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날 만족시켜 봐 (4)
[KKW 한국산 조명, 메이저리그 구장 밝힌다.]
[주차장 등 공공시설로 사업 확장]
이곳은 샌디에이고, 한국의 중소기업 KKW는 메이저리그 구단과 정식 계약을 맺었다.
보수적이라면 세계에서 제일가는 메이저리그, 당연히 구단 시설관리나 납품 업체도 20~ 30년 이상씩 계약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시장을 뚫으려면 성능은 물론 가격에서도 확신을 줘야 가능하겠지, 그 어려운 걸 한국 회사가 해냈다.
조명 밝기는 기존의 제품보다 30% 높이고 눈떨림은 줄인 신기술, 처음엔 반신반의 했던 샌디에이고 구단은 만족감을 표했다.
뭣보다 팬들과 선수의 반응이 좋다는 게 긍정적, 만족한 샌디에이고 구단은 구장 내 복도 및 통행로 조명 500여 개도 한국산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된 소소한 변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선수들도 많았다.
“너무 밝아서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가 없다.”
“사인이 보이지 않아 투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원정 팀 선수들의 불만도 속출하는 상황, 정말 한국산 조명은 너무 밝아 문제를 일으키는 건가. 어쨌든 세인트루이스 선수단이 원정 길에 나서면서 이인영은 5년 만에 샌디에이고에 발을 들였다.
“너무 밝나?”
“나는 환해서 좋은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너무 밝은 거 아냐?”
엇갈리는 동료들의 증언, 원래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 않나.
상대 팀도 우리도 같은 환경에서 치르는 경기, 이인영은 조명에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자, 오늘 샌디에이고는 자크 뷸러를 선발로 내세웁니다. 올 시즌 6경기 등판 3승 1패 평균자책점 3.08, 35이닝 동안 볼넷 11개, 탈삼진은 29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경기 등판에서 약간 논란이 되는 일이 있었죠. 정말 조명이 문제인지, 본인의 형편없는 제구 때문인지 두고 보면 알 일입니다.”
지난 5월 16일, 자크 뷸러는 시즌 2번 째 홈경기 등판 경기에 나섰다.
4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했지만 5회에 갑자기 흔들리면서 대량 실점, 2.10에 불과했던 평균자책점이 대폭 상승했다.
“조명이 너무 밝아 포수 사인을 볼 수가 없었다. 폭투가 나온 것도 그게 원인이다.”
뷸러는 부진의 이유를 조명으로 돌렸다.
하지만 한국 조명 업체는 눈 떨림 현상이 30% 정도 줄었다는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뷸러의 변명을 일축, 하지만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논쟁은 계속 되고 있다.
뷸러는 구단에 조명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 했지만 3개월을 들여 공사한 장비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제거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 오늘 경기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이제 막 미국 시장을 뚫어낸 한국 기업 입장에선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 경기, 기업 관계자들도 마른 침을 삼키며 경기를 지켜봤다.
선두 타자 잭 브라이언트는 2루 땅볼 아웃, 2번 타자 테드 반디가 타석에 들어섰다.
“자, 테드 반디 선수의 타격입니다. 올 시즌 타율 0.284, 홈런 16개, 37타점, 홈런과 타점은 모두 팀 내 1위 기록입니다.”
“장타력은 예전과 다를 게 없는데 타율이 너무 떨어졌죠. 작년 시즌도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는데, 올해도 비슷한 페이스로 가고 있습니다.”
“뭐, 타율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작년 시즌, 테드 반디는 삼진율 19.7%, 컨택률 83%를 기록했다.
시즌 타율은 0.296, 통산 타율 3할 3푼이 넘는 선수의 능력에 문제가 생긴 걸까. 하지만 깊게 파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시즌 타율 0.358을 기록한 2029시즌의 삼진율은 19.2%, 컨택률은 86%.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한 작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타격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졌을 뿐, 초구를 버렸던 예전과 달리 빠른 카운트 타격이 늘어나면서 장타가 대폭 늘어났다.
작년 시즌은 새로운 타격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32홈런에 그쳤지만 올 시즌은 52홈런 페이스, 초구부터 낮은 공을 걷어 올렸다.
[따악~!!]
“당긴 타구가!! 좌중간으로!! 멀리!! 펜스를 직접 때립니다!! 타자 주자는 1루를 지나 2루까지!! 안착합니다!! 테드 반디의 2루타!! 세인트루이스가 득점권 기회를 맞이합니다!!”
“이제 이인영 선수가 쳐주면 득점 방정식 완성이죠. 테드 반디 – 이인영 선수로 이어지는 라인은 올 시즌 세인트루이스의 득점 금맥입니다.”
팀원들의 기대를 받으며 들어선 타석, 이인영은 눈을 자주 깜빡거렸다.
밝아서 좋긴 한데 약간 어두운 조명에 익숙해진 탓일까. 설마 나이가 들어서 눈이 침침해진 건 아니겠지,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자세를 잡았다.
“초구,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운데 이인영 선수가 올 시즌 홈런이 6개 밖에 없거든요. 약 21홈런 페이스 … 박한우 위원님은 이 수치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인영 선수의 스윙이 원래 들어 올리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일각에선 장타력이 떨어졌다는 말이 나오는데, 2루타는 14개를 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파워가 떨어진 게 아니라 공이 안 뜨고 있다는 거죠. 본인도 문제를 알고 있을 테니 곧 답이 나올 겁니다.”
이인영은 올 시즌 팔로우 스윙에 집중하는 쪽으로 타격을 수정했다.
팔로우가 길어지면 스윙이 커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해야 몸통 회전력을 살려주면서 장타가 나온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시즌 초반에는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 변화가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면 얼마나 좋겠나.
스윙이 너무 커졌다. 예전처럼 정확하게 쳐야 한다, 온갖 참견이 날아들었지만 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일,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을 버틴 베테랑은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풀어냈다.
따아악~!!
“아!! 됐어!!”
2구 타격, 베이스라인을 달리던 이인영은 배트를 내던졌다.
시범 경기부터 석 달 동안 머릿속으로 그렸던 바로 그 장면,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를 지었다.
통산 600홈런까지 겨우 3개를 남겨뒀을 정도로 많은 홈런을 쳤지만 오늘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홈런, 먼저 홈을 밟은 테드 반디와 손뼉을 마주쳤다.
“자, 다시 한 번 보시죠. 발사각도는 23.3도, 타구 속도는 167km를 기록했습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홈런 평균 발사각도가 27도, 타구 속도는 157km거든요. 각도는 낮은데도 압도적인 타구 속도로 넘겨버리는 이인영 선수 특유의 홈런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페이스를 찾은 걸까요?”
이어지는 3회 초, 이인영은 두 번 째 타석에서도 우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한방을 날렸다.
연타석 홈런을 얻어맞은 자크 뷸러는 4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강판, 반면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J. J. 라모스는 6회까지 3피안타 무실점 짠물 투구를 이어갔다.
3회에 갈린 승부, 오늘 경기에서 3안타(2홈런), 4타점 대활약을 펼친 ㅇ인영은 기자들의 관심에 둘러싸였다.
“오늘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셨는데 혹시 조명의 불편함은 없었습니까?”
“글쎄요. 약간 밝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렇다고 제가 눈 감고 홈런을 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큰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뷸러의 생각은 다르던데요?”
경기가 끝난 후 뷸러는 기자들 앞에서 또 조명을 건드렸다.
그럼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J.J. 라모스가 6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더군다나 샌디에이고 선수단은 이곳 조명에 익숙해질 시간이 충분했지만 세인트루이스는 먼 원정길을 날아와 4시간 쉬고 바로 경기를 치렀다.
그런데도 조명을 탓하는 건 비겁한 변명, 이인영은 사람은 변명을 앞세워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변명은 자기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거기다 멋도 없는 행동이죠. 저는 지난 51경기 동안 6홈런에 그쳤고 많은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변명을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부진을 받아들였고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매일 노력했을 뿐입니다.”
뷸러는 자기 공을 던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비디오를 돌려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뷸러 뿐만 아니라 최근 투수들은 너무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게 야구의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재미를 떨어트린 다고요?”
“네, 바깥쪽 공을 잡아주니까 몸 쪽으로 과감하게 승부를 거는 배짱 있는 투수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불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년 전에 비해 낮은 공과 몸 쪽 공에 박해진 스트라이크 존, 이런 변화 때문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무빙 패스트볼이 유행을 타고 있다.
문제는 과감하게 승부를 거는 투수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 가끔은 빈볼과 위협구가 날아들어야 타자도 승부욕을 불태울 것 아닌가.
그런 전투적인 승부가 없어지면서 약간 밋밋해진 야구 경기, 이인영은 요즘 투수들 중엔 배짱을 지닌 선수가 별로 없다며 불평을 쏟아냈다.
“몸 쪽 공도 잡아줘야 투수들이 더 적극적인 승부를 할 거 아닙니까? 이런 걸 사무국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라이크 존을 수정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요즘 스타일의 투수들은 안타를 쳐도 별로 만족이 안 됩니다. 시시하다고 해야 할까요?”
상대가 강하게 나올수록 쓰러뜨렸을 때 더 큰 희열을 느끼는 법,
바깥쪽 코스를 찔러대며 간이나 보는 투수를 상대해 봤자 보람이 없다. 홈런이나 안타를 쳐도 만족감이 예전만 못한 것도 그런 이유겠지.
이것도 불평이라면 불평, 자크 뷸러의 불평에 비아냥거림을 쏟아냈던 여론은 이인영의 주장에 찬성을 표했다.
예전만큼 화끈한 승부를 하는 투수들이 줄어든 건 사실, 정통 파이어볼러가 줄어들면서 팬들의 즐거움도 줄어들었다.
이게 정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바랐던 변화인가. 이인영은 변화도 좋지만 좋은 것은 유지해야 한다며 여론을 주도했다.
[이인영 오늘도 홈런]
[샌디에이고 3연전 : 타율 0.571, 홈런 3개, 10타점 맹타]
샌디에이고 원정을 마친 세인트루이스는 시카고로 무대를 옮겼다.
조명은 어둡고 낮 경기가 많은 시카고, 동료들은 낮 경기에 어려움을 표했지만 이인영은 태연하게 더그아웃을 누볐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샌디에이고의 조명에 비하면 이곳은 그나마 나은 편, 햇빛이 약간 꺾인 3시에 경기가 시작됐다.
‘아주 좋아. 이 정도가 딱 적당하지’
간만에 마음에 딱 드는 밝기, 하지만 시카고의 선발 앙겔 코일리의 투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나게 두들기고 온 샌디에이고 투수들과 별다를 게 없는 투구, 멀리 도망쳐도 날아오는 코스가 정해져 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들인 10년 전에 비해 확실해 떨어진 투수들의 질, 승부가 시시한 탓에 주심과 잡담까지 나눴다.
“몸쪽에 너무 박하게 굴지 말라고요. 투수 버릇 나빠져요.”
주심은 피식 웃고 말았다.
다른 타자들은 몸 쪽 공에 콜을 주면 눈알을 부라리는데 이 선수는 정 반대, 투수를 리드하는 포수도 고민에 빠졌다.
앞 선 원정경기에서 4홈런을 친 타자에게 몸쪽 승부를 걸 투수가 몇 명이나 있겠나. 하지만 몸쪽을 못 던지는 배터리를 조롱하는 말투도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바깥쪽 승부를 지시, 볼넷을 얻어낸 이인영은 1루로 향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아~ 투수들이 모두 조무래기가 돼 버렸어. 재미가 없다고”
하지만 다음 승부도 비슷하게 진행됐다.
바깥쪽을 찌르는 게 효과적이라는 게 통계로 증명됐는데 우리가 왜 몸 쪽 승부를 걸어줘야 하나.
시카고가 철저히 바깥쪽을 찌르면서 이인영은 컨디션이 좋은 날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다.