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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9화 (19/425)

019. 불사의 마법사 (5)

얼마 전 카스피를 조우했던 것도 의외의 일이었지만.

이자를 만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이 녀석이 벌써.’

도저히 이 타이밍에는 등장할 수 없는 인물.

‘사실 단서는 있었지.’

빼어난 역용술.

분신술.

흑빛의 함정 룬.

그러나 무엇보다도 확신을 준 것은.

‘검은 깃털.’

패영전 세계관에 이런 인물은 한 명밖에 없다.

‘리베르 파테르.’

통칭, 까마귀 군주.

‘그래. 네놈들이 날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지.’

패영전 역사의 중반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이 있다.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괴이도 아닌.

한없이 요정에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신의 전능을 꿈꾸며 세상의 경계 위를 줄타기하는 자들.

요정들은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관조자(觀照者).

‘관조자들의 눈이 날 주목하고 있다.’

리베르의 등장이 납득 가는 순간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당황스럽다.

원작에서 관조자들이 샤를을 주목하기 시작한 건 지금보다 훗날의 일.

‘벌써 날 주목하고 있다는 건.’

짐작 가는 일은 있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

아틸라는 그리즐리의 척추에 꽂혀 있던 핏빛 화살을 기억했다.

‘그때부터였겠지.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날 관조하기 시작한 것은.’

리베르에게 내 존재를 알린 것도 바토리일 테고.

그때였다.

[ 돌발 퀘스트! ]

[ 까마귀 군주를 쓰러뜨리고 진짜 롤랑 가스코뉴를 찾아내십시오. ]

‘퀘스트라고?’

[ 퀘스트 완료 보상: 파티 시스템 패치 ]

[ 숨겨진 추가 보상이 존재합니다. ]

이 세계가 게임인지 현실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만드는 메시지.

롤랑의 얼굴을 한 리베르가 말했다.

“뭐? 너 혼자서 날 상대하겠다고?”

“안 될 거 있나.”

“가능하다 생각해? 너 마법사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거 아냐?”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다 새끼야.

“그 짹짹대는 주둥이부터 뽑아내 주지.”

아틸라는 몸에 감긴 사슬을 완력으로 끊어 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카스피가 ‘어맛!’ 소리치며 엉덩방아를 찧었고.

“끼어들지 마라. 죽는다.”

내뱉듯 말한 아틸라는 상대의 숨통을 끊어 낼 기세로 용아귀를 휘둘렀다.

“하하하하! 진짜야? 진짜 혼자서 공격하겠다고?”

리베르가 깔깔 웃으며 휘익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맹렬히 쏘아지던 용아귀는 노란 불티를 일으키며 상대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과연.’

이 세계에서 마법사는 희소한 존재다.

마법사의 힘을 대단히 강력하게 설정했기 때문.

‘그러니 밸런스 붕괴를 막으려면 숫자를 줄일 수밖에.’

마법사는 홀로 수백의 병사를 압살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 또한 존재한다.

‘주문 시전에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과, 육체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

그러나 룬 마법진의 둥지에 틀어앉은 마법사는 다르다.

‘언제든 손짓 한 번으로 룬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지.’

- 으으…….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찌릿한 충격이…….

- 하, 하지만 참아야 한다. 추하게 비명을 지르는 모습 따윌 카스피에게 보일 수는 없으니까으아아아악!

‘저 등신 사바흐를 가둬 놓은 것처럼.’

게다가 어떤 룬은 시전자의 신체 능력마저 강화시킨다.

리베르 정도의 마법사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한 마디로.

지금의 리베르는 무결(無缺)한 상태.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아틸라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는 룬 마법진의 둥지를 깨부술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죽일 듯이 도끼질이라니. 롤랑이 어딨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거야?”

“상관없다.”

아틸라는 재차 도끼를 휘둘렀다.

이번에도 마법 장벽을 뚫을 순 없었지만 아틸라는 멈추지 않고 팔을 움직였다.

“하하하하. 소용없다니까!”

리베르가 깔깔대며 웃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 뭐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 마법 장벽이 분해되고 있다고?’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미세하게 발생한 균열을 눈치도 채지 못하리라.

그러나 리베르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설마 신력을 지닌 건가? 바토리의 말대로?’

리베르는 아틸라의 몸을 탐색했다.

신의 가호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식한 놈.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군.’

그러나 이대로 두면 위험해질 수 있다.

‘슬슬 반격의 시간인가.’

“펀치!”

리베르가 반격을 떠올리자마자 아틸라가 외쳤다.

끼아옹! 새끼곰이 방방 달려왔다.

‘곰 하나로 뭘 어쩌겠다고.’

그러나 녀석은 신수 그리즐리의 핏줄.

‘조심해 두어 나쁠 건 없겠지.’

리베르는 마법 장벽을 유지하며 또 다른 룬 마법을 발동시킬 준비를 했다.

실내 곳곳엔 그의 눈에만 보이는 룬 마법진이 효율적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저게 좋겠군.’

리베르가 손을 휘저어 그것을 발동시키려는 찰나.

“흐아아압!”

괴성을 내지르며 자리를 옮긴 아틸라가 마법진 중앙에 용아귀를 꽂았다.

파지짓! 콰쾅! 거친 소음을 울리며 마법진이 폭발했다.

‘뭐, 뭐라고?’

폭발의 충격이 상당했는지 아틸라의 몸 곳곳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그러나 리베르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서, 설마.’

룬 마법진의 유일한 약점.

그건 마법이 시동되는 순간, 즉 룬 문자의 힘이 주문 세계의 문을 여는 순간 출입구를 파괴해 마법의 발동을 백지화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노리고 부순 건가?’

리베르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상대는 마력도, 신력도 없는 야만전사가 아닌가.’

마법진의 위치를 알았을 리 없다.

설령 알았다 해도, 마법이 발동되는 일순을 노려 공격한다는 건 신기에 가까운 기술.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물리력으로 부쉈다고?’

도끼에서 마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시험 삼아 리베르는 또 다른 마법진을 발동했고.

아틸라는 동일한 방법으로 그것을 격파했다.

‘우연이 아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리베르는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마법진의 위치 파악. 발동에 맞춘 타격. 입구를 분쇄할 정도의 압도적 물리력까지.’

정말 상상 이상의 괴물이 아닌가.

‘그렇다면.’

리베르의 눈빛이 변했다.

장난기 가득했던 표정이 일거에 지워졌다.

아틸라의 표정도 변했다.

‘시작이군.’

리베르의 입에서 주문이 영창됐다.

롤랑을 흉내 낸 것이 아닌, 리베르 본연의 목소리로.

아틸라도 반격을 준비했다.

[ 펀치의 인벤토리를 확인합니다. ]

아틸라는 인벤토리 안에 자신이 찾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좋아. 와라.’

상대에게 달리며 아틸라는 생각했다.

마법사의 수준은 영창 속도에서도 판별된다.

‘까마귀 군주 리베르라면.’

마법 구현은 벌써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을 것!

활짝 편 리베르의 손이 아틸라를 향했다.

콰르르르륵!

부패한 검은 액체가 불꽃처럼 뿌려졌다.

아틸라는 펀치의 입에서 삐져나온 칼자루를 쥐었다.

[ 무휼을 획득합니다. ]

이어진 메시지를 확인한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 숨겨진 종족 특성이 성검, 무휼의 힘을 일깨웁니다. ]

‘이거라면.’

[ 대마법병기(對魔法兵器) ]

‘막을 수 있다!’

코앞까지 다가온 부패의 장막을 향해 아틸라는 무휼을 뻗었다.

* * *

대무신왕의 성물 무휼.

흐지부지 파기된 설정이었기에 자세한 능력은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무휼은 화살의 저주로부터 펀치를 보호했다.’

무휼의 수호자 그리즐리를 그저 그런 힘센 곰 한 마리로 전락시킨 바토리의 화살.

하물며 태아에 불과했던 펀치가 그 가공할 마력을 견뎌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펀치는 살아남았다.’

무휼의 힘이 펀치를 지켜 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휼은.

‘마법검이란 이야기지. 그것도 아주 강력한.’

아틸라가 가급적 무휼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정작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쓰려면 숨겨 둘 필요도 있었으니까.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하아아압!”

무휼의 검신이 휘황한 빛을 뿜었다.

파드드듯! 무휼에 닿은 검은 액체가 종이처럼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 엄청난 광경에 리베르는 당혹을 넘어선 공포를 느꼈다.

‘뭐, 뭐야! 저 검은!’

녀석이 저것을 소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 정도의 마력을 지녔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도, 바토리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야말로 불가상성(不可想性)의 마력.

‘동방의 민족. 그들의 마력이 이렇게나 대단했단 말인가.’

세계의 관조자라 불리는 그들이었지만 그건 남부와 북부에 한정된 이야기다.

끝을 알 수 없는 수해 너머의 땅은 그들에게도 미지의 세계.

그러는 사이 부패의 마력을 돌파한 아틸라가 리베르의 코앞까지 쇄도했고.

‘재미있군. 정말 재밌는 녀석이야.’

공포에 질린 와중에도 리베르는 웃었다.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자신들의 오랜 숙원을 이루게 해 줄지도 모른다.

“즐거웠군. 야만전사.”

퍼걱! 용아귀에 쪼개진 리베르의 몸이 까마귀로 변해 날아올랐다.

힘은 충분히 지켜봤다.

이제 한발 물러나 본격적인 행동에 착수할……

“어딜 가려고 이 새끼야.”

무휼의 날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리베르의 시야가 빙글 돌아갔다.

까마귀머리가 뎅구르르 바닥을 굴렀다.

“이런…… 시발……. 아프게…….”

잘린 머리에서 띄엄띄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틸라는 용아귀의 옆면으로 그것을 내리쳤다.

“꾸에에에엑……!”

짓눌린 틈으로 검은 깃털들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자석에 끌린 쇳가루처럼 허공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었고.

이윽고 하나의 깃털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균열도 자취를 감췄다.

* * *

사바흐가 함정 룬에서 풀려날 무렵 연막의 수명도 끝이 났다.

그들은 낯선 실내에 있었다.

“여기는.”

“저, 저길 봐요 스승님!”

카스피가 가리키는 곳엔 재갈을 물린 채 포박된 롤랑이 있었다.

롤랑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며 아틸라가 말했다.

“이놈은 진짜인 거 같군.”

이곳이 어딘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창 너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가스코뉴 공작성이 보였으니까.

‘녀석과 맞붙는 순간 이쪽으로 옮겨졌던 건가.’

정확한 공간 이동술에 실제 같은 환술.

하여간 음흉한 놈이다.

화풀이로 모가질 따 버리긴 했지만 녀석이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 ‘불사자(不死者)’라는 걸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일은 완수했군.’

진짜 롤랑도 찾았고, 녀석의 증언을 확보하면 카스피의 파문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 돌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 보상으로 파티 시스템을 다운로드합니다. ]

퀘스트 완료 보상까지.

때마침 재갈이 풀린 롤랑이 꺽꺽대며 외쳤다.

“다, 당신들 하싸씬의 살수들 아니오? 왜 도살자와 함께 있는 거지?”

뭐?

“내, 내가 분명 의뢰하지 않았소! 도살자를 없애 달라고!”

이런 미친.

그 의뢰 진짜 네 짓이었냐?

“타깃을 죽이지 못한 것도 모자라 함께 행동하다니! 내 당장 단주에게 이 사실을……!”

고래고래 소리치던 롤랑은 아틸라의 발길질 한 방에 졸도했다.

아틸라의 시선이 사바흐에게 돌아갔다.

직전과 달리 싸늘하게 식은 그의 눈빛을 확인한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 추가 보상으로 새로운 전투 스킬을 개방합니다. ]

[ 전사의 외침 ]

“덤벼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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