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3화 (33/425)

033. 마법사의 힘 (3)

포효(咆哮).

[ 포효의 대상이 공포에 질려 경직됩니다. ]

한 마디로 공포 스킬이다.

[ 근거리 적에게 최대 3회 전염됩니다. ]

[ 전염된 스킬은 최초의 대상보다 한 단계 낮은 공포 효과를 가집니다. ]

[ 한 번 포효에 노출된 타깃은 포효에 대한 저항 확률이 크게 상승합니다. ]

분노한 트롤의 외침.

그것의 인간 버전이라 보면 된다.

게다가 공포에 질린 목마는 돌진 디버프에 저항하지 못했다.

“뭐, 뭐야 저거! 나무들이 꼼짝을 못 하잖아!”

카스피가 놀라 외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포에 전염된 목마들이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바토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역시, 신력을 가진 게야.’

공포의 저주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바토리는 이멸의 화살 효과를 무시하고 그리즐리를 도주하게 했던 아틸라의 살기를 떠올렸다.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 게로군.’

바토리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떠올랐다.

‘야만전사야. 넌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질 생각이더냐.’

처음 봤을 때도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아무리 힘이 억제된 그리즐리였다지만 보통의 전사가 쓰러뜨릴 수준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넌.’

신수 그리즐리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얼마 후 사자왕 샤를 아인하르트를 쓰러뜨렸을 땐 한층 더 강해진 면모를 보였다.

‘인간의 성장 속도가 아니야.’

그것만이 아니다.

가스코뉴 공작성에서 하싸씬의 마스터 사바흐를 제압한 뒤.

둥지를 틀어 앉은 리베르마저 쓰러뜨렸다.

‘그땐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지. 나도. 리베르도.’

이후 다이어울프, 고블린, 놀에 이어.

절대 이길 수 없으리라 여겼던 트롤마저 격파.

‘그러고는 리베르를 추격해 정수 속에 가둬 두기까지 했으니.’

헤아릴 수 없는 관조의 역사 속에 이런 인물이 또 있었던가.

바토리는 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용병왕 카르타고.

아니.

‘버서커(Berserker). 카르타고.’

용아귀가 쉴 새 없이 적들을 도륙했다.

여덟 마리 목마가 차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 목마의 몸통을 세로로 베어 냈을 때.

“뭐, 뭐야……. 마법사가 아니었어……?”

그 안에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부릅뜬 제롬을 찾아낼 수 있었다.

“너 여기 있었구나.”

맹수처럼 입을 찢어 웃는 야만전사.

제롬은 당황했다.

‘이 내가……, 녹마탑의 위대한 마법사 제롬이…….’

그의 하의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고작 전사 따위에게 공포를 느꼈다고……?’

제롬은 떨리는 입술을 열어 마법을 영창하려 했다.

그 순간 전사가 거친 고함을 내질렀다.

[ 포효(咆哮) ]

‘으오어아아아……!’

제롬의 전신이 극도의 공포로 굳어졌다.

비명이라 생각한 것은 혀끝만을 맴돌았을 뿐이다.

‘살려……줘……!’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사가 불현듯 뒤돌아 도주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뭐, 뭐지?’

이유는 몰랐지만 천운이었다.

제롬은 굳어진 몸을 움직이려 애썼다.

도망치려면 지금뿐이다.

‘헉! 뭐, 뭐야!’

도주하는 줄 알았던 전사가 빙글 몸을 돌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코앞으로 달려왔다.

‘수, 순간 이동 마법! 이 녀석은 정녕 전사인가……!’

아니면 마법사인가!

“흠.”

고개를 갸웃하며 전사가 도끼를 들었다.

“인간에겐 안 통하는 건가.”

도끼가 내리쳐졌다.

* * *

“제롬이 실패했다고?”

사역마의 보고를 들은 녹마탑의 탑주 파브리스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부의 충고를 떠올리며 생각의 폭을 확장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봐야 1급 살수 아닌가. 제롬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떠났다.’

살수, 전사, 마법사.

그들의 상성 관계는 가위바위보와 같다.

살수가 가위.

전사가 바위.

마법사가 보.

‘즉.’

살수는 전사에게 약하지만 마법사에게 강하고.

전사는 살수에게 강하지만 마법사에게 약하고.

마법사는 전사에게 강하지만 살수에게 약하다.

그리고.

상대적 강자인 살수와의 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제롬이 선택한 것은.

‘목마(木魔)의 갑옷.’

마법사의 최대 약점인 허약한 육체.

목마의 갑옷은 그것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목마의 방어력은 웬만한 갑옷 전사를 상회한다.’

게다가 상대는 검이나 도끼가 아닌, 사슬낫을 사용하는 살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절대로 목마의 갑옷을 부수고 제롬에게 타격을 가할 수 없다는 말이지.’

파브리스는 생각을 마무리했다.

“무슨 이유에선가 제롬은 갑옷을 벗었고, 살수에게 기습당했다.”

자신의 가정을 확신하며 파브리스는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 전사의 자리는 없었다.

* * *

“뭐야. 오토 마을? 이런 낯간지러운 이름을 잘도 달아 놓네.”

“영주 이름을 딴 마을이 어디 이거 하나요! 게다가 내가 지은 것도 아니고.”

“근데 왜 흐뭇하게 웃고 있냐.”

“엥. 내가 그랬수?”

“지금도 웃고 있어, 영주 나리.”

“웃고 있구나. 철혈귀검아.”

오랜만에 돌아온 영지는 전쟁 준비로 한창이었다.

영주성 앞에 선 아틸라는 아까보다 어이없는 얼굴로 오토를 돌아봤다.

“……철혈귀검성?”

“어흠! 흠! 이건 내가 지은 이름 맞소.”

“미친놈.”

“미, 미친놈이라니! 그래도 명색이 영주인데 너무한 거 아니요!”

“허이구. 집에 오니까 어깨에 막 힘이 들어가냐? 왜. 또 종자 타령하게?”

“아이고 아틸라 님! 그 얘긴 왜 또……!”

라시드는 영주 없는 영지를 잘 관리하고 있었다.

“아빠!”

“카스피. 아틸라 님.”

“난 안 보이슈?”

“영주님 오셨습니까. 그런데 이 아름다운 분은…….”

“바토리라 부르려무나.”

“……바토리?”

라시드의 눈빛이 변했다.

‘설마, 그 바토리는 아니겠지.’

아주 오래전.

크리엘도라 남부 대륙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사라진 전고미문(前古未聞)의 마녀, 바토리 에르제베트.

한때 하싸씬의 살수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 0순위로 꼽히던 위험인물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이렇게 젊은 여성일 리 없지 않은가.’

라시드의 얼굴이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일단 여독을 푸시지요.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보겠습니다.”

그날 밤.

“오. 여관 주인 할 때 실력이 녹슬지 않았잖수 암살자 양반.”

“아빠 요리는 정말 최고라니까. 안 그래? 아틸라.”

“뭐 그럭저럭 먹을 만하군.”

“이럴 땐 그냥 맛있다고 해도 된단다. 야만전사야.”

아빠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던 라시드가 말했다.

“이번 전쟁. 아무래도 배후 세력이 있는 듯합니다.”

“배후 세력?”

아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녀석들이 벌써?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아스투리아 왕국에서 툴루즈의 뒤를 봐주는 것 같습니다.”

젠장 빌어먹을 맞구만.

“암살자 양반은 그걸 어디서 들었수? 이제 살수는 그만두셨다면서.”

“내가 전했다.”

새로이 등장한 목소리에 오토가 기겁하며 포크를 떨어뜨렸고.

“시부럴 깜짝이야!”

아틸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또 왔네. 저거.

“스, 스승님!”

“하하하. 카스피!”

카스피를 얼싸안은 사바흐는 자리에 부복한 라시드를 손수 일으켜 세웠다.

“은퇴하신 노 선배님께선 이러실 필요 없소.”

그러고는 바람 같은 동작으로 아틸라 옆자리에 앉았다.

“어흠, 흠, 도살자. 그날 단주의 눈이 있어 돕지 못했다.”

머쓱한 얼굴로 속삭이는 사바흐에게 아틸라가 말했다.

“용건이나 자세히 말해 봐.”

사바흐가 설명을 시작했다.

* * *

가스코뉴 공작령, 아키텐 백작령, 그리고 툴루즈 백작령.

모두 발루아 왕국의 속국들이다.

그런 발루아 왕국과 북서쪽으로 국경을 맞댄 왕국이.

‘아스투리아 왕국.’

발루아의 위세에 눌려 번번이 영토 확장에 실패하던 아스투리아 왕국은 이번에 기회를 잡았다.

가스코뉴 공작령과 아키텐 백작령과의 전쟁 중에 가스코뉴 공작이 죽고만 것.

심지어 후계자는 일공자 롤랑이 아닌, 듣도 보도 못한 이공자 작센.

‘가스코뉴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아스투리아는 툴루즈를 이용하기로 한다.

군자금을 지원해 주는 대가로, 이후 가스코뉴 공국에서 생산되는 물자를 나눠 갖기로 한 것.

‘좋소. 힘을 합쳐 가스코뉴를 몰아냅시다.’

툴루즈 백작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에게도 가스코뉴의 막강한 군세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으니까.

그러나 아스투리아의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가스코뉴를 차지한 뒤 툴루즈 백작령까지 모조리 삼켜 주마.’

그렇게만 된다면.

아스투리아는 발루아 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후 내실을 다진다면 몇 년 내 발루아 왕국과의 전면전도 준비할 수 있으리라.

‘발루아까지 차지하고 나면, 다음은 북쪽이다.’

물론 원작에서 아스투리아가 발루아 왕국을 집어삼키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지독한 내전으로 혼란에 빠진 발루아 왕국을 아스투리아는 기세 좋게 침공하지만, 도리어 점령당한다.

왕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이 발루아의 왕이 된 어떤 사내의 가공할 무력 때문.

‘저, 저것이 정녕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전쟁이 끝난 뒤, 발루아는 왕의 의지를 받들어 국명을 바꾼다.

‘아인하르트 왕국.’

샤를 아인하르트 왕의 대국적 패도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아무튼.

역사는 그렇게 돌아가야 하는데.

‘빌어먹을 아스투리아 놈들. 왜 벌써부터 지랄이야.’

툴루즈의 군사력은 가스코뉴를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아틸라는 툴루즈 백작이 ‘그들’을 이용할 거라 예상했다.

‘녹마탑의 마법사들.’

금기를 통해 자신의 마법을 발전시키는 자들.

그들에겐 막대한 연구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을 조달해 주며 틈틈이 자신의 잇속을 챙겨 온 것이 바로 툴루즈 백작.

그간 녹마탑이 음지의 의뢰를 받아들였던 것 역시 연구비 마련을 위해서다.

‘하싸씬의 카스피 제거 의뢰. 툴루즈의 가스코뉴 침공 의뢰.’

두 의뢰까진 아틸라도 예상했다.

그런 연유로 바토리도 잡아 놓았고.

하지만.

‘아스투리아까지 끼어들 줄은.’

아스투리아는 왕국이다.

발루아 왕국만큼은 아닐지언정, 툴루즈 백국과는 규모에서 큰 차이가 난다.

즉.

‘녹마탑 마법사들을 대거 운용할 자금이 마련된다는 것.’

아스투리아는 대놓고 툴루즈를 도울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발루아 왕국과 전면전을 치를 수 있기 때문.

‘병사를 빌려주는 것보다 군자금을 대주는 편이 뒤끝이 없지.’

아틸라는 이번 전쟁에 참여할 녹마탑 마법사를 한두 명 정도로 내다봤다.

어느 한 국가에 속한 입장이 아닌 마탑의 마법사들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여러 명의 마법사가 전장을 휘젓고 다녔다간 중앙에서 제재가 들어올 테니.’

사실 녹마탑은 중앙의 제재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금기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녹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다른 마탑의 마법사들 사이에서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었고.

중앙 마탑 역시 웬만한 치부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녹마탑이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녹마탑은 중앙의 간섭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두고 마법사들을 파견했다.

‘게다가 마법사의 파견 비용은 상당히 비싸지.’

한둘 정도의 마법사라 해도 툴루즈 입장에선 상당한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아스투리아의 자금력이 끼어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셋, 혹은 넷.’

녹마탑이 중앙의 제재를 얼버무리며 파견할 수 있는 최대 인원.

‘어쩌면 다섯. 아니, 그 이상일지도.’

이 시점의 녹마탑은 자금난에 허덕이는 상태.

탑주인 파브리스가 이전까지 없던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얼마 뒤 벌어질 ‘어떤 사건’의 전초가 된다.

‘이거 또 내가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원작에서 그 사건을 해결하는 건 당연히 샤를이다.

아무튼 지금의 녹마탑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돈을 끌어모아야 하는 상황.

제재를 각오하고 다량의 마법사를 파견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파브리스의 입장에선 연구가 성공하기만 하면.

‘더 이상 중앙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질 테니.’

골치가 아파 온다.

제아무리 바토리가 있다 해도, 저들을 온전히 막아 낼 수 있을까.

게다가 카스피까지 지켜 가면서?

‘음…….’

문주크의 힘을 빌려 볼까 생각하던 아틸라는 고개를 저었다.

야만부족의 도움을 받는 것은 역사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작에서 그들은 이미 멸망한 부족.’

더 이상 존재감을 키울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