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4화 (4/425)

004. 전설의 무기 (2)

“무기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문주크의 물음에 아틸라는 허리춤의 손도끼를 내보였다.

“이미 가지고 있는데요.”

“아비를 속일 생각은 말거라. 그것으론 네 용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지 않느냐.”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다면 거리낄 것 없지.

“얼른 주십시오.”

“하하하. 성격 한 번 급하구나. 서둘지 말거라. 마침 네게 딱 맞는 무기가 있으니.”

딱 맞는 무기라.

아틸라는 문주크가 소유한 여러 무기를 떠올렸다.

당기는 게 있기는 했다.

“제가 고르면 안 됩니까?”

“호오. 따로 갖고 싶은 게 있었느냐.”

기다렸다는 듯 아틸라가 말했다.

“용아귀를 원합니다.”

“아들아. 그건 내 주무기…….”

“쩨쩨하게 왜 그러십니까. 범아귀도 갖고 계시면서.”

“그것 또한 내 보조무기이니라.”

“둘 다 양손도끼이지 않습니까. 쌍수로 들 기력도 없으시면서 뭐 그리 장비 욕심을 부리십니까.”

남들이 들었으면 까무러치게 놀랄 말이었지만 문주크는 그저 웃었다.

그는 아틸라와 이렇게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물쩍 넘어가려 하시지 말고 걍 화끈하게 내주십시오. 제가 뭐 두 자루 다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 너라면 용아귀와 범아귀를 쌍수로 들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냐.”

“당연한 말씀을.”

“그 말, 책임질 수 있으렷다.”

용아귀와 범아귀가 어떤 무기던가.

웬만한 금띠 전사들도 들어 올리는 게 고작일 정도로 무지막지한 크기와 중량을 지닌 도끼다.

문주크 정도 되기에 그것을 양손으로나마 수족처럼 휘두를 수 있는 것.

“책임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싸움은 하셔야 하니 구태여 하나만 주십사 했던 건데 둘 다 주시면 저야 개꿀이죠.”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던 날, 아틸라는 밤을 새워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은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의해 이곳에 떨어졌다.

아울러 들어오는 길이 있다면 나가는 길 또한 있을 터.

자신이 만든 광대한 세계관 속을 탐색하던 그는 이윽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요정.’

패영전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종족.

‘요정왕국을 찾아간다.’

그곳이라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정왕국에 가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수많은 전투야 당연한 수순이고, 그렇다면 든든한 무기 확보는 필수 중의 필수!

“좋다. 용아귀를 네게 주마. 단 방금 말했던 대로 네가 두 무기를 쌍수로 사용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근데 증명은 쌍수로 하고 왜 도끼는 용아귀 하나만 주십니까?”

“아비도 먹고는 살아야지 않겠느냐.”

“흠.”

아쉬워하는 아틸라를 보며 문주크가 빙긋 웃었다.

“대신 더 좋은 걸 주마.”

“더 좋은 거요?”

순간 아틸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먼 옛날 이 땅을 찾아 정착한 동방의 이민족들.

그들의 왕이 가지고 있던 성물이자 무기가 있었다.

‘이것도 그냥 날려 버린 설정이었는데.’

이민족들은 성물을 북쪽 숲의 수호자에게 맡겼고, 수호자는 대를 이어 가며 그것을 지켰다.

먼 훗날 대무신왕의 환생이 찾아올 날을 기다리며.

또한 수호자에겐 그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으니.

‘숲의 재앙 그리즐리(회색곰).’

* * *

“저기 옥타르잖아.”

“오늘 새벽 귀환했다던데.”

“근데 쉬지도 않고? 과연 차기 족장의 유력한 후보답군.”

“지금은 좀 다르지 않을까?”

“아하. 아틸라 말이로군.”

“맞아. 성년이 되자마자 금띠를 획득한 건 유례없는 일이니까.”

부족원들의 수군거림에 옥타르는 다시 한번 얼굴을 구겼다.

자신이 아틸라 같은 애송이와 동급 취급을 당하고 있단 말인가.

“저들에게도 옥타르 님의 용맹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관전하는 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옥타르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는 명예를 중시하는 전사.

실력을 뽐내기 위한 보여 주기식 결투 따위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라? 옥타르. 돌아온 거야?”

일레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이이이, 일레크!”

“허둥대는 건 여전하네. 돌아오자마자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 거야.”

“옥타르 님께서는 아틸라에게 결투를 신청하려 하십니다.”

“결투? 아틸라와? 왜?”

“전사 간의 신성한 결투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근데 너희들은 누구지?”

일레크의 물음에 세 얼간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의도치 않게 그들을 구원한 건 옥타르였다.

“아, 아틸라가 많이 강해졌다길래, 흐, 흥미가 생겨서.”

그제야 알겠다는 듯 일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네. 나도 구경이나 해 볼까.”

“그럼 저흰 다른 구경꾼들을 몰아오겠습니다.”

대답도 듣기 전에 세 얼간이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옥타르는 다리를 절룩이는 일레크와 보조를 맞추며 걸었고 둘은 곧 연무장에 도달했다.

“마침 아버지와 훈련 중이었네.”

옥타르의 눈이 커졌다.

‘문주크 족장과 일대일 대련이라고?’

놀라운 일은 또 있었다.

‘저게 아틸라? 언제 저렇게 근육이 발달한 거지? 마치 다른 사람 같은데.’

그때 아틸라가 욕설을 뱉으며 무기를 내던지더니 연무장 구석으로 달려 두 자루 도끼를 양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악마처럼 킬킬대며 족장에게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아, 아들아! 이건 반칙……!”

“반칙이 아니라 템빨!”

“이놈아!”

아틸라의 무기를 알아본 옥타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요, 용아귀와 범아귀잖아!’

폭풍처럼 쏟아지는 맹공을 허둥지둥 막아 내던 문주크는 일레크를 발견하자마자 살았다는 얼굴로 휴식을 선언했다.

툴툴대며 도끼를 내린 아틸라가 자신의 용력을 감당해 낸 두 무기를 탐욕스러운 얼굴로 내려 보았고.

그런 아틸라를 귀신 보듯 쳐다보는 옥타르에게 문주크가 물었다.

“자넨 무슨 일인가.”

“그, 그냥 지나는 길에 잠시…….”

“잠시?”

“이, 이제 쉬러 가려던 참입니다.”

“그런가? 그럼 푹 쉬게.”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옥타르의 발이 멈췄다.

일레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 어떡하지.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할까. 하지만 그건 전사답지 않은 행동인데. 그렇다고 녀석과 싸우기엔…….’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함께 수많은 인파를 거느린 세 얼간이가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옥타르 님! 잔뜩 모셔왔습니다!”

옥타르는 난생처음 같은 부족원에게 살의를 느꼈다.

* * *

옥타르의 행운은 아틸라가 결투에 사용할 무기로 용아귀와 범아귀를 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옥타르와 아틸라가 맞붙는다니!”

“막강한 차기 족장 후보 옥타르!”

“떠오르는 신흥 강자 아틸라!”

연무장 중앙에 마주 선 두 전사에게 관객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문주크가 우렁찬 목소리로 시합 개시를 알렸다.

먼저 몸을 날린 건 옥타르였다.

‘무조건 선제공격이다. 제아무리 괴물 같은 힘이라 해도 날렵한 기술을 가미한 무기 공격이라면!’

별다른 형식 없이 도끼를 휘두르던 아틸라를 보고 떠올린 옥타르 나름의 해법이었다.

“하아아압!”

옥타르의 양손도끼가 무서운 기세로 쇄도했다.

그러나 아틸라는 손쉽게 막아 냈다.

‘오. 이게 되네?’

아틸라 역시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문주크에게 검은늑대의 비전들을 배워 왔다.

하지만 입력만 되었을 뿐 출력 가능한 신체 능력이 전무했던 아틸라.

그런데 지금, 권능으로 재구성된 그의 육체가 이전에 받아들였던 기술을 완벽하게 펼쳐 냈다.

“아틸라가 막아 냈다!”

“정말로 엄청난 일격이었는데!”

“대단하잖아! 아틸라!”

조금 전 아틸라는 문주크에게 너무 힘에만 의존하는 전투법을 구사한다며 지적받았었다.

아틸라도 할 말은 있었다.

‘기술을 떠올릴 틈도 안 주고 미친 듯이 공격해 올 땐 언제고.’

제아무리 아틸라라지만 문주크 정도 되는 전사와의 대련에서 여유를 가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옥타르를 상대로는 아니었다.

아틸라는 개화한 스킬을 활용해 옥타르의 공격을 연이어 막아 냈다.

“아틸라가 모조리 막아 내고 있어!”

“옥타르의 공격이 단 한 방도 통하지 않다니……!”

“이, 이러다 정말 옥타르가 지는 거 아냐?”

누구보다 놀란 건 당사자인 옥타르였다.

‘히, 힘만 센 게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옥타르는 공격에 더욱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아틸라 역시 마주 속도를 올리며 맹공을 막아 냈다.

“우와아아아!”

“저, 저 속도 좀 봐!”

“제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아!”

이쯤 되자 옥타르는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힘, 기술, 속도, 모든 게 나보다 위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아틸라의 입가가 스르르 올라갔다.

곰이나 문주크를 상대할 때와는 또 다른 쾌감이 전신을 휩쓸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에 맞춰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이대로 좀 더 스킬을 개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 순간 옥타르의 손에서 강한 일격이 내질러졌다.

위력은 다르지만 문주크가 선보였던 섬광 같은 일격과 유사한 종류의 것.

“전사의 일격!”

“옥타르가 승부수를 던졌다!”

“저건 못 막을 것 같은데!”

그러나 아틸라는 보란 듯이 그것을 쳐 냈고, 위력이 강했던 만큼 옥타르의 도끼는 더욱 높이 튕겨 났다.

때마침 떠오르는 상태창.

[ 스킬, 반격이 활성화됩니다. ]

메시지가 떠오른 것과 아틸라의 도끼가 쏘아진 건 거의 동시였다.

문주크가 외쳤다.

“거기까지!”

목소리에 반응한 아틸라의 어깨가 움찔하며 멈췄다.

정적이 찾아왔다.

“후우우…….”

턱밑에 멈춰 선 도끼를 확인하며 옥타르는 긴 숨을 내뱉었다.

쿵, 그의 무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졌다. 아틸라.”

거대한 함성이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 * *

이튿날 오후, 문주크와 아틸라는 북쪽 숲을 걷고 있었다.

“어젠 잘했다. 아틸라.”

옥타르의 체면을 살려 준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틸라가 하려고만 했다면 그 끔찍한 용력으로 초반부터 찍어 누를 수도 있었을 것이리라.

“옥타르는 강하고 충직한 전사입니다. 굳이 자존감에 상처를 입힐 필요는 없지요.”

스킬을 개화하는 것이 목적이긴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아틸라는 옥타르의 면을 세워 주고 싶었다.

‘원작에서 옥타르는 마지막까지 부족을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니까.’

한참을 걸은 두 사람은 수풀로 우거진 거대한 동굴을 발견했다.

“여기가 대무신왕의 무구 중 하나인 ‘무휼(無恤)’이 보관된 곳이다.”

아틸라는 말없이 동굴을 바라봤다.

“들어갈 수 있는 건 너뿐이다. 무휼의 수호자는 대무신왕의 환생이 아닌 이는 가차 없이 공격할 테니까.”

“제가 대무신왕의 환생이 아닐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으신 겁니까.”

문주크는 그저 웃었다.

“범아귀 좀 빌려주십시오.”

“음? 네겐 이미 용아귀가 있지 않느냐.”

“녀석이 덤빌지도 모르잖습니까. 무기 하나보단 두 개가 낫지요.”

문주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두 자루 도끼의 묵직함에 만족한 아틸라가 성큼성큼 굴 안으로 들어갔다.

‘여차하면 걍 모가지를 따주마.’

내벽 곳곳엔 은은한 빛을 내는 돌이 박혀 있어 시야 확보에 어려움은 없었다.

걷다 보니 바닥에 수상한 게 보였다.

‘화살?’

화살을 들어 모양을 확인했다.

‘이건 검은늑대 부족의 화살인데. 그리고 저건.’

핏물도끼 부족의 것.

머릿속에 어떤 가설이 세워졌다.

아틸라는 몸을 돌려 출구로 달렸다.

이 세상 것이라 느껴지지 않는 불가해한 존재의 포효와 알아들을 수 없는 문주크의 외침이 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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