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일은 일인자-288화 (288/309)

288화. 날 만족시켜 봐 (13)

[딱~!!]

“당긴 타구가!! 라인 안쪽에!! 아~~!! 파울인가요?!!”

“글쎄요. 지금 1루심은 파울을 선언했는데 세인트루이스에서 비디어 판독을 요청했습니다.”

“지금도 몸 쪽인데, 임팩트 순간 스핀을 걸어준 것 같네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타구가 나올 수가 없어요.

박한우 위원은 애제자의 배팅 센스에 혀를 내둘렀다.

탑 스핀이 걸린 타구는 그라운드에서 어떻게 움직일까. 공이 뜬다면 그대로 외야로 날아가겠지만, 바운드가 되면 타구 속도가 더 빨라지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내야수들이 바운드 된 타구는 좀 더 뒤로 물러나서 받아내는 것, 바운드 된 타구에 전진 스텝을 밟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마침 1루 선상을 비워둔 1루수, 몸쪽 공이 들어올 거라 예상했던 이인영은 의도적으로 손목을 이용해 탑 스핀을 거는 타격을 했다.

바운드 타구에 미동도 못한 1루수, 라인 안 쪽에 떨어졌다면 3루 주자는 당연히 홈으로 들어오고 1루 주자는 3루까지 들어갔을 거다.

투수의 볼배합과 내야진의 틈을 꿰뚫은 타격, 경험과 기술이 적절히 조합된 타격에 밀워키 진영은 식은 땀을 흘려내렸다.

‘1루로 좀 더 붙으라고’

밀워키의 감독은 1루수의 위치를 조정했다.

우익수 쪽으로 흘러나가는 구멍을 막기 위해 1루 위치를 약간 옮겼는데, 라인 선상을 노릴 줄이야. 뭣보다 이건 패트로우가 몸 쪽 공을 던진다는 걸 알고 타격을 한 거다.

그래서 바깥쪽 높은 곳으로 던지라고 계속 지시를 했는데 말을 들어 먹질 않는 애송이, 비디오 판독이 진행되는 동안 매뉴얼 포수에게 다시 사인을 보냈다.

다음 공은 무조건 바깥쪽, 그 사이 판독실과 대화를 나누던 주심이 판정을 내렸다.

“이게 파울이라고?!!”

“말도 안 돼!!”

“완벽한 타격이었다고!!”

세인트루이스의 비디오 판독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밀워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타격이라는 건 확실, 타석으로 돌아온 이인영은 평소처럼 자세를 잡았다.

1루수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더 넓어진 내야 구멍, 땅볼이 안타가 될 확률은 더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패트로우가 또 몸쪽 공을 던질까.

던진다면 환영, 하지만 다음 공은 바깥쪽이라고 확신했고 앞발 위치를 살짝 바꿔줬다.

‘볼 배합이 다 읽히네. 이 자식은 수정 구슬이라도 숨기고 다니나?’

눈썰미가 좋은 매뉴얼 포수는 그 변화를 눈치챘다.

이인영의 자세는 지금도 오프 스탠스지만, 앞선 타석에 비하면 앞 발이 홈 플레이트 쪽으로 살짝 들어왔다.

스윙을 최대한 수평으로 끌고 나오겠다는 뜻, 이렇게 되면 팔이 길게 뻗어 나오면서 바깥쪽 공도 타격이 가능해진다.

그럼 투수는 몸쪽을 던져야 하나? 약간 변화를 주긴 했지만 기본적인 오프 스탠스는 지킨 자세, 몸 쪽을 칠 준비도 겸비한 자세다.

3번 타자를 상대로 실투 위험을 감수하면서 몸 쪽 공을 던질 투수가 몇 명이나 있겠나.

거기다 앞 선 타석에서 몸 쪽 공을 날카롭게 때려낸 선수, 매뉴얼은 이인영이 바깥쪽을 노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딱~!!]

“바깥쪽!! 다시 커트해 냅니다.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를 유지하는 군요.”

“두 선수도 모두 대단하네요. 지금도 어지간한 타자라면 끌려 나올만한 코스였는데, 이걸 때려내잖아요.”

“어느 한쪽의 기량이 떨어지면 쉽게 승부가 나는데, 지금 두 선수의 기량은 거의 대등합니다. 둘 다 잘 하니까 이런 명승부가 나오는 게예요. 누가 이기든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포수가 던진 공을 받아든 패트로우는 혀를 낼름거렸다.

긴장하면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 내가 이렇게까지 전력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정규시즌 때도 몇 번 맞붙었지만 포스트 시즌 들어 더 정교해진 상대 선수의 타격, 포스트 시즌 4할 타자의 저력이 이런 건가.

그렇다고 물러설 순 없는 승부, 구속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딱~!!

또 파울, 승부가 7구로 넘어가면서 팬들의 긴장감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앉아 있는 팬이 없을 정도, 몇 몇 꼬마 팬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다음 공은 바운드 볼이 되면서 풀 카운트, 끊어질 듯 말 듯 한 긴장감 속에서 패트로우는 슬라이더를 꺼내들었다.

[딱~!]

“다시 파울입니다!! 승부는 이제 9구로 넘어가는 군요.”

“지금은 슬라이더가 보더 라인에 걸쳤거든요. 만약 이게 파울 라인 안쪽에 들어왔다면 아웃이 됐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인영 선수가 타구에 역스핀을 걸어서 파울 라인 밖으로 내보냈어요. 제가 말로 설명은 하는데, 절대 쉬운 게 아닙니다. 왜 이인영 선수가 통산 타율 3할 5푼이 넘기는지 여기서 답이 나오는 게예요.”

“같은 메이저리거라도 레벨이 다르다는 거죠. 정말 배트 커트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패트로우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슬라이더를 완벽한 코스로 던졌는데 이것마저 커트할 줄이야. 득점권에 주자가 있지만 지금은 이인영만 눈에 들어왔다.

잔재주는 안 통한다 이건가. 다시 바깥쪽 빠른 볼을 던졌지만 빠지고 말았다. 공 9개 던지게 하고 볼넷, 패트로우의 멘탈은 여기서 한 번 무너졌다.

성급히 마운드로 향하는 밀워키의 브리튼 감독, 매뉴얼 포수도 그 뒤를 이었다.

“괜찮아. 자네는 최고의 공을 던졌다고”

“그래, 저 자식이 비정상인 거야. 오늘 구위라면 다음 타자는 쉽게 잡아낼 수 있다고”

이런 저런 위로가 날아들었지만 패트로우의 가슴에 닿지 않았다.

내가 최고의 공을 던졌다고? 그런데도 잡아내지 못했다는 건 결국 내 패배 아닌가.

일단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우선, 심호흡을 하고 다음 타자 마이크 호스와 마주했다.

‘너는 잡는다. 넌 별 것 아니라고’

패트로우는 바깥쪽 빠른 볼을 밀어붙였다.

이인영에 비하면 확실히 떨어지는 컨택 능력, 타격의 끝판왕을 상대하다 다른 타자들을 마주하니 너무 쉬워서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폭투가 될 위험도 감수하고 슬라이더를 던져 마이크 호스를 삼진 처리, 다음 타자 클레이 로맥도 바깥쪽 빠른 볼로 삼진 처리했다.

무사 만루에서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패트로우의 구위, 선취점을 기대했던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그 구위에 혀를 내둘렀다.

“됐어!! 그거야!!”

패트로우는 마지막 남은 아웃카운트를 좌익수 플라이로 마무리 했다.

최소 1득점을 기대했던 홈팬들은 망연자실, 반면 지옥에서 빠져나온 밀워키 진영은 만세삼창을 내질렀다.

완전히 뒤집힌 분위기, 4회 초 마운드에 오른 이충재의 무거운 어깨를 실감했다.

내 실력이 패트로우보다 우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5이닝 정도만 버텨주면 나머지는 동료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공 하나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따악~!!

“아!!!!”

잘 버텼지만 5회 초, 1사 2루에서 맷 곤잘레스에게 우익수 키를 넘어가는 장타를 맞고 말았다.

작년까지 세인트루이스에서 뛰었던 곤잘레스에겐 친정팀에 비수를 꽂은 한 방, 흥분한 베테랑은 2루에서 목을 긋는 세리머니를 했다.

다음 타석에서 빈 볼이 날아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광경, 몇 몇 선수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필립 험버 감독은 분위기를 다독였다.

여기서 말려들면 우리가 패배, 험버 감독은 이닝을 마치고 내려온 투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하아~ 이건 아닌데 … ’

격려의 손길에도 이충재는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5이닝 1실점 투구에 안타까지 때려냈는데, 중요한 걸 놓고 집을 나온 기분이랄까.

처음부터 5이닝을 목표로 잡았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움 뿐, 동료들이 경기를 뒤집어주길 기대했다.

‘난 무리해서 너와 승부를 낼 이유가 없다고’

경기는 어느덧 6회 말, 이인영과 마주한 패트로우는 고의사구를 택했다.

저걸 잡아낼 힘이 있으면 다른 타자에 신경 쓰는 게 훨씬 이득, 사방에서 홈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지만 패트로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만 내세우던 그 애송이가 고의사구에 순순히 따를 줄이야.

패트로우는 고의사구 지시에 대한 불복으로 더그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던진 적도 있다. 통제 불능한 자존심 덩어리를 이렇게 길들이다니, 매뉴얼 포수는 마스크 뒤에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1루로 걸어나간 이인영은 심드렁한 얼굴, 재대결을 희망했지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은 1대 0, 밀워키의 승리로 종료 경기가 끝난 후 패트로우는 기자들의 집중 질문을 받았다.

“6회 말 리(Lee)를 상대로 고의사구를 택했는데, 승부에서 도망친 겁니까?”

“말은 똑바로 하시죠. 저는 이기고 도망쳤을 뿐입니다.”

패트로우는 세인트루이스 지역 기자들의 질문을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같은 도망이라고 해도 지고 도망치는 것과 이기고 도망치는 것은 다르다. 누가 봐도 이인영과 정면승부를 하는 건 손해되는 짓, 국지전에서는 패배했지만 전략적인 안목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나를 누가 도망자라 욕할 수 있단 말인가.

패트로우는 승자는 밀워키고 세인트루이스는 패배자일 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리즈에서도 탈락하고 당신들이 절 도망자라고 비웃을 수 있을지 두고 보겠습니다. 당신들이 응원하는 팀은 패배했습니다. 돌아가서 오늘 일에 대해 토론이라도 해보시죠?”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는 당돌한 인터뷰, 원래 저렇게 말빨이 좋은 선수였나.

패트로우에게 뺨을 맞은 기자들은 이인영에게 몰려가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 친구의 말이 맞습니다. 그 친구는 이기고 도망쳤을 뿐이죠. 아주 현명한 작전이었습니다. 패배자가 비겁함을 논할 수 있을까요? 그런 질문을 던진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인영은 기자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 선수의 구위를 넘지 못했을 뿐, 패배를 순순히 인정했지만 승부는 지금부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패트로우는 몰라도 다른 밀워키 투수들의 공은 충분히 공략할 수 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메이저리그 전체 팀 타율 1위, 홈런 2위를 기록한 팀입니다. 다음 경기는 분명 다를 겁니다.”

이인영의 말대로 다음 경기는 세인트루이스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무려 7홈런 19안타를 쏟아부으며 18대 2완승,

1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에 그친 테드 반디가 홈런 3개, 7타점을 쏟아부으며 밀워키 마운드를 맹폭했다.

이인영도 안타 2개를 보태며 2타점, 패트로우가 너무 뛰어났을 뿐 다른 투수들은 별 것 아니었다.

[세인트루이스, 원정에서 다시 폭발]

[4홈런 포함 15안타, 12득점 밀워키 투수진 완전 붕괴]

밀워키에서 벌어진 3차전도 다르지 않았다.

이틀 동안 무려 34안타를 쏟아낸 세인트루이스 타선, 1승 2패로 몰린 밀워키는 패트로우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1차전에서 투구수 100개를 넘긴 패트로우, 3일 휴식 등판은 무리수 아닐까. 여론의 우려와 달리 패트로우는 자신감을 보였다.

“제가 아니면 던질 투수도 없잖아요? 우리 팀은 승리에 대한 의지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 분위기를 제가 바꾸겠습니다.”

팀 동료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인터뷰, 하지만 지금 밀워키가 믿을 수 있는 건 패트로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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