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수해의 괴물 (5)
기사 아르노는 다이어울프가 목격되었다는 마을을 향해 말을 달리고 있었다.
‘한 마리뿐이라니. 이상한 일이군.’
마을에서 목격된 다이어울프는 한 마리.
그러나 방벽을 뚫고 도망친 몬스터는 다섯이었다.
‘나머지 넷은 어디로 간 건가. 설마 무리를 이탈했을 리는 없고.’
다이어울프는 결코 자진해서 무리를 벗어나는 몬스터가 아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
아르노는 수해 외곽부에서 서식하는 몬스터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공국을 수호하는 세 검호 중 한 명이자, 수해 방벽 수비 총사령관인 하인리히 스테판 변경백.
그가 바로 아르노의 아버지였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며칠 전, 열두 마리에 달하는 다이어울프 무리가 방벽을 침공했다.
물론 이전에도 종종 벌어지던 일이다.
수해에서 먹잇감을 찾지 못한 몬스터는 방벽 안의 인간을 습격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사냥에 성공한 다이어울프들이 수해로 돌아가지 않고 도주했다.’
아르노가 아는 한, 지금껏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방심이 재앙을 부른 것이다.
부하 한 명이 아르노의 상념을 깨웠다.
“아르노 경. 도착했습니다.”
흙먼지가 불어와 부옇게 눈앞을 메웠다.
그 사이로 마을이 보였다.
그런데.
“……저건?”
“주민들이 뛰쳐나오고 있습니다!”
불길한 기운을 느낀 아르노가 소리쳤다.
“서둘러라! 다이어울프가 나타났을지 모른다!”
아르노와 기병들이 말을 박찼다.
* * *
빠드드드듯! 짓쳐드는 용아귀의 힘에 압바스는 경악했다.
‘이, 이런 괴력이 있단 말인가!’
힘이라면 그도 자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도살자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바흐 녀석. 괜한 엄살을 부렸나 했더니.’
엄살이 아니다.
사바흐에게 듣고 짐작한 도살자의 실력보다 몇 수는 위.
물론 아틸라가 다이어울프를 처치하고 레벨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강한 전사를 상대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압바스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희열로 빛났다.
“정면으로 상대해 주마!”
압바스의 두 자루 곡도가 현란한 춤을 추었다.
사바흐가 암살자의 정석과도 같은 연막, 은신, 기습의 콤보를 사용하는 살수라면.
압바스는 달랐다.
‘이놈은 걍 전사나 다름없지.’
물론 살수의 기본기는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압바스의 전투법은 전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살수의 싸움에서 끌어내 정면승부를 강제하면 배는 약해지는 사바흐와 달리.
‘녀석은 오히려 정면승부를 즐기지.’
파캉! 압바스의 곡도를 막으며 아틸라가 입가를 올렸다.
“시원시원하게 덤비니 좋군 압바스. 얼마 전에 상대했던 쥐새끼와는 다르게 말이야.”
“네놈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나.”
압바스도 입가를 올렸다.
“도살자.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것이다.”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용아귀와 곡도가 부닥치며 불꽃이 튀었다.
“으아아아! 이게 뭔 일이야!”
“살려 줘어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앞 다퉈 여관을 빠져나갔다.
가장 먼저 도주한 건 오토에게 시비를 걸던 불량배들이었다.
남은 건 하싸씬의 마스터와 부하들, 파문된 살수 하나, 그리고 아틸라 일행이 전부.
“젠장 아틸라 님! 금방 해치우고 가겠수! 조금만 버티쇼!”
하이고. 네 앞가림이나 잘 해라.
아틸라가 압바스와 혈투를 벌이는 동안 오토, 펀치, 카스피는 나머지 살수들을 상대했다.
‘카스피가 있으니 저쪽은 어떻게든 되겠지.’
오토와 펀치만이라면 다소 불안하지만 카스피가 있다면 괜찮다.
그녀의 실력은 1급 살수에 도달해 있을 터.
압바스도 그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사바흐 이 음흉한 놈. 제자의 실력을 감추고 있었군.”
압바스는 원래 카스피 제거 작전에 부하들만 보낼 생각이었다.
2급 살수 카스피는 그의 부하들만으로도 충분히 제거할 수 있었으니까.
원작에서 압바스가 직접 나섰던 이유는 당시의 카스피가 일곱 마스터에 버금가는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따라오길 잘했군.’
도살자에 대한 흥미와, 혹시 모를 그의 방해를 대비해 압바스는 직접 움직였다.
그 결과는.
‘오지 않았다면 전멸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인 도살자.
무슨 이유에선지 녀석은 카스피를 보호하고 있다.
게다가 오동나무 용병단장과 새끼곰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그리고 카스피의 실력은.
‘1급. 아니 그 이상일지도.’
촤르륵! 카스피의 사슬낫이 지나는 자리마다 핏줄기가 솟았다.
도살자와 그 동료들이 아니었더라도, 저 정도 실력이라면 부하들이 손실 없이 카스피를 제거하긴 어려웠을 것.
‘그리고 최악의 경우엔.’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 떠오르는 것을 압바스는 애써 지워 냈다.
파캉! 팡! 카아앙!
방어할 때마다 압바스의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흘렀다.
전신을 뒤흔드는 가공할 용력.
그것엔 묘한 구석이 있었다.
‘대단한 덩치의 사내이긴 하다.’
흔하진 않지만 저 정도 체구를 지닌 전사는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저 이해할 수 없는 힘은.’
인간이 운용할 수 있는 근력 범위를 초과했다.
압바스는 생각했다.
‘인간의 근육과 짐승의 근육은 그 결이 다르지.’
설령 어떤 인간이 곰과 동일한 체격과 근육량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맨손으로는 결코 곰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은 짐승보다 현저히 낮은 근육 밀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도살자는 다르다.
‘놈의 근육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 드워프의 피가 섞이기라도 한 것인가.’
드워프가 인간보다 밀도 높은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건 유명한 사실.
도살자의 공격을 연거푸 막아 내며 압바스는 인상을 구겼다.
‘젠장. 이건 드워프 정도가 아니야.’
압바스는 드워프 전사를 상대해 본 일이 있었다.
인간에 비해 높은 근력을 가진 그들이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게다가 드워프의 피가 섞인 자가 저런 덩치를 가지고 있을 리도 만무했고.
‘그렇다면 설마. 하프엘프?’
숲의 종족, 엘프는 ‘자연의 힘’이란 마력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시킨다.
아틸라의 우락부락한 외모를 다시금 확인한 압바스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런 하프엘프가 있을 리 없지. 곰의 하프라면 또 모를까. 엘프의 피는 단 한 방울도 섞인 얼굴이 아니다.’
하프엘프가 아니라면.
‘마법사의 자질을 지닌 건가.’
몇몇 고위 마법사들 역시 엘프와 비슷한 방법으로 육체의 약점을 보완한다.
유일한 가능성이었지만 그마저도 확률은 낮았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빌어먹을.’
자신이 상당한 수세에 몰렸다는 거다.
“도살자아아!”
용아귀의 바다가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가까스로 회피한 압바스는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용아귀가 그것을 막았고, 짓눌렀다.
‘이, 이것은……!’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카캉! 압바스의 곡도가 부서졌다.
‘드워프 강철로 제작한 나의 곡도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압바스의 눈이 용아귀를 향했다.
‘설마 드워프 강철로 만든 도끼인가!’
그러나 부서진 곡도에 반해 도끼엔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압바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장인의 무기!’
드워프 대장장이에도 급이 있다.
자신의 곡도를 깨부술 정도라면 분명 장인급 이상이 만든 무기다.
‘조사가 부족했다.’
압바스는 인정했다.
지금은 이자를 이길 수 없다.
‘나 정도의 사내가 방심을 하다니.’
대놓고 정면승부를 펼친 것부터가 실수였다.
사바흐의 목소리가 머리를 스쳤다.
‘만약 도살자와 맞붙게 된다면.’
‘정면승부는 피하는 게 좋을 거다.’
무시했다.
정면승부에 약한 사바흐의 구차한 변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일단은 자리를 피한다. 전열을 가다듬은 뒤, 부하들과 연계하여 살수전을 벌인다.’
압바스는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부하들에게 내리는 퇴각 신호.
그러나.
“네 부하들은 벌써 다 뒈졌어. 압바스.”
용아귀가 짓쳐들었다.
폭풍 같은 연타에 압바스의 얼굴이 구깃구깃 구겨졌다.
‘도주할 틈을 안 주는군. 도살자!’
납득할 수 없다.
대륙 최강의 암살교단 하싸씬.
그곳의 마스터인 자신이 이런 곳에서 어이없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좋다.’
그의 눈이 칼날처럼 벼려졌다.
‘임무는 마치고 죽어 주지.’
카스피의 성장세는 훗날 하싸씬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도살자가 카스피와 한 편이 된다면.
‘오늘 내가, 끝을 내야 한다.’
압바스의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아틸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 * *
아틸라는 압바스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압바스를 상대했다.
퇴각을 유도한 것이다.
‘녀석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안 돼.’
압바스의 실력은 하싸씬의 마스터 중 가장 약체에 속한다.
‘패영전 역사의 주요 등장인물도 아니고.’
그를 대체할 예비 마스터 역시 차고 넘치는 상황.
그러나.
어찌 됐든 압바스는 하싸씬의 마스터.
‘마스터가 죽는다면 교단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압바스의 죽음에 흥미를 느낀 단주가 직접 나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살수들의 왕.’
베일에 가려진 하싸씬의 단주.
그러나 아틸라는 알고 있다.
지금의 자신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압바스는 살려서 보내야 해. 그래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녀석이 재차 공격해 올 거다.’
압바스를 살려 보내고.
재차 공격해 온 압바스를 또다시 살려 보내고.
아틸라는 당분간 이것을 반복할 생각이었다.
‘카스피가 사바흐를 뛰어넘을 때까진.’
파문 살수 처리 임무는 일반 임무와 다르다.
두 번의 실패를 용납지 않는 규율이 적용되지 않는 것.
그런데 압바스가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미친 새끼! 일부러 도망칠 틈을 주는데 왜!’
아틸라의 착각이었다.
다이어울프를 죽이며 상승한 능력치와 전사의 외침 버프는 압바스에겐 넘기 힘든 벽이었고.
‘젠장할 괜히 충성심 넘치게 설정해가지고.’
교단에 대한 충성심만은 최고인 압바스.
무슨 이유에선가 퇴각이 불가능하다 판단한 녀석은 임무 완수를 위해 자폭을 택했다.
‘빌어먹을.’
녀석이 지닌 물건은 고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폭약.
제작 기술마저 실전된 저 무시무시한 폭약이 터지면 자신조차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오토, 펀치, 카스피는 걍 끔살이다.
그렇게 둘 순 없다.
“미친놈아 왜 도망을 안 치냐고!”
퍼걱! 압바스의 목이 날아갔다.
* * *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듣고 여관으로 달려온 아르노는 핏물 낭자한 현장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이것은……!”
피 칠갑을 한 우람한 덩치의 전사.
어딘가의 용병으로 보이는 남자.
여행자 차림의 여자.
곰을 닮은 강아지.
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들.
“당신들이 한 짓인가.”
아르노의 물음에 전사가 답했다.
“그렇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아르노가 검을 겨누며 외쳤다.
그의 부하들도 살벌한 기세로 검을 뽑아들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전사가 말했다.
“죽기 싫으면 그거 치워라.”
그는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