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309화 (309/309)

309화. 나는 전설이다 (4)

[그럼 철거하는 쪽으로 … ]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11월 12일, 이인영은 종로구 재개발추진위원회 관계자와 전화 통화를 나눴다.

종로는 2022년부터 재개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진 지역, 이인영은 딱 그 시기에 빌딩을 매입했고 19년 동안 보유하고 있다.

철거에 동의하면 약 2년 동안 임대료를 받을 수 없게 되는데, 재개발을 통해 거둬들일 수 있는 수익은 임대료보다 몇 배는 더 크지 않나.

두 말 할 것 없이 철거에 동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적거리는 주변 사람들, 최근 몇 년 동안 장사도 안 되는데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있으면 뭐가 바뀌나.

이인영도 임대료로 월 5천 만 원 정도를 벌고 있지만, 세금 떼고 뭐하면 그렇게 큰 이익이 남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뭔가 행동을 취하는 것도 좋겠지, 바로 철거에 나섰다.

꼭대기부터 빌딩을 하나 하나 철거하는 작업, 이인영은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현장에 직접 나가 철거 작업을 확인했다.

돈도 시간도 많이 들지만 이게 최선, 그런데 철거 현장에 나가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여론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인영 종로에 보유한 빌딩 철거한다더라]

-> 거기 임대료 엄청 쌔지 않나? 그걸 철거한다고?

-> 돈이 많으니까 가능한 거겠지.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 거기 재개발한다는 소문은 들리던데, 다른 곳은 삽도 안 들었는데 추진력은 역시 갑이다.

돈이 남아 돌아서 빌딩을 철거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이득을 위해 당장의 손해를 감수한 것 뿐인데 뭔가 오해를 하는 여론,

이인영도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저도 그 빌딩 허무는 거 솔직히 아깝습니다. 그런데 임대료를 받아도 세금 떼고 뭐하면 남는 게 없어요. 그래도 재개발을 하면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제가 먼저 움직인 것 뿐입니다. 무슨 돈이 넘쳐나서 빌딩을 부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날 이후 재개발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이인영이 보유한 건물은 종로에서도 접근성이 그나마 좋은 곳, 이 빌딩을 철거하면 다른 상권은 안 봐도 비디오다.

다들 망설였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적지 않은 잡음이 일어났지만 결국 재개발이 확정됐다.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 진행되는 사업, 바다 건너 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산호세 구단 주인, 바뀐다]

지난 11월,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산호세 구단주 교체를 두고 투표를 진행했다.

지난 23년 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산호세, 팬들은 팀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 줄 새로운 주인을 찾았고, 마침 캘리포니아 펀드가 관심을 보였다.

“안 할래”

그런데 캘리포니아 펀드가 돌연 투자를 철회하면서 구단 지분 매입 절차는 무산 됐다.

더 큰 문제는 산호세 지분 40%를 차지하고 있던 펜 애슐리가 이미 지분을 매각했다는 것, 자금 문제가 심각해진 산호세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게 사무국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 30구단 중 22개 구단이 동의를 해야 하는 일이다.

투표 결과 산호세 지원에 동의한 구단은 19개 뿐, 우리가 먼저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데 산호세에 양보할 자금이 어디에 있나. 사무국의 지원 절차까지 무산되면서 산호세는 공중분해 될 위기에 놓였다.

“내가 사겠다. 하지만 다 인수하긴 어려울 것 같다.”

분위기를 살피던 한 인물이 총대를 짊어졌다.

마이클 셰인은 예전부터 산호세 구단 지분 7%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번에 7억 달러를 투자해 펜 애슐 리가 포기한 지분을 거둬들이기로 했다.

이번 거래가 주주 총회에서 승인되면 마이클 셰인은 산호세 지분의 68%를 차지하는 최대 주주가 되는 것, 하지만 내 힘만으로 구단을 운영하는 건 어렵다며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투자해 볼 생각 없으십니까?]

“제가 그렇게 할 자격과 여유가 있을까요?”

[저는 아무한테나 투자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인영도 마이클 셰인의 레이더 망에 걸려들었다.

상대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을 앞둔 거물, 거기다 구단주로서 프로야구팀을 우승 시킨 전력도 있다.

선수 시절 제법 많은 돈도 벌었겠다, 메이저리그 구단 지분을 소유할 자격은 충분하지 않겠나.

하지만 라이온즈를 이끌어가는 것도 벅찬 이인영은 투자를 망설였다.

“제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해 봤자 8~ 9천만 달러 정도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다른 주주들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보아하니 진짜 날 주주로 끌어들이고 싶은 모양, 이인영은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돌아봤다.

나는 단순히 지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라이온즈를 운영하는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산호세까지 쥐고 흔들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 경영권은 포기하고 투자만 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작년 시즌 우승을 했지만 재정적으로 이득을 보긴 어려운 한국야구, 그에 비해 메이저리그는 수익을 낼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

마이클 셰인이 구단에 얼마나 투자를 할지 모르겠지만 자금만 확보되면 가능성이 보이는 사업, 고심 끝에 산호세 구단 지분 4%를 인수했다.

[이인영 대표, 산호세 구단 지분까지 인수했다.]

명예의 전당 투표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여론에 오르내리는 입장, 투표권을 쥔 기자들은 이런저런 입장을 쏟아냈다.

[분명히 말하는데 난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거다.]

한 기자는 대놓고 투표를 거부했다.

선수들은 대부분 은퇴 후 지도자가 되길 원한다. 코치든 감독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그라운드에서 야구를 가까이 하겠지, 하지만 구단주가 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수 억 달러를 벌어들인 선수에게도 어려운 일,

선수 시절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어도 구단 지분을 인수하려면 다른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작년에 스타 선수가 구단 인수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한 적도 있고, 구단주가 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야구 선수들이 모두 꿈꾸는 구단주, 이인영은 그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런데 이제는 명예의 전당 헌액까지 노린다고? 너무 불공평한 세상 아닌가. 너무 약이 올라서 표를 못 주겠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그는 이미 모든 걸 가졌습니다.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하는 건 정말 못 봐주겠습니다.”

질투심이 폭발한 내용, 그러건 말건 투표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1월 23일까지 진행된 투표, 하지만 이인영은 연봉협상 및 다음 시즌에 대비한 전력 강화를 위해 구단 사무실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대표님, 피어슨이 재계약을 원한다는데요?”

“결혼은 혼자서 하나? 그 친구가 우릴 원해도 우리는 그 친구하고 더는 볼 일 없어.”

작년 시즌, 320만 달러를 들여 영입한 존 피어슨은 냉정하게 내보냈다.

만성적인 어깨 부상에 허리 부상까지 입은 선수, 작년 시즌 48홈런을 쳐냈지만 안고 가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타선은 어느 정도 정비 됐으니 지금은 투수 영입에 몰두할 때, 산호세에서 활약하던 후안 베이컨을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산호세 구단 지분을 인수하면서 겸사겸사 알아본 용병, 그렇게 내년 시즌을 위한 윤곽도 어느 정도 잡혔다.

“대표팀, 오늘은 이만 퇴근하시죠.”

“그렇게 하세요. 투표위원회에서 전화 올지도 모르잖아요.”

“자네들이 일찍 퇴근하고 싶은 건 아니고?”

평범하게 진행되던 회의는 반전을 맞이했다.

오늘은 투표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고 여론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했는데, 기어이 사무실에 출근한 대표, 직원들도 좀 쉬어야지 너무 눈치가 없으신 거 아닌가.

결국 이인영은 측근들에게 떠밀려 사무실을 나섰다.

“대표팀, 위원회에서 아직 답 안 왔나요?”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건물 앞을 서성이던 기자들이 접근해왔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한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끄는 건지, 사실 이인영도 은근 신경이 쓰였지만 그러려니 하고 집으로 향했다.

“시차가 있어서 그런 걸 거야.”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말은 그렇게 해도 자기 은근 긴장한 것 같은데?”

오늘 따라 속을 긁는 아내, 날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건가. 이때 잠잠하던 휴대폰이 격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 잠깐 딴 짓을 하던 아내가 옆에 달라붙었고 이인영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Are you Mr. Lee? This is the Hall of Fame Voting Committee]

= 여기는 명예의 전당 투표 위원회입니다. 이인영 씨죠?

“Ye, go ahead”

= 예, 말씀하세요.

[I give you joy, Your life would be separated before and after this call

= 축하합니다. 당신의 삶은 이 전화를 받은 전과 후로 나뉘겠군요.

투표 결과는 93% 득표, 정말 이 전화로 삶이 바뀌었다.

마운드 위의 투수와 타자 사이의 대결, 이인영은 그 치열한 나날에 인생을 걸었다.

패배의 슬픔, 승리의 기쁨도 모두 경험했던 나날, 야구에 몸 담았던 2만 여 명의 선수들이 벌인 150년간의 혈투, 그 중에서도 선택 받은 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위대한 자리가 있다.

바로 명예의 전당, 전화 한 통으로 위대한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쿠퍼스 타운을 에워싼 수많은 팬들 앞에서 이름이 불려지고 단상 위에 오른 수많은 선수들, 그 살아 있는 전설들이 내 뒤에 모이게 될 거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인영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잠시 고개를 떨궜다.

“자기야,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눈가에 맺힌 부끄러운 흔적은 얼른 치워냈고, 서둘러 소감을 이어갔다.

“어 … 글쎄요.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평범한 성장기를 거치고 드래프트에 참가해 명문 구단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고 메이저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수많은 배팅 타이틀을 따냈고, 5번의 월드시리즈와 4번의 챔피언을 경험했습니다. 그 위대한 도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고 제 전부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도전은 이제 끝났다.

이 전화 한 통으로 막을 내린 18년의 커리어, 그 추억은 이제 전설로 남게 될 거다.

그래도 누군가의 추억과 입담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뭣보다 나는 이제 새로운 삶을 막 시작했다.

인생 2막을 위해 달려야 할 때, 당신의 말대로 내 인생은 이 전화를 받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언제나 최고의 자리를 향해 달려왔던 인생,

이제는 다른 분야에서 1인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부끄러운 흔적은 털고 아내와 눈을 마주쳤다.

“나 내일도 열심히 할 거야.”

“왜 그렇게 비장해?”

“새로운 인생을 위한 출정식이라고 생각해줘. 당신도 따라와 줄 거지?”

혜진 씨는 남편의 시선을 외면했다.

오늘 따라 쓸데없이 열정적인 남편, 그런 게 이 남자의 매력 아니겠나.

말없이 그 품에 몸을 맡겼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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