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3화 (43/425)

043. 사령술사 (1)

‘바토리 정도의 마법사가 아닌 다음에야, 크라켄을 통째로 균열에 집어넣는 건 불가능.’

아틸라는 크라켄을 최대한 잘게 토막 낼 생각이었다.

물론 녀석의 재생 능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균열의 힘이 놈의 회복을 더디게 하고 있다.’

균열은 점점 더 강한 힘으로 크라켄과 해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크라켄의 상처에서 나오는 피마저 흡수했고, 자연스레 크라켄의 재생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건 그렇고 바토리 녀석. 저런 엄청난 균열을 소환해낼 줄이야.’

균열.

그것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법사 세계의 정점에 서 있다는 증거다.

‘리베르가 균열을 소환할 수 있는 이유 역시, 바토리의 파트너이기 때문이지.’

거기에 더해 바토리는 주위의 모든 걸 흡수하는 것이 아닌.

크라켄과 해수만을 선별해 빨아들이는 특별한 균열을 생성했다.

‘덕분에 토막 내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겠군.’

샤를과 자신의 무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다만 시간이 발목을 붙잡았다.

[ 남은 시간 00:37 ]

‘30초 정도만 더 있었어도.’

그때였다.

[ 환수, 펀치가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응?’

[ 동료, 카스피가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 동료, 오토가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이 녀석들이 물러나 있으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 동료, 피핀이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 동료, 제롬이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피핀과 제롬까지?’

고민할 틈 같은 건 없었다.

촤르르륵! 카스피의 사슬낫이 크라켄의 피부를 잡아 뜯었고.

“도와주러 왔어! 아틸라!”

오토의 검이 너덜대는 살갗을 베었다.

“나, 나중에 혼나더라도 일단 도와야겠수! 그러니 죽지 말고 나 좀 꼭 혼내 주쇼!”

피핀과 제롬은 샤를과 연계하여 더욱 막강한 화력을 내뿜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 환수, 펀치가 스킬을 개방할 수 있는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

[ 첫 번째 스킬이 개방됩니다. ]

‘뭐라고?’

[ 거대화(巨大化) ]

스킬의 세부 내용을 확인하던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환수의 스킬.

그것을 시전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환수의 주인, 아틸라!

‘가자! 펀치!’

[ 스킬, 거대화가 활성화됩니다. ]

그리즐리 못지않은 우렁찬 포효가 등 뒤를 울렸다.

아틸라의 몸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흐에에엑! 퍼, 펀치가 언제 저리 큰 거요!”

“펀치가! 내 귀염둥이 펀치가!”

집채처럼 몸을 불린 펀치의 앞발이 크라켄의 상처를 비집고 들어갔다.

퍼엉! 시커먼 피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아틸라마저 놀랄 정도의 괴력.

‘이것이……!’

아틸라의 입이 기다랗게 찢어졌다.

‘신수 그리즐리의 힘!’

펀치의 폭풍 같은 공세가 시작됐다.

두 앞발로 크라켄의 몸을 쑤시고, 찢고, 잡아 뜯었다.

‘잡을 수 있다!’

펀치의 각성으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틸라와 샤를을 제외한다면, 펀치는 크라켄에게 가장 압도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펀치에게 질 수 없지!”

“나, 나도요! 살쾡이 암살자!”

또한 방어력이 50퍼센트나 감소한 크라켄에게는 카스피, 오토, 피핀의 공격이 통했다.

그러나 제롬의 마법만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샤를과 피핀의 공격을 보조하는 것에 주력했다.

‘제법이군. 우리와 제대로 합이 맞지 않는가.’

그런 제롬을 샤를이 주목했다.

바토리를 통해 마법사의 위력은 톡톡히 확인한 바.

마법사를 동료로 두어 나쁠 일은 없다.

쿠오어어어!

크라켄이 비명을 토해 냈다.

자신의 운명을 짐작이라도 한 듯한 구슬픈 절규.

그리고 마침내.

“마무리다!”

“힘껏 때려 넣어!”

앙상하게 변해 버린 크라켄의 몸뚱이가.

[ 남은 시간 00:05 ]

제한 시간 5초를 남긴 채 균열로 빨려 들어갔다.

* * *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힘을 잃었다.”

“그 핏빛의 마녀가.”

“설마하니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리베르 파테르는 구슬 신세가 된 것 같더군.”

“놈에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최후가 아닌가.”

“구슬의 주인은.”

“가스코뉴와 아키텐의 전쟁 영웅, 아틸라.”

“분명 도살자라 했던가.”

“대족장 문주크의 아들이기도 하지.”

“그 문주크의 핏줄이라. 흥미롭군.”

“이제 그쪽의 관조는 용이해진 건가.”

“물론. 리베르에 이어 바토리마저 힘을 잃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계획을 실행할 때가 온 거지.”

“바토리는.”

“물론 제거한다.”

“아무리 힘을 잃었어도 그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

“우리 계획의 최대 방해물이 될 터다.”

“해치우는 편이 안전하겠지.”

“리베르 파테르 역시도.”

“그러나, 도살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자는 리베르를 제압했다.”

“평범한 전사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

“리베르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녀석은 수해 한복판에서 도살자와 맞붙었더군.”

“그래서야 제대로 된 마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테지.”

“수해의 괴이들이 냄새를 맡을 테니까.”

“도살자는 구슬이 된 리베르를 볼모 삼아 바토리를 무릎 꿇린 것인가.”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제아무리 인간의 몸으로 전락했다지만.”

“그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순순히 야만전사 따윌 따라나서다니.”

“바토리는 충분히 도살자를 제거하고 구슬을 빼앗을 수 있었다.”

정적이 일었다.

“……그렇다면.”

“바토리에겐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

“설마 리베르를 구슬로 만들어 버린 것도.”

“그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성급히 달려들어선 안 되겠군.”

“더욱이 도살자의 곁엔 샤를 아인하르트가 있다.”

“툴루즈의 지배자. 아니 이젠 ‘아인하르트’의 지배자인가.”

“녹마탑이 무너졌다. 파브리스가 소환한 크라켄마저도.”

“그것만이 아니다.”

“단주의 눈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

다시 한번 정적.

“마스터 사바흐도 도살자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더군.”

“사슬낫의 사바흐.”

“그자는 그리 신경 쓸 존재가 아니지만.”

“하싸씬의 단주는 위험한 자다.”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군.”

* * *

“아틸라.”

들리지 않는 척 아틸라는 대꾸 없이 말을 몰았다.

바토리가 다시 말했다.

“야만전사야.”

“왜.”

“내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그리도 싫더냐.”

싫다기보단.

그러면 나도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 같으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해라. 관음쟁이.”

“네가 이름으로 불러 주던 순간이 떠오르는구나. 흐응……. 내 얼마나 짜릿했던지.”

“오늘은 여기서 쉰다.”

말을 멈춰 세우며 아틸라가 말했다.

바토리가 아랫입술을 내밀었지만 아틸라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이 제롬.”

“네, 넵!”

아틸라의 명령에 제롬이 땔감을 주워오기 시작했다.

처음 몇 날은 두들겨 패고 싶을 만큼 엉망이더니, 이젠 제법 쓸 만한 것들을 구해 왔다.

제롬은 샤를의 곁에 남지 않았다.

‘미친놈이 왜 날 따라오고 지랄이야.’

떼어 내려면 떼어 낼 수도 있었지만.

아틸라는 일단 데리고 가는 쪽을 택했다.

이유는.

지금의 제롬은 원작과 다르게 형편없이 약했으니까.

‘후……. 또 키우고 분양해야 하는 건가. 무슨 탁아소도 아니고.’

카스피는 오토와 함께 가스코뉴 공작령으로 떠났다.

그녀가 자진해서 아틸라의 곁을 떠날 리는 만무했고.

그만큼 중요한 일이 터졌기 때문.

‘라시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샤를의 성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던 중 사바흐가 찾아와 말했다.

카스피는 지체 없이 짐을 챙겼다.

오토도 함께 떠나기로 했다.

‘영주 나리도 가겠다고?’

‘라시드는 내 사람이기도 하잖수. 살쾡이 암살자 혼자 보내기도 좀 뭣하고…….’

동그랗게 눈을 뜨던 카스피는 오토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 그렇지만 아틸라 님을 버리는 건 절대 아니우! 내 라시드만 찾고 나면 금세 찾아가겠수!’

‘안 찾아와도 되는데.’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구나 야만전사야. 자, 이걸 받거라 카스피.’

‘이게 뭔데?’

‘내가 있는 곳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게다.’

‘그럼 내가 관음쟁이와 떨어지기만 하면 다시 볼일 없겠군.’

‘아이고 아틸라 님! 또 그 무슨 섭섭한 소리요!’

‘그러게나 말이구나. 자꾸 그리 심술을 부릴 테냐 야만전사야.’

‘바토리 아가씨. 제발 아틸라 님 곁에 꼭 좀 붙어 있으쇼!’

‘걱정 말거라. 내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꼬옥 붙어 떨어지지 않을 테니.’

‘그, 그렇게 달라붙어 있을 필욘 없잖아.’

‘흐응. 혹시 질투하는 것이더냐 카스피.’

‘지, 지, 질투는 무슨!’

그런 연유로 아틸라 일행은 둘로 나뉘었다.

물론 아틸라는 카스피를 도울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인간의 몸이 되고 나니 별거 아닌 모닥불 하나에도 마음이 따스해지는구나.”

쪼그려 앉아 한 손으로 불을 쬐는 바토리.

그녀의 왼팔은 죽은 가지처럼 추욱 늘어져 있었다.

‘바토리의 치료가 먼저다.’

온몸이 부서지는 타격은 면했지만 인간의 몸으로 균열을 불러낸 자체가 바토리에겐 큰 모험이었다.

그녀의 왼팔은 현재 크게 망가진 상태.

‘이대로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바토리의 치유를 위해 아틸라가 가려는 곳은 카스피의 행선지와는 반대 방향.

그것을 짐작한 것인지.

카스피는 아틸라의 도움을 제가 먼저 거절했다.

‘바토리를 도와줘. 아빠만 찾고 나면 곧장 찾아갈게. 기다려 줄 거지?’

아틸라가 잡아온 짐승으로 식사를 마친 일행은 모닥불 앞에 모여 휴식시간을 보냈다.

펀치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고.

잠든 펀치의 배를 간질이며 아틸라는 술병을 홀짝였다.

바토리는 제롬에게 마법을 가르쳤다.

“이제 소환마귀 주문은 금하거라.”

“네, 넵! 스승님!”

바토리의 만류에도 제롬은 바토리를 스승이라 불렀다.

그때마다 바토리는 어린 날의 파브리스를 떠올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 * *

깊은 밤.

뒤척이던 바토리가 입술을 뗐다.

“야만전사야. 자느냐.”

“안 자.”

아틸라는 여전히 모닥불 앞에서 술병을 홀짝대고 있었다.

경험치를 쌓고, 레벨업하고, 그에 따라 체력 수치가 증가할수록 그는 조금만 자도 충분히 피로를 회복할 수 있었다.

“정말 엘프의 숲을 찾을 생각이더냐.”

아틸라는 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단다.”

알고 있다.

엘프는 자연의 마력을 사용하고, 숭배하는 종족.

마귀를 부리는 녹마탑 탄생에 크게 일조한 바토리를 좋아할 리 없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들이 내 팔을 치유할 수 있다 생각하느냐.”

“글쎄.”

“난 그리 생각되지 않는구나.”

바토리의 말대로다.

엘프의 힘만으로 그것을 치유할 순 없다.

그러나 서리나무 엘프의 숲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중 하나는 그녀의 팔을 치료하기 위한 중요한 재료가 된다.

‘그마저도 완전한 치유법은 아니지만.’

“늙으니 잠도 없어지는 거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라.”

“육체 나이는 아직 스물 초입에 불과하니라. 너와 별 차이도 없단다.”

“정신 나이는.”

“흐응……. 갑자기 또 졸음이…….”

그러더니 바토리는 정말로 잠이 들었다.

아틸라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관음쟁이 녀석. 힘을 많이 잃긴 한 모양이군.’

그러지 않았다면.

아까부터 이곳을 노려보는 저 새빨간 눈깔들을 눈치 못 챘을 리 없으니까.

그르르…….

크르르르륵…….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듯한 악의가 아틸라에게 쏘아졌다.

아틸라의 손에 용아귀가 쥐어졌다.

“그럼 어디, 정리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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