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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8화 (18/425)

018. 불사의 마법사 (4)

사바흐는 가스코뉴 공작성으로 오는 동안 도살자를 둘러싼 여러 정황을 파악했다.

또한 알현실에 도착한 뒤에도 최초의 기습을 날리기 전까지 줄곧 도살자를 주시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녀석은 함께 온 두 사내를 보호하고 있다.’

비두킨트가 작센을 죽이려 했을 때 둘을 끌고 구석으로 대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작센을 넘기고 현상금을 받으려 했다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현상금이 목적이었다면 처형 명령이 떨어졌을 때 죽게 두었을 테니까.’

결론 내리자면 저들 셋은 꿍꿍이가 있다는 거다.

어떤 목적을 위해 한배를 탄 사이라는 것.

‘그것이 도살자의 약점이다.’

사바흐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기회를 봐 작센을 공격하는 체하며 도살자를 유인한 뒤 카스피를 구출할 생각이었다.

그 후 카스피가 정신을 차리면 전투 초기화.

‘살수의 전투라면 도살자를 잡을 수 있다.’

사바흐가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 무렵.

아틸라는.

- 놈들은 분명 한배를 탄 사이.

- 작센을 공격하는 체하며 도살자를 유인한 뒤 카스피를 구출한다.

- 전투를 초기화할 수 있다면 나의 승리다.

사바흐의 머릿속 생각을 실시간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 게다가 내겐 카스피가 있다.

- 카스피와의 연계 공격으로 최단 시간에 처리해 주마.

- 아아, 카스피. 나의 카스……

‘도저히 못 봐주겠군.’

눈앞의 꼴사나운 심언을 지워 버릴 기세로 아틸라는 용아귀를 휘둘렀다.

그것을 피하며 사바흐는 생각했다.

- 도살자의 공격 속도가 느려졌다.

- 상당한 피를 흘리고 있군.

사바흐는 시험 삼아 예리한 반격기를 쏘아 냈지만 상대는 능숙하게 막아 냈다.

- 깊은 부상이 아니었던 건가.

- 이상하군. 분명 감촉이 있었는데.

- 착각이었나.

그러나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용아귀를 손에 넣기 위해 아틸라는 무리한 움직임을 펼쳤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사바흐의 사슬낫에 깊은 자상을 입었다.

‘제법 치명상이었지.’

게다가 무기 없이 싸우는 동안에도 많은 공격을 허용했다.

물론 그건 당사자인 아틸라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체력이 줄어들고 있어.’

그의 경험에 의하면 체력이 위험 수치로 떨어지기 전까진 움직임에 큰 제한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상처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머지않아 체력은 위험 수치에 도달할 것이다.

다행히 아틸라에겐 계획이 있었다.

‘일단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인다.’

사바흐는 기회를 틈타 작센을 노리려 한다.

아틸라는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흐아아압!”

아틸라의 맹공이 시작됐다.

사바흐는 맞대결보다는 빠져나갈 기회를 노리며 회피에 주력했지만.

- 이것이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 스치기만 해도 몸이 두 동강날 것 같다.

역시 정면 승부에서는 아틸라의 압승이었다.

사바흐는 빈틈이 보일 때마다 몸을 빼내려 했지만.

그때마다 아틸라가 도주로를 막았다.

- 귀신같은 움직임이다.

- 마치 내 움직임을 모조리 예측하고 있는 것 같군.

‘응. 맞아.’

사바흐는 분명 대단한 강자다.

그러나 살수의 특성상 전사와의 상성은 좋지 않았고.

그런 살수가 자신의 최대 장기인 초반 기습에 실패한다면.

‘그때부턴 전사의 시간이지!’

바람을 가르는 도끼 소리가 흉흉하게 울렸다.

사바흐는 자신의 계획조차 잊었다.

그저 회피하기 급급했다.

- 빌어먹을.

그리고 마침내.

아틸라는 사바흐의 멱살을 쥐는 것에 성공했다.

- 이런 말도 안 되는……!

콰앙! 사바흐의 등허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크허억……!”

살수의 약점 중 하나는 맷집이 약하다는 것이고.

그건 사바흐에게도 해당됐다.

‘당분간은 꼼짝도 못 하겠지.’

아틸라는 사바흐를 질질 끌고 카스피에게 다가갔다.

카스피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기절해 있었다.

“의뢰자가 누구냐.”

사바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 얘 죽인다?”

사바흐가 움찔하며 아틸라를 노려봤다.

아틸라는 태연한 얼굴로 카스피의 목에 도끼를 들이밀었다.

‘노, 놈은 허풍을 치고 있다.’

“허풍 치는 거 아니야.”

생각을 읽은 듯한 말에 사바흐는 흠칫했다.

‘아니다. 놈은 지금까지 카스피에게 손대지 않았…….’

“지금까진 손대지 않았지.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도살자가 야수처럼 입을 찢었다.

“시험해 볼 텐가.”

도끼날이 카스피의 목을 살짝 그었다.

동그란 핏방울 몇 개가 돋아나 목 옆으로 흘렀고, 그 모습을 본 사바흐가 노성을 질렀다.

“멈춰라!”

“의뢰자가 누구냐.”

“말해 줄 것 같은…… 크헉!”

사바흐를 재차 바닥에 내동댕이친 아틸라는 카스피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켰다.

인형처럼 늘어진 그녀의 목에 아틸라는 다시금 용아귀를 겨눴고, 그제서야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심언으로.

- 빌어먹을 롤랑 가스코뉴.

- 일의 의뢰자가 왜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든 것인가.

“역시 롤랑이로군.”

사바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미끼를 던질 시간이다.

“네 눈으로 확인해라. 저자가 이번 일의 의뢰자 롤랑 가스코뉴가 맞는지.”

- 갑자기 무슨.

사바흐의 눈이 흘끗 롤랑을 향했다.

그리고 못 박힌 듯 고정됐다.

- 저자가 롤랑 가스코뉴라고?

공작성에 도착한 뒤 사바흐는 줄곧 도살자를 주시했다.

그래서 롤랑을 눈여겨보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 기묘한 일이군.

- 미약하지만, 저자에게서 마력이 느껴진다.

아틸라의 예상대로였다.

사바흐는 하싸씬의 일곱 마스터 중 마력 감지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

- 설마 롤랑 가스코뉴는 마법사인가?

-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세계에서 마력을 다루는 자는 결코 흔치 않으니까.

아틸라는 슬슬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저자가 롤랑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롤랑이 아닌 자가 롤랑을 사칭해 의뢰한 것이라면 하싸씬은 임무 자체를 백지화할 수 있을 터다.”

-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자다.

- 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되면 카스피 역시 파문을 면할 수 있겠지.”

“……원하는 게 뭐냐.”

“가짜 롤랑의 정체를 밝히고 진짜 롤랑을 찾아내는 것.”

- 녀석의 말엔 일리가 있다.

- 칼자루를 쥔 건 다름 아닌 도살자.

사바흐는 고민했다.

- 인정하긴 싫지만 카스피의 파문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이다.

- 그렇다면.

- 진짜 롤랑을 찾아내야만 진실을 알 수 있겠군.

아틸라가 웃었다.

“계약 성립이로군.”

* * *

아틸라는 롤랑 행세를 하고 있는 자의 정체를 예상해 보았다.

‘저 정도로 정교한 역용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자라면.’

역용술은 살수 중에서도 변장의 극의에 도달한 자만이 시전 가능한 기술.

예를 들면 미래의 카스피라든지.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야겠지.’

예상되는 인물은 몇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하싸씬의 단주였지만 그가 이런 행동을 할 리는 만무했다.

‘이런 시답잖은 일에 끼어들 자가 아니지.’

다음은 하싸씬의 라이벌 암살교단.

그 안에서 빼어난 역용술을 지닌 자라면.

‘아니야. 그쪽과 가스코뉴 공작령은 아무 접점이 없다. 역사가 다소 바뀌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등장할 리는 없어.’

이후 아틸라는 몇몇 인물을 더 떠올렸지만 금세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무엇보다 마력을 지닌 자라는 점이 걸렸다.

‘설마 역용술이 아닌 건가?’

가능성은 있다.

이를테면 정교한 가면을 쓴 마법사라든가.

‘그렇다면…….’

생각을 이어가던 아틸라가 벅벅 머리를 긁었다.

빌어먹을. 누구면 또 어떤가.

‘얼굴 가죽을 뜯어내 보면 알겠지.’

고민을 멈춘 아틸라는 사바흐를 돌아봤다.

준비를 마친 사바흐가 고개를 끄덕였고, 카스피가 선보였던 것보다 더욱 밀도 높은 연막이 알현실에 펼쳐졌다.

‘과연 사바흐.’

사바흐의 연막술은 단순히 시야를 가리는 용도가 아니다.

시간과 공을 들이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양으로 연막을 펼쳐 낼 수 있다.

‘그래서 녀석과 싸울 땐 틈을 주면 안 돼.’

일단 연막이 생성되면 그곳은 놈의 안방이나 마찬가지.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치거나 빠르게 장소를 바꿔야 한다.

‘물론 그렇게 내버려 두지도 않겠지만.’

이곳이 가스코뉴 공작성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아틸라의 실력을 사바흐가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는 분명 세심한 연막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그러지 않았고, 그건 아틸라에게 커다란 행운으로 작용했다.

‘완벽하게 준비를 갖춘 사바흐였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상상이지만.

아틸라는 지금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여, 역시 스승님! 대단하세요!”

아틸라는 자신의 등에 카스피를 꽁꽁 묶어 둔 채였다.

연막이 펼쳐진 지금의 사바흐는 조금 전과 비교불가의 강자였기에 아틸라도 보험은 들어 둬야 했다.

물론 카스피의 파문 여부가 달린 일이라 그리 쉽게 배신하진 않겠지만……

- 롤랑의 정체만 밝혀 내면 바로 모가질 따주마, 도살자!

- 그러니 조금만 참아다오 카스피.

- 흑흑.

‘빌어먹을 놈의 제자바보 새끼.’

아틸라는 등 뒤의 사슬을 더욱 단단히 동여맸고.

‘끼옉!’ 하는 카스피의 요상한 괴성을 들으며 롤랑에게 질주했다.

‘저놈이 뭐든 간에.’

몇 방 갈겨 주면 진짜 롤랑의 위치를 불겠지.

아틸라는 순식간에 롤랑의 앞에 도달했다.

연막 덕에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이제 왔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찢어 웃는 롤랑에게 아틸라는 팔을 뻗었다.

생각 같아선 그냥 도끼로 쪼개 버리고 싶었지만.

‘뒈져 버리면 말을 못 하니까.’

덥석 멱살이 잡힐 때까지도 롤랑은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기분이 나빠진 아틸라는 놈을 들어 바닥에 메다꽂았다.

“끄에엑!”

비명을 지르는 롤랑의 입에서 한 움큼 핏물이 터졌다.

“또 웃어 보시지.”

“난 계속 웃고 있는데?”

딱딱하게 굳은 아틸라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의자 위엔 여전히 롤랑이 앉아 있었다.

처음과 다름없이 웃는 얼굴로.

‘그럼 이건.’

프스슷, 바닥에 꽂혔던 형체가 검은 깃털로 화해 사라졌다.

“마법사를 처음 본 소감이 어때?”

아틸라는 답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아닌 다른 무언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멍청한 변태 도살자 같으니.

- 저리 무작정 돌진하니 전사가 마법사의 고기방패란 소릴 듣는 거다.

마법사의 등 뒤로 사바흐가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이 힐끗 아틸라를 향했다.

- 잘 보아라. 마법사의 천적이 살수라는 것을 이몸이 직접 보여…… 히에엑 뭐야!

사바흐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그가 밟은 곳을 중심으로 검은빛을 발하는 룬(Rune)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

“저런저런.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죽을 수도 있거든.”

“웃기는군. 누가 이런 함정 따위에으아아아아악!”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사바흐가 바르르 몸을 떨었다.

마법사가 이죽댔다.

“얕보인 것 같군. 둥지를 틀어 앉은 마법사를 고작 전사와 살수 둘이서 상대하겠다니.”

“누가 둘이라고 했나.”

“뭐라?”

“저 등신은 빼.”

송곳니를 드러내며 아틸라가 웃었다.

“나 혼자다.”

아틸라는 마법사의 정체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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