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2화 (42/425)

042. 후유증 (2)

“샤르으으을!”

피핀이 절규했다.

무작정 샤를에게 달려가려는 그를 병사들이 막았다.

“놔! 이거 놔라!”

“지금 가면 안 됩니다 부단장!”

“하지만 샤를이……! 샤를이……!”

울부짖던 피핀이 한순간에 녹초가 되어 허물어졌다.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것.

“샤를…….”

샤를의 팔을 절단한 건 크라켄의 몸에서 쏘아진 채찍이었다.

일명 ‘크라켄의 흑편(黑鞭).’

아틸라는 당황했다.

‘샤를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단 한 방에 갑옷째 팔이 절단됐다.

‘아무리 마귀 최강자 중 하나라지만 저렇게까지 강력하다고?’

물론 샤를의 플레이트 아머는 드워프 장인이 제작한 최고급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렇게 종잇장 잘리듯 할 만큼 약한 방어구도 아니다.

문주크의 범아귀와 아틸라의 용아귀도 효율적으로 막아 냈던 것이니까.

이유는 금세 설명됐다.

[ 수족을 잃고 분노한 크라켄이 폭주 상태에 빠졌습니다. ]

[ 공격력이 30% 증가합니다. ]

[ 방어력이 30% 감소합니다. ]

‘폭주.’

방어력 감소는 환영할 일이지만.

공격력 증가가 너무 사기적이다.

뿐만 아니라.

[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

저 ‘크게’라는 단서가 몇 퍼센트일진 모르나.

저래선 바토리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거다.

‘오히려 방어력 30퍼센트 감소를 생각한다면.’

전사들이 나서야 할 시간.

하지만 샤를은 쓰러졌고, 그래서 아틸라가 지닌 비장의 무기마저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야만전사야!”

바토리가 달려와 셋의 몸을 감싸는 보호막을 생성했다.

이걸로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살리고 보자.’

출혈이 심각하다.

게다가 크라켄의 흑편은 평범한 채찍이 아니다.

‘심해의 저주.’

녀석의 채찍엔 심해의 마기가 담겨 있다.

지금, 샤를의 정신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해에 있다.

‘더 깊숙한 곳으로 끌려가기 전에 꺼내야 해.’

마지막 남은 트롤의 심장을 샤를에게 먹였다.

‘원래는 내가 먹고 싸우려 했지만.’

샤를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 심해를 헤매고 있는 건 자신일 것이다.

게다가 샤를은 패영전의 주인공.

녀석이 죽으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문제는 후유증인데.’

이전에도 말했듯, 트롤의 심장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팔 하나가 절단된 상황.

이제 와 트롤의 심장을 먹는다고 없던 일로 만들 순 없다.

‘좋아. 아물기 시작했다.’

절단된 팔을 단면에 대자 트롤의 재생력은 알아서 그것을 이어 붙였다.

지체 없이 치료했으니 그리 큰 후유증은 아닐 테지만.

‘샤를에겐 어마어마한 타격이지.’

이어붙인 팔은 원래와 동일하게 기능하지 않는다.

검사에겐 치명적인 상처.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샤를을 두고 아틸라는 몸을 일으켰다.

할 만큼은 했다.

나머진 녀석의 정신력을 믿는 수밖에.

“분명히 말하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라. 관음쟁이.”

바토리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무, 무슨 말이더냐 그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고.”

아틸라는 방어 태세를 해제했다.

[ 검투 태세에 돌입합니다. ]

이제부턴 공격 일변도다.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 * *

태세 전환.

엄청나게 좋은 기술이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시전할 수 있는 스킬에 제한이 생긴다는 것.’

예를 들면 방어 태세에서는 돌진을 사용할 수 없다.

대신 도발의 외침이 더욱 강력해진다.

각 태세의 장단점이 명확한 것.

[ 피의 보호막이 활성화됩니다. ]

바토리가 준 버프.

이것이 활성화되어 있는 동안은 웬만한 공격에 면역 상태가 된다.

다만 보호막도 플레이어처럼 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내구도가 바닥나면 소멸한다.

‘오래는 못 버티겠군.’

아틸라는 단독으로 크라켄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크라켄의 흑편은 보호막의 체력을 순식간에 깎아 냈다.

‘바토리가 관조자 시절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런 개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이번 전투가 마무리되면 할 일이 생겼다.

‘리베르의 구슬.’

그것의 봉인을 해방시킬 아이템을 찾을 것이다.

물론 리베르를 순순히 풀어 줄 생각은 없다.

지금 이상의 최악 사태가 발발했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다.

“야, 야만전사야!”

보호막이 소멸했다.

“자, 잠깐만 버티거라. 내 금방 다시……!”

바토리의 반응을 보니 다음 보호막 시전까지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기다렸다는 듯 흑편이 날아들었고.

아틸라의 머릿속엔 무언가가 떠올랐다.

‘혹시……?’

태세를 전환했다.

[ 방어 태세 ]

공격 일변도로 나가겠다는 계획을 바꾼 건 아니다.

상태창을 훑었다.

‘방어력 증가.’

‘공격력 감소.’

‘마법,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 증가.’

그 아래 보였다.

[ 보조무기 숙련도가 20% 증가합니다. ]

양손으로 쥐었던 용아귀를 오른손으로 파지했다.

왼손엔 무휼을 꺼내들었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 보조무기를 착용했습니다. ]

[ 성검, 무휼의 숙련도가 20% 증가합니다. ]

‘되잖아!’

방어 태세에서의 보조 무기.

방패만을 생각했던 건 고정관념이었다.

그리고 숙련도가 상승한 무휼은.

[ 숨겨진 종족 특성이 성검, 무휼의 힘을 일깨웁니다. ]

무휼의 봉인을 한 꺼풀 더 벗겨 냈다.

[ 방어구관통(防禦具貫通) ]

아틸라의 입이 기다랗게 찢어졌다.

쇄도하는 흑편을 향해 무휼을 뻗었다.

* * *

‘또, 또 새로운 마법을 부리는 게냐! 야만전사야!’

아틸라의 보호막이 소멸한 순간 바토리는 당황했다.

예상보다 너무도 빠르게 해제됐기 때문.

‘크라켄 녀석.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구나.’

바토리는 아틸라의 보호막뿐 아니라 자신과 샤를의 보호막도 챙기고 있었다.

그것에 더해 각종 저주로 크라켄을 공격했고.

그래서 다음 보호막 시전 타이밍을 놓쳤다.

그런데.

‘검은 채찍을 소멸시켰다고?’

아틸라는 크라켄의 흑편을 산산이 깨부쉈다.

게다가 이젠 폭풍처럼 크라켄을 몰아붙이고 있다.

‘폭주 상태의 크라켄은 보호력이 약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구나.’

아틸라가 상대하는 크라켄.

녀석의 보호력은 기준치 이하로 떨어진 듯했다.

분명 아틸라가 어떤 힘을 발현한 것이다.

바토리는 헛웃음을 머금었다.

‘정말로 너와 크라켄. 누가 더 괴물인지 모르겠구나.’

한편 아틸라는.

[ 방어구관통이 활성화됩니다. ]

[ 대상의 방어력과 회복력이 10% 감소합니다. ]

[ 이 효과는 2회까지 중첩됩니다. ]

개방된 무휼의 힘, 방어구관통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폭주로 방어력 30퍼센트 감소.’

‘방어구관통으로 20퍼센트 감소.’

도합 50퍼센트의 방어력이 감소됐다.

게다가 무휼의 숙련도는 20퍼센트 증가.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심지어 방어구관통 디버프는 흑편에도 통했다.

날아드는 흑편에 무휼의 날을 먹인 아틸라는 그것을 소멸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금세 또 다른 흑편이 생성되긴 했지만.

‘놈도 이제 경계하고 있다.’

크라켄의 움직임이 이전 같지 않았다.

녀석의 몸에 수많은 상처가 생겨났다.

게다가 무휼의 힘에 회복력마저 감소된 크라켄은 시커먼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이길 수 있다!’

남은 시간 1분여.

빠듯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숨통은 끊을 수 있다.

아니, 반드시 끊어 내야 한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

해수가 엄청난 속도로 차올랐다.

무릎 정도까지 올라왔던 수면이 순식간에 가슴을 넘어 온몸을 잠기게 만들었다.

놈이 최후의 발악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미친……!’

호흡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물속에서 빠르게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틸라는 힘껏 뛰어올라 크라켄의 껍질에 무휼을 꽂았다.

그러고는 암벽이라도 등반하는 것처럼 그 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새끼……! 반드시 죽여주마……!”

때마침 바토리의 보호막이 들어왔다.

아틸라는 보호막을 믿고 크라켄의 암벽을 등반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 아틸라는.

‘이, 이건……!’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균열을 보고 빳빳하게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관음쟁이가!”

고개를 돌렸다.

왼팔의 문신을 드러낸 바토리.

그녀가 핏기 없는 얼굴로 주문을 시전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라니까!”

“야만전사야.”

바토리가 미소했다.

예기치 못한 아틸라의 활약에 잠시 기대감을 가졌었지만.

역시 5분이라는 시간에 크라켄을 쓰러뜨리는 건 무리였다.

“화내지 말거라. 내 마귀는 치워 주고 갈 테니.”

요동치는 해수가 거대한 물기둥이 되어 솟구쳤다.

허공의 균열이 그것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관음쟁이……!’

바토리의 왼팔엔 특별한 힘이 내재돼 있다.

바토리를 최강의 관조자로 군림할 수 있게 만든 엄청난 마력.

다시 말해 저 힘을 완전히 개방하면.

인간의 몸이 된 바토리는 결코 견뎌 낼 수 없다.

“운명이란 참으로 얄궂은 것이로다. 내 오랜 염원이 이리도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그만둬! 바토리!”

“흐응. 이제야 이름으로 불러 주는 것이더냐.”

그녀의 입술 위로 주르륵 피가 흘렀다.

바토리도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아틸라.”

그녀의 왼팔에서 새로운 마력이 피어났다.

그와 대비되듯 핏빛 문신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균열은 열었고……, 이제 밀어 넣기만 하면…….’

크라켄을.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다.

‘균열의 힘만으로 녀석을 빨아들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크라켄은 견뎌 냈다.

그렇다면 추가로 힘을 끌어내야 한다.

대신 주문을 견디지 못한 자신의 몸은 산산이 부서지겠지.

‘내 그리되어도.’

바토리는 웃었다.

며칠 전 숲속에서의 일이 머리를 스쳤다.

흩어지는 바람.

발목을 스치는 풀잎.

손목으로 전해지던 기분 좋은 온기.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

그날따라 머리 위 별하늘은 어쩜 그리 아름다웠을까.

“바토리!”

아틸라의 외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바토리는 추가 마력을 개방했다.

그런데.

할 수 없었다.

‘이 무슨……?’

낯선 이물감.

자신의 왼팔을 누군가 움켜쥔 것이 보였다.

그곳에서 발하는 가공할 신력이 자신의 주문을 억누르고 있었다.

샤를의 손.

“더 이상 계속한다면, 녀석의 원망을 살 것 같군.”

샤를 아인하르트.

그가 마침내 심해의 저주를 극복했다.

“신세를 진 것 같군.”

“어……, 어어어……?”

왼팔의 빛이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바토리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머진 나와 도살자에게 맡겨라.”

샤를이 검을 들었다.

크라켄을 향해 폭풍 같은 질주를 시작했다.

아틸라가 외쳤다.

“샤를!”

“도살자!”

바토리의 균열 덕분에 바닥의 해수는 거의 사라져 있었다.

이제 아틸라와 샤를이 해야 할 일은 하나.

‘녀석의 몸뚱이를.’

‘균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아틸라가 크라켄의 정수리에 무휼을 꽂았다.

그의 생각을 읽어 낸 듯 샤를도 검을 추켜올렸다.

쿠오오오오오!

크라켄이 울부짖었다.

50퍼센트의 방어력이 하락한 크라켄은 전사의 외침 버프를 지닌 샤를의 검세를 견뎌 낼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 복용 시 20분 동안 근력이 20% 증가하며, 트롤에 준하는 재생 능력을 획득합니다. ]

샤를의 몸엔 트롤의 심장 버프가 지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심해의 저주를 견뎌 낸 그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어금니를 드러내며 아틸라가 웃었다.

지금의 샤를은.

‘나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

파드드드듯!

크라켄의 정수리를 난도질한 아틸라가 미끄러지듯 몸을 날렸다.

무휼이 지나는 자리마다 검은 핏물이 터졌고, 용아귀에 잘린 고깃 조각이 균열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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