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10화 (10/425)

010. 패왕의 등장 (2)

군디카가 이끌던 야만 부족의 전투력을 100이라 한다면 아틸라를 위시한 오동나무 용병단의 힘은 어느 정도로 환산할 수 있을까.

며칠간 용병단을 훈련시키며 아틸라는 대략적인 답을 내렸다.

‘좋게 쳐 줘야 30점.’

물론 그중 20점 이상은 아틸라 본인의 무력이었다.

제아무리 아틸라가 아키텐 백작군이 벌일 전략전술을 소상히 알고 있다 해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

‘공작의 지휘관들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 없으니까.’

사실 믿어도 문제였다.

성과를 내면 낼수록 자신의 존재가 지휘관들에게 노출될 것이고, 일파만파 번진 소문은 결국 샤를의 귀에까지 닿을 것이다.

‘그럴 순 없지. 용병단 속에 숨어 조용히 움직여야 해.’

오동나무 용병단은 공식적으로 베르트랑 영주의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아틸라와 용병단원들은 따로 움직이며 게릴라전을 펼칠 계획이었다.

이미 영주에게 허가도 받아 두었다.

‘유격전을 펼치며 아키텐 백작군의 전술을 각개격파한다.’

물론 샤를이 이끄는 부대는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그렇게 70의 전투력 부족분을 채울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오토를 제외하면 너무 허접하게 약해. 기사 출신 세 놈은 그나마 낫긴 하지만.’

그러나 아틸라는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에겐.

“너, 내 동료가 돼라.”

하싸씬의 라시드가 있었으니까.

“뭐? 동료?”

라시드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하싸씬의 살수는 교단의 지시 없이 무리 짓지 않는다. 심지어 교단 출신도 아닌 외부인과 동료가 되라니.”

“왜. 싫어?”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물음이다.”

“목뼈가 부러져도?”

“…….”

어느새 아틸라는 라시드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라시드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교단의 단검술 사범이자 2급 살수인 내가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다니. 대체 이놈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하싸씬의 2급 살수.

나름 고수의 반열에 한 다리 걸치는 등급이다.

알기 쉽게 비교하자면 검은늑대 부족의 옥타르와 견주어볼 정도?

“걱정 마라 라시드. 우리와 함께 움직이자는 게 아니니까.”

“뭐라고?”

“넌 그냥 내가 부탁한 일들을 처리하면 되는 거다. 아주 은밀하고 조용하게.”

“암살 말인가.”

아틸라는 씩 웃었다.

송곳니를 드러낸 야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그 모습에 라시드는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엥? 주인장 암살자였수?”

알고 보니 알코올 분해 능력이 남달랐던 오토가 어느 샌가 깨어나 두 사내를 향해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 * *

라시드의 코를 꿰어 놓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녀석에겐 숨겨 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신상 정보를 줄줄 읊어 대자 라시드는 무릎까지 꿇으며 충성을 맹세했다.

“아이고 아틸라 님! 제발 그 애만은!”

물론 정말로 그녀를 찾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훗날 샤를 아인하르트의 동료가 될 패영전의 영웅 중 한 명이었으니까.

‘샤를은 물론이고 녀석의 동료가 될 자들 역시 건드리면 안 돼.’

샤를은 예정대로 움직여 줘야 한다.

지난밤, 아틸라는 오랜 고민 끝에 요정왕국으로 갈 방법을 결정 내렸다.

‘샤를 먼저 가게 하고, 뒤따라간다.’

그게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샤를이 이 시대 인간 최초로 요정왕국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녀석이 지닌 핏줄의 힘이 지대했으니까.

침대에 드러누운 아틸라는 가슴 위로 대강 합장하며, 태어나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기도를 올렸다.

“무럭무럭 이대로만 자라다오. 샤를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새끼곰이 헥헥 혀를 내밀었다.

* * *

“응? 기도하는 겐가?”

수정구를 통해 아틸라를 들여다보던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이제야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생각에 반색하며 중얼중얼 주문을 읊었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뭐라? 저런 식으로 기도를 받는 신은 없다고?”

바토리는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알려 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이로다. 서쪽 야만전사들의 신도 아니고, 전사신 아레스도 아니고, 게다가 침대에 드러누운 채 올리는 저토록 괴상한 방식의 기도라니 대체 저 아이는 어느 신의 종복이란 말인가.”

* * *

따스했던 봄이 지나고 여름의 뙤약볕이 대륙 남부를 내리쬐던 어느 날 전쟁은 시작됐다.

“쳐부숴라! 아키텐의 겁쟁이들을 모조리 도륙하라!”

“싸워라! 비열한 가스코뉴의 침략자들을 무찔러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전쟁 초반은 상대의 두 배에 달하는 병력을 활용해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인 가스코뉴 공작군이 우세했다.

그러나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서서히 전황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아키텐 백작이 고용한 어느 용병단의 활약 때문이었다.

“그, 금사자 용병단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금사자 용병단장 샤를 아인하르트!”

바다처럼 푸른 눈에 물결처럼 긴 금발을 흩날리며 그림처럼 검을 휘두르는 사내.

전설로만 전해 듣던 고대의 벽화 속에서나 볼 법한 성스러운 광경.

그러나 그가 지나는 곳엔 짙은 혈향이 피었고, 떠나간 자리 위엔 죽음의 잔해만이 남았다.

“사, 사신이다! 저자는 죽음의 사신이 틀림없어!”

“용병왕이다! 용병왕 카르타고의 재림이야!”

금사자 용병단이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낸 건 아니었다.

원래 금사자 용병단의 단장은 ‘레온’이라는 이름의 실력 있는 용병이었는데, 가스코뉴 공작의 최정예군과 맞닥뜨린 첫 전투에서 그만 전사하고 만다.

“다, 단장!”

그의 실력에 부족함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처음부터 상대가 너무도 나빴던 것.

그런데 금사자 용병단의 악운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부, 부단장!”

“맙소사! 돌격대장까지!”

이날 하루 만에 부단장을 비롯해 각 기를 이끄는 대장들이 모두 목숨을 잃은 것.

“트, 틀렸어! 우린 이제 죽은 목숨이다!”

모든 지휘관을 잃은 금사자 용병단은 당연하게도 패닉 상태에 빠졌고.

그때 폭풍처럼 말을 달려 적장의 목을 베고 용병들을 추스른 게 바로 샤를이었다.

“검을 들어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라!”

머지않아 퇴각 신호가 울렸다.

비록 전투에선 패했지만 샤를은 살아남은 병력을 안전하게 본진으로 귀환시켰다.

“샤를 아인하르트!”

“금사자 용병단의 새로운 단장이 될 자는 오직 샤를 아인하르트뿐이다!”

무사 귀환한 용병들은 마지막까지 후방에 남아 추격자들의 목을 베고 돌아온 샤를에게 열띤 환호를 퍼부었고.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감동한 샤를과 그의 말은 한치의 틈도 없는 핏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샤를을 탐탁잖게 여기던 자들도 있었다.

“샤를이 차기 단장감이라고?”

“이제 겨우 16살이 된 애송이가 단장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로군.”

주로 금사자 용병단에서 잔뼈가 굵은 용병들이었는데.

그들은 전쟁고아였던 샤를이 레온의 눈에 띄어 입단했을 때부터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금사자 용병단의 새로운 단장! 샤를 아인하르트!”

“와아아아아!”

그러나 다수의 바람을 등에 업은 샤를은 별다른 곡절 없이 단장직에 올랐고.

이후 아름다운 얼굴에 가려 있던 그의 어두운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나게 된다.

“샤, 샤를!”

“이대로 우릴 버릴 셈이냐!”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하고 명을 따르지 않던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어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

“요, 용서해다오 샤를!”

“잘못했어! 죽을 때까지 널 따르겠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소리치던 그들에게 샤를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 나의 명을 받들고 죽어라.”

그렇게 반란 분자들을 박멸한 금사자 용병단은 샤를이라는 영웅의 손에 재구축됐고, 전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가스코뉴 공작군은 금사자 용병단과 샤를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려 올 정도.

그러나 이번 전쟁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건 금사자 용병단만이 아니었다.

“저자인가! 오동나무 용병단의 괴물!”

“거대한 도끼로 인간을 참수하는 사형집행자!”

“피와 육편에 굶주린 도살자!”

모두 아틸라를 칭하는 말이었다.

‘빌어먹을. 하싸씬의 검은 좀 쓸 만할 줄 알았더니.’

확실히 보통의 검보다는 훨씬 단단했지만.

사흘을 버티지 못했다.

‘용아귀는 진짜 안 쓰려 했는데.’

예비로 들고 있던 손도끼 역시 이런 전쟁통엔 힘 조절에 실패해 망가뜨릴 확률이 높았다.

결국 용아귀, 아니면 무휼이었고.

아틸라는 용아귀를 선택했다.

“에라 모르겠다아!”

그렇게 아틸라가 달리는 자리마다 뼈와 살과 내장이 튀어 올랐고.

“호, 혼자 가지 말고 같이 좀 갑시다아!”

오토와 오동나무 용병단원들은 아틸라의 뒤를 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확실히 보았다.

‘저, 저건 정말 사람 새끼가 아니야!’

‘우리가 저런 괴물과 싸우려 했었단 말인가!’

‘대장이 제때 도망치지 않았으면 그날 우린 싸그리 다 죽었겠지.’

‘그렇다면 대장의 선견지명이 우릴 살린 셈이 되는 건가!’

한편 아틸라의 사주를 받은 늙은 암살자 역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끄어억……!”

“누, 누구냐!”

“암살이다! 지휘관께서 암살당하셨다!”

“모두 일어나! 야영지를 봉쇄하라!”

그런 그들을 비웃듯 라시드는 어둠에 물든 적진 속을 유유히 빠져나왔고.

“빌어먹을! 전원 횃불을 들어라!”

추격을 위해 백작군이 꺼내든 횃불은 스스로의 목을 죄는 결과로 수렴될 뿐이었다.

“검을 뽑아라! 반드시 암살자를 잡흐어억……!”

“이, 이럴 수가! 부지휘관께서……!”

“으아아아악!”

잔혹한 파육음을 내며 쓰러진 부지휘관의 몸은 반으로 잘려 시뻘건 내장을 쏟고 있었고.

그 사이에 틀어박힌 거대한 도끼를 확인한 순간, 병사들은 공포의 비명을 내질렀다.

“저것은!”

“사, 사형집행자의 도끼!”

“놈이다! 지옥의 도살자가 왔……!”

이어 부드득, 하는 소음과 함께 괴성을 지르던 병사의 모가지가 돌아갔고.

나머지 병사들 역시 뒤이어 등장한 오동나무 용병단의 칼질에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오토가 말했다.

“헤헤. 그럼 어디 한번 달려 볼까요 아틸라 님.”

바닥의 용아귀를 뽑아든 아틸라가 웃음으로 답했고.

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새끼곰이 앞장서며 포효했다.

끼아옹!

* * *

전쟁의 한복판에서 떨어진 어느 숲속.

가스코뉴 공작의 둘째 아들 작센 가스코뉴는 떨리는 몸을 억지로 주체하고 있었다.

‘대단한 위압감이다. 과연 거대 무리를 이끄는 수장의 기백.’

먼 길을 달려왔다.

이번 일의 성사 여부에 따라 가문에서 자신의 입지는 크게 뒤바뀔 것이다.

그 정도로 중요한 협상.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작센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에 정신을 집중했다.

서서히 떨림이 잦아들었다.

다시금 눈을 뜬 작센의 얼굴 위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왜 자신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공작을 도와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지 설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통역사가 작센에게 말했다.

물론 작센은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설명하겠소.”

마주 앉은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대족장 문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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