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6화 (26/425)

026. 트롤 학살자 (1)

“드디어 시작인가.”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오늘만은 수정구를 통해 아틸라를 관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해 외곽부의 높다란 나무 위에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흐응.”

마력으로 강화한 시선 위에 흥미로운 미소를 덧씌우고서.

“현장감 좋고.”

붉은 혀끝이 윗입술을 핥았다.

“부디 기대를 충족시켜 주렴. 멋쟁이 야만전사야.”

* * *

“방패벽!”

투트트트틋! 지휘관의 외침에 수십의 병사들이 방패를 밀착시켰다.

수백, 수천 번은 연습한 듯 일사불란한 움직임!

“온다!”

“죽을힘을 다해 버텨!”

“우와아아아아!”

콰콰쾅! 다이어울프의 발톱이 방패벽을 가격했다.

엄청난 기세였지만 병사들은 방패와 머릿수의 힘으로 그것을 견뎠다.

“공포심을 버려라! 놈들은 결코 방벽 방패를 부수지 못한다!”

방벽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방패.

그것은 그 무게와 크기, 생김새에서부터 여타 방패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하지만 완전할 순 없었다.

“비, 빌어먹을!”

“뚫렸어!”

아무리 방패벽을 촘촘히 펼쳐도 상대적인 구멍은 생기기 마련.

다이어울프들은 귀신같이 그것을 찾아냈다.

“갈라져!”

“날개 대형을 펼쳐라!”

방패의 물결이 조류의 날개처럼 벌어졌다.

이어 적들을 에워싸듯 오므려졌다.

“당황하지 마라! 훈련한 대로 차분하게 대응해!”

“방패를 놓지 마!”

“버텨! 죽어도 버티라고!”

그러나 한 번 균열이 생긴 벽은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이제 그들이 나설 차례였다.

“창병대!”

방패벽 뒤에 대기하던 창병대가 철창을 내뻗었다.

이것 역시 보통의 창보다 배는 커다란 것이었고.

퍼걱! 퍽! 다이어울프의 가슴을 뚫고 쇠붙이가 튀어나왔다.

“놈들은 이 정도로 죽지 않아!”

“버텨! 절대로 틈을 주지 마!”

방패병들이 온 힘을 다해 적을 막았다.

비집고 튀어나오는 놈들은 창병대가 찔렀다.

그다음은.

“강철 기사단이 온다!”

기사들의 시간이다.

“돌겨어어억!”

방벽 수비의 최정예부대.

하인리히 스테판 변경백이 이끄는 강철 기사단이 적들의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왔다.

“빌어먹을 몬스터 놈들!”

“죽어라!”

30인의 정예로 구성된 강철 기사단.

그들의 손엔 드워프 강철로 제작된 검과 방패가 들려 있었다.

“나를 따르라!”

하인리히가 검을 휘두르자 다이어울프의 몸에서 핏물이 솟았다.

반격하는 놈의 발톱을 막아 낸 하인리히가 재차 공격에 들어갔다.

‘평상시의 다이어울프가 아니다.’

지금의 녀석들은 이전보다 강하고, 포악했다.

단순히 주린 배를 채울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전쟁.

상대의 영역을 갈취하기 위한 인간의 정복 전쟁을 닮지 않았는가.

“흐아아압!”

하인리히의 검이 다이어울프의 심장을 관통했다.

거친 함성이 공기를 울렸다.

“총사령관께서 한 마리를 제압했다!”

“우와아아아!”

검을 뽑아낸 하인리히가 폭풍처럼 팔을 휘둘렀다.

이윽고 녀석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초, 총사령관!”

하인리히의 등을 노리며 또 다른 다이어울프가 달려들었다.

퍼억! 발톱에 강타당한 하인리히가 수 미터를 날아 지면에 처박혔다.

“아버지!”

아르노의 눈에 핏발이 섰다.

하인리히를 가격한 다이어울프를 향해 질풍처럼 검을 뻗었다.

“아, 아르노 경을 도와라!”

“하지만 이쪽도……!”

강철의 기사들은 3인 1조로 몬스터를 사냥한다.

고도로 훈련된 기사라면 두 명이서도 가능했지만 그만큼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자리를 이탈해 아르노를 돕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할지 모른다.

“전 상관하지 마십시오!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아르노가 소리쳤다.

자신 때문에 기사단이 흔들리게 해선 안 되었다.

‘다이어울프의 발톱에 직격당하셨다. 결코 가벼운 부상은 아닐 터. 최악의 경우엔……!’

생각하기도 싫은 상상이 아르노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다이어울프가 그의 목젖으로 앞발을 날렸다.

‘이, 이런……!’

그러나 놈의 앞발은 아르노를 가격하지 못했다.

측면에서 날아든 하인리히의 검이 녀석의 목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버지!”

부활한 하인리히의 맹공이 다이어울프를 몰아쳤다.

아르노는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이었다.

“어, 어떻게…….”

“가죽 덕분이다.”

하인리히의 입가가 올라갔다.

“도살자의 가죽이 날 살렸다.”

이들은 몰랐지만.

다이어울프의 가죽은 무두질 뒤 어떤 후처리를 하면 이전보다 더욱 튼튼하게 가공할 수 있다.

그리고 아틸라의 무두 스킬은 그런 과정 없이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이제 더욱 거침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겠군.”

마침내 그의 검이 두 번째 다이어울프의 목을 떨어뜨렸고.

“총사령관께서 부활하셨다!”

“가자! 놈들을 무찌르자!”

기사단은 더욱 상대를 압박했다.

10마리의 다이어울프와 30인의 강철 기사.

그 뒤를 받쳐 주는 수비대와 창병대.

성벽 위의 궁병대.

‘이길 수 있다.’

흐름은 이쪽으로 기우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저, 전방에 고블린 세 마리!”

“놀 네 마리도 달려오고 있습니다!”

하인리히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삼중의 벽으로 둘러싸인 방벽 요새.

현재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은 외곽 성벽과 중간 성벽의 사이 공간이었다.

‘도살자가 당한 것인가.’

성벽 위를 달리며 아틸라가 제안했었다.

‘성문은 머지않아 부서질 겁니다.’

‘기동성 좋은 다이어울프들의 난입을 허락해선 안 됩니다.’

‘안쪽을 방어해 주신다면, 밖에서 고블린과 놀을 막아 보겠습니다.’

아틸라는 제 할 말만 한 뒤 사라졌다.

그러나 하인리히는 그의 생각이 옳다 여겼고, 모든 병력을 집중해 성문 안쪽을 방어했다.

그리고 지금, 아틸라의 방어벽을 뚫은 고블린과 놀이 진입하고 있다.

‘외곽 성벽을 포기해야 하는가!’

다이어울프의 전투력을 10이라 가정한다면.

고블린과 놀의 전투력은 15에서 20 사이.

‘살아남은 다이어울프가 일곱. 거기에 고블린 셋과 놀 네 마리라면.’

적의 전투력 총합은 200 전후.

아군은.

‘강철 기사단의 전투력이 대략 180. 그러나.’

군대의 전력을 이렇듯 숫자놀음으로 계산할 수는 없는 법.

더구나 강철 기사단은 크게 지친 상태다.

‘수비대와 창병대, 그리고 궁병대의 전투력을 합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수많은 전사자가 속출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침공은 절대로 막아 낼 수 없다.

‘외곽 성벽은 버린다. 놈들이 전사자들의 시체와 동족의 시체로 만족하길 바랄 수밖에.’

죽은 병사들마저 제물로 바쳐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 하인리히는 가슴이 메었다.

수없이 벌어진 일이었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

“전군!”

하인리히가 손을 들었다.

그의 입에서 명령이 내려지려는 찰나.

“고, 고블린 하나가 쓰러졌다!”

“놀도 한 마리……! 전투 불능……!”

경악의 외침이 그의 정신을 흔들었다.

* * *

[ 스킬, 돌진이 활성화됩니다. ]

파아앙! 아틸라의 몸이 다음 목표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졌다.

‘오.’

다이어울프 다섯 마리를 쓰러뜨리고 완료했던 첫 번째 임무.

[ 다이어울프의 가죽 (5/5) ]

[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

그 보상은.

[ 새로운 전투 스킬이 개방됩니다. ]

[ 돌진(突進) ]

‘돌진?’

[ 사거리 안의 목표물에게 돌진합니다. ]

[ 돌진에 가격당한 타깃은 1초간 기절 상태에 빠지며, 방어력과 이동 속도가 20% 감소합니다. ]

[ 몬스터에게 강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

“시, 시벌! 진짜 인간이 맞긴 한 거요!”

오토가 소리쳤다.

평소의 아틸라도 빨랐지만.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깨부수는구만! 무슨 마법사야 뭐야!’

카스피도 혀를 내두르며 아틸라의 뒤를 쫓았다.

‘영주 나리 말대로야. 어떻게 저 덩치에 저런 속도가.’

살수인 자신의 최대 속도보다 빠르다.

아니, 적에게 돌진하는 저 순간만큼은 스승님마저 압도하는 것 같다.

‘이거 정말 착 달라붙어있어야겠는걸.’

카스피는 만족의 미소를 머금었다.

‘모험도 성공했고.’

카스피가 도살자 뒤를 쫓는다는 계획엔 맹점이 있었다.

상대가 자신을 죽여 버릴 가능성이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이것으로 확실해졌어.’

도살자는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

오히려 죽지 않게 지켜 주고 있다.

‘아주 기사님이 따로 없으셔.’

기절한 고블린의 머리통을 장작 패듯 찍어 버리는 아틸라를 보며 카스피는 눈웃음을 지었다.

‘나도 밥값은 할 테니까. 아틸라.’

키에에엑! 기절에서 깨어난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아틸라는 놈의 턱을 잡아 비틀었다.

아틸라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코앞에서 보니 겁나게 징그럽네.’

패영전 세계관의 고블린은 거대하다.

가장 작은 개체도 아틸라보다 컸으니까.

‘다이어울프는 나름 귀여운 거였어.’

짐승이 아닌 인간형 몬스터가 커다라니 정말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그러나 아틸라는 공포에 빠지지 않았다.

이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체.

그것을 창조한 것은.

“바로 나다! 이 못생긴 피조물 자식아!”

[ 스킬, 전사의 외침이 활성화됩니다. ]

[ 모든 파티원의 근력과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

아틸라는 고블린의 가슴팍을 힘차게 걷어찼다.

비명을 지르며 고블린이 수 미터 뒤로 밀려났고.

[ 사거리를 확보했습니다. ]

[ 목표물에게 스킬, 돌진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타깃에게 돌진한 아틸라의 도끼가.

“흐아아아압!”

고블린의 몸을 세로로 쪼갰다.

* * *

하인리히는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저게 대체……!’

가문의 후계자 시절, 공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에 참여했던 자신이다.

가주가 된 후엔 방벽을 넘보는 몬스터들을 상대해 왔다.

그런 그였건만.

‘저런 전투법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저것이 정녕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격투란 말인가.

“다음은 너다! 놀!”

아틸라가 또 다른 목표에게 돌진했다.

시공의 법칙을 무시하는 가공할 기세에 하인리히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내가. 순간이지만 공포를 느꼈다고?’

마법이라도 펼쳐진 것 같다.

도살자가 때려눕히는 몬스터들은 자신들이 상대할 때보다 배는 약해 보였다.

‘그럴 리가.’

벌써 고블린 두 마리와 놀 한 마리를 도륙하고 있는 아틸라의 모습.

하인리히는 고개를 저었다.

‘도살자가 너무 강력한 거다.’

그의 옆을 따라붙는 오토와 카스피의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적당히 패고 넘겨! 우리가 끝장을 내줄 테니! 안 그래 영주 나리?”

“나, 나나난 됐수!”

오토의 검이 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카스피가 깔깔대며 외쳤다.

“아하하하! 잘 싸우면서 내숭이야!”

“사, 살고 싶어서 싸우는 거요!”

“펀치!”

아틸라의 부름에 펀치가 놀의 목젖을 뜯었다.

아틸라는 또 다른 놀을 향해 돌진했고, 카스피와 오토도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크어어어어어어어!

지축을 흔드는 울음소리가 방벽 밖을 울렸다.

변화가 일었다.

몬스터들이 전투를 멈추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달아난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오직 한 명.

아틸라만이 이유를 알고 있었다.

[ 두 번째 임무의 최종 목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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