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9화 (39/425)

039. 금기 (3)

두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만치 나무 아래 포박된 사내.

패영전의 영웅이자 훗날 샤를의 동료가 되는 전설의 대마법사.

‘그리고.’

이번 소환마귀 시나리오의 중심에 선 인물.

‘비록 이번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치진 못하겠지만.’

그러나 원작의 흐름을 깨지 않고 이어가려면, 녀석은 반드시 다가올 전장의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

“그새 퍼자고 있냐.”

사내의 퀭한 눈이 고개를 들었다.

아틸라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제롬 아그리피나.”

* * *

“파브리스 이 늙은이는 왜 꽁무니도 보이질 않는 거냐!”

매서운 기세로 성을 공격하는 가스코뉴 병사들을 보며 툴루즈 백작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주문쟁이 놈. 설마 도망친 건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다.

탑주가 탑을 버려두고 도망친다니.

‘그렇다면 뭐냐. 설마 그 소환 의식인지 뭔지를 아직까지 하고 있는 건가!’

툴루즈 백작은 파브리스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의식이 마무리되는 대로 놈들을 완전히 쓸어드리겠소.’

‘아울러 가스코뉴의 광활한 곡창지대까지 안겨 드리리다.’

그 달콤한 말에 몇 날을 버텼건만.

제아무리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백작성이라지만 이대로면 더는 버티지 못한다.

“적의 돌격대가 진입했습니다!”

“트롤 학살자와 그 부하들입니다!”

“성문이 곧 부서질 것 같습니다!”

툴루즈 백작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백국의 군주다운 최후를 맞이할 준비.

그때였다.

그그그그그그…….

지면이 파도처럼 요동치는가 싶더니.

“이……, 이게 무슨……!”

푸슛! 푸슛! 퓨슈슈슈슈슛!

시커먼 촉수들이 성벽 너머로 창살처럼 솟아올랐다.

* * *

“도살자!”

샤를이 소리쳤다.

아틸라가 성벽 위로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변이 발생했다.

“전진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성문을 부숴야 한다!”

“우와아아아!”

금사자의 용맹한 전사들이 성문으로 달려들었다.

샤를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마법을 보는 건 처음이다.

성을 감싸듯 솟아난 검은 촉수들.

그것은 마치 백작성을 통째로 가둔 거대한 감옥 같았다.

“단장!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촉수의 틈새로 진입하려던 병사들이 커다란 접시 모양 빨판에 흡착됐다.

“헉! 이, 이게 뭐야!”

“으아아아!”

그것이 쑤욱, 병사들을 빨아들였다.

한순간에 십여 명의 병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저게 무슨……!”

그것만이 아니었다.

병사들을 흡수한 빨판이 찢어진 옷가지와 갑옷, 병장기들을 토해 냈다.

그것 중엔 병사들의 토막 난 시체도 섞여 있었다.

“으히이이익!”

“다, 단장!”

병사들의 사기가 단숨에 떨어졌다.

“물러서라! 내가 길을 뚫겠다!”

“샤를!”

피핀의 만류에도 샤를은 달렸다.

상대를 알아본 것일까.

굵은 촉수 일부가 폭죽처럼 터지며 가느다란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샤를을 노리며 쇄도했다.

“어림없다!”

비처럼 쏟아지는 촉수의 다발 중 그 무엇도 샤를의 몸에 닿지 못했다.

질풍처럼 회전하는 샤를의 검세.

그것이 점점 더 가속했다.

“저, 저럴 수가……!”

“말도 안 돼!”

병사들이 그 광경을 경악한 얼굴로 바라봤다.

샤를이 강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의 모습은 가히 사신이라도 강림한 것처럼 엄청났다.

샤를에게 달리며 피핀은 생각했다.

‘무엇이 샤를을 저토록 흥분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내 피핀은 그게 무엇인지 짐작했다.

샤를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네 이놈……! 도살자……!’

처음으로 자신을 쓰러뜨린 사내.

스스로가 인정한 유일의 호적수.

‘내게 쓰러지기 전에 죽는 건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도살자!’

거무튀튀한 연기 탓에 안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했다.

지금 저 안에서는 위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도살자!”

가느다란 촉수를 모조리 베어 낸 샤를의 검이 마침내 굵은 촉수 안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샤를은 기묘한 감각을 경험했다.

‘이건…….’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강한 활력이 온몸으로 차오르는 느낌.

샤를의 눈이 커졌다.

‘이게…… 뭐지……?’

* * *

성 밖의 샤를이 갑작스레 달라진 몸 상태에 놀라기 바로 전.

성 안의 아틸라 역시 떠오른 상태창에 놀라 있었다.

[ 동료, 샤를이 함께 싸우길 원합니다. ]

[ 파티를 맺으시겠습니까? Y/N ]

‘엥?’

수락했다.

이어 전사의 외침을 시전했다.

‘녀석에게 닿으려나.’

궁금했지만 일단 치워 냈다.

눈앞의 사내를 노려봤다.

우두머리 마귀를 소환해 이곳에 강림한 녹마탑의 탑주.

“파브리스.”

“호오. 날 알고 있나.”

파티 시스템에 샤를이 들어온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전에 아틸라는 한 번 더 놀랐다.

파브리스가 소환한 우두머리 마귀.

‘미친. 원작과 같은 놈을 소환할 줄 알았더니.’

원작에서 파브리스가 소환한 건 우두머리 중 비교적 약체에 속하는 놈이었다.

그렇기에 샤를이 마법사 없이도 제압할 수 있었던 거고.

그런데.

‘크라켄을 소환할 줄이야.’

[ 소환마귀 시나리오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

크라켄은 악마의 하위종인 마귀 중에서는 거의 적수를 찾을 수 없는 강자.

[ 두 번째 임무 ]

[ 마귀 ‘크라켄’의 소환자를 무력화하고, ‘크라켄의 감옥’으로부터 성을 해방시키십시오. ]

‘정신 나간 노인네 같으니. 약체 우두머리도 제어하지 못한 주제에 크라켄을 소환해?’

이건 제어가 문제가 아니다.

천운이 따라 제어에 성공한다 해도 엄청난 후폭풍을 맞이해야 한다.

‘크라켄은 바다에 사는 마귀.’

크리엘도라 대륙 사람들은 바다를 알지 못한다.

대륙 남서쪽에서부터 북동쪽까지 이어지는 수해.

서쪽을 가로막은 칼날 산맥.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온 적이 없는 북쪽 재앙의 땅.

그것들은 대륙의 인간들이 바다의 존재를 알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파브리스 역시 마찬가지.

‘그러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지.’

크라켄은 자신이 머무르는 곳을 자신에게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변환시킨다.

즉.

‘이곳이 바다가 되는 거다.’

툴루즈 백작성.

더 나아가 툴루즈 백작령.

어쩌면 발루아와 아스투리아 왕국까지도.

시커먼 해수에 뒤덮이는 것이다.

‘패왕이 아니라 해왕(海王)이 되겠구나. 샤를아.’

문득 차가운 문어숙회에 소주 한 잔을 하고 싶다 생각하던 아틸라는.

‘뭐, 뭐야!’

예고도 없이 날아든 파브리스의 마법에 정신을 차렸다.

빠르게 몸을 굴려 회피했다.

‘영창이 없다고?’

이유는 즉각적으로 파악됐다.

그건 마법이 아니었다.

“나는 우두머리의 제어에 성공했다.”

파브리스의 양팔이 문어다리로 변해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 툴루즈 백작은 물론 주위의 병사들이 구역질을 해댔다.

“소환마귀 크라켄. 녀석이 내게 힘을 빌려주고 있다.”

천만에.

힘을 빌리고 있는 게 아니다.

잠식되고 있는 거지.

‘완전히 잠식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파브리스 정도면 마법사 중에서도 상당한 강자.

놈의 힘을 흡수한 크라켄은 더욱 강력해질 거다.

게다가.

[ 마귀 ‘크라켄’의 소환자를 무력화하고, ‘크라켄의 감옥’으로부터 성을 해방시키십시오. ]

[ 남은 시간 14:59 ]

카운트다운이 시작됐거든.

“좋아. 간다.”

파브리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 * *

“꼬마 파브리스. 제법 무리를 한 모양이구나.”

툴루즈 백작성을 둘러싼 크라켄의 촉수들.

그것을 보는 바토리의 얼굴 표정은 밝지 않았다.

“내 그렇게나 금기를 저지르지 말라 했거늘.”

“아, 아틸라 님은 어떻게 되는 거요!”

오늘도 후방에서 추이를 관전하던 오토가 불안한 얼굴로 소리쳤다.

“보는 대로구나. 철혈귀검아.”

“아이고 아틸라 님! 이 오토가 지금 가겠소!”

오토는 바토리를 지키라는 아틸라의 당부도 잊은 채 말을 달렸다.

그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제롬이 바토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읍읍! 으으읍……!”

입에 재갈이 물린 채라 아무것도 전할 수 없었다.

제롬의 애절한 눈빛을 못 본 체하며 바토리도 말을 달렸다.

“지금 간다. 야만전사야.”

* * *

소나기처럼 쇄도하는 촉수를 아틸라는 연이어 베어 냈다.

그러나 절단된 파브리스의 팔은 끊임없이 복구됐다.

‘재생체(再生體)가 됐군.’

심지어 촉수의 개수는 늘어나고 있었다.

술자가 크라켄에게 잠식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완전 문어 인간이구만.”

잠식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이제는 양팔뿐 아니라 다리, 몸통의 일부마저 크라켄처럼 변했다.

[ 남은 시간 04:37 ]

녀석과 싸우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자리에 서 있는 이가 아틸라 하나였다.

툴루즈 백작도, 그의 병사들도, 아틸라와 함께한 브누아의 궁병들도 모두 죽었다.

그들을 제거한 건 성의 외벽을 뚫고 진입한 크라켄의 촉수들.

‘바토리는 아직인가.’

원래대로라면 벌써 진입했어야 했다.

소환된 우두머리가 원작의 약체였다면 말이다.

‘크라켄 정도 되는 마귀는 바토리도 힘에 부치는 건가.’

물론 인간 바토리 기준이다.

관조자 시절이었다면 진즉 문어 통구이가 완성됐을 테지.

[ 남은 시간 04:03 ]

아틸라는 저 시간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크라켄의 완전 소환까지 걸리는 시간.’

15분 중 4분이 남았으니 벌써 70퍼센트 이상 진행된 거다.

그 증거로 성 안은 무릎까지 해수가 차올라 있었고.

그것은 아틸라의 움직임을 굼뜨게 만들었다.

“슬슬 시작해야겠군.”

지금 같은 상황을 대비해 아틸라는 차선책을 준비했다.

‘기회는 한 번.’

실패하면.

끝장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 남은 시간 02:18 ]

기회가 왔다.

“이. 걸로. 끝. 내주. 마.”

긴 영창을 주절대던 파브리스의 손에서 불기둥이 쏘아졌다.

아틸라는 무휼을 꺼내들었다.

파브리스를 향해 지금껏 숨겨 뒀던 스킬을 시전했다.

[ 스킬, 돌진이 활성화됩니다. ]

생각대로다.

‘돌진은 해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게다가 아틸라의 손에 들린 건 리베르의 마법마저 해체한 성물, 무휼.

그것은 파브리스가 쏘아 낸 거대한 불기둥을 매끄럽게 반으로 갈랐고.

그 광경은 파브리스를 경악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검은. 무엇. 어어어어어.”

[ 스킬, 포효가 활성화됩니다. ]

[ 포효의 대상이 공포에 질려 경직됩니다. ]

포효는 성공했지만 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순이라도 촉수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다면.

“하아아압!”

힘차게 그어진 용아귀가 파브리스의 가슴을 갈랐다.

그 안엔 시커멓게 변한 커다란 심장이 꿈틀대고 있었고.

그 순간 파브리스의 정신이 돌아왔다.

[ 크라켄의 마기가 포효에 저항합니다. ]

녀석의 심장에서 거머리 같은 촉수가 튀어나와 상처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아틸라가 외쳤다.

“카스피!”

“여깄다고!”

전투 내내 은신해 있던 카스피가 파브리스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네. 놈은. 언제. 부터. 거기에.”

아틸라가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카스피의 등장과, 이해할 수 없는 아틸라의 도주에 파브리스는 당황했다.

“도망. 친. 다고?”

그리고 인간의 의지가 잠식된 파브리스는 아틸라보다 등 뒤의 카스피가 더욱 위험한 대상이라 판단했다.

모든 촉수들이 카스피에게 쏘아졌다.

“지금이다! 카스피!”

퍼엉! 카스피의 몸이 사라졌다.

하싸씬의 절기 ‘소멸’이 그녀의 몸에서 처음으로 펼쳐진 순간.

“어. 어디로. 간.”

“여깄지롱.”

파브리스의 무릎 아래 고양이처럼 웅크린 카스피.

그녀의 손엔 아틸라가 물속에 감춰 둔 무휼이 쥐여 있었고.

“헤헤. 놀랐지.”

아틸라의 눈앞에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사거리를 확보했습니다. ]

[ 목표물에게 스킬, 돌진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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