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나는 전설이다 (3)
“대표님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이인영은 인터뷰에 나섰다.
어쩌면 한국시리즈보다 본인에겐 더 중요한 사건, 얼마 전 전미야구 협회에서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를 11명의 선수를 발표했다.
1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5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후보에 오를 수 있는 MLB 명예의 전당 후보, 내년이 벌써 은퇴 후 5년 째인가.
이인영은 흘러간 세월을 실감했다.
“내년 여름이면 위원회에서 전화가 올지도 모르는데요. 한국시리즈보다 그게 더 신경쓰이지 않으시나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네요.”
한국시리즈 우승은 구단주로서의 기쁨, 명예의 전당 입성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는 기쁨, 어느 쪽이든 포기하기 어렵다.
기왕이면 다 잡고 싶은데 인생이 그렇게 쉽게 흘러 가겠나. 둘 중 하나만 잡고 싶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을 택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냥 두 개 다 잡으시면 되지 않나요?”
“살다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인영은 선수 시절 절대 손해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연봉협상에서 딱 한 번 물러난 적이 있는데, 그건 팀이 아니라 날 위해서였다. 부상으로 30경기 정도 밖에 뛰지 못했는데 연봉 인상이라니, 몇 푼 되지도 않는데 이게 나중에 내 발목을 잡는 거 아닐까.
성적을 내고 떳떳하게 연봉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거절, 그리고 기어이 억대 연봉을 받아냈다.
이후에도 계속된 남는 장사, 하지만 구단주가 되고 사업을 하다 보니 인생은 언제나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손해도 보는 인생, 320만 달러를 투자한 존 피어슨이 허리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을 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서 포기했다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겠지, 손해 보는 것만 걱정했다면 누가 투자를 하고 성공을 거뒀겠나.
어쩌면 야구선수 시절 때 그 진리를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야구도 사업과 마찬가지입니다. 3할 타자는 3번의 성공과 7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40홈런 타자도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죠. 그 실패 속에서 거두는 성공이 인생을 빛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제가 얼마를 벌었다 이런 기사가 나곤 하는데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그 뒤에 얼마나 많은 투자 실패와 쓰디쓴 경험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은 모를 겁니다.”
성공한 사람의 밝은 면만 보는 여론, 그건 사람들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
밝기만 한 게 인생인가?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현실을 외면하니 세상이 어둡고 나만 불행하게 느껴지는 것,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성공을 하고 빛을 볼 수 있겠나.
수많은 실패가 있었기에 한국시리즈까지 올 수 있었던 라이온즈, 이래서 야구는 인생과 같다는 말이 있는 거 아닐까.
이인영은 이번 한국 시리즈에 그만큼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정말 우승만 하면 명예의 전당은 못 들어가셔도 괜찮으신가요?”
“뭐 … 못 들어가도 그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요. 어쨌든 지금은 한국시리즈 우승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도 인터뷰 마지막엔 개인적인 명예에 약간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차피 인간은 이런 존재, 본심까지 속이진 않았다.
“그렇지!! 그거야!!”
그렇게 시작된 한국시리즈, 중계카메라는 관중석 한 곳에 자리를 잡은 이인영 대표의 모습을 가끔 비췄다.
도박판에 뛰어든 사람처럼 공 하나에 일희일비, 서울까지 올라온 라이온즈 팬들도 손에 땀을 쥐는 경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자, 이제 성운 라이온즈의 10회 초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 타자는 김의경 선수, 오늘 4타수 무안타에 그치고 있습니다.”
“1차전부터 피를 말리네요. 베어스도 설마 이런 전개는 예상 못 했을 겁니다.”
베어스의 마운드를 지키는 선수는 조오윤, 올 시즌 35세이브 평균자책점 1.83을 기록한 특급 마무리다.
9회 초, 1사 주자 1루에 올라와 경기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었는데 연타를 얻어 맞으면서 4대 4 동점, 조오윤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베어스 팬들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도 간다.’
베어스의 표창호 감독은 10회에도 조오윤을 올렸다.
마무리를 다른 선수에게 맡긴다는 건 생각도 못해 본 일, 여기사 막고 10회 말 공격에서 점수 내면 되는 거 아닌가.
머릿 속에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렸다.
따악~!!
“와아아아~!!”
하지만 조오윤은 선두타자 김의경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오늘 벌써 3피안타, 정규 시즌을 치르면서 이런 날이 있었던가. 거기다 여긴 한국시리즈 무대, 7년 차 베테랑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죽지 말고 계속 가.’
한편, 표창호 감독은 포수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당당하게 승부하라는 뜻, 약속된 사인이었지만 포수는 이걸 어렵게 가라는 사인으로 오해했다.
경기가 길어진 데다 다들 잔뜩 긴장한 상태라 사인 미스가 난 것, 물론 어렵게 가라는 사인을 받아본 적이 없는 조오윤은 머리를 흔들었다.
[따악~!!]
“타격!! 투수 옆을 지나 유격수가 막아냅니다!! 하지만 송구로 이어지진 못하는 군요!! 라이온즈가 무사 주자 1 – 2루 기회를 맞이합니다!!”
“이건 베어스 입장에선 최악인데요. 조오윤 선수가 한 경기에 안타 4개를 맞은 적이 있었나요?”
“이제는 김찬성 선수 타석인데, 라이온즈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요.”
기회를 잡은 라이온즈 벤치는 바쁘게 움직였다.
김찬성은 올 시즌 3할, 17홈런을 넘긴 검증된 타자, 굳이 번트를 대서 1사 주자 2 – 3루 기회를 만들어야 할까.
하지만 지금은 10회 초, 한점이 중요한 상황이라 고민은 깊어졌다.
‘몰라 그냥 가는 거지.’
이인영은 벤치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2년 전만 해도 벤치에 이런저런 간섭을 했지만 올해는 방관해 버렸다. 존 피어슨의 타격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도 침묵, 임완수 코치가 제안을 하고 나서야 대안을 제시했다.
내가 정말 야구를 보는 눈이 뛰어나고 영입하는 용병마다 대박을 쳤다면 벌써 우승을 했겠지, 그런데 내 선택이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 경기가 어디로 흘러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선수들 손에 달린 일, 간섭할 틈은 없었다.
‘여기서 끝낸다.’
한편, 타석에 들어선 김찬성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처음부터 번트 따윈 생각도 안 했고 우왕좌왕 하던 벤치는 이제 차분한 분위기, 결국 선수에게 맡기겠다는 거 아닌가.
내 손에 달린 팀의 운명, 초구를 노리고 들어갔다.
“바깥쪽으로 유인합니다. 카운트는 원 볼 노 스트라이크”
“조오윤 선수가 긴장한 게 보이네요. 하긴 저 자리만큼 고독한 게 어디있겠습니까.”
마이크를 잡은 이호성 위원은 마무리 투수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신예 시절 때는 블론을 해도 그럴 수도 있다며 미안함을 떨쳐냈지만, 나이를 먹고 고참이 되면서 실패에 대한 무게감이 달라졌다.
그걸 이겨내고 나서야 최고의 마무리 투수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그 이후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는 부담감이 따라 붙었다.
패배하면 그건 100% 내 책임,
2~ 3시간 동안 몸을 날리며 리드를 유지해 준 동료들의 노력이 내가 던지는 공 하나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거다.
9회 말에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고 10회 초에 마운드에 오른 조오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한때 마무리로 뛰었던 입장이라 이호성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따악~!!
“악!!”
“안 돼!!”
유격수 위를 넘어가는 타구, 뒤늦게 스타트를 끊은 김의경은 3루를 돌아 홈으로 내달렸다.
설마 했던 조오윤의 붕괴, 베어스 팬들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라이온즈 벤치는 흥분에 휩싸였다.
정규시즌 0블론을 기록한 철벽을 무너뜨린 날, 반 쯤 포기하고 있던 경기가 뒤집어지자 선수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신 단디 차려라!!”
흥분해서 사투리까지 내지른 감독, 겨우 한 점으로 만족할 건가. 부담을 던 후속타자들은 추가 득점을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뭐든 차면 넘치는 법, 의욕이 너무 앞선데다 살짝 흥분한 탓에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했다.
무사 주자 1 – 3루 기회를 잡고도 추가 득점에 실패한 라이온즈, 미소가 맴돌았던 이인영 대표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좀 쉽게 가도 좋을 텐데 너무 빡빡하게 흘러가는 인생, 이 경기가 딱 그런 상황이라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때 어떻게 그렇게 쳤을까?’
절로 되돌아 보게 되는 선수 시절, 월드시리즈를 5번이나 겪은 만큼 결정적인 상황도 많았다.
놀라울 만큼 정확했던 득점권 타율, 나는 그 때 어떻게 그렇게 잘 칠 수 있었던 걸까. 그때는 내가 잘나서 그렇게 한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기적의 연속이었다.
그 기적이 여기서도 일어나길 바라는 건 욕심인가. 일단 마음은 비웠다.
‘하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 다른 위기 없이 끝난 10회 말,
장장 4시간 24분 동안 경기를 지켜본 이인영은 마음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머리 털 나고 이렇게 1승에 감사했던 적이 있었을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준 N 플렉스의 한영석 대표와 악수를 나눴다.
이런 심장 쫄깃한 게임을 최대 7경기까지 봐야 하는 건가. 2차전부터는 관람을 포기, 사무실에서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다가온 한국시리즈 우승, 16년 만에 왕좌를 탈환한 라이온즈 팬덤은 이인영 대표를 찬양했다.
“4년 동안 욕만 먹었는데 이런 날이 오네요.”
이어지는 인터뷰, 이인영은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뒀던 말을 꺼냈다.
딱히 팬들의 불만과 비난이 속상했던 건 아니다.
사람은 신념이 있어야 하고 그걸 밀고 나갈 추진력이 있어야 하는 법, 지난 4년 동안 운영권을 쥐고 내 마음대로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실패했다면 그건 신념이 아니라 고집이라는 말을 들었겠지, 이 우승 덕분에 앞으로도 고집 있는 구단주 노릇을 할 수 있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 * *
[이인영 대표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아시아 선수로 3번 째 도전,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초]
시간이 흘러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인영은 전미야구협회 위원회 11명, 만장일치 투표를 받아 명예의 전당 공식 후보에 등극, 특히 이번 투표는 투표권자가 714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예전에는 기자가 은퇴를 해도 투표권을 인정해줬지만, 야구협회가 규정을 손을 대면서 은퇴한 기자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이후 유권자는 2020년 기준, 589명을 시작으로 계속 감소, 작년에는 379명까지 떨어졌다.
투표를 던지는 기자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규정을 대폭 완화하면서 이번 명예의 전당 투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집행될 예정, 첫 턴 입성이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인영의 득표율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7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투표입니다. 만장일치는 어렵겠죠.”
“90%만 넘겨도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80% 후반을 예상, 이인영은 기왕 보내 줄 거면 화끈하게 해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문제는 커리어, 20대 중후반에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한 탓에 3000안타, 500홈런, 어느 것 하나 달성하지 못했다.
누적 기록을 은근 중시하는 기자들,
한국시리즈 우승만 하면 명예의 전당은 다음에 들어가도 상관 없다며 대담한 척 했지만, 이인영은 투표 결과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