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도적기사용병단 (2)
오동나무 용병단(이라 쓰고 도적단이라 읽는다)의 우두머리이자 한때는 촉망받는 기사였던 오토는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뭐, 뭐야. 촌장 놈은 분명…….’
덩치 큰 야만전사 하나라고 했다.
물론 그 말은 틀린 게 없었는데.
‘조, 존나게 힘센 놈이란 말이 빠졌잖아!’
지금껏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오토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저 손에 들고만 있기도 벅차 보이는 거대한 도끼를 장난감처럼 휘두르며 사람과 말을 일거에 두 쪽 내는 괴력이라니.
‘젠장 그렇다면.’
오토가 손을 올리자 부하 넷이 능숙하게 활을 꺼내들었다.
‘그래봐야 무식하게 힘만 센 야만전사 하나일 뿐이다. 원거리 공격으로 조지면 돼.’
한편 아틸라는.
‘아. 말까지 죽여 버렸네.’
자신도 모르게 범한 실수를 후회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말이라면 꽤나 값이 나갈 터.
한 마린 실수로 죽였지만 이제부터라도 조심해야겠다 생각하던 아틸라의 눈이 자신에게 쏘아진 네 발의 화살을 포착했다.
‘음?’
아틸라는 용아귀를 들어 그것들을 막아 낸 뒤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휘둘렀고.
주인의 손을 떠난 용아귀는 활잡이 하나와 그가 탄 말을 관통한 뒤 그 뒤에 있던 사내의 가슴팍에 처박혔다.
“크허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내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 주인을 잃은 말이 큰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도망쳤다.
‘젠장할 또.’
대장으로 보이는 도적의 거친 욕설과 함께 재차 화살이 날아왔다.
용아귀를 잃은 아틸라는 손도끼를 꺼내 그것들을 튕겨 낸 뒤 대장을 향해 돌진했다.
“쏴! 쏘라고 이것들아!”
오토가 소리치며 물러서는 사이 또 한 명의 활잡이가 아틸라의 도끼질에 쓰러졌다.
‘좋아. 말은 살렸다.’
그러나 아틸라의 가공할 살기에 기겁한 말은 또다시 줄행랑을 쳤고.
‘가지 마!’
그와 동시에 세 개의 검날이 아틸라의 빈틈을 노리며 쇄도했다.
창 들고 날뛰던 놈이나 활 몇 번 당기고 뒈져 버린 두 활잡이와는 확연하게 다른 기세.
‘기사인가?’
오랜 기간 제대로 검술을 교육받은 자들만이 내뿜을 수 있는 예리함이 느껴졌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드는 세 개의 공격.
아틸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채채챙!
차랑한 파찰음이 공기를 울렸다.
기사들의 검은 아틸라에게 닿지 못했다.
그 모든 공격을 아틸라는 완벽하게 막아 냈다.
“뭐, 뭐야!”
“막았다고?”
아틸라는 웃었다.
그는 문주크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대일로 널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대륙 전체를 뒤져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는 없는 법. 네 용력과 체력도 무한정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틸라 역시 핏물도끼 부족과의 전투에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었다.
홀로 수십 명의 적을 쓰러뜨리는 동안 체력은 완전히 고갈되었으니까.
‘지금은 그때보단 나아졌겠지만.’
야만 숲을 벗어나며 몇 단계 레벨업을 했다.
당연히 체력 스텟도 올랐다.
그렇다고 방심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이, 이 새끼 뭐야!”
“전부 막아 내고 있어!”
“젠장! 제대로 좀 해 봐!”
기사들이 소리쳤다.
이어 우두머리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두, 두목!”
“대장이 도망친다!”
‘놓칠 순 없지.’
아틸라는 반격기를 사용해 단숨에 세 기사를 낙마시켰다.
역시나 주인 잃은 말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뿔뿔이 흩어졌고.
전의를 잃은 나머지 도적들은 두목을 쫓아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닿을 수 있을까.’
두목의 등짝을 향해 손도끼를 던지려던 아틸라는 녀석이 제법 먼 곳까지 거리를 벌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아틸라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저거다.’
아틸라는 처음 죽였던 도적의 시체 앞으로 달려가 창을 쥐었다.
그의 팔 근육이 물 밖으로 튀어 오른 물고기처럼 퍼득거리는가 싶더니.
[ 스킬, 창 투척이 활성화됩니다. ]
엄청난 기세로 쏘아졌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오토가 뒤를 돌아보고는 경악성을 내질렀다.
“저, 저게 뭐야!”
뱀처럼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쏘아진 창이 오토를 뒤따르던 부하의 말을 꿰뚫고, 또 다른 말을 꿰뚫었다.
끔찍한 절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치명상을 입은 두 말이 볼링핀처럼 옆의 말들을 쓰러뜨렸고.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오토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졌다.
‘저게 사람이냐……!’
맹렬하게 굴러오는 말의 등짝을 바라보며 오토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퍼어억! 오토의 시야가 암전 됐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틸라가 양팔을 추켜올렸다.
“스트라이크!”
* * *
“촌장이 날 네놈들에게 넘기기로 했고, 추가로 보상금까지 지불하겠다 했다고?”
“예예. 그렇습니다 전사님.”
오토가 굽신대며 말했다.
녀석을 포함해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일곱 명의 도적은 밧줄에 포박된 채 무릎 꿇려 있었다.
“흠. 그랬단 말이지.”
아틸라는 놀란 기미조차 없었다.
모두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뭐,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의뢰였지.’
자신은 고작 도적단 축에도 못 끼는 얼간이 넷을 손봐주었을 뿐이다.
그것 말곤 아무런 검증도 되지 않은 야만족 전사에게 기사 출신 도적단을 괴멸시켜 달라는 의뢰는 그야말로 얼토당토 되지 않는 소리.
‘내가 야만족이라 무지하다 생각했던 거겠지.’
촌장의 마음도 이해는 갔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야만전사 하나 때문에 마을이 큰 피해를 입을 상황이었으니까.
원인을 제공한 외부인과 함께 약간의 보상금으로 무마할 수 있다면 그에겐 크게 남는 장사였던 것.
하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고.
“보상금으로 얼마를 요구했지?”
“그, 금화 열 닢입니다.”
이런 쳐죽일 놈이.
돈 없는 불쌍한 노인네인 척할 땐 언제고 도적놈들한테 금화 열 닢을 줘?
“모, 목숨만 살려 주시면 금화 열 닢하고, 그동안 모은 재산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모은 재산이 얼만데.”
“으, 은화 수십 개 정도는.”
“장난치냐?”
“…….”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 숙인 오토에게 아틸라가 물었다.
“촌장 말로는 며칠 내로 가스코뉴 공작의 토벌대가 올 거라던데. 알고 있었나?”
“무, 물론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번에 야만족 새끼만 족치고 나면.”
“야만족 새끼?”
“아니 야, 야만 어르신 일만 마무리되면 당분간 이곳을 떠나 있을 계획이었습니다.”
“너희를 공작에게 넘기면 금화 열 닢은 넘게 받을 수 있겠지?”
“아이고 어르신! 그 무슨 잔인한 말씀이십니까!”
오토가 눈물을 쏟으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고.
잔뜩 험악해진 그의 눈짓에 나머지 도적들도 아이고아이고, 억지 눈물을 흘리며 쿵쿵 머리를 박아 댔다.
“남는 말은 없나?”
애석하게도 녀석들이 타고 온 말은 모두 죽거나, 도망치거나,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다쳤다.
“예. 말은 오늘 타고 온 것이 전붑니다.”
“젠장.”
말들을 팔아 한몫 단단히 챙기고 개중 제일 괜찮은 놈은 직접 타고 다니려 했는데.
오토가 눈치 좋게 물었다.
“말이 필요하십니까? 영주관에 꽤 괜찮은 놈이 있습니다.”
“영주관에?”
“예. 이 마을 영주 놈이 제법 좋은 말을 가지고 있더군요. 제 발끝에도 못 미치는 검 실력을 가진 주제에 지난번 전투에서 목숨을 부지한 건 순전히 말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주의 말이라면 달란다고 덥석 내주진 않겠지?”
“그야 그렇지요.”
“그럼 너희와 맞교환하면 되겠군.”
“아이고 어르신!”
* * *
“그대가 잡아온 도적들과 내 군마를 교환하고 싶다 이 말인가.”
영주관에 모습을 드러낸 노기사 베르트랑은 한때는 여자 깨나 울렸을 것 같은 중후한 외모의 사내였다.
“그렇습니다. 아울러 적절한 포상금을 원합니다.”
옆에 있던 촌장이 화들짝 놀라 아틸라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틸라는 영주관에 오기 전 촌장의 집에 들러 의뢰 완수 비용과 함께 오토에게 주기로 했던 금화 열 닢, 그리고 사기 위약금 명목으로 은화와 동화까지 깡그리 뜯어냈던 것이다.
‘돈에 환장한 놈인가! 야만족은 물욕이 없다더니만 완전 헛소문이었군!’
영주, 베르트랑이 짐짓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도적놈 몇을 잡아와 놓고 내게 군마와 포상금을 요구하는 것인가.”
“고작 도적놈 몇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
“여러 날 동안 이놈들을 잡지 못해 갖은 고생은 다 하셨다 들었습니다. 얼마 전엔 도적단 두목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지던 걸 간신히 말의 도움으로 살아나셨다고.”
“그게 무슨! 누가 그런 헛소릴 한단 말인가!”
“제 옆에 있는 촌장이지 누구겠습니까.”
“내, 내가 언제!”
촌장이 기겁하며 외쳤고 베르트랑의 노한 눈길이 촌장에게 틀어박혔다.
“게다가 이들이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는 건 영주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즉각 전력으로 활용 가능한 기사 출신이 넷이나 있습니다.”
“허! 즉각 전력이라니. 그대는 마치 이 평화로운 가스코뉴 공작령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말하는군.”
“공작께서는 동쪽의 아키텐 백작령과 전쟁을 준비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곳으로 진군 중인 부대 역시 도적단 토벌이 주목적이 아니라 동쪽과의 전쟁을 위한 것이라는 걸 촌장의 입을 통해 아주 소상히 들었습니다.”
“야 이놈아!”
격노한 영주가 촌장에게 일갈했다.
“네 이노오오옴!”
“아이고 아닙니다 영주님! 전 이자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야만전사 놈아! 어째서 날 모함하는 것이냐!”
“촌장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그 사실을 알았겠습니까.”
“더러운 거짓말쟁이!”
바락바락 소리치던 촌장은 영주의 명에 어디론가 끌려갔다.
정의 구현이다 이 사기꾼 노인네야.
“영주님께서도 이자들의 실력을 알고 가급적 생포하려 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 때문에 지난번 전투에서 불필요한 부상까지 입으셨던 것이고요.”
아틸라의 은근한 말에 베르트랑이 눈을 동글게 떴다.
“뭐라?”
“그러지 않았다면 ‘남부의 승냥이’라 불리던 위대한 기사께서 이런 허접 나부랭이들을 쓰러뜨리지 못했을 리 없지요.”
“허허. 그 이름을 알고 있었는가.”
“물론입니다. 남부의 승냥이라면 제가 살던 야만 부족 사이에선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하는 공포의 상징입니다.”
“허허허허허.”
물론 뻥이다.
그러나 베르트랑은 크게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이번 전쟁이 끝나면 일선에서 물러나려 생각하던 그였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나섰던 도적단 토벌전에서 맥없이 오토에게 당한 뒤 그 생각은 더욱 가속했다.
그러던 중에 자신을 알아봐 주고 추켜세워 주기까지 하는 자가 나타났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좋다. 내겐 세 마리의 군마가 있으니 그중 원하는 것 하나를 주겠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포상금은.”
“금화 열 닢.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는 말에 아틸라는 놀란 얼굴을 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됐다.’
지금까지의 대화는 모두 원하던 바를 이루기 위한 밑밥이었으니까.
곧이어 예상했던 말이 영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