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2화 (12/425)

012. 패왕의 등장 (4)

‘뭐, 뭐야. 저거 샤를 아냐?’

나무 사이로 드러난 금사자 용병단의 선두를 보며 아틸라는 헛숨을 들이켰다.

‘저 자식이 왜 아직 여기에 있지? 이때쯤이면 대를 나눠 움직여야 하는데.’

대규모 부대가 움직인다는 정보였기에 당연히 피핀의 본대일 줄 알았다.

‘빌어먹을.’

물론 지금의 샤를이라면 자신이 상대할 수 있겠지만.

‘피핀과 각 기의 대장들.’

나머지가 문제였다.

오토와 세 기사는 놈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결국 자신은 백 명이 넘는 적에게 포위되겠지.

‘포기해야 하나.’

아쉽지만 방법이 없다.

아까부터 뭔 일이냐고 물어대는 오토를 한 대 쥐어박고 철수하려던 아틸라는 목표물의 움직임에서 변화를 감지했다.

‘응?’

샤를을 포함한 십여 기의 기마부대가 떨어져 나간 것.

‘이런 개꿀이!’

이어 피핀의 본대가 말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아틸라는 기뻐하는 와중에도 감탄했다.

‘과연. 이런 상황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아.’

긴장을 푼 병사는 보이지 않았다.

보초병들의 눈빛도 베일 듯이 날카롭다.

모두 부단장 피핀의 지휘 덕분이다.

‘저 자식이 있어서 샤를이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조금 전 보았던 샤를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관 속 주인공을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틸라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저, 정말 저놈들을 칠 겁니까? 우리 모두 뼈도 못 추리고 뒈져 버리는 거 아닙니까?”

오토가 산통을 깨기 전까지는.

“대답 좀 해 주십쇼. 네? 아틸라 님.”

“유격대가 빠졌잖아. 그럼 할 만해.”

“고작 그거 빠졌다고 할 만하다니! 아틸라 님은 저기 백 명도 넘는 놈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경계하는 모습이 안 보인단 말이오!”

“3할만 해치우고 빠진다. 대장급과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도록.”

구시렁대는 오토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아틸라가 달렸다.

“이런 개 씨부럴!”

오토와 세 기사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뒤를 쫓았다.

* * *

‘뭐지?’

피핀은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짐승인가?’

아니다.

제아무리 사나운 짐승이라도 이 정도의 병사가 모여 있는 곳엔 얼씬대기 힘들다.

‘말발굽 소리는 없어.’

어딘가의 기병도 아니다.

보병들이 이런 시간에 험한 숲속을 행군 중이라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설마.

‘매복인가!’

“전투태세를 갖춰라!”

피핀이 소리쳤고 동시에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악!”

소리의 진원지는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절규와 파육음의 혼돈 속에서 병사들의 잘린 몸뚱이가 분수처럼 치솟고 있었으니까.

‘저, 저건!’

피보라를 일으키는 거대한 도끼와 그것을 휘두르며 돌진하는 사내.

피핀이 소리쳤다.

“도살자!”

눈 깜짝할 사이에 열 명이 넘는 병사가 육편이 되어 사라졌다.

게다가 상대는 도살자만이 아니었다.

“절대 떨어지지 마!”

“차근차근 한 놈씩 베는 거다!”

“맡겨두쇼!”

그의 측후면으로 부채처럼 진을 펼친 사내들.

그들 네 명은 파괴적인 힘으로 직진하는 도살자의 사각을 완벽하게 보조하고 있었다.

“거기 비었잖아! 똑바로 안 해!”

“비기는 염병! 대장이나 잘 하쇼!”

“뭐, 뭐야!”

세 기사가 낄낄대며 웃었고.

“우라질 놈들.”

오토도 킬킬대며 웃었다.

아틸라는 생각했다.

‘제법이군.’

그동안 함께 했던 수많은 훈련과 전투.

차곡차곡 쌓여 가던 그것이 마침내 이들의 손발을 하나로 맞춰 주기 시작했다.

‘오동나무 용병단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하지만 피핀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수비대! 방패벽!”

외침과 동시에 수십 개의 방패가 합쳐지며 벽을 만들었다.

“전진!”

쿵쿵 지면을 울리며 벽이 다가오자 오토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히엑! 저거 위험한 거 아닙니까!”

“너희도 방패 꺼내.”

“뭐, 뭐요?”

[ 보조 스킬, 전술 탐지가 활성화됩니다. ]

“화살 날아올 거다.”

아틸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궁병대! 조준!”

“여, 염병할!”

오토와 세 기사는 허겁지겁 방패를 꺼내들었고.

“발사!”

화살비가 쏟아졌다.

방패 뒤로 몸을 숨기던 오토는 화살비를 향해 정면으로 질주하는 아틸라의 뒷모습을 보았다.

“미친! 뭐 하는 거요!”

날카로운 소음이 쉼 없이 울렸다.

아틸라의 가슴 위로 추켜진 용아귀가 주인에게 쏘아지는 화살들을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당황하지 마라! 도끼 바깥쪽을 노려라!”

과연 금사자의 궁병대였다.

재차 쏘아진 화살 상당수가 용아귀의 범위 바깥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렇다면.’

아틸라는 손도끼를 꺼냈다.

궁병대원은 어림잡아 서른 명.

모든 화살을 막을 순 없다.

‘치명타만 쳐 낸다!’

오른손엔 용아귀를, 왼손으론 손도끼를 휘두르며 아틸라는 전차처럼 돌진했다.

투구와 흉갑 위로 몇 개인가의 화살이 닿았지만 그의 저돌적인 움직임을 방해할 순 없었고.

‘저런 말도 안 되는……!’

30인에 달하는 정예 궁병대가 단 한 명의 사내를 공략하지 못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피핀은 경악했다.

‘저, 저것이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

그러는 사이 저 인간 같지도 않은 자는 방패벽의 턱 끝까지 근접했고.

“수비대! 버텨라!”

수많은 방패병들이 온몸으로 힘을 주며 적의 침입을 막았다.

아니 막으려 했다.

“흐아아아압!”

도살자의 짐승 같은 괴성과 함께 전사 셋이 허공을 날았다.

“창 공격!”

벌어진 틈으로 네 자루의 창이 쇄도했지만 상대는 도끼를 한 번 크게 내리치는 것으로 무효화시켰고, 표범처럼 날래게 회전하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크허억!”

“으아아아아악!”

창을 찔렀던 전사 넷의 허리가 동시에 절단됐다.

이어 옆구리로 날아드는 창날을 상체를 비틀어 피한 그는 상대의 머리에 손도끼를 꽂아 준 뒤 방패벽을 향해 용아귀를 던졌다.

방패전사 셋의 몸을 차례로 관통한 용아귀가 네 번째의 얼굴에 박혔다.

“크르르릅……!”

머리가 두 쪽 난 병사가 괴이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동요하지 마라! 놈은 무기를 잃었다! 이중삼중으로 포위해 벽을 만들어!”

‘젠장 왜 자꾸 던지는 버릇이 생겼지.’

병사들이 전열을 가다듬는 사이 아틸라는 용아귀를 되찾기 위해 달렸다.

그런 그의 앞을 누군가 가로막았다.

“네놈이 도살자인가.”

자신보다도 우람한 체격과, 그에 어울리는 거대한 양손검을 지닌 사내.

아틸라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금사자의 돌격대장. 루악.’

특기는 맨손으로 황소도 때려잡는 괴력.

“금사자 용병단의 돌격대장 루악이다. 너 역시 돌격대장이라 들었는데, 이름을 알고 싶군.”

“안 알려 줄 건데.”

“뭣이?”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는 루악의 코앞에서 들렸다.

“나 돌격대장 아냐.”

‘어느 틈에!’

루악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아틸라는 맨손을 뻗어 그의 팔목을 잡아챘다.

“어우 겁나게 두껍네.”

아틸라가 손에 힘을 주자 버티지 못한 그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돌덩이 같은 주먹이 루악의 복부를 가격했다.

“크허억……!”

루악이 배를 움켜쥐며 상체를 수그렸다.

덕분에 가까워진 투구를 잡아 뜯은 아틸라가 손도끼로 그의 목을 그었고, 그렇게 거구의 사내는 맥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럴 수가! 루악 돌격대장이……!”

“루악!”

이번엔 피핀이었다.

탄환처럼 쏘아진 그의 검을 피하며 아틸라는 바닥을 굴렀다.

‘오케이. 좋아.’

튕기듯 몸을 일으킨 그의 손엔 용아귀가 쥐여 있었다.

“도살자!”

피핀이 매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측후면에서는 방패전사들이 거북이처럼 몸을 숨기며 창을 찔러 댔다.

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오토가 피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꼬마는 내가 상대하겠수!”

저런 미친.

아틸라는 후방에서 날아드는 창 몇 개를 잡아 부러뜨린 뒤 병사 두엇의 몸을 베고는 다급히 뒤를 돌았다.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았건만 그의 시야에 잡힌 건 지렁이처럼 바닥을 기는 오토였다.

“으아! 사, 살려주쇼!”

‘미친놈 저럴 줄 알았지.’

아틸라는 쥐고 있던 부러진 창날을 피핀에게 투척했다.

마무리 일격을 가하려던 피핀은 목표를 바꿔 그것을 쳐 냈고.

“너 잠깐 누워 있어라.”

그 사이 거리를 좁힌 아틸라가 피핀의 명치를 후려갈겼다.

그런 줄 알았는데.

‘피했어?’

피핀의 몸이 핑그르르 돌아 측면으로 빠졌다.

주먹은 명치가 아닌 옆구리를 가격했고 그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과연. 장차 영웅급으로 성장할 인물은 다르다 이건가.’

물론 피핀은 순수한 무위로만 영웅 등급에 오르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무력도 평범한 이와는 궤를 달리했다.

‘샤를이 영웅으로 개화하며 녀석도 영향을 받기 시작하지. 하지만.’

그림처럼 이어지는 피핀의 반격을 아틸라는 피하지 않았다.

살짝만 몸을 틀어 급소를 비껴낸 아틸라는 칼끝으로 전해진 파육감에 굳어진 피핀의 목을 쥐고 바닥에 내리꽂았다.

“크헉……!”

복부를 한차례 더 후려갈긴 아틸라는 피핀이 기절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몸을 일으켰다.

피핀은 죽어선 안 된다.

‘루악과 수십 명의 부하를 죽인 것만으로도 샤를이 발광을 할 텐데 피핀까지 죽이면.’

녀석은 만사를 제쳐두고 자신을 추격할 테지.

생각만 해도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안 돼 안 돼. 넌 예정대로 요정섬에 가야 한단 말이다.’

게다가 샤를의 무지막지한 패도를 보좌하는 이가 피핀이다.

피핀이 사라지면 역사는 필연적으로 바뀌게 된다.

“돌아간다.”

달려드는 기병에게 루악의 시체를 집어던진 아틸라는 피핀을 인질 삼아 금사자의 진영을 벗어났다.

오토와 기사들이 승마한 것을 확인한 아틸라도 새끼곰과 함께 말 위에 올랐고.

“앞으론 마주치지 말자고.”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는 적병들에게 그간 모아 둔 창날을 흩뿌린 뒤 피핀의 몸을 떨궜다.

“부, 부단장!”

피핀을 회수한 그들이 고개 들었을 땐 아무도 없었다.

* * *

피로 얼룩진 숲의 새벽을 넘어 뙤약볕 가득한 남부 전선에선 또 다른 전쟁이 한창이었다.

“빌어먹을 야만족 새끼들!”

“한꺼번에 공격해!”

가스코뉴 공작군에 합류한 야만전사들.

그들로 인해 영지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 대족장 문주크!”

지휘관 셋, 부지휘관 일곱, 그 외 헤아릴 수 없는 병사들의 목을 날려 버린 자.

하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모든 전공을 고작 사흘 만에 이뤄 냈다는 것.

“제, 젠장! 후퇴해!”

“으아아아악!”

주제를 모르고 덤벼들던 적들이 뼈와 살과 내장 조각으로 바뀌며 무자비한 혈로가 생성됐다.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사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

문주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껏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던 그의 도끼가 어디선가 난입한 검신에 멈춰 서 있었다.

‘이자는.’

문주크의 눈이 검의 주인을 향했다.

고대의 전설이 강림한 듯한 눈부신 금발 사이로 그의 입술이 열렸다.

“네가 바로.”

심연의 푸른 눈이 칼날처럼 빛났다.

“대족장 문주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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