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3화 (23/425)

023. 수해의 괴물 (4)

“허어?”

동네 불량배처럼 부리부리 눈을 치뜬 오토.

그가 아틸라보다 먼저 대응하고 나섰다.

어울리지도 않게 목소리는 바닥까지 깔고서.

“뭐냐. 너희들은.”

그러고는 아틸라에게 눈짓했다.

여긴 자신에게 맡기고 술이나 마저 드시라는 듯이.

아틸라는 그렇게 했다.

“형씨. 아까부터 듣자 하니 금화를 제법 가지고 있는 모양이더군.”

“아아. 물론 있지. 근데 이유는 알고 있나?”

“이유?”

오토가 턱을 추켜들며 웃었다.

“내가 얼마 전 베르트랑 남작의 영지를 물려받은 신임 영주거든. 혹시 들어는 봤나? 오동나무 용병단의 귀검(鬼劍), 오토라는 이름을.”

아틸라는 코웃음을 쳤다.

귀검이라고? 아주 지랄을 하네.

‘지 자랑하려고 먼저 나섰구만. 있지도 않은 별호까지 지어 가며.’

그러나 아틸라의 생각과 달리.

“뭐? 오동나무 용병단?”

“귀검이라고? 서, 설마……!”

사내들은 그 이름을 들어 본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다, 당신이 정녕 오동나무의 귀검, 오토 경이란 말이오?”

“정말? 정말로 철혈(鐵血) 기사 오토라고?”

철혈 기사? 얼씨구.

“마, 맙소사!”

“철혈의 오토 경이라면 전쟁 영웅 아닌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오토가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으하하하! 날 알아보는 거요? 그렇소! 내가 바로 오동나무의 철혈귀검(鐵血鬼劍)! 오토요!”

“그렇다면 이분은……?”

사내들의 시선이 아틸라에게 모였다.

아틸라는 괜한 표정 관리를 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릴 내뱉었다.

“아 뭐, 귀찮게.”

지난 전쟁의 영웅을 한 명만 꼽으라면 오토도, 문주크도 아니다.

아키텐 진영에서라면 사자왕 샤를 아인하르트.

가스코뉴 진영이라면.

‘그 사자왕을 쓰러뜨린 도살자.’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던 아틸라의 입꼬리가 꿈틀꿈틀 올라가려던 순간.

“아. 그는 내 종자요.”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들을 구경하던 사내 하나가 의문을 드러냈다.

“근데 철혈귀검 오토 경은 베르트랑 남작의 뒤를 이어 영주가 됐다면서.”

“맞아. 조금 전 철혈귀검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지.”

“근데 왜 신임 영주가 영지를 비우고 여기 있는 거지?”

“응?”

그도 그랬다.

그들의 상식으로, 영주가 자기 영지를 비우고 종자와 단둘이 이런 싸구려 여관을 찾을 이유는 없었다.

“아아. 그것 말이오. 내 이유를 말해 드리리다. 하지만 그전에.”

오토가 허허 웃으며 품 안을 뒤졌다.

자신이 영주임을 증명하는 인장(印章)을 꺼내려 한 것.

그러나.

‘아, 아차! 제작이 끝나기도 전에 뛰쳐나왔지!’

당황한 오토의 손은 품 안에서 나올 줄을 몰랐고.

분위기는 금세 싸하게 변했다.

도적질로 먹고살던 오토가 그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었다.

“으하하하하! 내 정신 좀 보게. 그만 인장을 놓고 왔지 뭔가!”

“아아. 영주 나리께서 인장을 놓고 오셨어?”

“그게 그렇게 막 두고 다닐 만한 물건이던가?”

구차한 변명이 시작됐다.

“험험!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오. 그리고 사실, 앞에 앉은 이분은 종자가 아니라 그 유명한…….”

“그래. 뭐 이분은 도살자라도 되셔?”

오토가 반색하며 외쳤다.

“바로 맞췄소!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한 오동나무의 돌격대장, 도살……!”

“종자다.”

나직한 한 마디.

오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확인했다.

싸늘하게 굳은 아틸라의 얼굴을.

‘시, 시, 시시시벌 좆됐다!’

술기운이 대번에 휘발됐다.

칭찬과 취기에 정신 못 차리고 선을 넘어 버린 것!

사내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어이. 가짜 영주 양반.”

“사칭할 사람이 없어서 전쟁 영웅을 사칭해?”

“양아치 같은 놈이구만.”

구경하던 사내 몇이 일어나 합류했다.

그러나 오토의 귀엔 들리지도 않았다.

“저…… 아틸라…… 님?”

아틸라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한다.

다이어울프의 가죽을 벗기던 아틸라의 모습을 떠올린 오토는 그만 실금을 할 뻔했다.

“사, 사사사, 살려 주십시오!”

아틸라에게 한 간청이었지만 사내들은 자신들을 향한 말이라 여긴 모양.

“으하하하하! 바로 꼬랑지 내리는 꼴 좀 보게!”

“그럼 그렇지. 네깟 게 철혈귀검 오토 경이라고?”

“사칭죄 추가다! 금화 몰수는 당연하고 아침까지 흠씬 두들겨 패 주마!”

오토의 면상으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 * *

그 순간 아틸라는.

‘뭐야.’

구석에서 홀로 식사하는 그림자를 보며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오토에게 화가 나서 얼굴을 굳힌 게 아니었던 것.

‘쟨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정확히 식별되진 않았지만.

아틸라가 누구인가.

‘원작자인 내 눈은 못 속인다.’

리베르를 알아보지 못한 일이 떠올랐지만 치워 냈다.

‘혼자 온 건가. 아니면 같이?’

어느 쪽이든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경우의 수를 떠올리던 아틸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

“으억!”

오토에게 주먹을 날리던 사내가 반격당해 쓰러졌다.

아무리 다른 것에 신경 쓰고 있었다 해도 동네 불량배의 주먹 따윌 제압 못할 오토가 아니었다.

“이, 이 새끼가!”

“한꺼번에 공격해!”

여섯 명의 사내가 오토를 에워쌌다.

그들의 손엔 단검까지 들려 있었다.

구경하다 끼어든 남자들도 무기를 꺼냈다.

“빌어먹을 사기꾼 새끼가!”

“입을 찢어주마!”

놈들이 빙빙 무기를 휘둘렀다.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하며 오토가 외쳤다.

“어, 어디 가십니까 아틸라 님!”

아틸라는 대답 없이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주시하던 자의 맞은편에 털썩, 소리 내어 앉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따라온 거냐.”

“따라오다니. 누가? 누굴?”

“네가. 나를.”

후드가 젖혀지며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오토 쪽을 턱짓하며 아틸라가 말했다.

“저놈들. 네가 달고 온 건가?”

여섯 명의 사내와 격투를 벌이고 있는 오토.

표정 없는 얼굴로 끼어든 예사롭지 않은 눈빛의 남자들.

카스피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알고 있었어?”

“확신은 못했지. 이제는 확실해졌군.”

“그럼 위험한 거 아냐? 네 동료 말이야.”

“저래 보여도 그리 약골은 아니거든.”

어찌 됐든 다이어울프 한 마리의 맹공을 잠시나마 견뎌 낼 정도니까.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자신을 따라왔다면 이유는 하나.

또다시 누군가가 암살을 의뢰한 거다.

그렇다면 사바흐 역시 어디선가 은신하고 있을 테지.

“널 잡는다고? 나 혼자서? 웃기는 소린 집어치워 아틸라. 나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눈 정돈 달려 있으니까.”

응? 혼자라고?

“사바흐는 오지 않은 건가.”

“스승님이 여기 올 이유가 없지.”

“그럼 저놈들은.”

“날 죽이러 온 거야.”

콰앙! 카스피의 머리를 내리꽂은 아틸라가 그녀의 덜미에 손도끼를 겨눴다.

꺽꺽 숨을 내뱉으며 카스피가 저항했지만 돌덩이 같은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크흑……! 놔! 이거 놓으라고……!”

주위를 탐색하던 아틸라가 손을 풀었다.

‘정말 오지 않은 건가.’

카스피를 위험에 노출시켰지만 사바흐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쪽을 흘끔거리는 살수들 역시 별다른 반응이 없다.

‘사실이군. 카스피의 말은.’

그제야 상황이 명확히 파악됐다.

카스피는 파문된 것이다.

얼굴과 목을 문지르며 카스피가 으르렁댔다.

“제길……. 누가 따라오고 싶어 따라온 줄 알아? 스승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쫓아온 거라고.”

“날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당연히 안다.

빌어먹을 사바흐.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카스피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라는 거 아냐.

“원래 스승의 말을 그리 잘 듣는 편인가?”

“꼭 그렇진 않지만.”

한숨을 쉬던 카스피가 심중을 털어놓았다.

“스승님의 말대로, 내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이니까.”

“널 죽이려는 살수들을 내가 처리해야 할 이유가 있나?”

“없지. 하지만 널 따라다닌다면 놈들도 내게 함부로 접근하진 못할 거야. 접근한다 해도 너와 싸우게 될 테고. 그럼 뭐, 도살자가 모두 도살해 주지 않겠어?”

“웃기는 소리군. 난 그럴 생각이 없다.”

“그렇게 될걸?”

카스피의 입가가 슥 올라갔다.

“난 어떻게든 널 말려들게 할 자신이 있으니까.”

카스피의 생각이 어떻든.

아틸라 역시 그녀가 죽게 둘 수는 없는 상황.

‘빌어먹을. 샤를을 따라다닐 운명이었던 애가 날 따라다니겠다니.’

원작에서 카스피는 샤를 암살 의뢰를 두 번 연속 실패한다.

그 시점의 카스피는 사바흐를 뛰어넘은 초특급 살수였지만, 샤를의 실력은 그보다도 압도적이었던 것.

‘그리고 교단에서 파문당한 뒤 샤를의 뒤를 쫓다 동료가 되지.’

불길하다.

카스피가 샤를의 동료가 된 과정과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흡사하다.

‘젠장할 이거 어떻게 되돌려야 하지.’

일단 궁금증부터 해소하자.

“그런데 왜 파문된 거냐.”

“알고 있지 않았어? 임무를 두 번 실패했으니까.”

“사바흐가 그렇게 두진 않았을 텐데.”

녀석이라면 단주에게 거짓을 고해서라도 카스피의 파문을 막았을 거다.

즉, 가짜 롤랑의 사주였다고.

“스승님은 교단의 마스터 중 한 명이지만 절대자는 아니야.”

그건 나도 알아.

“그럼 사바흐가 ‘진짜 롤랑’의 의뢰였다는 걸 순순히 밝혔다고?”

“밝힐 필요도 없었어. 단주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젠장. 그거였나.

퍼즐이 맞춰졌다.

그날, 단주의 음흉한 눈이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근데 엄청 침착하네? 저러다 진짜 네 동료 죽는 거 아냐?”

“죽으면 뭐, 그 정도인 거지.”

“냉정한 척하기는.”

카스피가 피식거렸다.

아틸라가 실시간으로 저쪽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끼아옹! 새끼곰이 오토를 도와 날뛰는 모습도 보였다.

‘심안.’

아틸라는 만전을 기하기 위해 카스피에게 심안을 시전했다.

그러나.

[ 권능, 심안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 심안은 원작자의 세계와 상대의 세계가 강한 교감을 일으켰을 경우에만 발동되는 제한적 권능입니다. ]

‘저놈의 교감.’

지금까지 심안 발동에 성공한 건 네 번.

‘샤를과의 첫 대결. 카스피와의 두 번째 대결. 사바흐. 그리고.’

리베르.

‘공통점을 한 번 정리해 두는 편이 좋겠군.’

물론 지금은 말고.

이유는.

“녀석이 왔거든.”

“응? 뭐라고?”

난데없는 말을 내뱉은 아틸라가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천장을 향해 힘껏 용아귀를 휘둘렀다.

콰콰콰쾅!

나무 천장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어 차앙! 하는 쇳소리와 함께 날이 휜 장검을 쥔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저, 저 사람은!”

바닥에 내려앉은 사내를 보며 카스피가 눈을 부릅떴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제법이군. 눈치채고 있던 건가.”

“워낙 살기를 흩뿌리고 있었어야 말이지.”

거짓말이다.

그저 짐작했을 뿐이다.

원작에서 파문당한 카스피를 처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섰던 이가 똑같은 곳에 숨어 있었으니까.

‘하싸씬의 살수는 살기를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그자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하싸씬의 일곱 마스터 중 한 명이라면 더욱.’

아틸라가 입을 찢어 웃었다.

“하싸씬의 여섯 번째 마스터. 곡도(曲刀)의 압바스.”

침착을 유지하던 압바스의 눈이 일순 흔들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용아귀가 먹잇감에게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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