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욕 먹는 자리 (4)
[성운 라이온즈, 시즌 첫 4연승]
[김찬성 - 에밋 하퍼 활약 돋보였다.]
[이인영 대표, 전지훈련 때부터 두 선수 밀어줘]
5월 중순 이후 성운 라이온즈는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두드러지는 선수는 김찬성과 에밋 하퍼,
첫 20경기에서 타율 0.244, 홈런 없이 5타점을 기록한 김찬성은 이후 25경기에서 타율 0.314, 홈런 2개를 기록하며 살아났다.
안타도 못 치는 용병으로 대접 받던 에미 하퍼도 6월이 끝난 지금 타율 0.311 - 홈런 7개 - 22타점의 준수한 활약, 하지만 이인영 대표는 ‘봐? 내 말아 맞았잖아.’라는 식의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4연승을 달리고도 리그 7위에 머물고 있다는 건, 이전까지 팀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증명할 뿐이다.
하지만 잃은 것만 따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 인생을 살면서 이득만 보는 사람 없고 손해만 보는 사람 없다.
뭘 잃고 뭘 얻었는지 따져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법, 부자들도 주식에서 손해를 봐도 부동산에서 얻은 수익으로 손해를 만회하며 재산을 증축하지 않나.
구단 경영도 그렇게 하면 되겠지, 간만에 라이온즈 파크에 나가 경기를 직관했다.
“자, 오늘 성운 라이온즈는 이창구 선수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올 시즌 10경기 등판 4승 3패 평균자책점 4.38, 51과 1/3이닝 동안 볼넷 17개, 탈삼진 46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경기에서도 7이닝 3실점, 좋은 투구를 했거든요. 오늘도 기대가 큽니다.”
해설위원의 기대와 달리, 이창구는 1회부터 힘겨운 투구를 했다.
왠지 심판이 내 공은 잘 안 잡아주는 느낌, 투구 후 모자를 벗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저 친구 평소에도 저러나?”
“예?”
“판정 마음에 안 들면 평소에도 저렇게 행동하냐고 물었네.”
이인영은 측근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겨우 심판 판정에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도 되는 건가. 물론 본인에게 판정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기도 있었지,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기도 있었을 거다.
경기가 잘 안 풀려도 어떻게든 이닝을 끌고 가는 게 에이스의 역할, 저 선수는 그걸 모르는 건가.
이인영은 벤치에 엄격한 지시를 내려 보냈다.
“투구 수 90개 채울 때까지 내려 보내지 말라고 했다고?”
“예,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지시를 받은 감독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인영 대표는 지금 벌투를 지시한 건가? 문제는 이게 여론에서 화제가 되면 내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선수 교체는 감독인 내 권한 아닌가.
하긴, 김찬성도 끝까지 밀어주라고 압력을 가한 대표, 이 정도 간섭은 놀랍지도 않았다.
1회와 3회에 각각 2점을 내준 이창구는 4회에도 등판, 5회에 다시 1점을 내줬지만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왜 교체 안 하지?’
마운드에 올랐지만 의문은 여전, 감독은 선발 투수를 이렇게 오래 두는 스타일이 아니다.
혹시 제 역할을 못한 내게 벌투를 시키는 건 아닌지, 그럼 더 이를 악물고 던져야 하지 않겠나. 이창구는 결국 6회까지 막아내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따악~!!
“와아아아~!!”
이어지는 6회 말 성운 라이온즈의 공격,
5대 2로 끌려가던 라이온즈는 선두타자 원태규의 2루타와 김찬성(적시타) – 김규하의 연속 안타로 역전 무드를 형성했다.
하지만 무사 1 – 3루에서 3번 타자 에밋 하퍼가 병살타를 치며 3루 주자만 홈인, 5대 4로 만족하고 6회를 마무리 했다.
나름 애는 썼지만 최종 스코어는 6대 4 패배, 경기가 끝난 후 이인영은 이창구를 개인적으로 불러냈다.
“자네는 오늘 경기로 뭘 얻었고 뭘 잃었나?”
“예?”
“자네 90개 넘길 때까지 놔두라고 지시한 건 나야.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나?”
그제야 이창구는 마운드에 6회까지 버틸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했다.
제 역할을 못하는 내게 벌투를 시킨 게 아니었나. 그거라면 굳이 여기까지 불러서 이런 잔소리를 하진 않겠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시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맞아, 내가 보니까 오늘 자네는 판정만 마음에 두고 있더군, 심판이 정말 자네에게 불리한 판정을 했다고 생각하나?”
“ …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불리하게 판정한 건 맞지, 그렇다고 매일 이렇게 편파판정 당한 것도 아니잖아. 오늘 우리가 막판에 추격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자네가 6이닝까지 어떻게든 버텨준 덕분이야. 이 정도면 뭔가 깨달은 게 있을 텐데?”
이창구는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팀에서 밀어주는 차기 에이스인데, 본인이 생각해도 오늘 경기는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혹시 이거 벌투 아냐?’
5실점을 하고도 6회에 마운드에 올랐을 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 경기가 10대 0으로 벌어진 것도 아니고, 5대 2 상황에서 선발 투수에게 벌투 시키는 감독이 어디에 있나.
쓸데없는 피해의식과 망상으로 물들어 있던 오늘 하루,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닫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선수에게 면박이나 주자고 불렀겠나.
이인영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들었다.
“손해 본 것만 따지지 말라고, 시즌은 길어, 자네한테 유리한 경기도 있었을 거야. 자네도 성인이니까 잔소리는 여기까지만 하겠네.”
이인영은 술값과 차비를 이창구 손에 쥐어줬다.
어디서 술이나 한 잔 걸치고 오늘 일은 잊으라는 뜻, 못 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6이닝까지 버텨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당근과 채찍은 철저히 구별했다.
* * *
[에밋 하퍼, 시즌 31호 홈런 작렬]
[119타점으로 리그 전체 2위]
시간은 흘러 9월 21일, 라이온즈 팬들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었다.
현재 성적은 66승 4무 70패, 한진 타이거스와 지구 6위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6년을 돌아보면 포스트시즌 근처에도 못 간 암흑기의 연속, 드디어 그 터널을 뚫고 나오는 건가.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었다.
현재 라이온즈에서 20홈런을 넘긴 선수는 에밋 하퍼 뿐, 나머지는 이도 저도 아닌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다.
라이온즈 파크는 KBO에서도 홈런이 잘 나오는 구장, 올 시즌 194홈런을 퍼붓고 있는 ST 위너스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장타력이 나와 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팀 홈런 리그 7위(148개), 장타율 리그 6위(0.442), 타자친화적 구장을 보유한 의미가 없다.
가장 많은 경기를 홈에서 치르는데 장타력이 이 지경이면 잡을 수 있는 경기도 못 잡는 법, 이인영은 타선을 집중 보강해야 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 시즌 MVP급 활약을 하고 있는 에밋 하퍼는 재계약 대상에 무조건 포함, 8월 12일에 영입한 게릿 앤더슨도 유심히 지켜봤다.
“자, 오늘 성운 라이온즈는 이창구 선수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올 시즌 27경기 등판, 13승 10패 평균자책점 4.26, 147과 2/3이닝 동안 볼넷 51개, 탈삼진 137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에밋 하퍼 선수와 함께 라이온즈의 최대 히트 상품로 평해도 과언은 아니죠. 쓸만한 외국인 투수가 한 명 있었다면 더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는데, 이인영 대표의 선택은 게릿 앤더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을 마냥 비판하기도 어렵죠. 앤더슨 선수가 합류하면서 라이온즈의 장타력이 살아난 건 사실이니까요.”
경기를 앞두고 해설위원은 이런저런 반응을 쏟아냈다.
다른 팀은 외국인 용병 투수를 하나씩 두고 있는데, 이상할 정도로 용병 타자에 집중하는 라이온즈, 하긴 쓸만한 투수보다 30홈런 타자를 육성하는 게 더 힘든 건 사실이다.
아무리 뛰어난 유망주라도 가장 늦게 터진다는 파워 툴, 21세에 55홈런을 날린 이인영은 KBO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괴물로 역사에 남았다.
그 추억에 젖어 있는 라이온즈 팬들은 유독 타자들을 까다롭게 보는 편,
한국에서 6년 동안 300홈런을 넘긴 대타자가 메이저리그로 떠났는데 어지간한 용병이 눈에 들어오겠나.
이런 분위기 때문에 용병 타자들이 버티지 못했던 게 사실, 구단 대표가 밀어주지 않았다면 에밋 하퍼도 4월 말에 2군으로 내려가거나 방출됐을 거다.
그걸 알고 있는 이인영은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진 팀을 개혁하는 중, 게릿 앤더슨을 영입한 것도 그 정책의 연장선이었다.
‘오늘은 좋은 날, 잡자’
한편, 이창구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이인영 대표 말대로 좋은 날도 있으면 나쁜 날도 있는 법, 오늘은 느낌이 좋은 날이다.
이런 날은 무조건 잡아야겠지, 애송이 티를 못 벗었던 유망주는 쓸만한 선수에 가까워졌다.
선발이 버텨줬다면 타선이 기대에 부응할 차례, 1회 초를 무실점으로 넘긴 라이온즈는 1회 말 공격에 나섰다.
“자, 김찬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83, 홈런 13개, 46타점, 지난 4년에 비하면 확실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 시즌이었습니다.”
“그래도 입단 당시에 받았던 평가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죠. 올 시즌의 활약을 계기로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김찬성은 초구부터 달려들었다.
타율은 괜찮지만 미숙한 볼카운트 싸움 때문에 출루율은 0.333, 볼 카운트가 몰리면 자동 아웃 된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단점과 장점이 명확하다는 비판도 여전, 그래도 빛이 보이지 않았던 지난 4년에 비하면 훨씬 나은 활약 아닌가.
주구장창 땅볼과 팝 플라이만 때렸던 시절은 졸업, 아웃이 되더라도 시원한 타구를 노렸다.
‘올해도 포스트 시즌 못 나가면 욕은 내가 먹으면 된다.’
이인영은 이날도 경기를 직관했다.
작년이나 시즌 초에 비하면 확실히 달라진 팀 분위기,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성과 아닌가.
지도자는 욕먹고 책임지라고 있는 자리, 그게 두렵다면 내가 왜 이 길을 택했겠는가. 필승을 부르짖는 팬들과 달리 이인영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따악~!!]
“타격!! 아~ 하지만 정면으로 가는 군요. 김찬성 선수의 첫 타석은 우익수 플라이입니다.”
“확실히 발전하긴 했어요. 낮은 출루율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예전에 비하면 이런 모습도 감지덕지 아닙니까?”
한편, 날카로운 타구를 날린 김찬성은 1루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출루율이 낮든 말든 이게 내가 가야할 길, 다음 타석에서도 2구만에 타격을 했다.
“공을 좀 보고 치라고!!”
“공격이 계속 끊기잖아!!”
하지만 결과는 따라주지 않았고 곳곳에서 날아드는 팬들의 원성, 그래도 김찬성은 자신의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따악~!!
5회 말, 3번 째 타석에서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 2사에서 나온 수확이지만 다음 타자 김규하가 출루하면 에밋 하퍼로 이어진다.
병살타가 많아도 해줄 때는 해주는 선수, 김규하가 볼넷을 골라내면서 라이온즈는 0의 균형을 깰 기회를 잡았다.
‘지금은 내가 더 유명해졌겠지?’
에밋 하퍼는 팬들의 환호에 어깨를 들썩거렸다.
시즌 초만 해도 미모의 아내가 나보다 유명했는데 지금은 역전된 관계, 전지훈련에서 단장과 했던 약속을 지켰다.
이제 남은 건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 이 타석에서 화려한 방점을 찍길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