.
그 소리에 성 안의 사람들이 부랴부랴 달려왔다.
‘성주님! 성주님!’
‘이, 이를 어째……!’
몇 시간 뒤 깨어난 로돌프는 다른 사람 같았다.
총기 넘치던 눈빛은 퀭하게 변했고.
검술로 다져진 근육질 몸은 물렁물렁 비곗살로 바뀌었으며.
배는 임신이라도 한 것처럼 불룩 튀어나왔다.
‘다, 당신…….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아, 아버지!’
놀란 가족들이 의원을 불렀지만.
그 역시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시끄러우니 그만 좀 해.’
가족들의 성화에 로돌프가 말했다.
귓속이 윙윙대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아내와 어린 아들을 으적으적 씹어 삼킨 뒤에야 로돌프는 소음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끄어억……. 이제 조용해졌네.’
그러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견디기 힘든 허기가 로돌프의 뱃속을 두드렸다.
‘먹을 것. 먹을 것이…….’
방금 먹은 아내와 아들의 맛이 떠올랐다.
‘맛있었어. 엄청.’
그러나 마지막 남은 이성 한 조각이 인간을 먹어선 안 된다며 경고했다.
로돌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안 되지?’
의문은 남았지만 경고를 따랐다.
그 정도 여유는 있었다.
브뤼노 백작의 명으로 차출한 말이 마구간 한가득 모여 있었으니까.
‘이건 그리. 맛있지. 않군.’
그날 세 마리의 말이 로돌프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로돌프는 자신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먹으면. 강해져?’
며칠이 지나 마구간의 말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미리 명을 내려두었기에 말먹이 담당 농노를 제외하면 그곳에 접근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던 중 말이 자꾸 사라진다고 보고하는 농노를 홧김에 먹어치운 로돌프는 깨달았다.
‘말보다. 인간을 먹으면. 더 강해져.’
머릿속 경고도 잊은 채 로돌프는 마을로 내려갔다.
‘인간. 인간을. 먹어야 해.’
때마침 기사와 병사들은 좀비 사건의 용의자를 붙잡는다며 출타한 참이었다.
로돌프는 성 근처 아무 집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꺄아악……! 괴, 괴물……!’
‘엄마! 엄마아……!’
‘맛있어. 너무 맛. 있어.’
주린 배를 채우고 성에 돌아왔을 땐 이전보다 배 이상은 강해진 자신을 감각할 수 있었다.
마력을 내뿜는 신묘한 검을 만난 건 그때였다.
‘이건. 뭐. 지.’
좀비 사건의 용의자들에게서 압수한 무기.
그것들을 병사의 손에서 뺏어든 로돌프는 어기적어기적 2층으로 올라갔다.
‘서, 성주님!’
‘저 무거운 도끼를 저리도 가볍게……!’
방에 돌아오자마자 나머지 무기는 대충 구석에 던졌다.
의자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검을 만졌다.
‘대단해. 이 검이 내뿜는. 마력.’
그러던 중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이상한 녀석들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으응? 어떻게 너희들이 여기까지 왔느냐?”
“걸어서.”
“뭐라?”
“내 검이나 내놔라. 빌어먹을 자식.”
말하는 것을 보니 신묘한 검의 주인인 듯했다.
로돌프는 검을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건강한 먹잇감을 보자마자 입가에 침이 고였다.
퀴리리리릭!
로돌프의 혀가 길게 뻗어나갔다.
그가 먹이를 사냥할 때마다 사용했던 기술.
“뭐야. 벌써 괴물 다 됐네.”
먹잇감은 혀 공격을 능숙하게 피했다.
녀석의 얼굴이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퍼걱! 눈앞이 암전 됐다.
턱과 혀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끄에에에에……! 내 혀어! 내 터어어억!”
아틸라의 주먹은 로돌프의 턱 아래를 강타했다.
그 덕에 그의 턱뼈가 산산이 부서졌고, 강제로 다물어진 입은 내민 혀를 깔끔하게 절단했다.
“혀 잘려도 말은 잘 하네.”
아틸라가 피식 웃으며 로돌프의 머리채를 잡았다.
뺨을 후려갈겼다.
“끄에에……! 끼에에에엑……!”
쏟아지는 핏물과 함께 로돌프가 바닥을 굴렀다.
발치에 떨어진 무휼을 아틸라가 주워들 때쯤 기사와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서, 성주님!”
“네놈들이 어떻게!”
“잡아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마을 입구에서 아틸라와 언쟁을 벌였던 기사대장도 보였다.
아틸라는 웃었다.
이 자리에 꼭 와야만 하는 관객이 등장했으니까.
‘좋아. 그럼 이제.’
저 빌어먹을 성주 자식의 정체를 밝히고 좀비 사건을 덮어씌우면 일행은 자유의 몸이 된다.
그때 성주의 혀가 다시금 뻗어 나와 기사대장에게 쇄도했다.
‘미친놈이……!’
아틸라는 더러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붙잡아 당겼다.
또다시 혀가 뽑힌 성주가 분수처럼 피를 내며 고꾸라졌다.
“뭐, 뭐지 지금 건……?”
“성주님이……!”
기사와 병사들은 보았다.
그러나 조금 전 광경을 선뜻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성주가 용아귀를 입에 물고 서기 전까지는.
“서, 성주님 얼굴이!”
“괴물! 괴물이다!”
이제 로돌프의 외모는 인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덩치는 두 배 이상 커졌고, 짐승처럼 네 발로 몸을 지탱했다.
심지어 얼굴은 점점 파충류처럼 변해 갔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기사대장이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대영주 브뤼노 백작의 아들, 쟝 브뤼노였다.
‘목격자론 이만한 녀석이 없지.’
퀴리리리릭!
쇄도하는 혀 공격을 회피한 아틸라가 성주의 복부를 가격했다.
꾸에엑, 성주가 뱃속의 것을 게워 냈다.
그 안엔 마을에서 잡아먹은 사람들의 시체도 섞여 있었다.
“히익!”
“으아아아아!”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기겁할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저저저 저것은……!”
시체들이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없으면 팔로, 팔다리가 모두 없으면 기를 쓰고 몸통을 세워 올렸다.
누군가 소리쳤다.
“조, 좀비다!”
“좀비! 좀비를 만들어 낸 건 성주였어!”
그사이 재생한 성주의 혀가 병사 하나를 휘감았다.
순식간에 성주에게 끌려가려는 병사를 아틸라가 몸을 날려 구했다.
화가 난 성주의 입에서 주룩주룩 침이 흘렀다.
“배고파. 배고프다. 나.”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괴기스러운 광경에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기사대장 쟝이 다른 기사들과 함께 성주를 공격했지만 차례로 바닥을 뒹굴 뿐이었다.
“크윽……! 저런 괴물이……!”
“너무 강합니다 대장……!”
아틸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밑밥은 제대로 깔렸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아틸라의 시간.
무휼을 갈무리한 아틸라가 용아귀를 쥐어들었다.
“모두 물러나시오.”
“다, 당신 혼자 저걸 처리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틸라는 쟝의 말을 무시했다.
로돌프에게 달려들었다.
“너. 이번에야말로. 먹는다. 맛있게.”
녀석의 등에서 두 개의 팔이 돋아났다.
사마귀의 앞다리를 닮은 그것이 채찍처럼 아틸라에게 쏘아졌다.
“위, 위험해!”
쟝의 우려와 달리 아틸라는 그것을 말끔히 세로로 쪼갰다.
반대편 팔은 가로로 절단했다.
“키에에엑!”
너덜대는 팔을 회수하며 로돌프가 뒤로 물러났다.
바토리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이면 되겠구나.’
시체에 깃든 마력을 회수하자 좀비처럼 움직이던 시체들이 후드득, 바닥에 널브러졌다.
로돌프가 시체를 토해 내자마자 바토리는 마법으로 그것을 움직였던 것.
심지어 맨 처음 좀비라 소리친 이는 제롬이었다.
‘조, 좀비다!’
그의 외침은 병사들로 하여금 눈앞의 시체들을 좀비라 단정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아틸라가 본격적으로 성주를 상대하며 주변의 시선이 둘에게로 좁혀졌다.
시체의 역할은 끝났다.
‘무슨 부부사기단 같군.’
바토리와 제롬을 보며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움츠린 로돌프를 향해 용아귀를 뻗었다.
“끄에에……! 너. 인간. 맞냐! 너무. 강하다!”
아틸라의 무력에 로돌프는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쟝을 비롯한 기사와 병사들 역시 석상처럼 굳어진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 말도 안 되는……!”
“그렇다면 저자의 말대로…….”
“국경 마을의 좀비를 해치운 게 정말 저들이었단 말인가……!”
쟝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버지 이름에 부끄러운 짓을 했다. 브뤼노 백작령의 은인을 환대는 못할망정 감옥에 처넣다니……!’
비장한 얼굴로 쟝이 소리쳤다.
“아틸라 공! 부디 녀석을 쓰러뜨려 주시오!”
퍼걱! 용아귀가 성주의 몸통 깊숙이 꽂혔다.
어느새 여섯 개로 늘어난 다리를 차례차례 뽑았다.
그때마다 성주는 짐승처럼 울부짖었지만 아틸라는 표정 한 번 바꾸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너…… 너. 진짜. 뭐야. 무서워.”
모든 팔다리를 잃은 로돌프가 최후의 수단으로 혀를 쏘았다.
기다렸다는 듯 아틸라는 그것을 붙잡아 상대의 몸을 포박했다.
“키힉! 끄학! 꾸르륵……!”
몸이 조여서인지 아니면 혀가 당겨서인지, 녀석은 괴상한 신음을 내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무서워.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성주 로돌프.
기사와 병사들은 그 모습에 아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로돌프가 아니라는 것을.
‘로돌프는 이미 잡아먹혔다. 육체도. 정신도.’
로돌프를 포식한 것은 ‘다크웜(Dark Worm)’이라 불리는 마귀종.
녀석들은 인간이나 짐승, 몬스터, 심지어 같은 마귀종에게도 기생해 몸을 빼앗는다.
그리고 이계에 존재해야 할 녀석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라면.
‘사령술사 할리.’
할리가 다크웜을 소환했다.
혹은 할리가 개방한 소환진의 틈새로 다크웜 스스로가 이쪽으로 넘어왔다.
‘한 마리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이상한 점은.
녀석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을 한다는 것.
‘원래 다크웜은 상당 시간 숙주의 몸 안에 숨어 있는데.’
말하자면 잠복기가 길다는 거다.
그러나 할리의 등장은 최근이었다.
벌써 숙주의 정신을 잡아먹고 자유롭게 육체를 가동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저거 혹시…….’
용아귀를 놈의 목에 겨눴다.
살려 달라 애원하는 녀석의 눈을 보며 심안을 시전했다.
아틸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득템을.’
벌려진 입안에 손을 넣었다.
어깨까지 빨려 들어간 아틸라의 팔이 놈의 몸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저, 저거 뭐 하는 겁니까 스승님, 우욱……. 우웨엑……!”
“토하려거든 저리 가서 하거라.”
녀석은 로돌프의 몸속에서 이리저리 도망쳤다.
하지만 심안이 발동된 아틸라의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었다.
- 키에엑! 빌어먹을 잡혔다!
아틸라는 녀석을 끄집어냈다.
검은 지렁이처럼 보이는 그것은 아틸라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자 휘리릭 모습을 바꿨다.
‘역시.’
바뀐 녀석의 몸은 자그만 도마뱀 형상이었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 ‘봉인의 날개’를 포획했습니다. ]
[ 새로운 환수로 등록하겠습니까? ]
[ Y/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