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금기 (4)
[ 돌진(突進) ]
아틸라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콰드득! 우악스럽게 파고든 그의 양손이 파브리스의 갈비뼈를 잡아 벌렸다.
“네. 놈. 들. 이……!”
크라켄은 파브리스의 심장을 장악했고, 그것은 파브리스의 몸을 재생체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심장을 직접 깨부숴야겠지.”
벌어진 갈비뼈 사이로 시커먼 심장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향해.
“잘 가.”
카스피가 무휼을 꽂았다.
* * *
바토리는 성을 감싼 촉수의 힘이 느슨해지는 것을 감각했다.
‘해낸 게로구나. 야만전사야.’
손을 저어 제롬의 포박을 풀었다.
그리고 말했다.
“네 스승이 부린 오만의 대가를 확인하고 싶더냐.”
“그게 무슨…….”
자유의 몸이 되었건만 제롬은 감히 도망칠 생각도 못했다.
눈앞의 여인은 자신의 마력을 완전히 봉인해 버릴 정도로 엄청난 마법사였기 때문.
‘상대의 마력을 봉인하는 마법이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
“봉인은 풀어주겠다. 함께 성으로 들어가 보자꾸나.”
“그, 그렇다면 저것들이…….”
“네 스승이 저지른 금기의 결과다.”
촉수들이 뿜어대는 사악한 기운을 제롬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바토리가 주문을 읊었고.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제롬도 서둘러 영창을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야만전사야.’
바토리의 눈이 샤를을 향했다.
‘저 아이도 너 못지않은 괴물이로구나.’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성문 앞에서 샤를은 종횡무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것의 효과는 분명했다.
성문 근처의 마기(魔氣)가 확연히 줄고 있었던 것.
‘강대한 신력을 타고난 아이. 게다가 그 핏줄마저 예사롭지 않구나.’
샤를의 몸에 흐르는 특별한 피.
바토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야만전사야. 그래도 난 네가 더 마음에 든단다.’
미소하는 바토리의 손에서 파쇄의 마력이 펼쳐졌다.
제롬의 손에서는 관통의 마력이 쏘아졌다.
그리고 그것들이.
“도살자!”
전사의 외침 버프로 더욱 강해진 샤를의 검세와 합쳐져 촉수의 창살을 덮쳤다.
콰아앙! 검은 파편을 흩뿌리며 성문이 박살 났다.
* * *
한편 아틸라와 카스피는.
“뭐, 뭐야! 박히질 않아!”
“뭐라고?”
“검이 심장에 박히질 않는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크라켄의 마기에 보호받고 있다 해도 무휼이 박히질 않는다니.
불행 중 다행으로 촉수들은 이쪽을 공격하지 않는 상황.
‘그렇군. 성문을 뚫어 낸 건가.’
서둘러야 한다.
갑작스러운 침입자 때문에 크라켄은 그쪽으로 정신을 팔았지만 길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심장에서 뿜어지는 촉수는 쉴 새 없이 상처를 봉합하고 있다.
“어, 어떡해 아틸라!”
아틸라는 리베르의 마법을 제압했을 당시의 무휼을 기억했다.
‘분명…….’
[ 숨겨진 종족 특성이 성검, 무휼의 힘을 일깨웁니다. ]
그때의 무휼에선 강렬한 빛이 발산됐었다.
‘아.’
아틸라의 눈이 다시금 상태창을 떠올렸다.
‘숨겨진 종족 특성’이라는 단서.
“그대로 있어라 카스피.”
“뭐?”
아틸라는 왼손만으로 파브리스의 갈비뼈를 벌렸다.
오른손으로는 무휼의 칼자루를 쥐었다.
자연스레 아틸라와 카스피의 손이 포개어졌다.
“어, 어멋! 갑자기 이런 곳에서!”
‘시발. 대체 왜 이래 이 여자들은.’
아틸라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휘황한 빛을 발하며 무휼이 숨겨진 힘을 펼쳐 냈다.
[ 대마법병기(對魔法兵器) ]
“그래. 주인의 손을 탄다 이거지.”
히죽 웃으며 팔에 힘을 주었다.
콰드득! 파브리스의 심장 깊숙이 무휼이 박혔다.
[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
[ 보상이 주어집니다. ]
[ 새로운 스킬이 개방됩니다. ]
‘오. 이건!’
스킬을 확인한 아틸라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얼마 전 2급 목마종을 쓰러뜨리고 받았던 보상과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할 스킬.
‘흐흐. 개꿀이로구만.’
“도살자!”
“아이고 아틸라 님!”
들려오는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부릅뜬 눈의 샤를.
눈물을 글썽이며 킬킬대는 오토.
반가움에 포효하는 펀치.
묘한 얼굴의 바토리.
그리고.
“스, 스승님……?”
제롬 아그리피나.
“이럴 수가…….”
괴물로 변한 파브리스의 모습에 제롬은 넋을 잃었다.
그런 제롬의 곁을 바토리가 스쳤고, 파브리스 앞에서 멈췄다.
“많이 늙었구나.”
웅혼한 마력이 담긴 목소리.
빛을 잃은 파브리스의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을 향했다.
“정말로…… 당신이었던 거요……?”
“그렇단다. 꼬마 파브리스야.”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무어 중요하더냐.”
무너져 가는 파브리스의 육체.
바토리는 측은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당부하지 않았더냐. 더 이상 금기를 범하지 말라고 말이다.”
“당신처럼…… 되고 싶었소.”
“불가한 일이다.”
“스승이여…….”
제롬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눈앞의 여인이 자신의 마력을 그리도 손쉽게 봉인할 수 있었던 이유를.
“엘프들의 마법마저 농락하던 스승……. 난 스승처럼 되고 싶었소……. 나를 떠난 당신을…… 되찾고 싶었소…….”
미안하구나. 꼬마 파브리스.
“난 너를 잊고 살았다.”
나에게 넌.
영겁의 세월 속을 스쳐가는 여흥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럴 거라…… 생각했소…….”
소년 파브리스는 인간의 삶을 즐기던 바토리를 만나 마법사가 되었다.
엘프의 힘에 심취한 그에게 바토리는 불가한 일이라 말했지만.
파브리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반드시 엘프의 마력을……!’
청년이 되어서도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는 파브리스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바토리는 그에게 선물 하나를 주게 되는데.
바로 목마를 소환하는 주문이다.
‘스, 스승님! 이겁니다! 이것이 바로 엘프의……!’
‘아니란다 파브리스. 이건 엘프의 주문과는 다른 것이야.’
‘하하하! 성공이다! 드디어 성공한 거야!’
엘프의 마력에 집착을 넘어 광기까지 드러내게 된 파브리스.
결국 그는 스승의 말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까지인 게로구나. 꼬마 파브리스.’
바토리는 파브리스를 떠났다.
계속해서 금기의 주문을 사용한다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란 말을 남긴 채.
그 뒤로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소년은 녹마탑의 탑주가 되었고.
오늘.
허망했던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
“내 너에게, 일러주지 말 것을.”
바토리가 손을 뻗어 파브리스의 눈을 감겼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 ‘크라켄의 감옥’으로부터 성이 해방됩니다. ]
[ 완전 소환 직전에 소환자를 잃은 크라켄이 크게 분노했습니다. ]
[ 세 번째 임무 ]
[ 성 밖으로 나가 불완전 소환된 크라켄을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십시오. ]
[ 임무 실패 시 툴루즈 백작령은 해수로 뒤덮일 것입니다. ]
[ 남은 시간 15:00 ]
촉수들이 내벽 속으로 빨려 들듯 사라졌다.
“밖에서 녀석이 기다리는 모양이구나. 야만전사야.”
바토리의 말에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가자. 문어 잡으러.”
* * *
성 밖으로 달려간 아틸라 일행이 마주한 건 핏물 가득한 지옥도였다.
“으아아아!”
“사, 살려 줘!”
여덟 개의 문어다리가 병사들을 후려치고, 휘감고, 흡수하고 있었다.
‘불완전하게 소환된 덕에 발은 묶었군.’
아직 머리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은 시간이 소진되면 녀석은 완전 소환체가 될 것이고, 툴루즈 백작령은 해수에 잠길 것이다.
‘저게 머리의 의지를 대신하는 건가.’
여덟 개의 다리 중 유난히 커다란 촉수 한 쌍.
“샤를.”
“무언가 계획이 있는 모양이군. 도살자.”
“다리 여섯 개를 맡아 줘야겠다.”
샤를은 그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홀로 우두머리 둘을 상대할 셈인가.”
“혼자가 아냐. 바토리를 데려간다.”
“나와 하나씩 나눠 처리하는 것은 어떤가.”
물론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머지 여섯 다리가 없다면 말이지만.
“샤를. 네 지휘 없이 나머질 처리할 수는 없다. 병사들은 전멸할 거다.”
“나에겐 피핀이 있다.”
빌어먹을.
샤를의 말대로다.
피핀의 지휘력이라면 샤를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메꿀 수 있다.
그러나 아틸라에겐 샤를이 여섯 촉수를 처리하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제롬을 붙여 줘야 하니까.’
우두머리 촉수에겐 제롬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반드시 바토리의 힘이 필요한 상황.
따라서 제롬은 여섯 조무래기를 처리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게다가 전투가 끝난 뒤 제롬을 샤를의 동료로 편입시키려면.’
지금,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기게 할 필요가 있다.
‘원작에서도 샤를의 지휘력과 무력에 감화된 제롬이 자진해서 동료가 되길 청하니까.’
물론 이참에 카스피에게도 샤를의 능력을 맛 보여 줄 생각이고.
그러나 샤를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게 쓰러지기 전에 네놈을 죽게 할 생각은 없다.”
“죽긴 누가 죽어. 네가 조무래기들만 잘 맡아 주면 그럴 일 없다.”
“나에겐 피핀이 있다.”
“…….”
아틸라는 샤를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한 번 결정한 것은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 똥고집쟁이.
그리고 그건 패영전 주인공인 샤를에게 아틸라의, 아니 원작자인 김도현의 내면이 깊숙이 반영된 까닭이기도 했다.
“후……. 알겠다.”
공략 시간을 확보하려면 입씨름이나 하고 있을 순 없다.
다행히 아틸라에겐 좋은 꾀가 있었다.
‘지금의 샤를이 우두머리 촉수를 일대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
녀석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줄 생각이다.
‘녀석이 고집을 꺾게 하려면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부추겨야 하니까.’
이성을 되찾은 녀석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거다.
결국 처음의 제안을 따르는 것이 가장 확률 높은 방법이란 걸 깨닫게 되겠지.
문제는 아틸라도 두 마리의 우두머리 촉수를 상대하긴 버겁다는 것.
하지만 방법은 있다.
‘전사의 외침 버프와, 소환마귀 시나리오의 보상 스킬.’
“제안을 받아들인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주겠다. 도살자.”
샤를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의 나는, 기이하게도 힘이 넘치거든.”
‘그거 내 덕분이다 빌어먹을 자식아.’
아틸라는 샤를, 피핀, 바토리, 카스피, 오토, 제롬을 불러 작전을 설명했다.
펀치는 오토에게 맡겼다.
“시작이군. 도살자.”
“간다.”
아틸라와 샤를이 두 우두머리에게 달려들었다.
그 뒤로 바토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쪽은 괜찮은가! 도살자!”
“신경 끄고 너나 잘 해라!”
피핀도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카스피, 오토, 제롬에게도 이번만은 피핀의 지시를 따르라 말해 두었다.
“저 꼬맹이 지시를 따르라고? 싫어! 난 아틸라와 함께 싸울 거야!”
카스피가 반발했지만 아틸라가 눈 한 번 부라리는 것으로 해결됐다.
‘과연 샤를 녀석. 대단하군.’
전사의 외침 버프를 공유한 샤를은 우두머리 촉수의 공격을 매끄럽게 버텨 냈다.
꼬마처럼 신이 난 얼굴로.
“도살자. 너에겐 나의 호승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재주가 있는 것 같군.”
샤를은 더더욱 아틸라를 동료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틸라가 꿍꿍이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러던 중 샤를이 맡은 우두머리가 강한 일격을 내질렀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샤를이 외쳤다.
“어림없다! 괴물!”
그리고 아틸라는.
‘지금이군.’
상태창을 불러냈다.
[ 동료, 샤를을 파티에서 추방하시겠습니까? ]
[ Y/N ]
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