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306화 (306/309)

306화. 나는 전설이다 (1)

“구단이 선수들을 장사에 이용하는 꼴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

“실력도 없는 선수에게 많은 돈을 쓰라는 거냐?”

시즌 종료 후 MLB 구단과 선수노조는 물러서지 않는 기싸움을 벌였다.

2040년 기준 MLB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약 522만 달러로 집계, 하지만 3년 연속 하락 또는 제자리 걸음을 유지했다.

중계권 계약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MLB 구단, 그런데 왜 선수들의 연봉은 제자리 걸음인가.

정확히 말하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졌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이인영은 한 때 뉴욕에서 연봉 6천만 달러를 기록,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유사한 계약은 속출하는 중, 일례로 세인트루이스와 13년 계약이 끝난 테드 반디는 소속 팀과 7년 3억 2천만 달러 재계약을 맺었다.

올 시즌 68명이 FA를 신청했지만 그 중 1억 달러를 넘긴 경우는 3명 뿐, 나머지는 염가 계약을 맺거나 은퇴 또는 재기를 노리고 단년 계약을 맺었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겼던 MLB 연봉 하락, 캔자스시티의 거포 존 피어스도 찬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7년 전, 93경기에서 20홈런 81타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한 피어스는 다음 시즌 타율 0.311, 홈런 32개, 93타점을 올리며 MVP 투표 6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피어슨은 타율 2할 7~ 8푼, 20홈런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며 꿈도 희망도 없는 캔자스시티 팬들의 유일한 즐거움이 됐지만 작년 시즌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62경기 출장, 타율 0.266, 홈런 3개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28살의 젊은 선수, 재기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캔자스시티는 FA 자격을 얻은 존 피어스를 외면했다.

그건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 여기에 최악의 부진에 역대급 FA 한파까지 겹치면서 피어슨은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그냥 은퇴해버려?’

상심한 피어슨은 은퇴까지 고려했다.

야구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참담한 기분이 드는 건 처음, 이 넓은 미국에 날 받아줄 구단은 없다는 건가.

은퇴와 재기 사이에서 방황하던 거포에게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저희와 계약 하시죠. 연봉은 3억 8천만 엔까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NPB 미요시 호크스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온 것, 미국 돈으로 거의 400만 달러 아닌가.

미국에서 받던 연봉과 다를 게 없는 수준,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언젠간 날 받아줄 구단이 나타날 거라는 기대, 하지만 2월 27일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고 결국 미요시 호크스와 1년 3억 8천만 엔 계약을 맺었다.

따악~!!

“와아아아~!!”

일본에 입성한 피어슨은 첫 16경기에서 일본 무대를 맹폭했다.

개막전 홈런을 시작으로 다음 날 한 경기 3홈런을 날려버린 것, 이후에도 장타행진을 이어가며 16경기에서 11홈런을 기록했다.

단일 시즌 100홈런이라도 날릴 기세, 하지만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스윙 도중 어깨 부상을 당했다.

작년 시즌 날 그렇게 괴롭혔던 부상이 도진 것, 거의 두 달 가까이를 결장한 피어슨은 복귀 후 괜찮은 활약을 보였지만 이전 같은 파워를 보여주진 못했다.

최종 성적은 93경기 출장 타율 0.322, 홈런 22개, 첫 16경기에서 11홈런을 날렸는데 이후 70여 경기에서 11홈런 밖에 기록하질 못했다.

3억 8천만 엔을 투자한 미요시 호크스 입장에서도 실망스러운 기록, 미요시가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피어슨은 다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부상 경력이 뚜렷하고 시즌 막판에 장타력 하락세를 보인 피어슨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은 전무, 이렇게 다시 선수 생명이 끊길 위기에 몰렸다.

“부상만 없다면 활약은 보장된 선수 아닌가.”

“그렇죠. 부상만 없다면 … ”

“그리고 우리도 체면이 있는데 퇴물을 주워올 순 없지 않습니까?”

이때 라이온즈 구단이 피어슨에 관심을 보였다.

이인영은 연봉 300만 달러를 줘서라도 데려오자는 입장, 하지만 구단 관계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피어슨은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45홈런을 날린 거포, 이름 값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명백히 하락세를 걷고 있는 선수, 그리고 KBO가 그런 퇴물을 거둬들이는 역할을 할 순 없는 거 아닌가.

만약 성공한다고 해도 NPB에서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가 KBO에서 성공해 버리면 우리 체면이 뭐가 되는가.

KBO는 지금까지 NPB에 괜찮은 용병을 수출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팬들도 그런 식으로라도 KBO의 위상을 유지하는 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게 사실, KBO에서 활약하던 선수가 NPB에서 활약하면 다들 열광했지만 NBP에서 그냥저냥 활약하던 선수가 KBO에서 활약하면 괜히 배알이 꼴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영입하자는 거야. 영입만으로도 팬들의 관심을 끌 선수 아닌가?”

이인영은 그 점을 노렸다.

잘 하든 못 하든 피어슨은 KBO에서 뛰게 된다면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 이건 구단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라이온즈 구단 지분 11%를 가지고 있는 N 플렉스의 한영석 대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표님이 영입하시겠다면 저도 자금을 대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 원래 투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거죠.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다른 주주들도 투자에 동의하면서 320만 달러가 모였다.

정말 성사된다면 KBO 역사를 새로 쓰는 일, 하지만 피어슨은 KBO 진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KBO 리그에서 활약해 봤자 MLB로 돌아가긴 어렵다고 생각한 것, 하지만 이인영은 조목조목 반박자료를 제출했다.

“자네 에밋 하퍼라고 알고 있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 라이온즈에서 2년 연속 30홈런 100타점 기록하고 MLB 구단하고 계약 맺었어. 그것도 4년 2200만 달러”

“정말입니까?”

“나 농담하는 거 아니네. 뉴스만 들춰봐도 나오는 정보 아닌가.”

그제야 존 피어슨은 에밋 하퍼가 캔자스시티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날 버린 캔자스시티가 한국에서 30홈런 치던 외국인 용병과 다년 계약을 맺었다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탈감과 분노가 휘몰아 쳤다.

“나는 자네가 하퍼보다 한 수 위의 선수라고 생각하네. 한국에서 재기하면 자네를 다시 볼 구단도 나타날 거야. 우리와 함께 해보겠나?”

“ … 좋습니다. 해보죠.”

이렇게 하퍼는 KBO에 입성했다.

여론도 설마 설마 했던 초특급 영입, 존 피어슨이 한국에 입성하면서 피로야구 판도가 들썩거렸다.

이 영입에 라이온즈 구단이 동원한 자금은 특급 용병 2명을 데려올 수 있는 규모, 이인영 대표의 통 큰 소비에 여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건 라이온즈의 마케팅 전략이다”

“너무 큰 돈을 썼다”

“KBO 문을 두들기는 용병들의 눈높이만 높이는 거다.”

다른 구단은 앓는 소리를 늘어놨다.

일개 용병에게 한 시즌 320만 달러를 투자하다니, 한국 야구 규모에서 이게 말이 되는 계약인가.

라이온즈 구단이 너무 크게 판을 벌렸다는 반발이 쏟아졌지만, 이인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한국도 특급 FA 선수에게 4년 100억, 120억을 쓰지 않습니까? 한 시즌으로 따지면 20~ 30억을 쓰는 거죠. 그럼 용병에게 한 시즌 200~ 300만 달러 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왜 다른 구단이 왈가왈부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요.”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어떻게 쓰던 그건 내 마음이다.

부자가 스포츠카 사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동의를 구하나? 당신들은 값싼 차 사는데 우리만 좋은 차 사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사과라도 해야 하나?

우리 돈으로 필요한 용병 사겠다는데 왜 다른 구단이 입에 게거품을 무는 건지, 우리 돈이니 당신들은 신경 끄라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덕분에 피어슨을 향한 야구 팬들의 관심은 급증,

전지훈련에 참가한 피어슨은 인터뷰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KBO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이 몇 개죠?”

“이인영 대표님의 62홈런입니다.”

“그 기록 제가 깨고 가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라이온즈 팬덤을 뒤흔들었다.

피어슨이 못 하길 바라는 건 아닌데, 감히 이인영 대표의 기록을 입에 담다니, 넌 50홈런만 쳐도 밥값하는 거라며 비웃었다.

이인영 대표 이후 사라진 단일 시즌 50홈런, 그 대기록을 또 볼 수 있을까. 50홈런은 힘들어도 부상이 없다면 40홈런 이상은 해주겠지, 팬들과 달리 이인영은 인터뷰에서 피어슨이 63홈런을 때려주길 희망했다.

“정말 그렇게 되면 대표님의 기록이 깨지는 건데 섭섭하진 않으시나요?”

“저는 이제 선수가 아니라 구단주입니다. 선수가 잘하길 바라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저희는 이번에 32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30홈런 타자 2명 분은 해줘야죠.”

그렇게 피어슨은 기대와 우려 속에 KBO 첫 시즌을 맞이했다.

개막전부터 몰려온 관중은 2만 9천 여 명, 이인영도 가족들과 함께 관전에 나섰다.

“아빠, 정말 기록 깨져도 상관 없어요?”

“너는 아빠가 기록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보이니?”

어느덧 중학교 진학을 앞둔 재찬이는 아버지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아버지는 구단주이자 사업가, 내 손발이 될 사람이 잘 해줘야 이득을 보는 입장이다.

선수 시절의 기록에 연연하는 건 구단주답지 못한 행동, 우리 팀 선수가 그 기록을 깨주길 바란다는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확인했다.

1회 초, NA 자이언츠의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라이온즈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자, 김찬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작년 시즌 기록은 타율 0.313, 홈런 17개, 62타점, 매 시즌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이온즈가 이인영 대표 체제로 들어선 지 올해로 4년 째거든요.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전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올해는 결과가 나야겠죠.”

[따악~!!]

“말씀 드리는 사이!! 이 타구는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김찬성 선수는 1루를 돌아 2루까지!! 들어 가는군요!! 산뜻하게 출발하는 새로운 시즌입니다.”

김찬성의 안타로 달아오른 관중석, 여기에 김규하의 추가타가 이어지며 라이온즈가 선취점을 냈다.

이제 타석에는 존 피어슨, 사방에서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쏟아졌다.

건방지게 이인영 대표의 기록을 정조준한 이방인, 하지만 이인영은 피어슨이 자신의 기록을 넘으라는 뜻으로 63번을 부여했다.

저 외국인은 대구 팬들에게 어떤 추억을 남겨줄 것인가. 평소 2~ 3%에 그쳤던 지역 시청률은 11%까지 치솟았다.

이인영 대표도 구단관계자들을 통해 팬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 첫 경기지만 300만 달러를 투자한 효과는 분명했다.

[따아악~!!]

“자!! 잡아 당긴 타구가!! 파울이냐?!! 홈런이냐?!! 좌측 폴 대를 직접 때립니다!!!! 초구를 잡아당긴 홈런!! 일격필살이 뭔지 보여주는 한방입니다!! 스코어 4대 0!! 라이온즈가 개막전부터 엄청난 화력을 보여줍니다!!”

“이거 심상치가 않네요. 올 시즌 대구의 여름은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 같습니다.”

KBO 첫 타석을 홈런으로 장식한 존 피어슨은 한 팔을 비스듬히 들어올리는 특유의 자세를 잡고 베이스를 돌았다.

이곳을 초토화하고 MLB로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한 방, 이인영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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