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화 (3/425)

003. 전설의 무기 (1)

문주크가 왜 자신을 시험하려 하는지 아틸라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대무신왕의 전설 때문이겠지.’

검은늑대 부족에 전해지는 오랜 전설.

그것은 바로 동방의 위대했던 군주 ‘대무신왕(大武神王)’이 먼 훗날 죽은 이의 몸을 통해 환생해 온 대륙에 동방의 깃발을 나부끼게 한다는 이야기였다.

‘수습이 어려워 걍 부족 멸망시키고 흐지부지된 설정이었는데.’

사실 검은늑대 부족은 이곳 태생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조는 머나먼 동방의 전사들.

‘대무신왕의 후예들이지.’

강력한 힘으로 원주민들을 굴복시킨 동방의 민족은 이곳에 정착해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르며 그들의 혈통은 흐려지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순혈에 가까운 외모를 지니고 태어난 아틸라를 원로들은 애지중지하며 보살폈다.

‘그래서 이런 유약한 성격을 갖게 된 거고.’

문주크는 늘 그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틸라의 성년식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보란 듯이 아틸라가 곰 사냥에 성공하길 바랐다.

하지만 돌아온 사체는 곰이 아닌 아틸라였다.

‘그러고는 되살아나 곰 세 마릴 쳐죽이고 왔으니 대무신왕의 환생이라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군.’

“크하하! 크하하하하하!”

문주크의 웃음소리가 아틸라의 상념을 깨웠다.

“좋다. 몽둥이를 선택한 것 또한 너의 의지. 한 번 호되게 당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아틸라의 표정이 변했다.

자세를 잡은 문주크에게서 가공할 투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과연 영웅급 등장인물이다 이건가.’

아틸라도 자세를 잡았다.

상대는 하나였지만 어제 마주했던 세 마리 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박감.

‘이거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겠는데.’

“안 오면 내가 간다! 아틸라!”

웃기는 소리.

아틸라는 먼저 달렸다.

“이거 맞고 푹 쉬십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아틸라가 벼락처럼 몽둥이를 내리쳤다.

그러나 문주크는 침착하게 몽둥이를 들어 막아 냈고, 아틸라의 첫 번째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저릿한 팔의 감각에 문주크는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괴력이군. 방심했다간 오히려 당할 수도 있겠어.’

문주크는 방어한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질풍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아틸라 역시 몽둥이로 막고 회피하며 그의 공격을 버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빠따 뽀사질까 봐 힘을 못 주겠네.’

놀랍게도 문주크가 느낀 엄청난 괴력은 아틸라의 풀 파워가 아니었던 것.

‘안 되겠다. 빠르게 이긴 다음 내게 맞는 무기부터 찾아야겠어.’

그러나 문주크는 패영전 세계관에 몇 존재하지 않는 영웅급 등장인물.

아틸라가 최대 파워를 드러내지 않고 이길 만큼 만만한 상대가 결코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냐 아들아! 고작 이 정도 실력이었단 말이더냐!”

문주크는 껄껄 웃으며 아틸라의 공격을 방어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아틸라의 무위에 감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공격 하나하나마다 소름이 돋는군. 이 정도 실력이면 부족에서 아틸라를 당할 자는 족장인 나를 제외한다면 아무도 없을 터.”

순간 그의 머릿속에 동생인 블레다의 얼굴이 스쳐갔지만 억지로 치워 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아들아. 넌 앞으로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단련해야 한다. 그래야 이 드넓은 세상의 풍파를 오롯이 견뎌 낼 수 있지 않겠느냐.’

문주크는 아틸라가 머지않아 부족을 떠날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오늘의 승부. 이 아비가 가져가겠다.’

문주크의 눈에 강한 투기가 일었다.

아틸라는 결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

‘뭐, 뭐지?’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저건 위험하다.

자신의 육감이 미친 듯이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전사의 일격!’

“이것으로 끝이구나! 아틸라!”

문주크의 몽둥이가 빛살처럼 쇄도했다.

말 그대로 빛이 쏘아진 것 같은 예리한 공격에 아틸라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마주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젠장할 또……!’

문주크의 투기에 놀라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손안의 몽둥이가 쪼개진 것이다.

“이런 씨발…….”

욕설을 내뱉는 그의 머리 위로 끔찍한 충격이 강타했고,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기적을 영접하며 아틸라는 정신을 잃었다.

* * *

“……완전 괴물이로군.”

널브러진 아틸라를 내려 보며 문주크는 자신의 덜미를 매만졌다.

오소소 돋아난 소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조금 전의 상황을 그는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악력만으로 저 단단한 쇠나무를 깨부술 정도라니.”

어느 만큼의 괴력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만약 아틸라가 힘 조절에 성공해 몽둥이를 막아 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지. 그게 아니군.”

아틸라를 둘러업고 연무장을 나서며 문주크는 생각했다.

애초부터 가정이 잘못됐다.

‘힘 조절에 성공했다면이 아니라.’

그 무지막지한 악력을 견딜 수 있는 무기가 아틸라의 손에 들려 있었다면, 이라고 정정해야 했다.

붉게 변한 석양이 흐뭇하게 미소하는 문주크의 얼굴을 비쳤다.

그는 그런 무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 * *

검은늑대 부족의 영토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쪽엔 핏물도끼 부족이라 불리는 야만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족장 군디카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야망 또한 남달라 언제고 주변의 야만 부족들을 점령해 통일된 왕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뭐? 블레다가 찾아왔다고?”

군디카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를 마친 부하는 자신의 머리 위로 술병이 날아오지 않은 것을 전사신 티르께 감사드리며 서둘러 천막을 벗어났다.

잠시 후 블레다가 들어왔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소.”

군디카의 표정이 변했다.

눈짓으로 자리의 수하들을 모두 내보낸 군디카가 말했다.

“계속하시오.”

“문주크의 막내아들이 죽었다가 부활했소.”

이 멍청한 새끼가 갑자기 왜 나타났나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릴 늘어놓고 있었다.

군디카는 눈앞의 사내를 그냥 죽여 버릴까 하는 욕구를 어렵사리 억눌렀다.

‘그럴 순 없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블레다는 장기짝 역할을 해 줘야 했고, 녀석의 남다른 무위 또한 순간의 욕구 충족과 맞바꾸긴 제법 아까웠으니까.

“말해보시오.”

블레다는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역시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그중 군디카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대무신왕이라 하셨소?”

“검은늑대 부족의 수뇌부에게만 전해지는 오랜 전설이오. 아틸라 녀석이 맨손으로 그 사나운 곰들을 찢어발기는 걸 군디카 족장께서도 봤어야 하오.”

군디카는 그 말이 별달리 와닿지 않았다.

실패한 자가 으레 그렇듯 녀석은 자신의 실책을 무마하기 위해 이제 고작 성년식을 마쳤을 뿐인 애송이를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블레다 공께서는 아틸라라는 꼬맹이가 문주크와 버금가는 전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요?”

“그 이상일 수도 있소.”

“크하하하하하!”

군디카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가 자신의 원대한 야망을 아직까지 머릿속 계획으로만 남겨 둘 수밖에 없는 이유.

‘미친놈. 그 문주크 이상일지도 모른다고?’

그건 바로 검은늑대 부족에 문주크가 있기 때문이었다.

‘문주크와 겨뤄 본 나는 알고 있다. 그건 사람 새끼가 아니야.’

괴물.

아니 괴물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의 존재.

그게 바로 군디카가 생각하는 문주크라는 사내였다.

‘문주크를 암살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땐 언제고. 그럼 그렇지. 어찌 늑대 새끼가 호랑이를 상대하겠는가.’

그러나 군디카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속마음과는 달랐다.

“웃어서 미안하오. 상대할 맛이 나는 적수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즐거워서 그랬소.”

블레다가 문주크를 처리하기 전까진 적당히 비위를 맞춰 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블레다 공께서는 이제 어쩌실 작정이오?”

“생각해 둔 게 있소. 활 잘 쏘는 날랜 부하 몇만 빌려 준다면 내 사흘 안으로 문주크의 목을 가져다드리리다.”

“그런 부하라면 지금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소?”

“그들만으론 부족하오.”

“호오? 무슨 묘안인지 몹시 궁금하구려.”

블레다의 측근들은 검은늑대 부족의 금띠 전사 중에서도 상당히 우수한 자들이다.

그런 그들만으로 부족하다니, 또 무슨 재밌는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저 사내는.

흥미에 찬 군디카의 얼굴을 향해 블레다가 비스듬히 입가를 찢었다.

“숲의 재앙을 이용하겠소.”

* * *

“뭐? 아틸라가 금띠 전사가 되었다고?”

“대단하군. 성년식을 완수하자마자 금띠라니.”

“하긴 곰 세 마리를 혼자 잡았고 세 명의 전사가 그걸 증언했으니 자격은 충분히 갖춰진 셈이지.”

부락은 아틸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무위와 용맹을 숭상하는 검은늑대 부족의 전사들답게 대부분 감탄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였지만.

어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기만 하겠는가.

“친형을 살해한 패륜아가 하루아침에 금띠 전사라고?”

“허! 분명 아틸라를 편애하는 일레크가 제 동생들을 구워삶아 입을 맞춘 게 틀림없어!”

그들은 아이바르의 친우들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억울하게 당한 아이바르의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녀석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거야.”

“하지만 어떻게? 아틸라는 금띠를 받았다고. 동띠인 우리들로선 역부족이지 않을까.”

하루 만에 짐승 같은 근육질로 환골탈태한 아틸라의 육체.

모두들 망설이는 와중 누군가 말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 * *

예기치 않은 손님의 방문에 잠에서 깬 옥타르는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세 얼간이를 보며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네놈들은 고작 아틸라 따위를 혼 내달라 부탁하기 위해 나의 단잠을 깨웠다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아틸라가 누구인가.

전사라 부르기도 아까운 이 얼간이들의 장난감이자 부락 최고의 찌질이가 아니던가.

“이, 임무차 부락을 떠나계셨던 탓에 듣지 못하셨을 겁니다. 그게…… 아틸라는 오늘 정식으로 금띠를 수여받았습니다.”

“뭐? 금띠를? 동띠도 아까운 그 애송이가?”

옥타르의 격한 반응에 아이바르의 친구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마도 함께 사냥을 나선 일레크가 뭔가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 오, 옥타르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일레크가 유독 아틸라 녀석을 챙겨왔다는 것을.”

“흠…….”

“지금 부락은 온통 녀석에 대한 얘기뿐입니다. 심지어 일레크는 문주크 족장의 뒤를 이을 전사왕이 탄생했다며 떠들고 있습니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평가받는 전사이자 일레크에게 연모의 정을 품고 있는 옥타르의 자존감과 질투심을 건드리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이제 쐐기를 박을 시간이었다.

“또 아틸라가 그러더군요. 옥타르처럼 과대평가된 전사 따윈 한 손으로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뭐, 뭐라고!”

자리를 박차며 일어선 옥타르의 몸 근육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다.

“당장 놈에게 안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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