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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9화 (29/425)

029. 불사자를 죽이는 방법

트롤을 전멸시킨 아틸라 일행의 합류로 전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니, 바뀐 정도가 아니라.

‘학살.’

트롤의 심장 버프가 지속되는 동안 아틸라는 종횡무진 전장을 누볐다.

“맙소사……!”

“저건 말도 안 돼……!”

수적 우세를 앞세운 병사들이 죽을힘을 다해야 가까스로 상대 가능했던 몬스터.

그런 몬스터들을 단신으로 제압하는 아틸라를 보며 병사들은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도살자의 실력이 이 정도였다니……!”

“그야말로 괴물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닌가!”

트롤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몬스터들은 결국 후퇴를 시작했다.

아틸라는 놈들을 끝까지 추격해 인정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우와아아아아!”

“이겼어! 이겼다고!”

다이어울프 12마리.

고블린 9마리.

놀 6마리.

트롤 3마리.

전장 위에 쓰러진 몬스터의 숫자였다.

“우리가 해냈어!”

“스테판 총사령관 만세!”

“아틸라 공 만세!”

승리에 도취한 병사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고함쳤다.

“트롤 학살자!”

“트롤 학살자!”

어느새 그들의 목소리는 세 마리 트롤을 제압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영웅을 부르짖고 있었다.

아틸라의 새로운 별호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아틸라 공은 어디에…….”

몬스터의 시체를 수습하라 명한 하인리히가 아틸라를 찾았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

‘이런 미친 새끼……!’

리베르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몬스터와의 전투를 마무리한 야만전사가 수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자신을 찾는 것이라 여긴 리베르는 적당히 놀려 주다 빠질 생각이었고.

그런데.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정확히 특정할 수 있는 거지!’

야만전사는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최단거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몇 번이고 방향을 바꿔 봤지만.

그때마다 녀석도 방향을 바꿨다.

‘대체 뭐야! 엘프의 추격술이라도 익힌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설령 엘프라 해도 자신을 이렇듯 완벽하게 추격할 수는 없다.

위기감을 느낀 리베르는 까마귀로 변신해 날아올랐다.

기다렸다는 듯 날아온 손도끼가 모가지를 잘랐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추락한 리베르의 몸이 검은 깃털로 화했고,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흐억……! 흐어억……!”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한 도주가 시작됐다.

눈치를 살피던 리베르는 몇 번 더 까마귀로 변신해 봤지만.

“까아악!”

“꾸에에엑!”

그때마다 단검과 표창이 날아와 모가지를 따 버렸다.

‘살수의 무기인 표창까지 투척한다고!’

표창을 다루는 전사는 흔치 않다.

그러나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하악……! 하아악……!”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 본 게 언제였는지, 또 이런 위기감을 마지막으로 느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젠장. 균열이라도 생성해 놓을 걸 그랬나. 아니면 마법진 몇 개라도.’

부질없는 생각이다.

수해 안에 둥지를 틀어 놓는 건 위험천만한 일.

‘자칫 잘못하면.’

강대한 마력에 호기심을 느낀 심층부 몬스터들이 기어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있었구나 리베르.”

리베르의 등줄기가 빳빳하게 곤두섰다.

뒤를 돌아봤다.

잔인한 맹수의 눈을 뜬 야만전사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잡혔다.

‘젠장. 벌써……!’

리베르도 순순히 당할 생각은 없었다.

도주하며 영창해 뒀던 마법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피할 수 없을 거다! 야만전사!”

콰르륵! 아틸라의 발밑에서 시커먼 사슬이 솟아났다.

아틸라는 웃었다.

[ 사거리를 확보했습니다. ]

파앙! 사슬들을 제치며 아틸라가 돌진했다.

순식간에 코앞으로 접근한 아틸라를 보며 리베르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게 트롤을 잡았던……!’

스킬, 돌진.

멀리서 구경했을 때와 직접 당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이건 거의 마법이나 마찬가지……!’

리베르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돌진의 관성을 더한 용아귀의 쇄도가 그의 몸을 반으로 쪼갰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아악!”

토막 난 리베르의 몸이 검은 깃털이 되어 흩어졌다.

깃털들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제 위치를 바꿨고.

이윽고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야, 야만전사! 잠시 내 말 좀 들……!”

퍼걱! 그의 몸이 다시 쪼개졌다.

“끄아악……! 시발……. 존나…… 아퍼…….”

분리된 입술에서 띄엄띄엄 목소리가 흘렀다.

리베르의 몸이 다시금 깃털로 화했다.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뭐야. 도망치려고?”

검은 깃털이 바람처럼 거리를 벌렸다.

이어 흑표의 형상으로 변해 도주를 시작했다.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렇게 둘 거 같냐.”

단숨에 돌진으로 따라잡아 꼬리를 붙잡았다.

부웅, 흑표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트롤에 비하면 이 정돈 종잇장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

“야, 야만전사야! 내 말 좀……!”

짐승의 얼굴로 사람의 말을 하는 모습을 신기하다 생각하며, 아틸라는 녀석의 머리통을 바닥에 꽂았다.

각도기 같은 곡선을 그리며 처박힌 놈의 아가리 사이로 핏물이 흩어졌다.

캬오오오오!

잇몸을 드러내며 흑표가 덤벼들었다.

아틸라가 피식거렸다.

“이번엔 표범 말이냐? 하나만 해. 헷갈리니까.”

아틸라는 흑표의 아가리로 손을 뻗어 혀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도낏자루로 머리통을 찍었다.

꽈드득……! 두개골이 쪼개지는 소음과 함께 흑표의 몸이 스프처럼 허물어졌다.

“어차피 죽여 봤자 계속 살아날 테니.”

아틸라는 놈의 다리를 용아귀로 자르고, 손으로 뜯어냈다.

다리 하나를 잃을 때마다 녀석은 아이처럼 비명을 질렀다.

“캬오오오!”

“뉴오아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이윽고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리베르가 허수아비처럼 널브러졌다.

팔 한쪽과 다리 두 쪽이 잘린 상태로.

“시…… 시발……. 그냥 죽여…….”

“왜. 또 부활하려고?”

“아프단…… 말이야…….”

“그러라고 자른 거다.”

아틸라는 무휼을 꺼내 리베르의 목에 겨눴다.

리베르의 눈이 흔들렸다.

“그건…….”

“이 검의 위력은 너도 알고 있겠지.”

당연히 알고 있다.

가스코뉴 공작성에서, 자신이 영창한 마력을 산산이 분쇄해 낸 마법검이니까.

“이걸로 네 목을 따 버리면 어떨까. 또 부활할 수 있을까?”

부활할 수 있다.

물론, 한 번 더 죽게 된다면 위험하겠지만.

“하지 마…….”

아틸라는 웃었다.

그는 심안으로 리베르의 심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질문에 답하면 살려 주겠다. 어때.”

“물어봐……. 빨리……. 다리 아파…….”

지랄하네. 아픈 척하긴.

‘심안은 상대가 내게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게 만들어야 비로소 발동되는 건가.’

“네놈들, ‘관조자’는 세계의 경계선을 들락거릴 수 있지.”

“시발……. 그건 또…… 어떻게…….”

리베르는 놀랐다.

요정들이 부르는 ‘관조자’라는 호칭을 안다는 것.

그리고 ‘세계의 경계선’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리베르의 표정이 변했다.

“호오. 다른 세계라면 어느 곳을 말하는 거지?”

띄엄띄엄 끊기던 목소리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여간 음흉한 새끼.

“예를 들면.”

지구에 대해 설명하려던 아틸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퍼걱! 리베르의 목을 잘라내며 몸을 굴렸다.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크윽……!”

흔들리는 시야 속에 붉은 그림자가 비쳤다.

아틸라는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흐응. 재밌는 구경이었는데. 이대로 두면 리베르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말이야.”

바토리 에르제베트.

“죽다니. 네 입에서 그런 농담이 나올 줄을 몰랐는걸.”

“너야말로 장난은 그만 치고 일어나지? 리베르.”

리베르의 잘린 머리통이 히죽 웃었다.

이어 깃털의 과정을 거쳐 부활한 리베르가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구나. 멋쟁이 야만전사야.”

아틸라도 옆구리 상처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현기증.

[ 출혈의 저주가 몸 안을 파고듭니다. ]

출혈(出血).

바토리가 지닌 강력한 저주 중 하나.

“걱정 말렴. 죽지 않도록 힘 조절은 해 두었단다.”

“날 위한 행동이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바토리 에르제베트.”

“내 이름을 알아?”

이내 바토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 화살 때문인 게야.’

“네놈들이 강한 마법을 난사할 수 없는 이유는 심층부 몬스터를 자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호오?”

“이미 너희는 상당한 마법을 사용했다. 방금 전 공격이 아마 한계치일 테지.”

“과연 그럴까? 야만전사야.”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하면 놈들이 냄새를 맡을걸. 못 믿겠으면 시험해 봐도 좋고.”

심층부의 몬스터.

놈들이 외곽부로 넘어오면 당장의 위험만이 문제가 아니다.

‘만에 하나 놈들이 외곽부를 점령하고, 방벽마저 돌파한다면.’

대륙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그건 결코 관조자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흐응. 뭐 그렇다고 해 둘까.”

윗입술을 핥으며 바토리가 물었다.

“그런데 야만전사야. 내 저주에 당하고서 어찌 그리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게냐?”

“아아, 이거?”

아틸라는 히죽 웃으며 상처를 감싼 손을 치웠다.

“네 파트너 잡기 전에 뭘 좀 먹었거든.”

[ 트롤의 재생 능력이 상처 회복을 완료했습니다. ]

바토리의 눈이 커졌다.

“뭬, 뭬야? 회복했다고?”

그 순간 질풍처럼 날아든 무휼이 리베르의 목을 잘랐다.

“시, 시발……. 야만전사…… 너…… 진짜…….”

“리베르!”

바토리도 이번만큼은 크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제 일곱 번째네?”

아틸라가 이죽거렸다.

“당분간 ‘구슬’ 속에서 잘 살아 보라고.”

* * *

관조자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

그것은 하루에 일곱 번을 죽이는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 관조자가 죽는 건 아니지.’

그러나.

동일한 상대에게 일곱 차례 연달아 죽임 당한 관조자는 구슬 모양의 정수로 변해 살해자에게 귀속된다.

그렇게 귀속된 구슬은.

‘주인의 의지 없이는 해방 불가.’

영원한 건 아니다.

주인이 죽으면 귀속의 봉인은 풀리고, ‘무언가’의 도움을 받으면 관조자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파드드드드…….

리베르의 몸이 깃털로 변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빌어……먹을……. 야만전사……. 너 진짜…….”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구멍이 허공에 생성됐다.

그것은 진공청소기처럼 깃털을 빨아들였고.

이윽고 단단하게 뭉쳐진 깃털은 검은 구슬로 변해 아틸라의 손에 떨어졌다.

“딱 쥐기 좋구만.”

아틸라는 구슬을 쥔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바토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야, 야만전사야…….”

“바토리.”

아틸라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서렸다.

“내가 이걸 깨뜨리면 어떻게 될까.”

관조자가 불사자일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야만……전사야……. 그,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한 쌍씩 짝을 이룬 놈들의 마력이 서로를 수복시키기 때문이다.

“아마도 네가, 더 이상 불사자로 돌아갈 수 없게 되겠지.”

불사자를 죽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짝을 이룬 한 쌍을 동시에 죽이는 것.

두 번째는.

“야, 야만전사야……. 잠깐 내 말을…….”

둘 중 하나를 무력화시킨 뒤, 남은 하나를 죽이는 것.

“자, 이제 어쩔래.”

덫에 걸린 반쪽짜리 관조자.

“바토리 에르제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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