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트롤 학살자 (2)
‘놈을 처음 봤을 때, 내 머릿속을 지배한 건 오직 하나의 감정이었다.’
원작에 쓰인 하인리히의 독백.
‘공포.’
그 대상이 아틸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두 번째 임무의 최종 목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기다리다 지쳤다고.”
수해 외곽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트롤.”
3미터를 훌쩍 넘는 키.
인간의 수 배에 달하는 괴력.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성.
그리고.
높은 재생 능력.
‘재생 능력이 아주 개사기급이지.’
다이어울프의 재생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어느 정도냐면.
‘목을 잘라도 제 손으로 다시 붙이는 놈이니까.’
심지어 놈의 피부는 돌덩이처럼 단단하기까지 하다.
마치 그리즐리 녀석처럼.
그러자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즐리랑 트롤이랑 붙으면 누가 이기려나.’
끼아옹! 펀치가 대답했다.
녀석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가소로워 아틸라는 피식 웃었다.
‘웬만한 몬스터는 트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
설령 다이어울프 한 무리가 덤빈다 해도 마찬가지다.
십여 마리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 내고.
압도적인 재생 능력으로 상처를 회복하며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다이어울프를 사냥할 것이다.
‘다른 몬스터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트롤이 수해 외곽부 최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토. 카스피.”
아틸라의 부름에 두 사람이 달려왔다.
“뭐, 뭐유.”
“오. 나도 이제 정식 동료로 인정해 주는 거야? 아틸라.”
카스피의 물음을 무시하며 아틸라는 트롤을 상대할 때의 주의점을 알렸다.
“아, 아틸라 님은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알고 계신 거요?”
“목을 잘라도 살아난다니. 정말 죽일 수는 있는 거야?”
여전히 아틸라는 둘의 물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오토의 손에 무언갈 쥐여 주며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오토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히익! 그, 그런 위험하고 막중한 임무를 저에게!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요!”
“위험하긴 개뿔. 거저먹는 임무지.”
“아니면 영주 나리. 나랑 바꿔도 되는데.”
“그, 그럴 순 없지! 책임지고 내가 맡겠소!”
오토는 혹여 카스피가 빼앗아가기라도 할까 봐 아틸라에게 넘겨받은 물건을 등 뒤로 숨겼다.
“농담이야 농담. 아하하하.”
그때 하인리히가 아틸라에게 다가왔다.
“아틸라 공.”
어느새 아틸라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아틸라가 말했다.
“변경백께서도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몬스터들은 완전히 도망친 것이 아닙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네.”
“다행히 놈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 트롤은 자신이 부리는 병력 대부분을 성문으로 진입시킨 뒤, 자신들은 수해 속으로 몸을 숨겼다.
성벽 밖에서 싸우려던 아틸라가 요새 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트롤 세 마리는 저희가 상대하겠습니다.”
하인리히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강철 기사단은 정기적으로 수해를 정찰하고, 조사한다.
‘전투는 최대한 피한다. 우리의 목적이 정찰이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위험한 임무지만 예기치 않은 각종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
그리고 하인리히는 수년 전, 트롤을 조우한 일이 있었다.
‘저, 저게 대체……!’
다이어울프, 고블린, 놀 등 수없이 많은 몬스터와 전투를 치러 본 그였지만.
‘공포.’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강철 기사단은 그날 전력의 절반을 잃었다.
“변경백께서는 나머지 몬스터들을 막아 주십시오.”
아틸라의 목소리가 하인리히의 상념을 깨웠다.
아틸라는 조금 전, 방벽의 병사들에게 전사의 외침 버프를 줄 수 있는지 확인했다.
‘버프는 파티원에게만 공유된다.’
결론은.
오토, 카스피, 펀치 외에는 아틸라의 파티원이 될 수 없었다.
‘하인리히만이라도 파티원이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자신을 제외한다면 이곳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사내다.
아틸라는 파티를 맺기 위한 조건에 대해 추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틸라 공. 그건 너무 무리한 계획이오.”
하인리히는 자신만이라도 트롤 사냥을 돕겠다고 제안했다.
아틸라는 사양했다.
“변경백께서는 더 막중한 책임이 있지 않으십니까.”
총사령관은 병사들을 지휘하고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어찌 됐든 아틸라 일행은 외부인.
트롤과 싸우다 전사한다 해도 강철 기사단과 병사들이 살아남는다면 변경백은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죽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 * *
한편.
바토리와는 다른 곳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리베르는.
“그 사이 더 강해졌군. 야만전사.”
아틸라의 활약을 보며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떤 마술을 부렸길래 넌 세계의 섭리를 거스를 수 있는 것이냐.”
거듭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자.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내 기대가 마땅한 것이라면, 넌 이번 난관 역시 극복할 수 있겠지.”
아틸라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수해로 유인했다.
다섯 마리의 다이어울프는 훌륭하게 그 임무를 마쳤다.
“다이어울프의 가죽을 더욱 질기게 가공했군. 하지만 그걸로 트롤을 잡을 수 있을까.”
불가능.
트롤을 일대일로 상대해 잡을 수 있는 자는 남부 대륙 전체를 뒤져도 흔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트롤은 세 마리.
‘야만전사. 너뿐 아니라 하싸씬의 단주가 찾아온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너는 늘 나와 바토리의 예상을 뛰어넘었지.’
신수 그리즐리를 죽이고.
사자왕 샤를 아인하르트를 쓰러뜨리고.
‘내가 손수 준비한 룬 문자 마법진까지 격퇴.’
그뿐만이 아니다.
다이어울프 다섯 마리와.
조금 전엔 고블린과 놀마저 육포처럼 찢어발겼다.
‘카르타고를 떠오르게 하는군.’
용병왕 카르타고.
바토리와 리베르가 아틸라 이전에 관조하던 사내.
‘녀석과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
리베르는 호기심 어린 상상을 머리에서 지워 냈다.
흥미로운 현실을 즐길 시간이 도래했으니까.
“기대를 충족시켜다오. 야만전사.”
* * *
“아틸라!”
“제, 제발 같이 좀 갑시다아!”
카스피와 오토의 외침을 무시하며 아틸라는 첫 번째 트롤에게 돌진했다.
[ 돌진에 성공했습니다. ]
[ 목표물이 1초간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
[ 목표물의 방어력과 이동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
‘좋아.’
트롤은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에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돌진에 면역이 뜨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이것 덕분인가.’
[ 몬스터에게 강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
‘아무튼 1초는 제법 긴 시간.’
기절한 트롤의 무릎 깊숙이 용아귀가 박혔다.
단단한 피부 탓에 절단되진 않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카스피!”
“알았다고!”
사슬낫을 길게 풀어낸 카스피가 트롤의 목을 두 바퀴 감은 뒤 거대한 나무를 넘어 착지했다.
이제 사슬을 당기기만 하면 트롤은 목을 맨 시체처럼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저 무거운 걸 어떻게 들어 올리겠다는 거야!’
제아무리 아틸라의 괴력이라 해도 불가능해 보였다.
아틸라 역시 알고 있었다.
‘기회는 한순간.’
트롤의 무릎에 박힌 용아귀를 지르밟으며 아틸라가 뛰어올랐다.
그 순간 놈의 기절이 풀렸다.
- 선제공격을 당한 트롤은 상대의 전의를 꺾기 위해 괴성을 내지르는 습성이 있다.
‘내가 만든 설정대로라면.’
다리에 박힌 도끼와 목에 감긴 사슬에 분노한 트롤이 괴성을 질렀다.
아틸라의 눈이 빛났다.
‘바로 지금!’
콰드득! 벌려진 트롤의 입안에 무휼을 세로로 꽂았다.
트롤은 몸을 뒤틀며 그것을 빼내려 했다.
‘그렇게 둘까 보냐!’
재빠르게 바닥으로 내려온 아틸라가 놈의 무릎에 박혀 있던 용아귀를 뽑았다.
그러자 녀석의 무게중심이 뒤틀리며 상체가 숙여졌고.
“오토!”
“아, 알겠수!”
뒤에서 대기하던 오토가 트롤의 얼굴을 향해 펀치를 던졌다.
부웅, 장난감 로켓처럼 비행하는 펀치의 입엔 아틸라가 오토에게 넘겼던 물건 중 하나가 물려 있었다.
‘압바스의 폭약.’
트롤의 무릎 상처가 복구를 시작했다.
아틸라는 지체하지 않고 녀석의 반대편 무릎을 용아귀로 찍었다.
그리고 놈의 양팔을 마구 난도질했다.
‘무휼만 뽑아내지 못하게 하면 돼.’
크오어어어어, 컥! 커억!
괴성을 지르던 트롤이 뭔가 목에 걸린 것처럼 캑캑댔다.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 중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틸라는 더욱 빠르게 용아귀를 휘둘렀다.
끼아옹! 펀치의 신호와 오토의 외침이 울린 것은 동시였다.
“돼, 됐수! 성공이요 아틸라 님!”
아틸라의 시선이 머리 위를 향했다.
그의 눈에 비친 건 여전히 무휼에 의해 벌어진 트롤의 입과.
그 틈을 뚫고 튀어나오는 펀치의 동그란 배.
그리고.
“흐아아아아압!”
트롤의 턱을 향해 대포알처럼 쏘아지는 용아귀의 칼날!
트카앙!
용아귀에 가격당한 트롤의 아가리가 강제로 다물어졌다.
후드득, 아틸라의 얼굴에 핏물이 쏟아졌다.
“아틸라!”
핏물에 시야를 점령당한 아틸라는 카스피의 목소리를 의지하며 달렸다.
눈을 비비자 시야가 선명해졌다.
손을 뻗어 나무 아래 드리운 카스피의 사슬을 쥐었다.
“카스피!”
“이쪽이야! 빨리!”
아틸라의 눈이 목소리를 좆았다.
그곳에 있었다.
카스피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또 다른 트롤의 몸뚱이가.
[ 사거리를 확보했습니다. ]
상태창을 확인한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 목표물에게 스킬, 돌진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
사슬을 움켜쥔 아틸라의 몸이 폭풍처럼 돌진했다.
그 여파로 목에 사슬이 감긴 트롤이 순식간에 나무 위로 매달렸고.
“저, 정말로 해냈잖아! 아틸라!”
“이런 미친! 기, 기가 막히오!”
아틸라는 카스피를 가격하려던 트롤의 어깨를.
[ 목표물이 1초간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
힘껏 용아귀로 찍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오토!”
“크헤헤헤! 지금 가고 있소!”
격발기를 손에 든 오토가 나무에 매달린 트롤에게 달렸다.
발버둥 치는 녀석의 뱃속엔 펀치가 억지로 쑤셔 넣은 폭약이 들어 있었고.
거리가 좁혀진 격발기에서 삐빗, 신호음이 울린 순간 오토는 버튼을 눌렀다.
콰아아아앙!
트롤의 뱃가죽이 폭죽처럼 터졌다.
* * *
리베르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뭐, 뭐야…….”
걸레처럼 널브러져 버르적대는 트롤.
그런 녀석에게 재차 돌진해 몸 안의 심장을 꺼내드는 아틸라.
“정말 트롤을 잡았어……?”
벌어진 그의 입술이 점차 다른 형태로 변했다.
그것은 광소였다.
* * *
심장을 뽑아내자 트롤의 생명력은 꺼졌다.
무리 생활에 익숙지 않은 트롤.
아무리 리베르가 녀석들을 한데 모아 놨어도 그 습성만은 바꿀 수 없다.
‘덕분에 성공했다.’
처음부터 트롤들은 거리를 벌리며 서 있었고.
아틸라는 가장자리에 있던 트롤 한 놈을 첫 번째 타깃으로 삼았다.
그리고 카스피, 오토, 펀치의 환상적인 호흡에 힘입어 녀석을 격퇴했다.
“이, 이제 어떻게 할 거요.”
“하나는 잡았지만 아직 둘이 남았다고. 아틸라.”
아틸라는 웃었다.
간단한 일이다.
‘남은 두 마리는.’
[ 트롤의 심장(x1)을 획득했습니다. ]
이걸 써서 잡을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