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트롤 학살자 (3)
트롤의 심장.
패영전 원작에서도 중후반까지 희귀 등급으로 분류되는 강화 아이템.
[ 복용 시 20분 동안 근력이 20% 증가하며, 트롤에 준하는 재생 능력을 획득합니다. ]
‘준하는’이라는 단서.
한 마디로 트롤의 재생력과 동등하다는 말은 아니다.
‘머리라도 잘리면 걍 뒈지는 거지.’
재생 능력이야 물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근력 20퍼센트 증가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전사의 외침 버프로 근력 10퍼센트 증가.’
‘트롤의 심장 효과로 근력 20퍼센트 증가.’
전사의 외침의 두 배 증가다.
전사의 외침 버프만으로도 눈에 띄는 근력 향상을 체감할 수 있었는데 그 두 배라면.
‘난리가 나는 거지.’
합하면 무려 30퍼센트!
그뿐만이 아니다.
돌진과 함께 사용하면.
[ 돌진에 가격당한 타깃은 1초간 기절 상태에 빠지며, 방어력과 이동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
내 근력은 30퍼센트 상승하고, 상대의 방어력은 20퍼센트 감소.
‘이 정도면.’
아틸라는 자신했다.
‘트롤과 정면으로 붙어 볼 만하다.’
야만전사의 피가 끓어올랐다.
* * *
몬스터들과 혈투를 벌이던 하인리히는 땅을 흔드는 폭음을 들었다.
‘뭐, 뭐지!’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떡이 되어 쓰러진 트롤.
그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놈에게 돌진하는 도살자가 보였다.
‘저, 정말로 쓰러뜨렸단 말인가!’
아틸라 일행이 트롤을 잡겠다며 달려간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하인리히는 경악했지만, 이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아틸라 공이 트롤을 쓰러뜨렸다!”
웅혼한 기세를 담아 외쳤다.
“나머지 두 마리도 시간문제다! 방벽의 전사들이여! 싸워라! 우리는 오늘 승리할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한눈팔 겨를도 없던 병사들은 하인리히의 목소리에 목이 터져라 화답했다.
희망을 엿본 것이다.
‘도살자가 트롤을 쓰러뜨렸다.’
‘정말로 우리가 이길지도 몰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수비대, 창병대, 궁병대, 그리고 강철 기사단의 모든 전사들이 포효했다.
하나 되어 싸우는 그들의 기세에 몬스터들마저 주춤할 정도.
그리고 아틸라는.
‘좋아. 역시 하인리히로군.’
새로운 사냥을 시작했다.
“아니! 그걸 왜 먹는 거요!”
“흐에에에엑!”
트롤의 심장을 입에 넣는 아틸라를 보며 오토와 카스피가 기겁했다.
어른의 머리통만 하던 심장은 아틸라의 손 위에서 야구공만 한 크기로 작아졌다.
아틸라는 그것을 으적으적 씹어 삼켰다.
[ 트롤의 심장을 복용했습니다. ]
[ 20분 동안 근력이 20% 증가하며, 트롤에 준하는 재생 능력을 획득합니다. ]
“너희는 변경백을 도와라. 펀치도 데려가고.”
“뭐, 뭐요? 지금 저 두 마리를 혼자 상대하시겠다고?”
동족이 죽은 것을 확인한 트롤 두 마리는 더없이 흉포해진 상태.
그러나 여전히 놈들에게 연계 플레이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아틸라는 혼자서도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소리야. 나도 함께 싸울 거야 아틸라.”
“나, 나도 그렇수!”
카스피와 오토의 말에 아틸라는 피식 웃었다.
“죽어도 모른다.”
끼아옹! 펀치도 콧김을 퐁퐁 뿜어 대며 제 존재를 알렸다.
아틸라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펀치 녀석. 또 레벨업했네.’
오른손엔 용아귀를, 왼손엔 무휼을 든 아틸라가 트롤에게 돌진했다.
그의 뒤를 펀치가, 오토가, 카스피가 쫓았다.
[ 돌진에 성공했습니다. ]
[ 목표물이 1초간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
[ 목표물의 방어력과 이동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
크게 외쳤다.
[ 스킬, 전사의 외침이 활성화됩니다. ]
[ 모든 파티원의 근력과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
아틸라의 입가가 위로 솟았다.
기절한 트롤의 팔에 용아귀를 때려 박았다.
[ 근력 30% 증가 ]
퍼걱! 트롤의 팔이 나무토막처럼 잘렸다.
관성을 이용한 아틸라의 몸이 반 바퀴 회전했고, 이번엔 발목이 절단됐다.
크어어어어!
기절에서 깨어난 트롤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쯤 되자 나머지 트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틸라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게 둘까보냐!’
아틸라는 뒤돌아 트롤과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아틸라의 뒤를 쫓던 오토와 카스피는 이쪽으로 도주하는 그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 사거리를 확보했습니다. ]
상태창을 확인한 아틸라는 다시 180도 회전하며 트롤에게 돌진했다.
“뭐 이리 왔다 갔다 하는 거요!”
오토가 히죽 웃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기세 좋게 돌진한 아틸라는.
‘엥?’
다소 당황한 상태로 두 번째 트롤을 마주했다.
[ 목표물이 돌진의 효과에 저항했습니다. ]
1초간 기절.
방어력과 이동 속도 20퍼센트 감소.
두 효과가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젠장. 면역이 뜨긴 하는구나.’
이어 떠오르는 생각.
[ 몬스터에게 강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
‘강한 효력을 발휘한다던 몬스터 대상으로 면역이라니.’
물론 상대가 수해 외곽부 최강자, 트롤이긴 했지만.
돌진 스킬이 생각만큼 만능은 아닌 것 같다고 아틸라는 생각했다.
‘하긴 스킬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으니.’
그리고.
디버프를 먹이지 못한 트롤은 강했다.
‘빌어먹을.’
그래서 아틸라는 팔과 발목을 날려 버렸던 트롤의 재생을 막을 수 없었다.
눈치 빠르게 대응한 건 카스피였다.
“영주 나리! 우리가 저놈을 막아야 해!”
“히익! 우, 우리끼리 말이요!”
“곰탱이도 있잖아! 가자고!”
트롤은 벌써 절단된 손과 발을 이어 붙이려 하고 있었다.
카스피는 사슬낫을 휘둘러 트롤의 잘린 발을 포박한 뒤 먼 곳으로 내던졌다.
“자, 잘했소! 살쾡이 암살자!”
“누가 살쾡이야!”
그러나 팔의 수복은 막을 수 없었다.
트롤은 감쪽같이 잘린 팔을 이어 붙였다.
‘그래도 발 하나가 없으니 기동성은 크게 떨어지겠지.’
카스피가 트롤의 팔이 아닌 발을 선택해 날린 이유였다.
자신들의 목적은 트롤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아틸라가 하나를 죽이고 올 때까지 버틴다.’
트롤이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으며 일어섰다.
놈의 반대편 발목을 잘라 볼 심산으로 오토가 검을 휘둘렀지만.
“뭐, 뭐가 이렇게 단단해!”
고작 살갗만을 베어 냈을 뿐이었고.
그마저도 순식간에 재생됐다.
“아니 아틸라 님은 대체 이걸 어떻게 잘라 낸 거요!”
“영주 나리! 피해!”
오토에게 휘둘러지는 트롤의 팔에 사슬낫이 감겼다.
그와 동시에 펀치가 오토의 옆구리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꾸에에엑!”
아주 약간이지만 사슬낫의 방해에 느려진 트롤의 팔은 아슬아슬 오토를 빗나갔다.
바닥에 쓰러진 오토의 가슴을 밟고 선 펀치가 정신 차리라는 듯 끼아옹! 소리쳤다.
“아이고 알았어 이놈아!”
오토가 옆구리를 만지며 일어섰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아틸라 님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 아냐.”
아틸라는 저 무지막지한 트롤과 일대일 혈투를 벌이고 있다.
딱 봐도 발목 잘린 녀석까지 상대할 여력은 없어 보였다.
“그래. 가자 펀치.”
씩 웃으며 오토가 트롤에게 달렸다.
그러나 금세 펀치에게 추월당했다.
“너 뭐 그리 빨라졌냐!”
측면에선 카스피가 트롤의 발목에 사슬을 감으려는 중이었다.
그러나 트롤은 놀라운 민첩성으로 피한 뒤 사슬을 잡아챘다.
“꺄아아악!”
카스피의 몸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어 트롤의 손바닥이 벼락처럼 내려왔다.
“이익……!”
카스피는 옆으로 굴러 피했다.
퉁기듯 몸을 일으킨 그녀는 한층 가까워진 트롤의 눈을 향해 표창을 투척했다.
크어어! 트롤이 자신의 눈을 부여잡았고, 덕분에 사슬낫을 되찾은 카스피는 이번에야말로 트롤의 발목에 사슬을 감을 수 있었다.
“영주 나리! 펀치! 당겨!”
펀치가 사슬을 물고, 오토와 카스피는 양손으로 잡고, 셋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사슬을 당겼다.
“시, 시부럴! 꼼짝도 안 하잖수!”
“빌어먹을 영주 나리! 그렇게 힘이 없어서야 어디 여자나 한 번 사귈 수 있겠어!”
“나, 난 제법 센 편이요!”
오토는 억울하다는 얼굴이었지만.
이쪽을 돌아보는 트롤을 보자마자 기겁해 소리쳤다.
“누, 눈깔이 벌써 멀쩡해졌수!”
트롤이 신경질적으로 던진 표창이 카스피에게 날아왔다.
“위, 위험하오!”
오토는 사슬을 놓고 검을 뽑아 그것을 튕겨 냈다.
그러나 그 탓에 트롤의 힘을 이기지 못한 카스피는 다시금 바닥을 굴렀다.
“빌어먹을! 말을 하고 놔야 할 거 아냐!”
“아니 내가 구해 준 거요! 구해 줬다고!”
“개뿔! 이거 잡고 나면 뒈지게 처맞을 줄 알아!”
“억울하오!”
때맞춰 물었던 사슬을 놓아 무사할 수 있었던 펀치는 둘의 말싸움을 보며 푸웅,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트롤의 몸에서 시작된 이상 현상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끼아오오오옹!
오토와 카스피도 사태를 알아챘다.
“시, 시부럴 저거 뭐요!”
“서……, 설마……!”
사라졌던 트롤의 발이.
“재생하고 있다고……?”
크오어어어어어어!
발을 재생시킨 트롤이 괴성을 질렀다.
어찌나 강한 살기였는지 카스피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우, 움직일 수가 없어……!’
카스피는 몰랐지만 그건 ‘분노한 트롤의 외침’이라는 스킬이었다.
이것에 적중당한 타깃은 공포에 빠져 전신이 경직된다.
오토와 펀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 빌어먹을……! 몸이……!”
트롤이 다가왔다.
공포 디버프의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광분한 트롤이 인간 둘과 새끼곰 하나를 찢어발기기엔 충분한 시간.
“여, 영주 나리, 어떻게 좀 해 봐……!”
트롤의 손이 무너지는 지붕처럼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퍼거억! 둔탁한 소음을 내며 또 다른 트롤의 주먹이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카스피의 눈이 흔들렸다.
‘뭐, 뭐야! 설마……!’
그녀가 놀란 건 트롤이 동족을 공격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트롤은 둘.
한 마리는 여기에 있고.
나머지 하나마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틸라가…… 쓰러졌어……?’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틀렸다.
섬광처럼 나타난 아틸라의 등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게 변경백이나 도우라니까.”
카스피는 멍한 얼굴로 아틸라를 바라봤다.
눈앞의 트롤을 가격한 건 아틸라가 상대하던 트롤이 아니었다.
죽어 나자빠진 녀석의 절단된 팔이었다.
이쪽의 위기를 감지한 아틸라가 돌진 직전에 집어던졌던 것.
“벌벌 떨기는. 그러다 오줌 싼다.”
카스피를 향해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트롤에게 달려들었다.
[ 목표물이 1초간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
[ 목표물의 방어력과 이동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
조금 전 트롤과 달리 이놈에겐 돌진 디버프가 먹혔다.
디버프가 박히지 않은 트롤도 때려눕힌 아틸라.
그렇다면 눈앞의 트롤은.
그저 맛 좋은 거대한 먹잇감에 지나지 않을 뿐!
트카앙!
솟구친 용아귀가 트롤의 팔을 잘랐다.
쇄도하는 반대편 손바닥을 무휼로 찍어 막은 아틸라는 놈의 품으로 파고들어 가슴에 도끼를 꽂았다.
“미, 미친! 어떻게 몇 분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소!”
오토의 말은 타당했다.
두 번째 트롤을 쓰러뜨린 뒤, 그는 레벨업했으니까.
“트롤을 세 마리나 풀어 놓은 건 실수였다.”
갈라진 트롤의 가슴에 왼손을 쑤셔 넣은 아틸라가.
“음흉한 까마귀 새끼.”
콰득! 심장을 적출했다.
“다음은 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