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96화 (296/309)

296화. 이 날이 영원히 계속되도록 (6)

‘웃으면 되는 거냐?’

계속 되는 경기, 이인영은 넋이 빠진 플레이에 헛웃음을 지었다.

세인트루이스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실책이 두 번째로 적었던 팀, 162경기에서 74실책만 저지르는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이해를 못 하는 수비가 반복,

6회 말 유격수 실책으로 진루한 제이슨 킹슬리가 홈을 밟으면서 6점째를 내줬다. 오늘 실책 4개 째, 하지만 이인영은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국 프로야구 경기당 실책 : 0.69개]

[일본 프로야구 경기당 실책 : 0.47개]

[메이저리그 경기당 실책 : 0.57개]

최근 각 리그의 경기당 실책을 따져보면 대략 이 정도다.

얼핏 보면 일본 내야진의 수비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왜 일본의 야수들은 메이저리그에 정착을 못하는 건가.

타자들이 장타를 노리는 스윙을 하면서 최근 메이저리그는 삼진과 볼넷이 급증했다.

야수가 간섭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승부가 나는 빈도가 많다는 뜻, 반면 일본 프로야구는 타자들이 어떻게든 컨택을 하기 때문에 야수들이 간섭하는 플레이가 메이저리그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일본 야구는 수비가 탄탄한 선수들을 중시하고, 메이저리그는 수비보다 공격을 중시하는 선수기용이 이뤄지는 것,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차이는 전체로 보면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총 경기로 따지면 야수가 간섭한 아웃이 NPB보다 650개 정도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각 팀으로 따지면 경기 당 3~ 4개 정도의 아웃이 야수의 간섭 없이 처리된 것, 그만큼 야수진의 수비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이러니 수비보다 공격이 뛰어난 선수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실책하면 방망이로 만회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동안 야구를 깐깐하게 바라봤던 이인영도 어느덧 메이저리그식 스타일에 순응해버렸다.

‘그래, 오늘은 막장으로 가보자.’

실책과 개그가 만연하는 삽질의 현장,

완벽한 치고 빠지기 전술로 승률을 올리는 아웃복서와 날아드는 주먹도 견뎌내며 타격전을 주고받는 하드 펀처, 팬들은 어느 쪽을 선호할까.

쳐 맞든 말든 주먹을 날리는 하드 펀처 스타일로 접어든 메이저리그, 이인영은 오늘 그 흐름에 몸을 던졌다.

[따악~!!]

“아 … 이 타구는 다시 내야를 빠져나가는데요. 세인트루이스가 1사 주자 1 – 3루 위기에 몰립니다.”

“여기서 만약 추가점이 나온다면 8대 7이거든요. 이인영 선수의 홈런이 나왔을 때만 해도 세인트루이스가 쉽게 가지 않나 했는데, 이렇게 되면 오늘 경기는 알 수가 없네요.”

희생플라이가 나오면서 스코어는 8대 7, 상황이 묘해지자 세인트루이스 불펜이 다급해졌다.

역전만은 절대 내줄 수 없다는 의지,

휴스턴의 강타자 조엘 바이어의 타석을 앞두고 투수 교체가 이뤄졌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맷 해리슨, 이번 포스트 시즌 들어 평균자책점 5.68,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필립 험버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미트를 파고드는 103마일 빠른 볼,

제구가 엉망이지만 3개 중 1개 정도는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는 투수 아닌가. 조엘 바이어는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다음 공을 기다렸다.

‘어라?’

2구는 바깥쪽 보더 라인에 걸치는 102마일 빠른 볼, 동점 주자를 앞에 두고 내가 삼진을 당해야 겠나.

바이어는 그제야 느슨해진 긴장감을 바짝 끌어올렸다.

슬라이더 완성도가 약간 떨어지는 매트 해리슨, 바이어는 다음 공도 빠른 볼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따악~!!

“움직이지 마!!”

힘껏 쳤지만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 이인영은 플라이에 간섭하려는 맷 해리슨을 마운드에 묶어 뒀다.

타구가 글러브에 들어가면서 6회 말 종료,

역전은 내주지 않았지만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한 세인트루이스 선수단은 서둘러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7회 초 공격은 생각만큼 풀리지 않았다.

선두 타자 2루타 - 진루타 – 볼넷이 이어지며 1사 주자 1 - 3루, 여기서 1루 주자가 견제사로 아웃당하고 말았다.

다음 타자 브라이언트가 볼넷을 얻어내며 다시 2사 주자 1 – 3루, 테드 반디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파울 플라이로 물러나며 득점에 실패했다.

이어지는 휴스턴의 7회 말 공격,

1사 주자 만루에서 숀 에반스의 타구가 외야로 뻗어나갔다.

유격수와 좌익수 사이로 향하는 애매한 타구, 좌익수 테드 반디가 캐치하면서 세인트루이스 진영은 한숨을 돌렸다.

“1루!! 1루!!”

이때 유격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1루를 가리켰다.

바가지 안타를 노리고 2루 근처까지 왔던 1루 주자가 급히 귀루하는 걸 본 것, 그런데 이인영은 1루에 없었다.

혹시 모를 중계 플레이에 대비해 마운드 쪽으로 백업을 간 상황,

그런데 테드 반디가 돌연 홈으로 방향을 틀면서 평온했던 관중석이 뒤집어 졌다.

“와아아~!!!”

텅 빈 홈 플레이트,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거기다 송구가 관중석으로 들어가면서 3루 주자는 물론 2루 주자까지 자동 진루권이 주어졌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테드 반디는 넋이 나간 표정, 세인트루이스 선수단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자~ 지금은 정리가 좀 필요한 것 같은데요.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은 포수가 홈을 비웠고 3루 주자가 홈으로 뛰었거든요. 한순간에 연쇄붕괴가 일어나네요.”

박한우 위원은 텅 빈 홈을 지적했다.

포수도 상황에 따라선 홈을 비울 수 있다.

투수는 송구 실책을 대비해 파울 라인 밖으로 나갔고, 1루수가 중계플레이를 위해 마운드로 달려나간 상황, 포수가 1루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테드 반디는 1루 송구를 하려 했고, 운만 맞았다면 여기서 이닝이 끝났을 거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누굴 탓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7회 말에 역전을 내준 세인트루이스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8회 초 공격을 시작, 선두 타자 이인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앞 선 타석에서 8대 5로 달아나는 투 런 홈런을 날린 요주의 인물, 휴스턴 배터리가 승부를 철저히 피하면서 이인영은 볼넷으로 출루했다.

이제 타석에는 마이크 호스, 많은 안타와 실책이 쏟아지면서 경기 시간은 3시간 45분을 넘겼다.

시즌도 막바지라 체력적으로 힘들 때지만 선수들은 어떻게든 집중력을 유지하려 했다.

[따악~!!]

“밀어친 타구가 우측으로 높게 갑니다. 우익수가 … 어?!! 공을 놓쳤어요!! 그 사이 1루 주자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들어!! 갑니다!! 무사 주자 1- 3루!! 세인트루이스가 동점 기회를 맞이합니다!!”

“지금 그렇게 어려운 타구도 아니었거든요. 이건 바이엘 선수의 완벽한 실책입니다.”

바이엘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타자 에릭 피셔가 우측으로 강한 타구를 날렸고, 바이엘은 마지막까지 타구를 쫒아갔지만 펜스와 부딪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다 잡은 공을 놓쳤다.

3루 주자 이인영이 홈을 밟으면서 스코어는 9대 9, 세인트루이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2점을 더 추가했다.

양 팀 합쳐 실책만 8개, 휴스턴 현지 해설위원은 포스트 시즌 단일 경기 신기록이 수립됐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수준 떨어지는 경기인데 왜 눈을 뗄 수가 없는 건지,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역전의 기쁨을 나누던 이인영도 언제 급변할지 모르는 그라운드에 시선을 고정했다. 막장이라도 경기를 할 수 있다면 즐거운 일,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휴~ 설마 설마 했네.”

“나도 지는 줄 알았어”

결국 이날 경기는 12대 11, 세인트루이스의 승리로 끝났다.

휴스턴이 9회말 공격에서 2점을 추가하면서 가슴 쫄깃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승리는 승리,

시리즈가 조금 더 길게 이어져도 괜찮겠다며 여유를 부리던 팬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양 팀 합쳐 34안타 – 11볼넷 - 8실책을 주고받은 대혼전, 4시간 42분 동안 1루를 지킨 이인영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경기 내용만 따진다면 16년 야구 인생 최악의 경기, 기자들 앞에서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경기가 될 것 같다는 소감을 날렸다.

“오늘 경기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야구의 재미는 시간과 관련이 없다는 걸요.”

“시간이요?”

“네, 많은 분들이 시간 때문에 야구 인기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길어진 경기 시간은 정말 야구의 재미를 반감시켰을까.

거의 5시간까지 이어진 경기지만 발걸음을 돌린 팬들은 거의 없었다.

헛손질과 실책이 난무했지만 그만큼 짜릿했던 경기, 야구는 그 자체로 봐야 하는데, 사무국은 시대의 흐름에 맞춘다며 무리하게 경기 시간을 줄이려고 한 거 아닐까.

고의사구 과정에서 나오는 폭투, 승부처의 투수 교체, 이런 것도 야구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시간 길어진다며 교체 못 하게 하면 야구가 재미있어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 오늘 경기, 이인영은 야구는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야구는 150년 동안 이어지면서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올라갈 때까지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는 거죠.

농구는 빠르고 역동적이지만 어느 정도 스코어가 벌어지면 남은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야구는 그게 아니죠.

공 하나 – 아웃 하나에 승패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지켜볼 가치가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채널을 돌려보니 경기가 뒤집혀 있는 경험을 야구 팬 여러분들도 한 번씩은 경험하지 않았나요?

그게 야구의 매력입니다. 시간을 줄인다고 야구의 재미가 올라가는 건 아니라는 거죠. 부탁드리는데 야구를 그냥 놔두세요. 야구는 야구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건드릴수록 본질은 물론 특유의 매력까지 잃어버릴 겁니다.”

이 인터뷰는 사무국 관계자들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동안 우리는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던 것 아닌가. 사무국은 야구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여론의 참견에 따라 수정과 덧칠을 가해왔다.

그 결과 이도 저도 아닌 스포츠가 된 건 아닌지, 오브라이언 커미셔너는 의미가 있는 인터뷰라는 입장을 내놨다.

승패와 관련 없이 팬들도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은 경기, 그럼 된 거 아닌가. 왜 우리는 그동안 시간이라는 것에 그렇게 연연했던 걸까.

사무국은 앞으로 야구의 본질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개혁을 해나가겠다며 팬들의 기대치를 끌어올렸다.

[따악~!!]

“잡아냈고!! 그대로 1루에 송구~ 아웃입니다!! 마이크 호스의 좋은 수비!! 오늘 세인트루이스의 내야진은 빈틈이 없습니다!!”

“어제 실책한 그 선수가 맞나요? 오늘은 집중력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4차전, 어제와 달리 5회까지 타이트한 경기가 이어졌다.

양 팀 합쳐 나온 안타는 4개 뿐, 팬들은 언제 급변할지 모르는 경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것도 야구의 매력, 시리즈 전적은 3대 0으로 뒤지고 있지만 휴스턴 팬들은 기적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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