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6화 (36/425)

036. 마법사의 힘 (6)

오토의 말에 카스피가 발끈했다.

“누군 이렇게 오고 싶어 온 줄 알아? 그리고 내가 살쾡이라 하지 말랬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카스피.

품 안에는 펀치의 모습도 보였다.

“잔말 말고 이거나 잡아! 거기 노는 아저씨들도 빨리!”

그녀의 성화에 오토와 부하들은 줄다리기하듯 사슬을 쥐었다.

성벽 밑을 내다보며 카스피가 외쳤다.

“살고 싶으면 이거 잡아!”

“아, 알았수!”

“다들 뛰어!”

나무에 매달려 있던 자들이 몸을 날려 사슬을 붙잡았고.

“당겨!”

오토와 부하들이 힘껏 사슬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그들은 무사히 성벽 위에 도달했다.

“흐에엑…… 살았다!”

“살았어! 살았다고!”

히죽대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오토가 외쳤다.

“시부럴. 아틸라 님은 또 어딜 간 거야!”

* * *

아틸라는 성벽 아래 있었다.

부서져 버린 성문.

‘역시 양동 작전이었군.’

크리스또프와 파비앵이 위에서 날뛰는 동안 툴루즈의 별동대가 성문을 돌파했다.

관통(貫通)에 특화된 강력한 마법사를 대동하여.

‘누구일지 짐작이 가는군.’

그러나 그들이 계산하지 못한 게 있다.

첫째는 아틸라가 파비앵, 크리스또프, 그리고 그를 지키던 병사들을 남김없이 섬멸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놈들도 곧 알게 되겠지.’

아틸라의 입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눈앞의 거대한 나무를 올려보았다.

[ 새로운 시나리오가 시작됩니다. ]

[ 소환마귀 ]

나무의 몸통에서 사람 얼굴이 튀어나왔다.

그것이 입을 벌려 울부짖었다.

그오어어어어어!

크리스또프의 얼굴.

“그래. 쉽게는 안 죽겠다 이거지.”

녀석이 소환한 나무.

그것은 제롬의 목마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더욱 크고, 강하지.’

완전 소환했을 시, 술자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크리스또프는 녀석의 일부만을 소환했다.

성벽에 오르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했고.

‘완전 소환할 능력도 되지 않았으니까.’

전쟁에 참여하기 전, 크리스또프는 자신의 몸에 위험한 술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죽임 당했을 때 자동으로 발현됐다.

‘스스로의 몸을 제물 삼아 완전 소환을 시도했지.’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완전한 실패도 아니었다.

[ 첫 번째 임무 ]

[ 소환율 53퍼센트의 ‘2급 목마종’을 퇴치하십시오. ]

[ 임무 완료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절반은 성공한 건가. 크리스또프.”

아틸라는 웃었다.

2급 목마종을 향해 돌진했다.

* * *

오토와 카스피는 다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바, 바토리 아가씨가 밑에 있다고? 그 연약한 분을 혼자 두고 왔단 말이오!”

“그래서 지금 데리러 가잖아.”

그렇게 답하며 카스피는 생각했다.

‘마법사였을 줄이야.’

처음 봤을 때부터 독특한 인상이긴 했다.

‘엄청난 미인에, 말투도 예스럽고, 복장까지도.’

수십 분 전.

방백의 성으로 말을 달리던 아틸라 일행은 성벽 너머를 울리는 굉음을 들었다.

“으힉! 지진인가!”

“지진은 아니다 카스피.”

“아, 아니라고?”

“그래. 저건 마법이로구나.”

“어이 관음쟁이.”

바토리의 눈이 물끄러미 아틸라를 향했다.

“불렀느냐. 야만전사야.”

“날 저쪽으로 보내 줘야겠는데.”

바토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새침하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흐응? 지금 네가 내게 부탁을 하는 것이더냐.”

“부탁이 아니고, 명령.”

“그냥 부탁이라 하면 안 되겠느냐.”

“싫은데.”

“…….”

“못 들었냐. 빨리 저쪽으로 보내라니까.”

“야만전사야. 난 이제 관조자가 아니다. 게다가 틈새에도 진입할 수 없는…….”

“자꾸 아는 내용 주절대지 말고. 서둘러라. 네겐 다른 방법이 있을 터다.”

“지, 지금 둘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야? 관조자는 또 뭔데.”

잠시 후 바토리가 입을 열었다.

“야만전사야. 그러려면 네가 내 힘을 견뎌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딴 건 걱정하지 마라.”

“알겠다. 해보마.”

“뭐, 뭔데! 나도 갈 거야. 바토리! 뭔진 몰라도 나도 함께 보내 줘!”

카스피의 말에 바토리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하겠구나 카스피. 넌 나의 힘을 견뎌 낼 수 없을 게다. 아니, 이 세계 대부분의 인간 역시 마찬가지지.”

바토리가 아틸라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겠느냐.”

“두 다리를 분질러 놔야 두 번 말하게 하지 않을 거냐.”

“……알겠다. 알겠으니, 그런 심한 말은 조금 자제해 주었으면 하는구나.”

아틸라는 카스피의 품에 펀치를 맡겼다.

“최대한 빨리 성벽 위로 와라. 카스피.”

“아, 알았어.”

펀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조심해서 오고.”

끼아옹!

“야만전사야. 내겐 해 줄 말이 없느냐.”

“시발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관음쟁이. 넌 성벽 안을 정리하고 와라. 성 너머에서 기다리지.”

바토리의 눈이 빛났다.

“흐응? 그렇다면 내가 힘을 좀 발휘해도 되겠느냐.”

“마음껏.”

아틸라의 무심한 답에 바토리는 만족의 미소를 머금었다.

주문을 읊었다.

“충격은 제법 있을 게다.”

바토리의 손에 부드러운 광채가 어렸다.

이내 화살처럼 쏘아진 그것이 아틸라를 타격했고.

‘크허억!’ 거친 신음을 내뱉으며 아틸라의 몸이 대포알처럼 날아갔다.

“뭐, 뭐야! 저러다 죽는 거 아냐?”

“그렇진 않을 게다. 다만.”

태연한 얼굴로 말을 달리며 바토리가 웃었다.

“속은 후련하구나.”

소녀처럼 깔깔대는 바토리의 옆얼굴을 카스피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봤다.

머지않아 둘은 성에 도달했고.

“내 걱정은 말고 가거라 카스피.”

“금방 데리러 올게. 바토리.”

카스피는 펀치와 함께 성벽 위로 올라갔다.

바토리도 말에서 내렸다.

“누, 누구……!”

제지하는 병사를 손짓 한 번으로 잠재운 그녀는 주문을 읊어 성문을 열었다.

“인간들의 싸움에 끼어드는 건 실로 오랜만이구나.”

매끄럽게 발끝을 움직여 성 안으로 들어갔다.

병장기 부딪는 소음.

“녹마탑 애송이들이 진입한 게로군.”

더욱 깊숙한 곳으로 발을 놀렸다.

또 하나의 성문이 열렸고, 그곳은 이미 전투가 한창이었다.

“막아라! 툴루즈 녀석들을 모조리 몰아내라!”

“하지만 마법사가……! 크헉……!”

“끄아아아아……!”

저만치 자리 잡은 두 무리의 방패벽.

그곳에서 촉수처럼 튀어나오는 나무뿌리가 브누아 병사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마법사 먼저 해치워!”

“차근차근 한쪽부터 뚫는 거다!”

지휘관의 외침에 병사들이 진격했다.

그러나 상대는 크리스또프를 수호하던 병사들과 동일한 능력을 지닌 정예 병사들.

“방어가 만만치 않습니다!”

“힘으로 밀어내라! 수적으로는 우리가 우세하다!”

지휘관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상대 진영엔 두 명의 마법사가 있다.

변칙적으로 날아온 촉수의 무리가 병사들의 몸을 연이어 꿰뚫었다.

“방패! 방패로 막아!”

그러자 이번엔 육중한 나무 기둥이 날아왔다.

그것에 직격당한 방패병들이 부챗살처럼 산개하며 날아갔다.

“서, 성문을 부숴 버린 마법!”

돌격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또 다른 돌격부대가 측면을 노리며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지, 진입부대……! 모두 전멸……!”

“도저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녹마탑의 두 마법사는 적에게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서로의 호위를 병행했다.

전사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

그 순간 프레데릭 브누아 방백의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나를 따르라!”

병사들의 사기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총사령관께서 오셨다!”

“좋아! 이길 수 있어!”

그러나 올라간 사기는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인간의 무기와 달리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촉수는 프레데릭을 중심으로 한 방패벽마저 여지없이 깨뜨렸던 것.

“중립을 지켜야 할 마법사들이 어찌하여 툴루즈의 편을 드는가!”

프레데릭은 방패벽을 해제했다.

검을 뽑아든 그가 촉수들을 베며 전진을 시도했다.

“총사령관을 도와라!”

“우와아아아!”

기사들도 검과 방패를 들고 프레데릭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전진할 수 없었다.

‘이렇게 뚫리고 마는 것인가!’

전사가 마법사의 고기방패라는 말이 뼈저리게 실감되는 순간.

그때였다.

“지나가겠노라.”

전장의 소음마저 무색게 만드는 매혹적인 음성.

인형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붉은 옷의 여인이 프레데릭의 앞을 스쳤다.

“자, 잠깐……!”

말릴 틈도 없었다.

촉수의 다발이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꼬마 파브리스의 발치에도 못 오는 것들이.”

그녀의 손이 들어 올려졌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퓨퓨퓻! 퓨퓻! 퓨퓨퓨퓨퓨퓻!

쇄도하던 촉수들이 동전처럼 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핏빛의 칼날.

그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촉수들을 베어 내고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프레데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어 촉수의 단면에서 녹빛 액체가 터져 나왔고.

“지저분하구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그녀의 몸을 감싸는 구 형상 보호막이 생성됐다.

그것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액체를 한 방울도 빠짐없이 받아 냈다.

때마침 전장에 도착한 오토와 카스피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저, 저, 저게 대체 뭐요! 살쾡이 암살자!”

“뭐긴 뭐야! 마법이지!”

“바토리 아가씨가 마법사였단 말이오!”

그것도 보통의 마법사가 아니다.

오토는 마법에 대해 잘 몰랐지만.

눈앞에 보이는 저것이 엄청난 것이라는 것만은 직감할 수 있었다.

“나도 조금 전에 알았다고.”

카스피 역시 오토 이상으로 놀란 눈치.

그러나.

바토리의 가공할 마법을 보고 가장 놀란 것은.

‘저, 저런 마법이 존재한다고?’

‘누구냐! 저자는 대체 누구란 말이냐!’

녹마탑의 두 마법사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당한다!’

둘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한 명이 촉수로 공격하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강력한 마법을 위한 영창을 시작했다.

“그렇게 둘 줄 아느냐.”

바토리가 왼팔을 뻗었다.

강렬한 풍압이 발산되며 그녀의 소매가 갈기갈기 찢겼다.

카스피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저건!”

눈처럼 흰 살결.

그곳엔 기묘한 빛을 뿜는 붉은 문신이 빼곡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랑 목욕할 땐 저런 거 없었다고! 어떻게 된 거야 영주 나리!”

“내, 내내내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촉수를 자르며 전진하던 핏빛 칼날이 분할됐다.

마법사를 지키는 두 방패벽을 동시에 습격했다.

파캉! 파카카카캉!

방패가 잘리고, 창자루가 잘리고, 그것을 쥐고 있던 병사들의 몸이 허수아비처럼 절단됐다.

“크허억……! 컥……!”

“끄아아아……!”

바토리의 입가가 희미하게 위를 향했다.

그녀는 기억했다.

제롬의 목마들이 등장했던 날, 아틸라가 했던 말을.

‘닥치고 구경이나 해라 관음쟁이.’

‘네 데뷔 무대는 이런 허접한 곳이 아니니까.’

“이곳을 말하는 것이었더냐.”

예고 없이 찾아든 거대한 공포에 녹마탑의 두 마법사는 얼이 빠졌다.

더 이상 영창을 이어갈 의지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저, 저자는…….”

“대체…….”

또한 바토리는 기억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렇다면 내가 힘을 좀 발휘해도 되겠느냐.’

아틸라가 했던 말을.

‘마음껏.’

퓨르륵! 퓨르르르르륵!

칼날에 삼켜진 두 마법사가 잘린 고깃덩이로 화했다.

숨소리조차 사라진 정적 속에서 매혹의 붉은 입술이 활처럼 말려 올라갔다.

“그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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