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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5화 (5/425)

005. 전설의 무기 (3)

부족에 심어 둔 첩자의 밀서를 확인한 블레다는 자신의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역시 아틸라에게 무휼을 넘길 생각이로군.’

블레다는 서둘러 계획을 실행했다.

자신의 부하들과 군디카에게 빌린 활잡이들을 이끌고 그리즐리의 동굴로 향한 것.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천운이 따르는구나!’

그리즐리는 만삭의 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걸음이 굼떠질 수밖에 없지. 뱃속의 새끼를 보호하려면.’

덕분에 블레다는 아무런 손실 없이 그리즐리를 굴 밖 멀리 유인할 수 있었고.

아틸라가 동굴로 들어간 뒤 혼자가 된 문주크 앞에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 광분한 그리즐리를 대령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문주크는 용아귀도, 범아귀도 들고 있지 않았다.

“무슨 이런 일이……!”

문주크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지금의 수호자는 완전히 눈이 뒤집힌 상태.

이대로 굴 안으로 들어간다면 대무신왕의 환생조차 알아보지 못할지 모른다.

아틸라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고정하시오! 숲의 수호자여!”

문주크는 허리춤의 손도끼를 뽑아들었다.

그 순간 사방의 나무 위에서 화살비가 쏟아졌다.

* * *

개인 훈련에 열중이던 옥타르는 부락 방향에서 달려오는 얼간이 하나를 발견하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 대한 분노는 이미 사그라든 지 오래였다.

아틸라와의 결투 이후 수많은 깨달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으니까.

“오, 옥타르 님!”

그러나 코앞까지 달려온 얼간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옥타르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부락으로 달렸다.

점점 선명해지는 비명과 병장기 부딪는 소음.

부락이 불타고 있었다.

* * *

“사흘 만에 다시 뵙는구려. 형님.”

블레다의 손에 쥐어진 도끼는 문주크의 등 깊숙이 박혀 있었다.

“브, 블레다……! 네놈이……!”

“그러게 진즉 내게 족장 자리를 넘기고 물러나지 그랬소. 그랬다면 우애 좋은 형제끼리 이렇게 피를 볼 일도 없었을 거 아니오.”

문주크의 입에서 울컥 피가 쏟아졌다.

광분한 그리즐리와 사방에서 내리치는 화살비에 맞서 문주크는 분전했다.

아틸라를 지켜야 했다.

미쳐버린 수호자를 굴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행동반경엔 치명적인 제약이 생겼다.

“이렇게 쉽게 등을 내주다니. 전사왕(戰士王)이라 불리던 형님답지 않구려.”

블레다가 손을 들자 활잡이들이 일제히 그리즐리의 배를 겨눴다.

“그럼 잘 견뎌 보시오.”

이어 십여 발의 화살이 녀석의 뱃속을 파고들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그리즐리는 숲이 떠나갈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새끼 잃은 어미의 분노를 말이오.”

절규하는 재앙의 품을 향해 블레다는 힘껏 문주크의 등을 걷어찼다.

* * *

몸 안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며 달리던 아틸라는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포효가 동굴 밖을 울리는 것을 들었다.

‘이건……?’

때마침 동굴이 끝을 보이며 빛이 들이쳤고, 굴 밖으로 뛰쳐나온 아틸라를 맞이한 건 새까맣게 날아드는 화살의 군체였다.

그 사이로 보였다.

등과 입에서 피를 토하는 문주크가 성난 회색곰에게 떠밀리는 모습이.

“아버지!”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곰에게 강타당한 문주크가 바닥에 꽂혔다.

녀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널브러진 문주크의 가슴을 향해 재차 발톱을 휘둘렀다.

“멈춰!”

아틸라의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었다.

등 뒤의 용아귀와 범아귀를 뽑아든 아틸라는 거대한 두 도끼날로 쇄도하는 화살비를 모조리 막아 내며 곰에게 질주했다.

“미, 미친!”

“저게 뭐야!”

거대한 쇠방패를 양손에 쥐고 달리는 듯한 무지막지한 모습에 활잡이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아틸라의 발이 아무리 빨라도 이미 휘둘러진 곰의 앞발을 막긴 역부족.

‘그렇다면!’

아틸라의 왼팔이 흩뿌려졌다.

파앙! 하는 파육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주인의 손을 떠난 범아귀는 그리즐리의 어깨 위에 박혀 있었다.

우어어어어!

너덜대는 팔을 부여잡으며 그리즐리가 상체를 뒤집었다.

아틸라는 멈추지 않고 뛰어올라 놈의 어깨에 박힌 범아귀의 칼등을 용아귀로 내리쳤고, 뼈와 근육이 절단되는 사실적인 감각과 함께 녀석의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광경은 활잡이들뿐만 아니라 블레다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쏴, 쏴라! 놈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려!”

지면에 박힌 범아귀를 뽑아 용아귀와 함께 추켜든 아틸라는 쏟아지는 화살비를 막으며 문주크를 보호했다.

그 와중에 몇 발의 화살이 그리즐리의 몸에 꽂혔고, 아틸라의 가공할 무력에 두려움을 느낀 녀석은 그제야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최초의 원인 제공자들이 누구였는지 깨달았다.

아울러 뱃속의 새끼를 공격한 이들 역시도.

“아버지!”

아틸라는 문주크를 들어 동굴 안으로 옮겼다.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왈칵왈칵 쏟아지는 핏물을 보며 아틸라는 입술을 짓씹었다.

“젠장……!”

문주크의 숨이 아직 붙어 있다는 걸 확인한 아틸라는 상의를 벗어 그의 상처를 동여맨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살 공격은 멈춰 있었다.

재설정된 목표를 향해 달려간 그리즐리가 활잡이들의 머리통을 차례차례 박살 냈기 때문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주하는 인간들과 그 뒤를 추격하는 곰, 그리고 그들 모두를 노려보던 아틸라가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 * *

박처럼 터져 나가는 부하들의 머리통을 보며 블레다는 다급한 와중에도 의구심을 느꼈다.

‘왜 갑자기 이쪽을 공격하는 거지? 설마 이성을 되찾은 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블레다의 눈이 또 다른 활잡이의 머리를 폭파시키는 그리즐리의 몸을 탐색했다.

녀석의 척추 한가운데.

그곳엔 어둡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발하는 핏빛 화살이 박혀 있었다.

‘바토리의 화살은 제대로 꽂혀 있는데. 제길, 뭐가 뭔지 모르겠군. 한쪽 팔이 작살나더니 진짜로 미쳐 버린 건가!’

바토리의 화살.

블레다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손에 넣은 저주의 화살로, 남부 대륙의 악명 높은 마녀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손수 제작한 귀물(鬼物)이었다.

‘놈의 눈은 아직 핏빛이다. 그렇다는 건 여전히 바토리의 힘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

블레다의 생각대로 그리즐리의 몸엔 저주가 지속되고 있었다.

다만 아틸라에 대한 지독한 공포심이 그것을 눌러 버렸다는 사실을 블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뿐.

‘빌어먹을.’

의구심을 해결하지 못한 채 도주를 계속하던 블레다의 눈이 불현듯 커졌다.

그리즐리의 등 뒤에서 솟아오른 무언가가 놈의 어깨를 짓밟으며 더욱 높이 뛰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블레다가 소리쳤다.

“아틸라!”

새처럼 날아오른 아틸라의 시선이 도주자들을 훑었다.

아틸라의 어깨가 돌연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수풀로 숨어들던 활잡이 하나의 허리가 절단됐다.

그와 거의 동시에 블레다의 지척을 달리던 부하의 몸이 쩌억, 하며 세로로 쪼개졌다.

‘저, 저런 미친!’

블레다는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두 단련된 전사를 종잇장처럼 찢어버린 것은 아틸라의 손에서 던져진 용아귀와 범아귀.

‘웬만한 전사는 들어 올리지도 못하는 양손도끼를 무슨 투척도끼 던지듯 한단 말인가!’

뒤이어 날아온 건 두 자루의 한손도끼였다.

그것은 눈물 콧물을 흩뿌리며 달리던 두 활잡이의 뒤통수에 꽂혔고,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네 명의 전사가 내장과 뇌수를 터뜨리며 죽었다.

바닥에 착지한 아틸라는 지면을 박차며 도끼들을 회수했다.

그러고는 공포에 질린 도망자들을 차례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으히이익! 사, 살려……!”

“끄아아아아악!”

핏물과 살점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더 이상 그리즐리는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틸라에 대한 공포감이 다른 모든 감정을 지워버렸다.

“괴물이야! 저건 진짜 괴…… 크허억!”

“큐르르릅……!”

대열을 이탈해 도망치는 자들도 있었지만 한 사람도 남김없이 아틸라의 도끼에 쪼개졌다.

메아리처럼 이어지던 비명이 점차 잦아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살아남은 건 블레다 뿐이었다.

‘제기랄. 쓸모없는 놈들.’

블레다의 눈이 신중하게 주위를 살폈다.

아틸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성난 그리즐리의 발톱이 블레다에게 쏘아졌다.

“얕보지 마라!”

블레다의 몸이 빙글 회전하며 발톱을 회피했다.

능숙하게 양손도끼를 뽑아든 블레다가 발목과 허리에 힘을 실었다.

한쪽만 남은 그리즐리의 팔을 힘껏 내리쳤다.

‘이 무슨……!’

그러나 도끼는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성긴 살가죽 속에 감춰진 놈의 근육은 돌처럼 단단했고, 블레다의 완력으로 그것을 부수긴 역부족이었다.

‘이, 이런 걸 절단해 버렸단 말인가. 아틸라는……!’

우어어어어!

격노한 그리즐리의 팔이 다시금 블레다에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블레다는 위대한 검은늑대 부족에서 문주크 다음가는 전사.

“찢어죽여주마!”

블레다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공중으로 솟았다.

양 허리의 손도끼를 뽑아든 그는 표범처럼 날렵한 동작으로 그리즐리의 어깨에 올라 도끼를 난사했다.

살갗을 찢는 소음이 폭죽처럼 터졌다.

“제아무리 단단한 근육을 가지고 있어도 목은 어쩔 수 없을 거다!”

문주크가 압도적인 물리력의 전사라면 블레다는 날카롭고 정밀한 기술자였다.

둘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최고의 파트너였고, 실제로 수많은 부족 간의 전투에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젠 모두 부질없는 것이 돼 버렸지만.

“이걸로 끝이다!”

블레다의 도끼가 피로 얼룩진 그리즐리의 목젖으로 쇄도했다.

그는 정말로 승리를 확신했다.

‘자, 잡았다! 내가 단독으로 숲의 재앙을 사냥한……!’

녀석의 앞발이 그의 등허리를 움켜쥐기 전까지는.

“크허어억……!”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충격과 함께 블레다의 입에서 핏물이 뿜어졌다.

강한 완력으로 바닥에 패대기쳐진 블레다는 꺽꺽대는 숨을 몰아쉬며 사지를 버르적댔다.

“크흑……. 크허억……!”

심장을 흔드는 공명이 가까워졌다.

거대한 앞발이 들어 올려지며 블레다의 시야가 검게 뒤덮였다.

“큭큭큭큭……. 이거 내가 먼저 가게 생겼수다 형님.”

블레다는 실성한 사람처럼 킬킬대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우두둑, 하는 파열음과 함께 그리즐리의 팔꿈치가 기묘한 방향으로 꺾여 버린 것은.

이어 완전히 떨어져 나간 아래팔이 수 미터 떨어진 나무 기둥에 꽂혔고, 양팔을 잃고 절규하는 그리즐리의 턱밑이 몇 차례 번뜩이는가 싶더니 놈의 잘린 머리는 아틸라의 손아귀에 들려 있었다.

쿵.

목 없는 곰이 무릎을 꿇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 칠갑을 한 채 블레다를 내려 보던 차가운 시선이 늘어진 곰의 몸뚱이를 향했다.

그의 팔이 절단된 그리즐리의 목 안을 파고들었다.

잠시 후 꺼내진 손안엔 핏물 속에서도 찬연한 빛을 내는 검 하나가 쥐여 있었다.

‘저것이…… 대무신왕의……!’

아틸라가 포효했다.

한 손엔 무휼, 다른 손엔 그것을 지키던 수호자의 머리통을 추켜들고 울부짖던 아틸라의 얼굴이 지독한 살기가 되어 블레다를 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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