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1화 (11/425)

011. 패왕의 등장 (3)

“도살자?”

아틸라에 대한 소문은 결국 샤를의 귀에 들어갔다.

“소속은.”

“베르트랑 남작군 휘하 오동나무 용병단. 단에서의 위치는 돌격대장쯤 되는 모양이야.”

금사자 용병단의 부단장이자 오랜 친우 피핀의 대답에 샤를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동나무 용병단이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나 역시 마찬가지야. 이번에 사형집행자 덕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신생 용병단 같아.”

“사형집행자?”

“아아. 도살자의 별칭이 꽤 많거든. 아마 너와 비슷할걸?”

샤를의 눈빛이 변했다.

“실력은.”

“소문이 사실이라면, 사자왕(獅子王) 샤를 아인하르트와 견주어 볼 수 있을 정도.”

피핀이 웃으며 답했고 그 모습을 본 샤를도 입가를 올렸다.

“구미가 당기는 말이군.”

* * *

오동나무 용병단의 행적을 조사하며 도살자와 조우하게 될 날을 고대하던 샤를은 아키텐 백작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았다.

“뭐? 백작께서 직접?”

“전쟁고아 평민 따위에게 말인가!”

백작령이 술렁거렸다.

제아무리 샤를이 압도적인 전공을 세우고 있다고는 하나, 일개 용병단장이 백국을 다스리는 대영주를 알현한다는 건 쉬이 벌어질 수 없는 일.

“저자가 샤를 아인하르트인가.”

“곱상하겐 생겼다만 그래봐야 천것일 뿐.”

“모시는 주군도 없이 동전 몇 푼이면 누구든 죽이는, 그야말로 살인귀나 진배없지.”

백작성에 입장하는 샤를을 보며 많은 귀족들은 대놓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샤를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렇게 거만하게 내려 보고 있거라. 그럴 수 있는 동안에.’

며칠 후, 단으로 복귀한 샤를에게 피핀이 물었다.

“알현은 어땠어?”

“기사 서임을 약속하더군.”

“에게게. 고작?”

고작이 아니었다.

모든 자유민들의 꿈이자 그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오르지 못할 나무.

그것이 바로 귀족에게 기사 서임을 받아 자그만 영지나마 운영하며 사는 것이었다.

“하하하. 기사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날마다 노래를 부르던 게 누구였더라.”

“에이.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

피핀의 말대로, 금사자 용병단은 이번 전쟁으로 몸값을 아주 제대로 올렸다.

대륙의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를 확장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그런 그들에겐 스스로의 욕망을 현실로 채워 줄 강력한 무장집단이 필요했다.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향후 금사자 용병단은 수많은 영주들의 달콤한 제안을 받게 되리라.

“부탁했던 일은?”

샤를의 물음에 피핀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아무래도 오동나무 쪽에 뛰어난 전술가가 있는 모양이야. 도통 꼬리를 잡을 수가 없어.”

“그 정도라고?”

샤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피핀의 정보 수집 능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말도 마. 마치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훤히 알고 있는 것 같다니까? 여긴가 싶어 가 보면 저쪽으로 가 있고, 또 저기구나 싶어 쫓아가면 반대편에서 나타나고.”

샤를이 단을 떠나 있는 동안 피핀은 오동나무 용병단의 행로를 파악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 왔다.

“그러니까 네 말은, 녀석들이 일부러 우릴 피하고 있다는 거야?”

“암. 우연이 너무 반복되면 필연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지.”

“네가 무능한 건 아니고?”

“야! 샤를!”

샤를의 짓궂은 농담에 피핀은 주먹 날리는 시늉을 하며 웃었고, 샤를도 마주 웃었다.

“애석하지만 도살자 건은 당분간 보류야.”

“왜? 백작에게서 무슨 말이 있었어?”

“있었지.”

“뭔데?”

“전출 명령.”

“엥?”

휘둥그렇게 눈을 뜬 피핀을 향해 샤를이 씩 웃었다.

“남부 전선에 엄청난 괴물이 나타난 모양이야.”

* * *

“아틸라 님.”

“왜.”

“이러다 우리 귀족이라도 되는 거 아닙니까?”

“넌 원래 귀족이었잖아.”

“그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또 아니잖습니까.”

“귀족도 모가지가 붙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지.”

아틸라의 말에 오토는 아찔한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휴. 그때 아틸라 님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바로 골로 갈 뻔 했수다.”

“넌 어째 말투가 점점 더 천박해지냐.”

“원래 말투는 이렇지 않았는데 저 녀석들과 함께하다 보니 이리 됐수다.”

휴식 중인 부하들을 슥 둘러보며 오토가 히죽 웃었다.

“보기엔 저래도 괜찮은 놈들이오. 못난 대장 따라 이 위험한 전쟁엘 다 따라오고.”

“안 그랬으면 참수당했을 테니까.”

“아이고 아틸라 님. 간만에 낯간지러운 소리 좀 뱉어 보려는데 자꾸 맥 빠지게 할 거요?”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라. 넌 부하들 팽개치고 혼자 도망쳤던 놈이잖아.”

“거참 잊을만하면 그 얘길 또 하시네.”

“왜. 또 불가항력이었다고 구라 치게?”

“진짜라니까 자꾸 그러기요? 내가 도망친 게 아니라 말이 놀라 도망친 거라고 몇 번을 말해야…….”

“여기 있어라.”

“어, 어디 가십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아틸라는 흠칫하며 놀란 오토를 내버려 둔 채 저만치 부서진 건물을 향해 걸었다.

등 뒤에서 ‘시벌 또 때리는 줄 알았네.’하고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 뒤엔 라시드가 있었다.

“아틸라 님.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교단에서 사람이 나온 듯합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라시드 정도의 암살자가 이렇게나 날뛰고 있는데 백작 측에서 당하고만 있을 리 없다.

오래지 않아 하싸씬의 솜씨라는 걸 알아챘을 테고 그 즉시 교단에 의뢰를 넣었겠지.

‘생각보다 대응이 빠르군. 여기서 멈춰야 하나? 하지만 라시드 없이는 화력이 많이 떨어질 텐데.’

“아무래도 지난번 흔적을 제대로 지우지 못한 게 화근이 된 것 같습니다.”

“그냥 죽여 버리면?”

“그럼 더 강한 자를 보낼 것입니다. 이쯤에서 물러나면 제 권한으로 무마시킬 수 있습니다.”

“교단을 떠나는 것으로 말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암살자들의 집단처럼 보이지만 하싸씬은 의외로 의리파였다.

뭐 의리란 게 별건 아니고, 오랜 기간 교단에 종사하며 공적을 쌓은 이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1회에 한해 책임을 묻지 않고 파문으로 마무릴 짓는다는 것.

때문에 여생을 평범히 보내고자 하는 나이 든 살수들이 종종 이를 악용했고, 교단은 너그러이 눈감아주곤 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

“대체 아틸라 님은 정체가 뭡니까. 어떻게 교단의 속사정을 그리…….”

“아무튼 미안하게 됐군.”

라시드가 교단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건 아틸라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닙니다. 늘그막에 현장 재미도 좀 봤으니까요.”

라시드가 빠진 공백을 무엇으로 메꿔야 할지 아틸라는 고민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암살 대신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건 상관없겠지?”

“아무렴요. 괜찮습니다.”

“앞으론 금사자 용병단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에 주력해라.”

“금사자 용병단이라. 그곳 단장이 제법 걸물이라 하더군요.”

제법 정도가 아냐 이 노인네야.

“맞붙을 생각이십니까.”

“살짝만.”

원작대로라면, 머지않아 샤를은 부단장인 피핀과 대(隊)를 나눠 움직인다.

점점 세를 불린 용병단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함인데.

아틸라는 피핀이 이끄는 본대를 공략할 생각이다.

“연락은 하루 두 번, 연락책은 하싸씬의 2급 살수 이상에게만 허용된 별책을 사용하도록.”

“……그것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오토에게 돌아가던 아틸라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조용한 놈으로.”

* * *

까아악. 까악. 까아아아악.

‘아 쫌 조용한 놈으로 보내라니까.’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뜬 아틸라는 천막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 보고는 다시금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꼭두새벽부터.’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멈춘 까마귀가 아틸라의 머리에 내려앉았고.

그걸 본 새끼곰이 바락 성을 내며 폴짝거리는 동안 아틸라는 까마귀 발에 묶인 쪽지를 꺼내 읽었다.

그러고는 천막으로 되돌아가 오토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시, 시벌 뭐요 갑자기!”

“일어나. 기사 출신들 깨우고 가장 빠른 말로 다섯 마리 준비해.”

“엥?”

송곳니를 번득이며 아틸라가 웃었다.

“사냥의 시간이다.”

* * *

“아니 새벽 댓바람부터 뭔 출동이오. 것도 달랑 5기만 데리고.”

“너 요즘 자꾸 말이 짧아진다?”

“아이고 그게 아니고요 아틸라 님.”

달리는 말 위에서 뭔가를 생각하던 오토가 물었다.

“근데 지난번에 16살이라 하지 않았수?”

“했지.”

“그거 참말이우?”

아틸라는 대답 없이 오토를 쳐다봤고, 그러자 오토는 괜히 달을 올려 보는 시늉을 했다.

소심하게 구시렁대는 소리까지 사라지진 않았지만.

“……시벌 난 37살인데 내 나이 반도 안 처먹은 새끼가 그렇다고 귀족도 아니고 딱 보니 지네 고향에서 족장 행세하다 온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엄연히 오동나무 용병단의 단장인 나한테 이렇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시키면 부하들 앞에서 단장의 권위는 뭐가 되며 중얼중얼…….”

“다 들린다.”

“아이고 들리셨습니까? 귓구녕이 아직 16년밖에 안된 새 거라 그런가 참 귀도 밝으셔.”

“넌 혼자 구시렁댈 때도 그리 말이 많냐.”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습니까.”

“하긴.”

“근데 정말 어디 가는 겁니까.”

오토가 말머리를 갖다 대며 은근히 물었다.

“암살자 양반이 재밌는 정보라도 준 겁니까?”

“금사자 용병단을 치러 간다.”

“뭐, 뭐요! 근데 고작 5명이서 간단 말입니까! 듣기로 녀석들은 이제 백 명을 훌쩍 넘는 대부대가 되었다던데!”

“어차피 우리 다섯이 오동나무 전력의 9할이다. 신속한 유격전을 펼치려면 이게 나아.”

오토는 과장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올렸다.

“빌어먹을 내 평생 마지막 달구경일 수도 있겠구만.”

그러고는 아틸라의 옆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저 괴물 옆에만 찰싹 붙어 있으면 뒈질 일은 없을 거라고.

* * *

수많은 말발굽 소리가 어둠에 물든 숲길을 울렸다.

“이렇게 밤낮으로 달려야 하는 거야?”

샤를에게 말머리를 붙이며 피핀이 말했다.

“말도 사람도 많이 지쳤어.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지만 너무 강행군이라고.”

샤를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작은 한낱 용병 나부랭이의 피로 따윈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진정한 주인의 길에 도달하기 전까진 기존의 주인과 반목해선 안 되는 법.

“대를 나눠야겠어.”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건 남부 전선 건을 마무리한 뒤로 미루기로 했잖아.”

“상황이 급박하니까.”

샤를의 생각을 피핀 역시 모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친우인 샤를이 걱정될 뿐이었다.

“남부 전선 야만족들의 기세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아무리 샤를 너라도 고작 그 인원으로는.”

“괜찮아. 본대가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어.”

샤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늦지 않게 와 줄 거잖아? 피핀 부단장.”

피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샤를을 포함한 십여 기의 유격대가 앞을 치고 나갔다.

그 모습을 응시하던 피핀이 뒤돌아 외쳤다.

“말을 멈춰라!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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